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68
00367 미안해. 형. =========================================================================
근처로 흉포한 기운을 품은 아지랑이가 밀물처럼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또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뭉글뭉글하면서도 불쾌한 기분이 느껴지고 있었다.
“김수혀어어어어언!”
그때,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음성이 들리었다. 그리고 나와 형을 에워싼 진형의 일부가 와해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달려온 방향 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마치 모세의 기적이 재림한 것처럼, 빈틈없이 흐르던 물결이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현아!”
그리고 나와 형은, 갈라진 틈 사이를 지체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리면서도 난 주변을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소환이 완료됐는지, 물의 정령들은 완전한 형상을 갖춘 상태였다. 키는 약 1미터 50센티미터 정도가 될까. 온몸에 물이 흐르는 정령들은 전부 삼지창을 쥔 여인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물빛 머리카락 사이로 뾰족한 귀가 솟은 게, 상반신은 여지없는 요정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래 하반신은 물고기 꼬리가 달려있었는데, 전신으로 신비로운 빛이 흘러 인어와 비슷한 자태를 보였다.
그렇게 얼마 있다가, 정령들은 하나같이 엄숙한 낯빛으로 몸을 돌렸고 이내 한 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눈가에는 은은한 분노까지 어려있는 게, 굉장히 화가 난듯한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정신 없이 달리고 있는 동안, 이윽고 눈앞으로 정령들을 분노케 한 것들의 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넉넉히 수백에 이르는 것으로 보이는 그것들은, 섬뜩한 빛을 번들거리는 핼버트(Halbert)를 든 채 서서히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들을…. 도대체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몸과 팔은 인간의 그것이었지만, 얼굴과 하반신은 염소의 형상을 한 반신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이었다. 탁한 빛을 띤 2개의 뿔이 머리에 우뚝 솟아 있었고, 검붉은 색이 감도는 중 갑옷을 전신에 착용한 상태였다. 진한 붉은색 안광을 흘리며 다가오는 모습은 가히 ‘마수’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지금 구해줄게!”
그리고 오와 열을 맞춘 채 걸어오는 그들 사이로,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가 왕왕 울리었다.
비비앙이 때맞춰 나와 형을 구원하러 온 것이다.
“모습을 보여라! 사티로스(Satyr, Satyrus)!”
그 순간이었다. 한순간 주변으로 시커먼 안개가 서리는가 싶더니, 이내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반신반수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마수들보다 몸집이 3배는 커 보이는 게, 아마 이놈이 눈앞 군단을 이끄는 군단장인 듯싶었다.
“쓸어버려!”
끼에에에에에에에!
비비앙이 가혹한 명령이 떨어졌다. 염소 마수들은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일순 그들의 눈가에 시뻘건 빛이 폭사되듯 뿜어져 나오더니, 마치 살의에 차오른 짐승처럼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라라라라라라….
그러자, 물의 정령들도 지지 않고 노래를 합창하며 물빛이 번쩍이는 삼지창을 치켜든다.
이윽고 물과 어둠이 뒤엉키는 것을 시작으로, 정령과 마수의 전투가 개시되었다.
그렇게 정령들이 마수들을 상대하는 사이, 나와 형은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간신히 비비앙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자, 물에 흠뻑 젖은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네?”
비비앙 또한 나를 확인했는지 한 손을 흔들며 상큼한 미소를 보내었다.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내 눈에는 까닭 없이 아름답게 비쳐 보인다.
“이 마수들은…. 군단을 소환한 건가?”
“응. 제 9군단. 처형의 사티로스. 여자들만 보면 환장하는 놈들이니 좋은 상대가 되어줄 거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 나와 형이 있던 장소는, 이제 더 없는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내가 시선을 돌린 곳에는, 한 마리 마수가 커다란 괴성을 지르며 핼버트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이윽고 핼버트는 정령의 목을 거세게 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정령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분리됐던 목에서 액체가 쭈르륵 흘러나오고, 약간 떨어졌던 상체와 다시 이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마수는 얼른 다시 핼버트를 꼬나 쥐었지만, 이번에는 정령의 움직임이 한 발 더 빨랐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일순 길게 늘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마수의 양손을 칭칭 휘감은 것이다. 그러더니 옴짝달싹 못하게 된 마수의 가슴에, 물빛 삼지창이 깊숙이 꽂힌다. 마수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자 소리를 들은 주변 동료들이 얼른 다가왔고, 들고 있던 핼버트로 일제 공격을 퍼부었다. 여럿이 후려갈기는 데는 도리가 없는지 물의 정령은 삽시간에 잔 물방울로 으깨어졌다.
그러나, 정령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이윽고 앞에서부터 쏘아져 들어온, 열 줄기는 족히 넘는 물빛 광선이 모여든 마수들을 곧바로 치었다. 워터 커터(Water Cutter)처럼 날카로운 면을 가지고 있는지, 광선에 닿은 마수들은 삽시간에 신체가 갈기갈기 찢겨 검은 연기로 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금 교전에 돌입했을 터인데, 전투는 시작부터 격렬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전황은, 거의 백중세에 가까웠다. 아니 놀랍게도 조금씩이나마 마수 군단이 우세를 점해가는 중이었다.
냉정히 말해서. 개인의 능력은 마수보단 정령이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힘만 앞세워 무모하게 돌격하는 마수들에 비해, 정령들은 근거리 원거리를 가리지 않았고, 훨씬 다양한 능력을 선보이며 전투에 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투를 우세하게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마수 군단에 ‘사티로스’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꽝!
몸집의 배는 될법한 핼버트가 땅에 내리 꽂힐 때마다, 수 명의 정령들이 물보라로 화해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사티로스’는 말 그대로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힘입어, 마수들 또한 한치의 물러섬 없이 정령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물론 저쪽에서도 ‘정령 왕’이 출현하면 전황은 반전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보였던 수에서 여력을 다했는지, 정령 왕이 출현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비비앙씨. 지금 이 군단을 남겨놓고 뒤로 물러날 수 있습니까?”
“응? 야. 당연…. 아, 아니. 네! 가능해요. 원래 범위를 벗어날수록 통제가 힘들어지지만, 이것을 얻은 이후론 사정거리가 크게 늘어났거든. 요.”
문들 들리는 대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비비앙이 질서의 오르도를 번쩍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형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통제…? 사정거리…?’
“아.”
그것은,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비비앙의 말을 들은 순간, 거인부터 이어진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빛살처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머릿속을 떠돌던 여러 조각들은 순식간에 퍼즐을 맞추었고, 이내 하나의 계획을 수립했다.
“군단은 괜찮아요. 지금 마력은 조금밖에 남지 않았지만, 오르도를 이용하면 한 번 완전히 재충전할 수 있거든? 요?”
“다행이군요. 적들의 함성 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단 군단은 이곳에 남겨두고, 우리는 얼른 뒤로 빠지도록 하죠. 수현아?”
“…….”
“수현아? 수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한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껏 계속해서 뒤로 달려 거리를 벌려왔다. 그러나 형의 말대로, 적들의 함성 소리는 점점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약간 지체한 바람에, 적들이 다시금 지척까지 다가온 것이다.
“형.”
그리고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나는 반사적으로 형을 불렀다.
이윽고 나는 느릿하게 둘을 돌아보았다. 형의 숨소리는 한껏 거칠어져 있었고, 비비앙은 전장과 나를 번갈아 보며 다급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이랑 비비앙 먼저 돌아가.”
“…뭐?”
“해야 할 일이 있어.”
“너 지금 뭐라고….”
“둘이 먼저 돌아가라고!”
팍!
그 순간, 나는 상체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먼저 돌아가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형이 오른손을 뻗어 내 어깨를 거칠게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너…. 지금 뭐라고 말했어…?”
형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할 듯싶었다.
나는 신속히 말을 이었다.
*
상황에 쫓겨 최대한 간략히 설명하기도 했거니와, 사실상 그렇게 복잡한 계획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말은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수현아? 지금…. 뭐라고? 뭐라고 했어? 정령술사를 암살하겠다고?”
“말한 대로야.”
“…너 지금 미쳤어?”
그러자, 형은 처음으로 나에게 “미쳤냐.”는 욕설을 꺼내었다.
나는 잠깐 입술을 짓씹었다가, 이내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미치지 않았어.”
“무…. 너…. 지금….”
어지간히도 어이가 없는지. 아니 그것을 넘어서 분노를 느끼는지. 부들부들 떨리는 형의 음색은, 묘한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애초에 전달 내용을 굉장히 요약했고, 최대한 빠르게 말하느라 두서가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내 계획을 확실히 알아들었다는 방증이었다.
나는 이번엔 비비앙을 응시했다.
“비비앙. 너도 명심해. 아까 내가 한 말 꼭 기억….”
“웃기지마!”
혹시 몰라 비비앙에게도 재차 다짐을 받아두려는 찰나였다. 형으로서는 드물게 내게 고함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잡힌 왼쪽 어깨에서 아주 미약한 아픔이 밀려왔다.
“지금 장난해? 기껏 데리러 왔더니…. 뭐? 앞으로 또 들어가겠다고?”
“말했잖아. 형….”
“뭔 말인지는 알아! 그래도…! 설령 그렇다고 해도!”
형이 외치는 소리를 듣자, 한순간 마음이 아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가슴을 바늘로 쿡 찔린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난 아무런 내색도 비치치 않았다. 그저, 잠자코 형을 응시했다.
“지금 여기가 네 놀이터로 보여? 네가 무슨 영웅이야? 그걸 왜 해? 왜 들어가? 아니. 왜 네가 해야 되는 건데? 지금 변수 대비 조원이라고 이러는 거야?”
“그게 아니야 형. 지금 상황에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어.”
“하. 아 그래? 그랬구나. 그래. 꼭, 필요한 일이니까. 그러니까 나보고, 지금 사지로 스스로 걸어가려는 동생을 그냥 두고 나 혼자 빠지라고? 나보고 이대로 가만히 구경만 하라고?”
꽈악!
이제 형의 목소리는, 평소의 낮은 음색이 아닌 흡사 짐승이 으르렁대는듯한 음성이었다. 으스러뜨리려는 듯이 내 어깨를 쥐고 있다. 그것은, 마치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느낌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이제는 함성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발걸음 소리들이 생생히 들리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젠 가까워진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까지 다가왔을 거라고.
난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뒤따라오면 큰일이기에, 한 번 더 설득할 필요성을 느꼈다.
“형. 잘 들어. 지금 이 전쟁터는 패배가 기정사실로 됐어. 적들은 발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우리는 아직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원부대? 통신이 끊겼잖아. 상황 파악하고, 정비 마치고 온다고 해도…. 아무리 빨라야 20분. 아니, 더 걸리는 게 사실이겠지. 지금 당장은 이기기는커녕 살아남는 게 중요하잖아. 안 그래?”
“그래.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그걸 알고 있는 놈이 지금 이래?”
“내 말뜻이 그게 아니란 건 알잖아.”
“그러다 네가 죽는단 말이다 이 바보 같은 놈아!”
더 이상 형이 내지르는 고함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결국 눈을 꼭 감고 말았다. 하지만 말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전보다 더욱 높은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그래서 형한테 부탁한 거야. 퇴로를 만들어달라고. 아까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면, 그리고 형의 능력이 합쳐지면 길은 생겨. 그리고 길이 생기면, 난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어.”
“적들을 눈 뜬 장님으로 생각하는 거니? 응?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여기서 빠지면 도대체 어떻게 네가 빠져나올 퇴로를 만들라는 거야?”
“…….”
“네가 뭘 위해서, 누굴 위해서 이러려는지 형은 정말로 모르겠다. 수현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러니까 지금 바로 빠지자. 빠지고 나서, 나중에 기회를 한 번 보자고. 그게 더 낫지 않겠어?”
나는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너무 늦는다.
“수현아…. 제발….”
내 결심이 확고한 것을 느꼈는지, 형의 목소리가 일순 애처로이 변하였다. 그 애절한 음성에 일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뭘 위해서냐고 묻는다면 나를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누굴 위해서냐고 묻는다면 형과 내가 아는 모두를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믿을게.”
“김수현!”
“혀엉!”
비로소 마주 지른 고함에, 몸을 흠칫한 형을 볼 수 있었다.
한순간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변하였다. 불현듯 이대로가면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결국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꺼내야 했다. 아니. 아직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는 표현이 정확할까.
‘이런 데서 말하기는 싫었는데….’
찰나의 순간 수많은 고민이 스쳤다. 그러나, 이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제는 말을 해야 할 때라고.
다시 눈을 떴다. 그러자 가슴을 애틋하게 만드는 형의 얼굴이 눈에 들었다.
나는 그런 형을 보며, 결국 토해내듯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번 한 번만, 뇌신의 힘을 사용해줘.”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뭘 말하려고 했는지 열렸던 형의 입술이, 일순 꼭 맞대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날카롭던 눈매가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표정은 마치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듯한 얼굴이었다.
이왕 말한 거, 나는 내친김에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뇌신의 힘을 사용해줘. 형 특유의 마력 조절과 뇌신의 힘이 합쳐지면, 분명히 할 수 있을 거야.”
“너…. 그걸 어떻게…. 그건…. 나와 이효을만 알고 있는…. 비밀인데….”
어연간히 놀랐는지, 더듬더듬 대는 형의 목소리를 들린다. 그러나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아직까지 내 어깨를 쥐고 있는 형의 손등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차갑지만, 포근한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들어왔다.
이윽고, 나는 형의 손을 살며시 감싸 안았다.
“수현아!”
그러자 내가 이대로 떼어버릴 것을 알았는지, 형은 다급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한 채,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수현아.”
“정말, 정말 미안해. 형.”
“네가….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감싸 안은 손 사이로, 미약한 떨림이 일었다.
그것을 느낀 순간, 갑작스레 속으로 뭔가가 왈칵 솟아오르고 목이 메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해. 형.”
기껏 데리러 와줬는데, 그런 걱정을 정면에서 걷어찬 것만 미안한 게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게 다 미안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형을 처음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정말,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도 많았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지금도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얘기를 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없었으니까.
“무슨…. 아, 아니다. 그래. 차라리, 차라리 내가 가도록 하마. 일단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를….”
“그건 절대 안 돼!”
어느덧 남은 거리는 100미터 남짓이었다. 나는 흘끗 옆을 돌아보았다. 적들은 새까만 개미떼들처럼 시야를 가득 메우며 들어오고 있었다.
“형의 진심을 알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도 알아. 난 그런 형의 마음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어. 그런데,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어. 정말로.”
“…….”
“돌아오면…. 나중에 다 말해줄게. 그러니까, 날 한 번만 믿어줘. 내게 한 번만 기회를 줘.”
번쩍!
문득 거대한 폭음이 솟아오르고, 섬광이 번쩍였다. 무언가 거칠게 날아오는 소리도 들렸다. 정령들의 노랫소리도 더욱 선명히 들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사티로스가, 그리고 마수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침을 삼켰다. 다시 시선을 들어 지그시 형을 응시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내가 형을 보호할 테니까.’
이윽고 마치 10년처럼 느껴지는 10초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더니 내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이 아주, 아주 미약해진 게 느껴졌다.
내 진심을 들어서였을까? 충격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형의 손은 여전히 내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지만, 미세하게나마 손길이 풀린 것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주저 않고 형의 손을 쓸어 내렸다.
그러자.
“…….”
손이 스르르 떨어지고, 이내 팔이 반원을 그리며 힘없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갈게.”
“…….”
옆에서 쏘아지듯 들어오는 비비앙의 시선도 느껴졌지만, 이제는 정말로 마지노선이었다. 나는 바로 귀에 손을 가져가 비어있는 왼손에 ‘빅토리아의 영광’을 쥐었다.
“믿을 테니까, 믿어줘.”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몸을 돌려 적을 응시했다.
이제부터는, 능력이고 장비고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야 한다.
『고유 능력 제 3의 눈(Rank : S Zero)이 발동합니다.』
『특수 능력 신검합일(Rank : Extra)이 발동합니다.』
『잠재 능력 백병전(Rank : A Plus)이 발동합니다.』
『잠재 능력 쓰러질 수 없는(Rank : A Plus)이 발동합니다.』
『잠재 능력 심안(정)(Rank : A Plus)이 발동합니다.』
『잠재 능력 전장의 가호(Rank : Extra)이 발동합니다.』
『’빅토리아의 영광’에 잠재된 능력, ‘왕의 위엄’이 발동합니다.』
“수현아…!”
문득, 등뒤로 형이 다시 손을 내뻗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해서 나는 다시 어깨를 잡히기 전에, 얼른 땅을 박차 올랐다. 그리고 최대한의 마력을 끌어올려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원래 사실을 밝히는 것은 구상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안 밝힐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내용을 전개하면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궁극적인 목적은, 2부의 내용에 속도와 탄력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유현 성격상 브라더 콤플레스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수현이 잘 알아서 하겠지요. 하하. 🙂
이제 다음 주 연재를 말씀 드려야겠네요.
원래는 저번 후기에 말씀 드린 대로 이번 주 일요일에 연재를 쉴 예정이었습니다.(시험 전날이거든요.) 그리고 상황을 봐서 말씀 드린다고 했는데, 원래는 다음 주는 3일에 한 번씩 연재할 생각이었습니다. 즉 수요일에 올리고, 토요일부터 다시 일일 연재를 시작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러는 것보다는, 수요일 연재 분을 당겨 이번 주 일요일(10월 13일)에 올리고, 다음주 월화수목금은 연재를 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시험이 끝나니, 토요일에는(10월 19일) 다시 일일 연재를 재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험 때마다 이게 뭔 난리인지 모르겠네요.
독자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합니다. 그저 깊은 양해를 구할 뿐입니다. _(__)_
정리해보면 이번 주 일요일에 올리고, 다음주 월화수목금은 휴재입니다. 그리고 토요일부터 일일 연재를 재개합니다.
PS. 혹시 모르니 본 내용은 공지, 후기에 같이 넣어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