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7
00107 같은 질문, 다른 결과 =========================================================================
하지만 이제 겨우 절반에 불과했다. 아직 갈길이 절반이 남은 만큼 방심은 금물이었다. 나는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걸 자세히 말씀 드리는건 조금 그렇지만…말 그대로 천사들은 알고만 있을 뿐 입니다. 저를 담당하는 천사는 당시 제가 이 힘을 이용하고 받아 들이는걸 매우 반대 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힘은 어떻게….”
정하연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천사들도 반대한 힘을 어떻게 얻었는지 사뭇 궁금증이 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을 통한 사실 확인도 마쳤고 애초에 정당한 과정을 통해 얻었다고 연막을 해놨으니 더 파고들 건덕지는 없었다.
정하연의 입술은 바싹 메말라 있었다. 그녀는 그 고운 입술을 자신의 침으로 적시며 닫았던 입을 열었다.
“그러면 천사들이 반대를 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정당히 얻은 힘을 반대할 정도면 필연 그 이유가 있을텐데요. 천사들은 그래도 홀 플레인 안에서는 사용자가 올바른 길을 가도록 조언을 하는 역할도 있어요.”
확실히 물었군.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건…벼, 별거 아닙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잡고 있던 수정구가 처음으로 진하게 피어올랐다. 의 변화를 확인한 일행들은 모두 이상한 얼굴들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정하연의 시선을 피한채 바닥을 보고 있었지만 어차피 이것도 모두 계획의 일부였다.
물론 “솔직히 이렇게 다 있는데서 말하고 싶은 부분은 아닙니다.” 또는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할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해도 의 불꽃이 변할 가능성은 있었다. 나는 실제로 정하연에게 하나의 질문을 유도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두 말이 거짓말로 판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정하연의 눈은 더욱 가늘게 변했다. 거의 다 잡은 물고기를 보는 심정으로 나는 조마조마하게 그녀를 바라 보았다.
“이 변했어요. 거짓말을 하셨군요.”
“…사정이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이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허용 하셨잖아요. 아예 안했다면 모를까, 대답해 주세요. 저를 더는 실망 시키지 말아 주세요. 아니면….”
“…….”
묵묵부답. 내 얼굴을 확인한 정하연은 말을 멈추고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첫날 수현씨가 우리들한테 베푼 호의를 잊을 수 없어요.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어떻게 잊어요? 그 후 애들을 대하는 모습과 캐러밴의 리더로서 보여준 모습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리더였어요. 황금 사자 클랜에 오퍼를 받으셨다고 하셨죠? 저도 그랬어요. 그리고 탈퇴 했죠. 하지만 수현씨와 애들이 지내는 모습들을 보고 마음이 많이 흔들렸어요. 그래요. 마치 홀 플레인에서는 볼 수 없는 가족 같은 느낌이었죠.”
호칭은 사용자 김수현, 당신에서 다시 수현씨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모습들이 부럽고 한편으로는 설레는 기대감도 들었어요. 그런데…그 기대감은 저만 가진 건가요? 저 혼자만의 헛된 기대였나요?”
이제 정하연은 거의 애원조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번 더 뜸을 들이기로 했다.
“이 힘은….”
살짝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할 말들을 가다 듬었다. 화정의 힘은 확실히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 순간 나는 고민이 들었다. 지금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상황이 누적 된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장담하기 힘들었다.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남은 포인트를 전부 체력 능력치에 투자하는게 옳은 결정이라는 것을. 그러나 101 능력치에 남은 미련은 너무도, 너무도 크다. 10년 동안 홀 플레인에 101 능력치로 알려진 사용자는 총 2명이 있었고, 그 2명은 모두 한 시절을 풍미한 사용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지금 내가 가진 포인트중 8 포인트를 투자한다면 나는 민첩과 마력 능력치를 둘다 101 포인트로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만큼, 능력이 올라간만큼 내 몸에 걸리는 반동은 더욱 커진다. 이성은 체력을 올리라고 하지만 감정은 민첩과 마력으로 쏠리고 있었다. 갑자기 답답한 마음이 들어 나는 크게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나는 머리를 세게 털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미안한 마음에 시선을 올리자 정하연의 상심에 젖은 얼굴이 보였다. 내 고민하는 얼굴과 한숨을 정하연은 다른 의도로 받아 들인것 같았다.
“저 혼자만의 기대였나 보군요…좋아요. 이만 에서 손을….”
그녀의 선언에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 힘은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정하연의 말을 끊으며 들어가자 그녀가 말을 멈추는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겨우 털어놓자 순식간에 숨소리도 죽인듯한 고요함이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는 잠시 내 말을 곱씹듯 고개를 기울였다.
“말이 안 되잖아요. 인간이 다룰 수 없는 힘인데…아…?”
“하지만 지금 제 몸 안에 잠들어 있는것도 사실 입니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수정구로 향한다. 그순간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차오르는걸 볼 수 있었다.
“설마…!”
“…휴. 그래요. 이 힘은 원래 인간이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입이 서서히 벌어진다.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틀어 막았다. 몸에 차오르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건가. 확실히 머리 회전이 빠른 그녀라서 그런지 뒤로 이어질 말들을 짐작한 모양이다.
나는 정말 말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말한다는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네. 지금 모종의 이유로 제 몸에 잠들어 있는 힘은, 양날의 검 입니다. 이 능력을 발동하면 저는 매우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엄청난 위험도 동반하고 있습니다. 저를 발견 했을때 제 꼴을 보시면 아셨겠지만 이 힘은 한번 끌어 올릴때마다 제 몸에 굉장히 큰 반동을 줍니다. 그 충격으로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죠.”
일행들 모두는 엄청나게 놀란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욱 얘기를 이끌어 가야 한다.
“담당 천사가 반대한건 이 힘이 언젠가 제 목숨을 해칠거라고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이 힘을 스스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럴만한 사정이란건 지옥의 대공을 말하는 것. 놈이 부리는 지옥의 겁화와 맞서기 위해서는 화정만한 불꽃이 없다.
얘기를 들은 정하연은 멍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다 이내 또다시 시선을 으로 내렸다. 수정 안에는 어느새 다시 옅은 색으로 돌아온 불꽃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순간 나는 속으로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슬쩍 정하연과 다른 일행들의 안색을 살폈다. 이미 미끼는 확실하게 문 상태. 이제는 타이밍을 노려 끌어 올리는 일만 남았다.
옆에서 애들이 뭐라고 우물거리는 소리들이 들렸지만 일단은 무시한다. 나는 오직 담담한 눈으로 정하연의 얼굴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기만 급급 했다. 탐험 이후 처음 보는 그녀의 흔들리는 모습. 확실히 내 말은 그녀의 내면을 뒤흔드는게 성공 했다.
그순간 옆에서 내 옷깃을 꾹꾹 잡아 당기는 손길에 나는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오라버니….”
어느새 솔이 엉금엉금 기어와 나를 보며 입술을 덜덜 떨고 있었다. 뒤로 애들과 비비앙 또한 어쩔줄 몰라 하는 표정들 이었다. 옆에서 신상용은 바보처럼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자 나는 아주 조금 장난기가 들었다.
이윽고 내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자 순간 솔의 눈망울에 방울방울 눈물이 매달리는걸 볼 수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표정 연기를 거두었다. 얘는 도대체 무서워서 뭔 말을 못해.
“하….”
그때 앞에서 들리는 한숨 섞인 탄성에 고개를 돌리는 정하연이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게 보였다. 아마 혼란스러울 것이다. “믿을 수 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은 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그래요…그런데…어떻게…아…. 그게 사실이면요, 아니 사실인데….”
그녀는 머리가 흔들리는지 중간중간 두서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황금 사자 클랜에서 탈퇴 했다고 했는데…그때 무슨 일을 겪었던 건가. 내 생각 이상으로 흔들리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조그마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러나 호기심 해결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지금은 중요한 순간의 연속이다.
정하연은 본인 또한 경황이 없음을 깨달았는지 정하연은 얼굴을 감쌌던 손을 내려 자신의 턱을 괴었다. 그녀의 눈은 감겼고 입술은 꾹 다물어진 상태였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 아마 그녀 나름대로 내가 말한 사실들과 머리속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것 같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리고 일행들중 그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나로서는 하등 나쁠게 없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 그녀가 다시 눈을 뜨고 턱을 괴던 손도 다시 바닥으로 힘없이 늘어 뜨리는걸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전과는 다르게 상당히 피로함이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동안 나와 눈을 맞추더니 이내 처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만 그 목소리에는 전과 같은 또박또박한 힘이 없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어요.”
“을 꺼냈을 때부터 충분한 실례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은 유지 되고 있습니다. 뭐 한두번 더 실례 하신다고 바뀌는건 없어 보입니다.”
불쾌한 얼굴로 쏘아 붙이자 정하연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전부 다 사실. 더불어 내 개인 정보까지 일부 쥐고 있는 셈. 만약 정하연이 내게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지 못한다면 나는 암묵적으로 그녀를 살해할 수 있는 최소 명분을 지닐 수 있다.
“…그래요. 지금까지 수현씨가 하신 말씀들은 전부 진실이었어요. 수현씨 속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함부로 의심한건…미안해요. 너무 미안해요.”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에요. 저는 아직 궁금한건 많아요. 하지만 그런것들은 제가 알 자격도 없겠죠. 그래도. 그게 아니라도요. 저는 한가지 궁금한게 남았어요. 어떻게 보면 공적인 질문이기도 하지만 사적인 호기심 이기도 해요. 정말 뻔뻔하고 염치 없는건 알지만 이번 한번만 질문을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대답해 주신다면 저는 스스로 진실의 수정을 깨뜨리겠어요.”
공적인 질문이기도 하지만 사적인 호기심이기도 하다라. 그렇다면 정지연의 일일 가능성은 적을것이다. 나는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한번 주억였다.
“일단 말씀해 보세요. 한번 들어는 보겠습니다.”
“수현씨는.”
내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정하연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시는 거에요?”
“……!”
그순간 나는 질문을 하는 정하연의 얼굴 위로 김한별의 얼굴이 겹치는 느낌을 받았다. 김한별과 오두막에서 나눴던 대화들이 내 마음속으로 떠올랐다.
김한별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떠났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그때와 비슷한 질문을 나는 지금 들으려 하고 있었다.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정하연은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사용할수록 몸을 망가뜨리는 힘이라매요. 그러면 남용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방금전 마족…물론 수현씨가 혼자서 처리하기는 했어요. 그래도 그런 사정이 있었으면 우리들이랑 같이 싸울 수 있지 않았나요? 꼭 혼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그 힘을 써야만 했나요?”
“그건….”
“물론 희생적이고 어떤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는것도 알아요. 하지만 여기는 홀 플레인 이잖아요. 수현씨는 이 홀 플레인이란 곳이 어떤지 아실거 아니에요. 그렇게 자신의 앞가림을 잘 하시는 분이 애들한테도, 그리고 저희들한테도 무엇을 바라면서 그렇게까지 행동하시는 건가요? 도대체 어떤 의도, 어떤 목적이 있길래 그렇게 희생을 자처하시는 거냐구요…대답해 주세요….”
그녀의 절박한 어조에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나 속으로는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드디어 잡았다는 생각에 온몸에 안도감이 맴돌았다. 방금전 정하연이 한 질문이 바로 내가 가장 원하던 질문 이었다.
모두 무언가 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그들의 시선을 음미하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 입니다.
오늘은 기분이 참 편안하고 잔잔하네요. 날이 시원하게 풀려서 그런가 봅니다. 🙂
이로서 대화도 다음회에 매듭만 지으면 되겠군요.
그리고 H한 부분은요…폐허의 연구소를 벗어난 이후로 잡고 있어요.
일단 뮬로 돌아가서 나름의 정비와 할 일들을 마친후가 될 예정 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오늘 연참도 했으니, 슬슬 점심을 먹으러 가야 겠네요. 배가 너무 고파요. 하하하.
그러면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리리플 』
1. 미월야 : 첫 코멘트 축하 드립니다. 부디 107회 즐겁게 감상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 MT곰 : 하하. 괜찮아요. 저한테는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비록 코멘트는 달지 않으셔도 제 글을 조용히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이 훨씬 많거든요! 🙂
3. ㅡMinTㅡ : 코멘트 보고 따끔 했어요. 정답 입니다. 하하.
4. 미국막빡 : 하하하. 소개글은 정말 미치겠네요. 왜 이렇게 안 떠오를까요. 벌써 지운것만 8개를 넘어가니 원. ㅜ.ㅠ
5. 메날두 : 네. 뮬로 돌아간 이후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있으면 또 변화(?!)하는데 성장은 다 한 후 올리는게 나을것 같아서요. 하하하.
6. 라무데 : 오타 지적 고맙습니다. 수정 완료 했습니다.
7. CrossDie : 정하연 나쁜x 만들기 프로젝트! 는 농담이구요. 아무래도 유정의 털털한 성격에 기대해 봐야겠죠. 🙂
8. gfdrkgdfgkml : 그러니까요. 이 건방진 정하연 같으니! 어디 주인공한테 감히 따지는 걸까요. 에헴.
9. 천겁혈신천무존 : 세라프요? 불쌍해요. 제가 설정하긴 했지만 그냥 불쌍해요.
10. Toranoanal : 하하하. 하하. 하…OTL. 뮬로 돌아간 이후를 기대해 주세요…. ㅜ.ㅠ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연참의 원동력이 됩니다.(이건 진리입니다.)
코멘트는 항상 전부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리리플에 없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정 궁금하신 부분은 쪽지로 주시면 답변 드릴게요!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