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90
00389 변했다. 변하지 않았다. =========================================================================
찰방!
“으음.”
열탕에 몸을 담그자 절로 만족에 찬 신음이 새어 나온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물의 열기는 온몸의 구석구석으로 퍼져 내부를 덥혀주고 있었다. 뜨끈뜨끈한 열이 뼈다귀를 어루만지는 기분은, 흡사 몸에 축적된 피로를 살살 녹이는 느낌이었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눈을 감으려는 때였다.
“아뜨뜨.”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가슴부터 허벅지까지 하얀 천을 감은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임한나였다.
임한나는 살짝 입을 벌린 채 발을 살짝 들고 있었다. 어여쁜 발가락 끝에서 물방울 몇 개가 똑똑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아마 생각보다 높은 물의 온도에 놀란 모양이다.
그런 꽤나 신선한 광경에, 난 한순간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임한나는 곧바로 반응했다.
“왜 웃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합니다.”
나 또한 곧바로 사과했지만, 임한나의 낯빛은 더더욱 이상해졌다. 어색해 죽겠다는…. 그러니까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랄까?
내 말에 임한나는 발부터 조심스레 담그며 조용히 입술을 삐죽였다.
“나 드디어 말 놓았는데…. 진짜 용기 낸 건데….”
“드디어는 아니지 않나요? 저번에 말 한 번 놓았잖아요.”
“으, 응?”
“뭐라고 했더라…. 나보고 또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라고? 이랬던가? 아무튼 그때 잘 놓던데.”
찰방!
임한나는 완전히 몸을 담그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러나 전쟁 중 자신의 언행을 떠올린 듯, 이내 안색이 급변했다.
“…너무해.”
보글보글.
이어지는 장난을 견디지 못했는지 임한나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곤 잠수했다.
아무튼 시답잖은 장난은 이쯤에서 관둬야겠다는 생각에, 난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물살을 헤치는 소리와, 잔잔했던 탕의 수면에 미약한 파문이 이는 게 보였다.
“그냥….”
이윽고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들리고 동시에 조심조심 등을 매만지는 연한 손길이 느껴졌다. 핏자국이 그렇게나 신경 쓰이는 걸까….
얘도 은근히 집요하다는 생각이 들은 순간, 임한나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
그 말에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깐 생각했다.
주관적인 생각이긴 해도 힘들지는 않다. 육체적으로는 당연히 피곤했지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정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니…. 평소와 같지는 않다고 해야 할까?
‘겉으로 내색은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임한나는 이런 내 상태를 어떻게 눈치챈 걸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음…. 혹시 아기 유니콘 봤어?”
이후 방에서 아예 나오지를 않았기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자 이번엔 어깨를 조곤조곤 주무르는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물이 묻어 촉촉하면서도 은근히 끈적한 감촉이 느껴져, 난 숨을 가늘게 내쉬었다.
“어땠는데? 울었어?”
“으으응. 울지는 않았어. 그런데 엄청 우울해하더라. 축 늘어져서는 반응도 안보이고. 힘이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거 알아?”
“?”
“유니콘은 감정에 무척 예민한 동물이잖아?”
“그렇지.”
“그 중에서도 특히 주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더라.”
그렇다는 말은 아기 유니콘을 보고 내 상태를 추측했다는 말인가?
약간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튼 일단 말을 들어볼 요량으로 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으응. 그러니까….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그때 내 욕심에 너를 붙잡지 않았다면? 그럼 어쩌면….”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헛소리.”
나는 임한나의 말을 가볍게 일축했다. 그리고 그 순간, 느릿하던 그녀의 손길이 뚝 멈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탓하지 마. 그렇게 따지면 애초 전쟁 참가를 결정한 내 잘못이겠지.”
“정말? 진짜 그렇게 생각해? 스스로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신상용씨의 죽음은 분명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전쟁 중이었으니까.”
이어서 난 딱 잘라 선을 그었다. 목소리를 약간 높인 것은, 더는 허튼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포함돼있었다.
“…….”
임한나는 확실히 내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이내 다시금 천천히 손을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서로 침묵을 지킨 채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상처가 되게 많다…. 안쓰러워….”
“…….”
굳은 피 얼룩을 지우는지 아주 약간 힘을 주어 비비는걸 느끼며,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일부러 눈앞에 피어오르는 희뿌연 색 수증기에 집중했다.
탕에 들어왔을 때부터 등에서 전해져 오는 감촉은, 마치 임한나의 성격을 대변한 것처럼 무척이나 상냥했고, 또한 부드러웠다.
‘이것도 고문 아닌 고문이군.’
그때였다.
“다행이다….”
“?”
“있잖아. 역시 너는 오빠랑 다른 사람이었어. 이제 좀 마음이 놓인다. 후후.”
뜻 모를 소리에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등을 어루만지는 양손의 사이로 임한나가 살포시 얼굴을 묻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면을 간질이는 그녀의 숨결에 난 나직이 입을 열었다.
“오빠라면…. 러브 하우스의 예전 건물주를 말하는 거야?”
“어? 기억해?”
“예전에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되게 잘나갔던 사용자로 기억하는데.”
러브 하우스의 건물주.
한때 제법 잘나가는 캐러밴의 리더로 활동했지만, 한 탐험에서 크게 실패하고 캐러밴은 거의 와해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남은 캐러밴 원들을 모아 어느 클랜에 합병되는 과정을 거치는 도중, 임한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홀로 빠져 나왔다.
아무튼 내가 들은 이야기는, 그 사용자가 임한나에게 있어 은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망상의 고원으로 원정을 떠난 클랜에서 소식이 끊기자, 1차 구조대에 참가했다가 사망했다는 데까지였다.
사실 약간 찍은 것도 있긴 했지만, 처음 임한나를 받을 때 들었던 이야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 나름대로 어떤 사연이 있겠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물어보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임한나가 말했다.
“잘나가기야 했지. 그리고 한 번의 실수로, 그 모든 게 사그라졌고.”
“…….”
“그 오빠. 겉으로는 엄청 담담한척했는데…. 그때 친했던 동료들이랑 애인을 잃었거든? 그 이후로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어.”
“죄책감에 시달렸다 라…. 그럴 수도 있지.”
“응.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었거든. 애인이었던 언니가 원래 밤의 꽃이었잖아. 갑자기 모아놓은 금화로 밤의 꽃들을 위한 건물을 지어주질 않나…. 나보고 항상 잘 대해주라고 하지를 않나….”
임한나는 말을 하면 할수록 끝을 흐리고 있었다. 그러다 잠깐 입을 다물더니, 이내 자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 쓸데없는 관심이었지….”
문득 머릿속으로 임한나가 오빠라 부르는 사용자를 좋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차츰차츰 젖어 들고 있었으니.
“그 사용자가 구조대에 참가한 것도 죄책감 때문이었나?”
“약간? 예전에 함께 활동하던 동료가 있었거든.”
“그럼 말려보지 그랬어. 아님 이야기라도 해보던가.”
“그랬지. 그런데 언제나처럼 그러더라. 그냥 아무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래서 가만히 기다렸지. 후후. 생각해보면 그 오빠는 항상 그랬어. 맨날 기다려라. 나만 믿어라. 걱정하지 마라…. 그런데 나는, 할 말이 없더라.”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쳤다.
‘싫어! 나보고 또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라고?’
“그래서 그때 그렇게 말한 거야? 이번에는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겠다는 소리가.”
“…응. 그냥 하라는 대로, 들은 대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잖아. 그러다 오빠가 죽었다는 걸 확인했을 때…. 내 행동에 엄청 후회했거든. 아니라고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오빠의 죄책감의 원인은 나였으니까.”
‘원인?’
임한나의 대답에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약간이지만 연민의 감정이 일었다. 나 또한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으니까.
‘형.’
차이가 있다면 나는 복수심에 미쳐 무차별적으로 날뛰었고, 임한나는 충격에 스스로 뭔가를 하는 게 두려웠을 거라는 것.
“그 사용자가 너를 소중하게 생각했었나 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임한나가 어깨를 가늘게 떠는 것과 동시에, 킥킥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금 무거운 침묵이 찾아 들었다. 이번에는 약간 긴 침묵이었다.
“…….”
“…….”
혹시 말 실수라도 한 건가 갸웃하고 있자, 등에서 서서히 머리를 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수현아…. 나 하나 고백할게 있어. 내가 말하지 않은 거.”
“뭔데.”
“그때 캐러밴이 그렇게 된 거…. 실은 내 탓이었어. 내가 어그로를 잘못 끌어서 괴물들한테 대규모 습격을 받은 거야.”
“…그게 네 탓이다?”
내 물음에 임한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모두를, 특히 오빠를 볼 낯이 없었어. 그냥 죄인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합병 제의도 거절하고 바로 탈퇴한 거야. 더는 폐를 끼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사정이 있었던가.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난 네 탓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데.”
“응? 왜? 그걸 어떻게 알아?”
“추측이지.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봐. 이번이랑 비슷한 경우 아니야? 예를 들어 내가 무엇 무엇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런 거. 네가 100% 잘못한 거라면 그 사용자가 왜 죄책감을 가졌겠어? 너라는 좋은 핑계가 있는데.”
“!”
일순 임한나가 움찔하는 기척을 느꼈다. 내 말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할 말이 없는지 임한나에게서 더는 말이 들려오지 않는다. 해서 나는 먼저 말문을 열기로 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응? 응.”
“전에 나한테 그랬잖아. 네 운명을 개척해보고 싶다고. 그건 무슨 말이었어?”
“아….”
내 말에 임한나는 미약한 탄성을 터뜨렸다.
찰방, 찰방.
잠시 후, 임한나가 천천히 머리를 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금방 내 앞으로 돌아와 나를 정면에서 마주했다. 물이 송골송골 맺힌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망울은, 미약한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 너를 봤을 때 많이 놀랐어. 하는 행동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오빠랑 정말 똑같았거든. 나 너 처음에 엄청 쳐다봤었는데…. 몰랐어?”
“몰랐어.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별로 똑같다는 생각은….”
“비슷해. 뭐든지 혼자서 다하려고 하잖아.”
이 말에는 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약한 침음을 흘렸다.
그러자 임한나는 “후후.” 웃고는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낮은 음색으로 매우 길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연주 언니한테 클랜 가입 권유를 받았을 때 무척 고민했어. 가고는 싶은데, 가도 되는 걸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밤마다 끙끙 앓으면서 고민했고, 또 고민했다?”
“너도 참….”
“수많은 의문은 있었지만, 그래도 너에게 마음이 끌리는 건 막을 수 없더라. 그래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가입을 결심했지.”
그렇다면 그게 진짜 이유였고, 밤의 꽃들은 부차적인 이유였다는 말이었다. 개인적으로 추측하자면, 아마 당시 임한나 스스로도 혼란을 느꼈을 것이고, 도피의 일종으로 밤의 꽃에 대한 문제를 내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웃기는 게 뭔지 알아? 내가 가입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네가 뮬로 간 거야. 그리고 부랑자들의 습격으로 연락이 끊겼지.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아?”
“설마 그것도 네 탓이라고 생각한 아니겠지.”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그랬으니까. 동료들이 죽었고, 오빠가 죽었고, 너도 죽었다고 생각했지. 그 정도 되니까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되더라. 아. 나는 마녀구나. 그때 이후로 내 운명에 살이 끼었구나.”
“말도 안 돼.”
나는 어이없는 기분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임한나가 지금껏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또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를. 시종일관 상냥하고 차분해서 몰랐는데, 알게 모르게 속은 제법 복잡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를 걱정한 거야? 이번 사건으로 내가 그 오빠랑 똑같이 죄책감을 가지고, 흔들릴지?”
임한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촉촉한 눈망울로 끄덕끄덕 두어 번 고개를 주억였다.
그 모습을 보자, 순간 왠지 모르게 임한나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난 다시금 싱겁게 웃었다.
“왜 웃어….”
“별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생각해서.”
“…치.”
“글쎄. 아무튼 그 오빠라는 사용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잠깐 말을 끊은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이제 어느 정도 불렸다는 생각에, 씻고 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빤히 나를 올려다보는 임한나의 시선과 마주하여, 난 양손을 내밀었다.
“내 대답은 아까 들었지?”
순간, 임한나의 눈망울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이내 꼭 깨문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린다. 그녀가 웃었다.
“응. 들었어.”
임한나는 내 손을 마주잡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드러나는 그녀의 몸매에 나는 담담히 시선을 돌렸다. 물에 젖은 천이 임한나의 속살을 여과 없이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기색을 느꼈는지, 임한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내 손은 여전히 그녀에게 잡힌 상태였다.
“후후. 왜?”
“이만 나가자고.”
“잠깐만.”
“?”
이윽고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린 순간, 임한나가 서서히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
밤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떠 있었다. 목욕탕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새벽인 모양이다.
임한나의 도움 덕분에 나는 몸에 묻은 피 얼룩을 깨끗이 지울 수 있었다.
오기 전과는 다르게 몸에 감도는 상쾌함을 느끼며 난 본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이윽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 어두운 계단을 밟는 도중, 난 임한나에 대해 생각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비록 그 사연이 별거 아니라 생각될지라도, 솔직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외롭다고 느낀 나였기에, 임한나의 걱정은 내 외로움을 달래주는 기분 좋은 관심이었다. 마지막 전신에서 느꼈던 그녀의 포근한 감촉을 생각하며 나는 살짝 입술을 매만졌다.
동시에 걱정 또한 앞섰다. 고연주, 정하연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렇게 4층 숙소에 이르러 방문을 열은 순간, 난 약간의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한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피 묻은 침대 시트가 어느새 깨끗이 갈려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트의 중앙이 불룩 솟아올라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이없는 기분에 다가가 잘 정돈된 시트를 들추었다.
“뀨.”
그러자 갑작스레 찬 공기가 엄습했는지, 온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파묻는 아기 유니콘이 보였다.
잠깐 눈을 깜빡였다가,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나는 아기 유니콘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침대로 올라 천천히 몸을 눕혔다. 그리고 오들오들 떠는 녀석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뀨?”
“괜찮아. 괜찮아.”
그에 아기 유니콘은 곧바로 고개를 들어 반응했지만, 몇 번 쓰다듬어 달래자 다시 꾸벅꾸벅 고개를 꺼트렸다. 이내 내 안으로 꾸물꾸물 파고들어 오는 녀석을 느끼며, 나 또한 비로소 졸음이 밀려오는걸 느꼈다.
다시 고른 숨소리를 내는 아기 유니콘을 느릿하게 보듬으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방안에는 여전히 한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복부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깨끗한 시트와, 입술에 남아있는 감촉에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별로 외롭지 않다고.
============================ 작품 후기 ============================
I’m so sorry but I love you 다 거짓말.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