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76
“촌장님.”
촌장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호수라기에는 너무나도 검은색을 품은 눈동자는 차분했다.
최한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를 따라 촌장의 시선도 움직였다.
토벌대가 오는 방향과 정반대. 에르게 산맥으로 뚫린 창을 바라보던 최한은 입을 열었다.
“어르신이 본 것을 믿으십시오.”
촌장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검은 성.
분명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검은 성.
저것이 증거다.
아피토유. 격변기 이후로 달라진 세상의 법칙을 어그러뜨리는 자들이 보이지 않는 저 검은 성에 숨 쉬고 있다.
보이지 않기에 믿을 수 있다.
촌장은 떨림이 가라앉았다. 물론 최한에 비하면 아직 그의 마음속은 휘몰아치는 바다와 같았으나, 그럼에도 흘러넘치지는 않았다.
털썩.
그는 의자에 주저앉고는 가만히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토벌대가 올 방향을 바라봤다.
용 혼혈로만 구성된 신성 제국 최고의 기사단.
제1기사단.
그곳의 인원 중 절반이 이번 토벌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
촌장은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았다.
최한은 그런 촌장을 응시하다가 에르게 산맥 쪽을 바라봤다.
‘라크는 잘 가고 있으려나?’
늑대족 코우칸과 함께 라크는 에르게 산맥에 숨어 있는 늑대족 족장을 만나러 떠났다.
라크가 위험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샨 님, 아치가 함께 갔으니까. 최악은 없을 거야.’
더불어 드래곤 밀라 님도 함께 움직였다.
최한은 라크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함께 온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 한 명.
“뭘 봐?”
소드 마스터 하나. 그녀가 퉁명스럽게 최한에게 말하고는 벽에 등을 기댔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최한은 그녀의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음을 알고 있었다.
성자의 동생 하나. 그녀는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그런가?’
최한은 다시금 천으로 검날을 닦아냈다.
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아직까지는 차분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뜻대로 이루어지길.’
케일 님이 뜻하는 바대로 일이 진행되길.
그런 마음을 담아 최한은 검을 닦았다.
상대가 용 혼혈이니만큼, 그들을 상대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겠지.’
그렇기에 최한은 날을 닦고 또 닦았다.
그리고 제 마음의 칼날을 갈고 또 갈았다.
***
한편 다른 의미로 날이 바짝 선 존재가 있었다.
신성 제국 제1기사단 단원 나인이었다.
“아니, 진작에 그냥 다 죽여버렸으면 편했을 건데. 이 추운 데까지 와서 무슨 개고생입니까?”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 나인의 표정은 한껏 짜증에 가득 차 있었다.
“훗.”
그때,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인은 웨이와 눈이 마주쳤다. 마법을 펼쳐 실드를 두른 웨이는 눈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마냥 얇은 로브 하나 입은 채 말을 타고 있었다.
나인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저 새끼가-”
딱 봐도 마법을 쓰지 못하는 자신을 비웃는 표정이었다.
나인의 손이 곧장 검집으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웨이의 머리통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안 그래도 이런 후진 데 와서 기분 잡치고 있는데, 마법쟁이 새끼가 감히-”
하르 왕국.
이 낙후된 곳에 자신이 와야 한다는 사실에 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화가 나 있던 나인이었다.
“그만.”
하지만 1기사단 단장 제뉴의 입이 열리는 순간, 나인은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그러나 그는 검집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대장! 내가 지금 짜증 안 나게 생겼습니까? 네?”
“그만해라. 우리는 임무 중이다.”
“임무는 무슨!”
성질을 참지 않기로 유명한 나인이었다.
그는 제 속내를 다 쏟아냈다.
“아니 애초에 늑대 새끼들 다 족쳐버렸으면 될걸. 다른 것도 아니고 더러운 피를 죽이는데 우리를 절반이나 파견시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이런 후진 땅에!”
그는 정말 짜증이 났다.
자신이 누군가?
존귀한 용 혼혈이다.
‘선택받은 존재라고!’
그런 자신을 다른 일도 아니고 숨어서 목숨 줄만 연명하고 있는 더러운 수인 놈들 죽이는 데에 쓴단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 춥고 험하고 낙후된 곳으로 보내다니!
‘나중에 돌아가면 교단에 따지든가 해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나인. 자중해라.”
제뉴가 다시 한번 차분하게 경고했다.
하지만 나인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대장도 같은 생각이잖습니까? 우리를 이런 하찮은 일에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중요한 임무다. 하르 왕국, 그것도 스노우 대공가 아래에 있던 늑대족은 상당히 강한 전사란 기록이 남아 있다.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그 난폭함을 드러내면 이 대륙의 사람들이 위험해지는 법.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하!”
나인은 비웃음을 참지 않았다.
“강한 전사는 얼어 죽을. 난폭해져봤자, 제 검도 제대로 못 받아낼 약해빠진 것들을 뭘 그렇게 추켜세워서 말합니까? 어차피 망한 왕국, 죽음이 무서워서 도망간 짐승 새끼들인데.”
“나인.”
제뉴가 빤히 나인을 바라봤다.
그제야 나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망나니 같은 나인이라도 제뉴가 저렇게 쳐다볼 때는 그만 멈춰야 했다.
‘제길!’
하지만 짜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
그러다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제1기사단 단원 7명을 제하고도, 꽤 많은 신성 제국 토벌대 병력이 있었다.
하지만 신성 제국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하르 왕국을 방문하는 일이니만큼 그쪽 인원이 길잡이 혹은 참관을 목적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기사였다.
하르 측 인물을 보호하는 기사 중 한 명인 듯싶었다.
“너.”
잘 걸렸다.
“…네?”
기사가 흠칫한 순간, 나인은 웃으면서 물었다.
“너 아까부터 왜 얼굴 찡그리고 있냐?”
타 왕국의 기사를 향한 존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나인이었다.
이런 그를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같은 제1기사단원들 중 일부는 흥미롭게 바라봤다.
춥고 기나긴 길, 짧은 여흥을 발견이라도 한 듯.
“아, 아닙니다.”
젊은 기사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나인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러면 넌 지금, 이 몸이, 고귀한 피를 이어받은 내가 네 얼굴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소리냐?”
“!”
기사의 눈이 흔들렸다.
“너 분명 내가 망한 왕국이라고, 도망간 짐승 새끼들이라고 말했을 때. 얼굴 찡그렸잖아. 나 보면서 말이야.”
기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동시에 나인의 눈빛이 번뜩였다. 세로로 길게 늘어진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의 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
“야. 말 좀 해봐. 분명 내 말에 너 인상 찡그렸잖아? 아니야?”
“아, 아닙-”
“야.”
아니라고 말하려는 기사에게 나인은 툭 내뱉었다.
“내가 분명히 봤는데. 지금 고귀한 피를 이은 내가 제대로 못 봤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젊은 기사는 말의 고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분명 나인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물론 속으로 분노했지만, 그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훈련은 잘 받았다.
그래서 아니라고 말하면 된다는 것을 알지만, 차마 답할 수 없었다.
‘이번엔 내가 먹잇감이구나.’
하르 왕국으로 방문한 용 혼혈 기사단.
말이 기사단이지 그 안에는 검사와 마법사 등등 갖가지 전투 인원이 존재했다. 다만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용 혼혈이라는 점.
그리고 그들은 유명했다.
안하무인이기로.
때문에 하르 왕국에서는 그들이 방문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특히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 토벌대에게 하르 왕국 측 사람들의 태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기분이 나쁘면, 어떠한 시비든 걸어왔다.
지금처럼 말이다.
차라리 시비에서만 끝난다면 다행이었다. 저들은 때때로 대련을 명목으로 하르 왕국 측 기사를 두드려 패기도 하고, 기사가 아닌 이들에게는 보상금을 과하게 뜯어내거나 곤란한 요구를 들어 사과를 강요해 왔다.
물론 그 이상의 행패도 많았다.
‘어떻게 하지?’
젊은 기사, 샘은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하-!”
그때,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샘은 자신의 앞을 가리는 왜소한 등을 보았다.
‘베일리 님!’
왕국 외교부 총책임자인 베일리가 샘의 앞에 섰다.
“나인 님. 샘 이 녀석이 시력이 약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눈발이 휘날리는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눈가를 살짝 찡그렸는데. 그게 하필 나인 님이 말씀을 하시던 때였나 봅니다! 하하!”
나인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나인.”
제뉴가 다시 한번 나인을 불렀다.
그에 나인은 혀를 찼다. 그는 불만 어린 눈으로 대장을 바라봤다.
‘그깟 망한 왕국 놈들을 왜 신경 써줍니까?’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르 왕국.
감히 고귀한 분을 모시는 신성 제국에 반항한 왕국이었다.
나인은 이 왕국이 사라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였고, 상종도 하기 싫었다.
“감사합니다.”
한 왕국의 외교부 총책임자가 타국 기사단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원래 외교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기도 했다.
“중요한 임무를 앞두고 더 이상의 혼란은 원치 않습니다.”
제뉴는 베일리에게 담백하게 그리 답하고는, 나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찰조를 파견한다.”
“정찰이요?”
“그렇다. 본국에서 자세한 조사를 통해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을 요구했다.”
그 순간, 베일리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어젯밤 신성 제국에서는 무슨 연락이 왔던 것이지?’
어제, 제뉴는 기사단원만 모아놓고 밤에 회의를 짧게 진행했다. 당연히 하르 왕국 측 사람들은 그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다만, 베일리는 감이 왔다.
‘뭔가 변수가 생긴 게 틀림없다.’
늑대족 몰살만 염두에 두고 움직이던 토벌대.
그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특히, ‘조사’라고 했지?’
무엇을 조사한다는 것이지?
베일리는 궁금했다.
그것이 잘하면 늑대 수인과 얼마 남지 않은 스노우 대공가의 영지를 구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쉬이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알아보려고 이 노쇠한 몸을 이끌고 북방으로 온 그녀였으니까.
‘전하께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저처럼 다 늙은 나이에 고생하고 있을 재상과 어리지만 영민하신 전하를 위한 길일 테니까.
그때, 베일리는 제뉴와 눈이 마주쳤다.
‘으음.’
그녀는 제뉴를 가장 경계하고 있었다.
안하무인으로 구는 용 혼혈들 사이에서 차분한 모습으로 그들을 제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제뉴.
하지만 그녀는 안다.
‘더 지독한 놈이다.’
그 판단에 대한 답이라도 내리듯 제뉴가 입을 열었다.
“나인이 정찰을 먼저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 녀석이 가장 민첩하니, 먼저 마을에 도착해 촌장을 만나 주변 상황을 살펴볼 겁니다. 그리고 여기, 마법사인 웨이도 함께할 테니 더 안전하겠지요.”
뭘까. 왜 이렇게 알려주는 걸까. 베일리는 의문이 들었다가 곧 답을 찾았다.
‘아차.’
제뉴, 이자도 저 나인과 같은 자다. 아니 더 독한 자다.
그리 생각하니 답이 보였다.
그녀가 황급히 입을 열었지만 제뉴가 더 빨랐다.
“길잡이로 하르 왕국 측 사람을 한 명 붙여주시면 좋겠군요.”
제뉴의 눈동자가 베일리 어깨 너머를 향했다.
“저 젊은 기사가 좋겠군요. 샘이라고 했던가요? 지금껏 지켜보니 가장 민첩하더군요. 그리고 평소에도 정찰 임무를 맡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셋이서 정찰을 맡으면 좋겠군요.”
히죽. 나인이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그리고 베일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제뉴는 나인의 먹잇감으로 샘을 던져주라고 베일리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거절해야 한다.’
샘. 촉망받는 젊은 기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마을로 갔는데, 촌장의 대답이 시원치 않다고 촌장도 죽이고, 대접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샘까지 죽일 놈이 저 나인이다.
그리고 그런 놈에게 샘을 던져준 이가 제뉴다.
‘이 지독한 것들!’
이것이 어찌하여 대륙을 구하려는 신성 제1기사단의 모습이란 말인가.
베일리는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은 망설임 없이 답해야 한다.
“네. 제가 가겠습니다.”
하지만 기사 샘이 더 빨랐다. 그가 어느새 차분해진 얼굴로 밝게 답했다. 하지만 베일리는 말고삐를 쥔 그의 손이 하얗게 질리고 덜덜 떨리는 것을 보았다.
베일리는 샘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젊은 기사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신만 믿으라는 듯.
“제가 마을까지의 길은 숙지해 두었으니, 안내 가능합니다.”
호오.
나인이 즐겁다는 듯 씩씩하게 말하며 앞으로 나서는 샘을 쳐다봤다.
“샘-”
“괜찮습니다.”
베일리가 그를 불렀으나, 샘은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 나아가 나인과 웨이의 곁에 섰다.
그녀는 그런 샘을 붙잡지 못했다.
사실 제뉴의 제안을 거절하면 샘이 아닌 또 다른 하르 왕국 쪽 기사가 함께 가야 한다. 어떻게든 제뉴가 그리 만들 것이다.
더불어 제뉴는 어떻게든 남아 있는 샘에게 거절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터.
‘지독한 것들.’
베일리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웃었다.
“그래. 먼저 가면 바로 쫓아가마! 그렇지요, 제뉴 님?”
제뉴는 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 혼혈 나인과 웨이를 뒤에 달고서 샘이 앞장서서 말을 몰기 시작했다.
세 명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베일리는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에르게 산맥이 보인다.
‘부디 길이 보이길.’
베일리는 간절히 기도했다.
샘이 무사하길.
에르게 산맥의 수인들이 도망갔길.
마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노쇠한 몸에 쌓인 주름만큼, 그녀의 기도는 점점 개수가 늘어갔다.
***
“보이는군요.”
저 멀리 세 명의 사람이 말을 타고 마을로 접근하는 것을 본 최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촌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이 가실 겁니까?”
최한은 문을 열며 답했다.
“네.”
그리고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같이 가죠.”
하나는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벽에 기대어 있었다.
최한은 바다를 닮은 푸른 머릿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시죠.”
위티라가 산책이라도 가듯, 뒷짐을 진 채 열린 문 너머 마을 입구로 향했다.
그 옆에는 촌장이, 그리고 촌장의 옆에는 최한이 함께였다.
하지만 그 대형은 곧 변했다.
촌장이 가장 앞장섰고, 최한과 위티라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
“저기냐?”
그리고 젊은 기사 샘은 나인의 물음에 숨을 헐떡이며 답했다. 그의 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네. 맞습니다.”
“호오.”
나인은 목책으로 된 입구 밖으로 나오는 이를 보며 히죽 미소를 그렸다.
“그래도 촌장이 제때 인사는 나오는군.”
낙후된 마을을 보며 나인은 입맛을 다셨다.
어젯밤, 대장이 말했다.
‘그곳에 세상의 법칙이 어그러졌다고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다.’
드래곤의 유희일 수도 있으나.
그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
‘철저히 조사하도록.’
그 말이 나인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그 마을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
푸흐.
웃음이 절로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후후.”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같은 용 혼혈, 마법쟁이 웨이도 웃고 있었다.
나인은 확신했다. 저 녀석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둘을 정찰로 보낸 대장 제뉴의 속내도 같을 것이라고.
‘역시 대장이 제일 지독하다니까.’
뒤따라오는 후방은, 후방에 있는 하르 왕국 측 사람들은 다 부서졌거나 혹은 부서지고 있는 마을을 보게 될 것이다.
‘즐겁네.’
이 후진 땅에 와서 처음으로 즐거워지는 나인이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섰다.
“네가 촌장인가?”
“그렇습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촌장. 그의 어깨 너머 최한이 따라 허리를 숙이며 나인을 응시했다.
***
“인간아, 왔다!”
“어. 나도 본다.”
그리고 숨겨진 검은 성에서 케일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케일은 곧장 입을 열었다.
“론.”
“네, 도련님.”
“사람들에게 알려줘.”
론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적이 왔다고 알리겠습니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내려앉았다.
케일은 창밖으로 마을을 내려다봤다.
***
그리고 촌장은 마을을 방문한 세 사람을 눈에 담았다.
‘저 땀범벅인 기사가 하르 왕국 기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