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27
2부 69화
“원래 하던 대로요?”
“그래.”
에르하벤의 태도는 담담했다. 케일은 알 수 없는 찜찜함을 느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가라앉네요.”
최한의 말대로, 조금씩 붉은 안개가 가라앉고 있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저쪽에 사람이 서 있구나, 어림짐작 정도 되는 시야였다.
“케일 님, 어디 가십니까?”
“확인하러.”
케일은 복도 끝에 자리한 가장 큰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음.’
지나오는 동안 여러 사람이 멀뚱히 서 있는 것을 보았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속이 안 좋아.’
아직 어지러움과 멀미 기운이 조금 남아 있어서, 다른 사람들 표정이나 분위기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타닥. 타닥.
황제궁 지하 무덤, 강시들이 있던 공간.
복도와 달리 아직 붉은 연기가 가라앉지 않고 꽉 찬 상태였다.
-인간아, 조심해서 다녀라!
1m 정도의 시야만 희미하게 형체가 분간되었다.
-어디로 가냐?
라온의 물음에 케일은 짧게 답했다.
“용.”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붉은 안개 사이로.
가장 높게 솟아오른 형체는 그래도 다른 것에 비해 잘 보였다.
타닥.
케일은 걸음을 멈췄다.
-…인간아.
라온이 나직이 케일을 불렀다. 그의 대답을 바란 부름이 아니었다.
“…이런 식이었군.”
케일은 등 뒤로 에르하벤의 탄식과도 같은 중얼거림을 들었다.
붉은 연기는 어떻게 강시를 정화하는 것일까.
케일은 그것이 궁금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강시가 된 용에게로 향했다.
“하.”
케일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우우—우우우—우우–
짧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붉은 연기 속 반짝이는 금빛 알갱이 혹은 빛덩이.
그것이 진동하며 내는 소리였다.
-인간아, 빨려 들어간다.
금빛과 붉은 연기가 강시가 된 몇 마리의 용에 스며들어 갔다.
용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강시들의 몸에 스며들어 갔다.
붉은 안개는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어 가는 것이었다.
“정화가 되는구나-”
고룡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적으로 죽지 못하면, 그 시신이 세상에 남겨지게 되는 드래곤.
케일은 강시가 된 드래곤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확실히, 드래곤은 연기를 많이 빨아들이는구나.’
드래곤 주위의 붉은 연기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용은 생전의 모습을 찾아갔다.
“굉장한, 굉장한 힘이구나.”
에르하벤이 케일을 지나쳐 드래곤 시신의 피부 위에 손을 올렸다.
“생전의 모습에 가까워지는구나.”
죽은 마나에 감염된 모습이 아닌. 생전의 본래 모습.
-어? 인간아, 저기-!
라온이 놀라서 케일에게 말했고,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에르하벤이 그들과 같은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많은 감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드디어 죽는구나.”
가장 큰 감정은 기쁨과 안도였다.
스스스—-
용의 시신이 머리에서부터 조금씩 가루가 혹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갔다.
초록색을 지닌 드래곤.
주홍색을 지닌 드래곤.
노란빛을 지닌 드래곤.
본래의 색을 찾은 드래곤의 시신들이 하나둘 갖가지 빛깔의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퍼졌다.
붉은 연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다른 반짝이는 가루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여긴 이렇게 끝이 나나 보군.”
에르하벤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라온이 어느새 투명화를 풀고 에르하벤의 곁에 자리해 있었다.
“엄청나네요.”
최한의 한마디에 수이 칸이 답했다.
“엄청난 마나야.”
정화된 용에게서, 그 용이 사라지며 만들어낸 가루에서 마나가 풍겨져 나왔다.
“용이 죽고 나면, 그 주변의 자연이 되살아난다는 말이 있지.”
침묵하던 에르하벤이 설명하듯 덧붙였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말했다.
“황녀. 지하 무덤 입구 문을 열어.”
황녀 올리비아가 멍한 표정으로 주변 광경을 보다가, 고룡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네, 네.”
그녀는 곁에 있던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기사들은 곧장 지하 무덤 입구로 향했다.
본래 황제궁 침실. 침대 아래에 있던 입구였으나. 현재 침실은 깔끔하게 치워졌고, 지하 무덤으로 향하는 입구는 그 크기가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개조된 상태였다.
쏴아아아—
잠시 뒤, 저 멀리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빛깔을 지닌 가루들이 하나둘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아.”
올리비아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물결치듯, 움직이는 여러 빛깔의 가루들. 마치 하늘에 펼쳐진 은하수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붉은 연기. 이 속에서 숨을 쉬는 것이 너무나도 편했다.
청량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숨 한 번에 다른 생동감이 느껴졌다.
정화된 용이 남긴 것이리라.
‘…이렇게 순도 높은 마나라니.’
죽은 용의 흔적이 바람을 타고 이 무덤을 벗어나, 황궁, 수도, 나아가 제국 저 멀리까지 퍼지리라.
‘제국 바깥까지는 무리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올리비아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새로이 시작되고 있구나.’
이 샤올렌이 새로이 시작되는 것이 작은 숨 한 번에 느껴졌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금빛을 머금은 붉은 연기는 대부분 사라졌다.
“…세상에.”
누군가의 감탄이 흘려왔다.
단순한 감탄이라기에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듬뿍 담긴 탄식과도 같았다.
“아.”
올리비아도 같은 감정으로 짧은 탄성을 흘렸다.
“다-”
눈에 보이는, 모든 강시들이.
“다, 정화되었어.”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강시들이 올리비아의 눈에 담겼다.
시야가 닿는 곳의 모든 강시들이 생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심지어 역대 황제들의 검게 변한 시신들마저 원래대로 돌아갔다.
물론 그 원래는 ‘네크로맨서’일 적 검은 거미줄과 같은 신체였다.
‘네크로맨서. 그 자체는 정화를 할 필요 없는, 그것 역시도 자연에 어울리는 상태구나.’
네크로맨서인 2황녀 올리비아는 문득 깨달은 사실을 속으로 삼키며 이어 생각했다.
‘곧 부패가 시작되겠구나.’
강시는 이제 본래의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황녀님.”
수하가 다가와 속삭였다.
“모든 강시들이 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수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 한 번에 이게 가능한 일이었군요.”
올리비아의 시선이 한쪽으로 움직였다. 수하가 주저하며 쏟아내듯 내뱉는 말이 귓가에 닿았다.
“하긴, 그런 광경을 만들 힘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에 정화자가 서 있었다.
‘정화자, 아니, 케일 님이지.’
어지럽다는 듯 몸을 휘청이던 이는 이제 괜찮아진 것인지 서 있는 자세가 꼿꼿했다.
하지만 무심한 얼굴과 달리, 그 안색은 창백했으며 열이라도 나는 건지 아니면 갑갑한 것인지 목까지 채운 셔츠 단추를 풀고 있었다.
‘늘 이렇게 스스로의 힘을 쓰고, 희생하시는 분이라. 또, 티를 잘 내지 않는 분이라, 모든 일이 끝나야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네크로맨서 메리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황녀님. 분위기를 보니 다들 놀란 것 같습니다.”
수하의 말에 올리비아는 케일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로와 교황을 비롯하여 원래 있던 이들도 놀라워하고 있었지만, 케일을 처음 보는 이들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이제야 좀 믿겠군.’
몇몇 인사들은 묘하게 케일의 행적을 믿지 못하며 그가 한 일을 깎아내려 평가했다.
그리고 자신을 추켜세우며, 앞으로 샤올렌에서 자신의 세를 키우려고 했다.
‘이제 좀 조용히, 닥치고 있겠네.’
올리비아는 거친 말을 속으로 삼키며 냉정한 눈길로 그들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황녀님.”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올리비아는 시선을 돌렸다.
“…정화자시여.”
“먼저 들어가서 쉬어도 되겠습니까?”
가까이서 본 케일의 안색은 올리비아의 예상보다 더 안 좋았다.
“네. 쉬세요.”
올리비아는 곧바로 답했고,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을 데리고 멀어져 갔다.
그녀의 곁에 있던 수하가 케일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정말 신기한 분이십니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보고 한마디, 조금이라도 내세울 법도 한데. 늘 말없이 떠나시네요.”
“…그렇기에-”
올리비아는 잠시 자신의 할 말을 내뱉어도 될까 고민했지만, 결국 말했다.
“그렇기에 신과 같은 힘을 쓰는 자가 아니겠어?”
그녀는 이어 말했다.
“전설 속에서 영웅은 신을 넘어서기도 하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그녀는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케일 곁에 교황이 다가가는 것을 보고는 이내 그에게서 시선을 뗀 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러 움직였다.
“정화자시여.”
교황은 케일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
케일은 피곤했지만, 일단 답했다.
교황은 그의 안색을 살피며 케일과 그의 일행들만이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성물을 그대로 가지시면 됩니다.”
“…정말 교단에 안 필요합니까?”
케일은 예의상이지만, 그래도 한번 물어봤다.
이 성물.
이단에서 벗어나, 세를 확장하려는 정화의 불 교단에게는 필요한 물건이 맞았으니까.
씨익.
교황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아주, 아주 작게 말했다.
“가짜를 하나 만들어두려고 합니다.”
“현명하십니다.”
케일은 진심을 담아 칭찬했다.
‘하긴, 여기 샤올렌에서 다시 이 성물을 쓸 일이 없으니. 가짜를 놔둔다고 한들 큰 문제는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하던 케일은 뭔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분명 시야에 뭔가 이상한 게 걸렸다.
‘…….’
교황의 품이 넓은 신관복 옷자락. 그 사이로 드러난 두 손에 작은 구슬이 있었다.
저건 누가 보아도 영상저장구였다.
케일은 잠시 교황을 쳐다봤으나, 교황은 미소와 함께 인사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케일은 생각했다.
저거, 분명 일부러 도망가는 거다.
케일은 교황을 붙잡고 저 영상저장구는 뭐냐고, 저 안에 뭐가 저장되어 있냐고 물을까 고민했지만. 그냥 말았다.
‘이제 곧 떠날 건데 뭐.’
그래. 어차피 다시는 안 올 곳이다.
케일의 귓가로 수이 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성대한 환송식만 보내면 되겠구나.”
케일의 날카로운 시선이 수이 칸에게로 향한 순간, 수이 칸이 소년의 얼굴로 씨익 웃어 보였다.
한껏 재밌어하는 얼굴에 케일은 툭 내뱉었다.
“최대한 규모를 줄인다고 했습니다.”
강시 정화로 바쁘고 힘들 케일을 위해.
올리비아는 환송식이 피곤하지 않도록, 최대한 규모를 줄인다고 약속했다.
케일은 그 말을 믿었다.
* * *
하지만 믿음은 깨져버렸다.
와아아아아—-
우아아아아—-
수많은 환호성과.
파앙! 팡!
곳곳에서 마법으로 터트리는 폭죽과 불꽃놀이.
라라랄-라라라-
어디서 합창단이라도 온 것인지 노랫소리가 들렸고, 성대한 오케스트라 합주도 들려왔다.
“마차군요.”
케일의 말에 노신관 더스트가 말했다.
“네. 특별히 뚜껑을 없애고, 아름답게, 하지만 담백하고 멋지게 꾸민 마차입니다.”
“…황궁에서부터 출발하고요.”
“네. 그리고 중앙 광장에서 텔레포트를 하셔서 처음에 오셨던 신전에서 귀환하시면 됩니다.”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맑고 청명한 하늘.
밝고 활기차던 음악이 성스럽게 변했다.
“지금 출발하시면 됩니다.”
신관 더스트의 말에 케일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의 모습이 백발에 녹안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내가 다시는 샤올렌에 안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