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34
00134 한층 더 성숙해지다 =========================================================================
“후우.”
“후~우.”
나와 고연주는 계단에 나란히 걸터 앉아 동시에 연기를 내뿜었다. 그녀는 연초를 태우는 내내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름 진심으로 숨은것 같은데, 내가 가볍게 간파하자 그러는것 같았다. 나 또한 제 3의 눈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1회차 시절의 나였다면 이렇게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 연초만 뻑뻑 피우고 있다. 고연주는 아무래도 먼저 입을 열 생각이 없는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재를 한번 털고 슬며시 말문을 열었다.
“도대체 그곳에는 왜 숨어 있었던 겁니까?”
“그럼 2층에 그렇게 강한 마나 유동이 느껴지는데. 안 올라오고 배겨요?”
내 의문에 고연주는 톡 쏘는 말투로 대답했다. 마나 유동이라면 마력 감지를 말하는건가. 나는 한번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러면 대충 살피고 가거나 나와 있으면 되지요. 꼭 숨을 필요는 없잖아요.”
“쳇.”
이번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고연주는 혀를 차는걸로 패배를 시인했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에 나는 미미한 웃음을 질렀다. 좋아. 이대로 연초를 다 태운 후 특실로 올라가면….
“가만 보면…사용자 김수현은 참 눈치가 없는 사용자인것 같아요.”
오늘 하루는 좋은 마무리다. 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고연주의 새로운 반격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실소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눈치가 없다. 홀 플레인에서 10년을 굴러 먹은 내가 눈치가 없다. 정말로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다.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소리 없는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고연주는 그게 아닌것 같았다. 그녀는 내 실소를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어이 없다는 식의 웃음은 뭐에요. 설마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저 우스울 따름 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본인이 눈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아무래도 그렇죠. 왠만한 사용자들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고연주는 뭔가 핀트가 어긋난것 같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몸을 조금 돌려 내 어깨에 슬쩍 손을 짚고는 진중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이보세요. 사용자 김수현씨. 미안한 말 이지만, 당신 정말로 눈치 없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눈치란 전투나 그외 기타 사항에서 쓰이는 눈치를 말하는게 아니에요.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눈치를 말하고 있답니다. 아시겠어요?”
“하하. 그건 안현 녀석이 없는거죠.”
고연주는 내 가벼운 대답에 기가막힌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잠시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는 조금 더 목소리를 높였다. 고연주의 이런 당황하는 얼굴은 처음 보는거라 나름 재미가 있었다.
“아니에요! 최소한 그 애송이가 수현씨 보다는 훨씬 눈치가 있어요. 제 말을 믿어요. 그리고 눈치좀 기르세요. 이러다가 정말 큰일날 거에요.”
“나참. 큰일은 무슨 큰일 입니까. 그리고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저 눈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아….”
고연주는 내 말에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런식으로 약점을 발견하게 되다니…. 아니, 약점은 아니고 단점인가.” 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 태운 연초를 탁 튕겼다. 여관 주인이 자기 여관을 소중히 다룰줄 모르는군. 나는 아직 남아 있는 연초를 한모금 더 빨았다.
고연주는 연초를 모두 태웠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나와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것 같았다. 지금도 내가 이렇게 다 속마음을 짐작하는데 눈치가 없다고? 나는 콧방귀를 끼고는 조금 더 그녀의 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윽고 나도 연초를 비벼 끌 무렵, 예상대로 고연주의 입술이 살며시 열리는걸 볼 수 있었다.
“결국 다녀오셨네요?”
다녀왔다 함은, 유정이를 얘기 하는건가. 확실히 고연주는 내가 나서는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판단을 우선해 유정을 달랬다.
“네. 보셨다시피.”
“보고 듣지는 않았어요. 그나저나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그녀가 말 끝을 흐리자, 나는 잠시간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이 문제를 질질 끌어봤자 하등 좋을게 없었다. 그녀가 알든 모르든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해주는게 더 나을것 같았다. 해서, 나는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네. 그러셨죠. 하지만 가는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연주는 내 대답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내가 방금전에 내뱉은 말은 수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고연주는 턱을 괸채 전방을 보며 내 말을 곱씹고 있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음….”
치켜 올린 한쪽 손가락을 볼을 톡톡 두드리며 혼잣말을 하는 고연주. 그리고 아래로 얼굴을 받치고 있는 맵시 있게 쥔 손가락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력을 돋워 그녀를 자세히 살폈다.
아름답다.
복숭아 빛이 물든 흰 눈 같은 매끈한 살결, 자그마한 홍조가 깃들어 있는 볼. 그녀의 눈썹은 가느다랗고 연하게 그려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앞을 응시하는 동안 비치는 깊게 침잠 되어 있는 눈동자를 보니 빨려 들어갈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연주는 말 그대로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었다.
“응…?”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는 몇번 눈을 깜빡이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 탓에 갸름한 얼굴을 덮는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이윽고 나와 그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는 순간, 그녀는 연한 미소를 머금었다. 눈은 아름다운 호선으로 휘어졌고, 예쁜 주홍빛의 입술은 반원을 그리며 서서히 열린다.
“왜 그렇게 빤~히 보시는걸까. 반했어요?”
“…반할 뻔 했다고 해둘게요.”
고개를 주억이며 순순히 시인하자, 고연주는 별일이라는 얼굴로 말했다.
“하. 정말요? 오늘따라 왜 이러세요. 예전에 그렇게 유혹할때는 죽어도 안 넘어오더니.”
“글쎄요.”
나는 애매하게 대꾸하며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내가 방금 시선을 뺏긴 이유는, 그녀의 모습에게서 한소영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소영은 고민할때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한쪽 볼을 톡톡 두드리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한소영은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한소영이 떠오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를 보던 고연주는 살짝 엉덩이를 들고는 내 쪽으로 다가 오더니, 어깨를 살짝 붙였다. 곧이어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 그녀는 나긋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을 이해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 안해요. 다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당신의 행동은 조만간 결과로 나올테니 천천히 지켜보도록 할게요. 다만, 그 문제는 당신이 아닌 그 꼬맹이 한테 달린 일이라는건 변하지 않아요.”
“그건 그렇죠. 아무튼 참 고마운 말 이군요.”
고연주 말인즉슨 그당시 내가 했던 부탁이 아직 유효하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에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혹시라도 그녀가 변심하면 유정의 결의가 말짱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말짱 도루묵 까지는 아니고 조금 퇴색 된다고 해야 하나.
내 말에 고연주는 살살 눈웃음을 치고는 입을 열었다.
“맨 입으로요?”
“……?”
“여관도 빌려주고, 아침도 먹이고, 차도 타다주고, 보고까지 해주고, 이제는 애도 가르쳐 주겠다는데.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셨나요.”
“아니요. 못본것 같네요. 그런데 당신은 나무가 아니잖아요.”
내가 생각해도 의미없는 태클 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고연주의 눈동자에서 반짝이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내가 또 말을 실수한 걸까. 온 몸으로 스멀이 올라오는 불안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내 말에 배시시 웃고는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목에서,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타고 올라온다.
“그래요. 저는 나무가 아니죠. 사람, 아니 사용자인 만큼 어느정도 댓가를 받아야 할것 같아요.”
“댓가는 추후 지불하기로 한것 아니었나요.”
“상호 거래시 계약금은 최소한의 인지상정(人之常情) 입니다. 고객님.”
현재 그녀와 나의 몸은 어깨를 밀착한 상태. 그 상태에서 조금씩 고개를 들고, 얼굴을 밀고 들어옴으로써 거리는 더욱더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속으로 조금씩 긴장감이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분간 유정이좀 잘 돌봐주세요. 가능성이 풍부한 사용자 입니다.”
“제 발로 찾아 오면요. 그리고 은근히 화제 돌리지도 마요. 꼭 불리하면 얘기를 딴데로 돌리더라. 어허. 왜 벌써 엉덩이를 들어요? 누가 잡아 먹는데요? 아직 내 용건은 끝나지 않았어요. 어디서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려고 해요?”
“…내일부터 애를 가르칠 교사가 되실분이 이러시면 안되죠.”
“어머. 저는 촌지 받는 교사 랍니다.”
“재미 없는 농담이군요.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
“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고연주의 얼굴이 빠르게 나를 덮쳐 들었다. Mouth To Mouth를 노리는것 같아, 나는 뒤쪽으로 고개를 빼들었다. 그때였다.
스슷. 스스슷.
마치 내 행동을 예상이라도 한듯, 그녀의 몸은 잔영을 남기며 사라졌다. 한순간의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단 1초~2초의 사이였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제 3의 눈을 발동하면 늦는다. 내 실책을 탓할 시간도 없었다. 결국 내 기감을 믿기로 하고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왼쪽.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흡.”
재차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헛바람을 들이키고 말았다. 막 고개를 돌린 동시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내 입술에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완전히 돌리는 타이밍을 맞춰 고연주의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
1회차 시절. 한번쯤 맞춰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입술과 내 입술이 맞닿아 있다. 눈 앞에 빙글빙글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고연주는 내 표정을 보고는 이겼다는 얼굴로 입술을 강하게 오므리며 떼었다.
쪼옥.
“호호. 드디어 키스 한번 해보네요.”
“방금전 어떻게….”
떨떠름한 얼굴로 묻자 고연주는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었다. 그리고, 한층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당신과 한판 붙었을때 파악 했지요. 일단 거리를 줄일 필요가 있었어요. 대응할 시간을 주면 나의 필패일것 같았거든요. 그렇다면 다음은 25% 확률이죠. 위, 아래, 오른쪽, 왼쪽. 왼쪽으로 먼저 갔다가, 바로 오른쪽으로 가서 기다렸죠. 그리고 당신이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슬쩍 입술만 내밀었구요.”
“…하. 고작 키스 한번 하려고 그걸 노리다니. 치밀하네요.”
“왜요. 왜 한숨을 쉬어요. 저랑 키스 하니까 별로에요? 기분 나빠요?”
내가 한숨을 쉬자 고연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음성에서 이상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그순간 예전에 그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니요.”
내 입술에는 아직 그녀의 따뜻한 입술의 감촉이 감도는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를 내려다보자, 고연주는 나를 보며 눈을 흘기고 있었다.
“그러면 좋았어요?”
“네. 솔직히 기분은 괜찮네요. 그 유명한 그림자 여왕과 입을 맞추다니.”
“호호. 이제 조금 솔직해 지셨네요.”
배시시 미소를 흘리는 고연주를 보며 나는 한걸음 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멱살을 강하게 쥐었다.
“앗.”
“참고로 저는 이런거 할 때는 그런 계산은 할 줄 모릅니다.”
내 선언에 고연주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그리고 나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똑같이 그녀의 옷을 내 쪽으로 끌어 당겼다.
“으읍…!”
조금 강하게 부딪치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고혹적인 감각이 입가에 맴돌았다. 고연주의 숨결과 입술에서 옅은 연초향이 풍겼다. 그녀는 처음에는 놀란 얼굴이 되었지만, 이내 스르르 눈을 감으며 내 입맞춤에 호응했다.
이번의 키스는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혀라도 섞을 기세였기 때문에, 나는 이쯤에서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이 어찌나 촉촉 하던지 10초 남짓 맞닿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입술에 부드럽게 달라 붙어 가지 말라는듯 진득히 달라 붙는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옷깃을 놓아준 후, 옷매무새를 매만져주며 말을 걸었다.
“…어때요?”
고연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을 뜨고는 전에 없던 차분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이윽고, 그녀는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슬쩍 빨아 들였다.
그렇게 입맛을 다신 후 그녀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분명 안솔이나, 이유정 같은 애들이라면 얼굴을 붉히고 발을 동동 굴렀겠죠. 하지만 저는 아니에요. 겨우 이정도로 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다면 오산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군요.”
“그렇군요.”
“그래도 뭐. 눈치가 없다는 말은 취소 할게요. 쑥맥이 아니라 능구렁이 였어. 흥.”
“하하하.”
나는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린 후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제는 그만 돌아갈 생각 이었다. 다만, 장비 목록을 정리한다는 생각은 더이상 들지 않았다. 그저 침대로 돌아가 쉬거나, 검을 잡고 휘두르고 싶을 뿐.
계단을 올라 문을 열으려는 순간 뒤에서 고연주의 목소리가 날아 들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스스로 키스 했어요? 내가 당했으니까, 너도 당해보라는 식?”
고연주는 유달리 를 강조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만 뒤돌아 본 후,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어떻게 보면 비슷하네요. 그림자 여왕에게 당하는게 아니라, 직접 입을 맞추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나 봐요.”
내 대답에 그녀는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굳이, “1회차 시절의 제가요.” 하는 사족은 덧붙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 입니다.
죄송하지만 오늘 후기 및 리리플은 한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2:00에 나가야 하는데 지금 12:00네요. 그래도 어떻게든 맞출 수 있어 다행입니다.
오늘도 최대한 자정 연재에 맞출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PS. 오늘 1시간 늦게 업데이트해서 정말 죄송해요. ㅜ.ㅠ
어 그런데 12:01분 이네요. 빨리 나가야겠어요. ㅌ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