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19
01018 Omnibus – AhnSol. =========================================================================
Omnibus – AhnSol.
세라프의 회임 소식은 머셔너리 캐슬 구석까지 순식간에 퍼졌다.
뜻밖에도 클랜원들의 반향은 담담했다.
아니,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하루가 멀다고 집무실, 옥상 등 곳곳에서 낯뜨거운 소리가 흘러나왔었으니 ‘역시.’ 라고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물론 사정을 모르는 이에 한해서 말이다.
아무튼, 가장 기뻐한 사람은 모름지기 김수현이었다.
천사가 인간의 아이를 배는 데 성공했다.
이 사실에 의구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의 새끼를 잉태했다는데 싫어할 남자는 없으니까.
말인즉 현재로써는 제쳐 둘 문제랄까?
그리하여 세라프는 일단은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모두에게 둘러싸여 임신을 축복받을 수 있었다.
“축하해요. 세라프. 어렵거나 힘든 게 있으면 사양하지 말고 말해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래요. 우리 임신 중일 때 세라프 씨가 많이 도와줬으니, 이제 우리 차례죠.”
“그럼 염치 불고 하지만, 종종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한창 축하와 감사가 오고 가는 와중이었다.
“축하해요! 이야, 그나저나 우리 오빠 정자가 세긴 세다니까? 법칙이고 뭐고 그냥 다 뚫어버리네?”
“언니!”
깔깔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리자, 기함한 김한별이 황급히 말을 끊었다.
세라프가 들려줬었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사가 인간의 아이를 배는 건 생리상, 그리고 법칙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임신은 무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는데, 여하튼 굳이 알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무엇보다 세라프 본인이 나름 기뻐하고 있으니 이 분위기에 괜히 초를 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는지 주위에 있던 몇 명이 그게 뭔 말이냐는 얼굴로 돌아보는 중이었다.
“유정아. 무슨 말이야? 법칙이라니?”
세라프를 토닥거리던 정하연이 묻자, 이유정은 당황이 또렷이 드러난 얼굴로 입을 가렸다.
김한별은 이를 악물었다.
그냥 해본 말이라며 대충 넘기면 될 걸, 저렇게 티를 팍팍 내서야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는가?
더구나 정하연은 깐깐한 성격과 집요함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용자였다.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에이, 언니! 뭘 정색하고 묻고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글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아닌데? 맞는데?”
“에…. 에이이잇!”
“?”
말문이 막힌 걸까.
한동안 머뭇머뭇하던 이유정이 느닷없이 오른팔을 하늘로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정액을 싼다면 하늘까지 뚫으리라! 법칙이 막는다면 그조차 뚫어버리고서! 천사를 임신시켰으니 오빠의 승리다!”
정하연의 얼굴이 급격히 굳었다.
저건 뭔 헛소리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건 또 뭔 말이니?”
“오빠의 정액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유정아~?”
“오빠는 신이다! 인간이 아니야! 그러므로 신의 정자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더 안 캐물을 테니 이제 그만하렴.”
“에헤헤헤.”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인 정하연은 거북한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히히 웃은 이유정은 주변 눈치를 보더니 재빠르게 도망쳤다.
“쟤도 참…. 이제 어엿한 한 명의 애 엄만데….”
가볍게 혀를 찬 정하연은 다시 세라프에 신경을 쏟았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금 재잘재잘 이야기꽃이 피었다.
‘저렇게 넘길 수도 있구나.’
내심 감탄하던 김한별이 몰래 안도하며 눈을 떼려는 찰나였다.
“응?”
문득 돌아가던 시선이 상앗빛 기둥 옆에 서 있는 한 명을 보고 얼핏 멈췄다.
흰 사제 복장을 한 소녀는 다름 아닌 안솔이었다.
잠시 후, 김한별이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안솔이 몸을 돌렸다.
행여 잡힐세라 뒤도 안 보고 뛰쳐나간 탓에 김한별이 미처 부를 틈도 없었다.
아니, 함부로 잡을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얼굴에 그늘진 감정이 너무 괴로워 보여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별이 생각은 어때?”
“네, 네?”
갑자기 부르는 음성에 김한별의 고개가 화들짝 돌아갔다.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던 정하연은 부드러이 미소 지었다.
“오늘 저녁에 축하 파티를 열 거야. 도와줄 거지?”
“아…. 네. 그럼요.”
마지못해 끄덕끄덕하면서도 김한별의 신경은 온통 안솔이 사라진 방향으로 쏠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도 그랬지만, 홀 플레인에 돌아오고 나서 임신과 육아에 쫓겨 많은 신경을 못 써줬다.
한창 탐험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거리가 멀어진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솔 스스로 조용히 지냈다는 점도 분명히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김한별은 문득 가슴 한 구석이 찜찜해지는 걸 느꼈다.
*
아무도 없는 복도는 호젓하기만 하다.
자박자박, 자박자박….
텅 빈 통로를 홀로 걸어가는 발걸음도 무거운 소리를 냈다.
가기 싫은 걸 억지로 끌려가듯 느릿하기 그지없던 걸음은, 이윽고 목적지에 다다르자 축 늘어진다.
거기서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던 안솔은 문고리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방문을 열고 힘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도로 닫히는 소음이 나는 순간이었다.
툭, 툭….
돌아오는 내내 글썽거렸던 눈물이 주룩 쏟아졌다.
숙어진 고개에서 떨궈진 물방울이 바닥을 적신다.
또 한 번 긴 시간을 가만히 서 있던 안솔은 돌연히 무너지듯 침대에 쓰러졌다.
엎드려 누워서, 고개만 돌린 채 애꿎은 벽만 가없이 응시한다.
“…….”
…하기야.
과연 누가 현재 안솔이 느끼는 심정을 헤아릴 수 있으랴?
안솔이 김수현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 머셔너리 클랜원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녀는 이 회차 중 가장 먼저 호감을 표시한 여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관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녀가 서는 위치 또한.
물론 안솔이 우울해진 이유가 단순히 ‘김수현이 돌아봐 주지 않아서.’ 만은 아니었다.
단지….
“윽….”
안솔은 필사적으로 흐느낌을 억누르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각자 아이를 안은 채 축하해주는 여인들과 배를 어루만지며 행복해하던 세라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장면은, 안솔에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불과 일이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등을 맡기고 같이 나아가던 동료들이었다.
언제까지고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철저히 어긋나 버렸다.
좋아하던 오라버니는 여러 여인의 남편이 됐다.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애까지 낳았다.
김한별과 이유정만 봐도 알 수 있다.
통과의례에서 함께 시작했지만, 지금 서 있는 지점은 전혀 같지 않다.
“끅….”
그래,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여기서 멈춰 서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
안솔을 더욱 미치게 하는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김수현은 안솔을 여동생으로 여기고 있다.
그 이상으로 생각할 이유와 의무는 없다.
여인들도 마찬가지.
사랑하는 사내와 맺어지면 안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응당 당연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당연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즉 누구든지 원망하고 싶은데, 아무도 탓할 수 없는 이 간극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결국에는 자기혐오로 이어질 뿐.
“…흑!”
그렇게 생각한 순간 소리 죽여 울던 안솔이 드디어 목놓아 오열한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두려움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어엉, 어어어엉…!”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없어질 것 같아서.
소외당하고 무시당했던, 그 지옥 같았던 현대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아서….
*
석양이 짙은 석음을 뿌리는 저녁.
머셔너리 캐슬에는 세라프가 주인공인 저녁 연회가 성대하게 개최됐다.
“얘는 도대체 왜 안 나오는 거야….”
줄줄이 솜사탕처럼 나오는 음식과 술을 보며 기뻐하던 안현은 불현듯 안솔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잠들었거나 곧 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친오빠 된 입장에서 어찌 가만히 놔둘 수 있으랴.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만큼 안현은 곧바로 친동생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 마침 휘파람을 불며 걸어오는 진수현을 발견해 같이 가자고 억지로 잡아 끌었다.
딱히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늦게 먹으니 너도 늦게 먹으라는 못된 심보 때문이었다.
아무튼, 진수현을 이끌고 안솔의 숙소로 간 안현은 복도를 어정어정 맴도는 의외의 인물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아.”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앞서 도착해 문 앞을 서성이던 여인은 바로 김한별이었다.
설마 안현과 진수현이 같이 올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지 약간 놀란 빛이었다.
안현이 말문을 열었다.
“뭐야? 넌 왜 여기 있어?”
“아, 그냥 뭐…. 그러는 오빠는요?”
김한별은 눈치를 살피며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나야 동생 데리러 왔지. 식당에 안 보여서. 겸사겸사 이놈도 데려오고.”
“뭐 임마? 겸사겸사? 언제는 또 꼭 필요하다며?”
양손을 머리 뒤에 대고 있던 진수현이 벌컥 화를 냈다.
김한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어…. 네가 데리고 나올래? 아니면 내가 데리고 나올까?”
이번에도 안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연회에 정신이 팔려 볼 일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싶었다.
방문과 안현을 한 번씩 번갈아 본 김한별은 선뜻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요. 같이 들어가죠. 오빠 먼저 들어가세요.”
“그러지 뭐.”
머리를 갸우뚱 기울인 안현은 성큼성큼 걸어가 방문을 쿵쿵 두드렸다.
그리고 바로 문을 열어젖혔다.
“솔아! 오빠 들어간다!”
다음 순간.
“솔…. 소, 솔아…?”
미처 두어 걸음 들어가기도 전에 안현의 다리가 우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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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안솔 파트 시작하겠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끝내겠습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