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82
00481 작전명 : 광대놀음. =========================================================================
“후~우.”
한 번 크게 심호흡한 박환희는 속으로 하나씩 숫자를 세었다. 하나, 문고리를 잡았다. 둘, 문을 밀어젖혔다. 셋,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그러자 예의 어두운 회의실과 여덟 명이 둥글게 앉아있는 원형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방안에 있는 사람 전원이 일제히 박환희를 돌아보았다. 대다수가 무관심한 듯 바로 고개를 돌렸으나, 일부는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박환희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사정이 생겨서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박환희가 걸음을 멈춘 곳은 바로 박태진의 옆이었다.
“환희야. 무슨 일이냐. 항상 일찍 도착해있던 네가 오늘 지각을 다하고….”
“정말로 죄송합니다. 형님.”
흘끗 곁눈질한 박태진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으나, 박환희는 아무 말도 않고 더욱 고개만 숙였다. 결국 어깨만 으쓱인 박태진은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미안. 정말 사정이 있었나 보네. 이번 한 번만 양해를 구하지.”
“아니 괜찮아. 사정이 있으면 늦을 수도 있는 거지. 아무튼, 계속 이야기해도 될까?”
박태진의 얼굴에 오묘한 기운이 깃들었다. 그리고 웃음 반, 떨떠름함 반으로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몇 번 헛기침을 한 신혁은 박환희와 눈을 한 번 마주친 후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단 머셔너리와는 척을 지지 말자는 거지. 오히려 지금은 좋은 관계를 맺어보는 것도 하나의 길이라 생각해. 아, 나도 알아.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우습게 들릴지 정도는. 하지만 현실을 보자고, 현실을. 상황이 이런데 딱히 방법이 없잖아? 나라고 머셔너리가 용이 잠든 산맥에서 돌아올 줄 알고 있었나…. 아무튼 차선책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일단은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야지. 좌우간,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그래요. 혁이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그 상황에서도 머셔너리와 협의해 연합의 이미지를 개선했고, 결국에는 헤일로도 얻어냈죠. 물론 과정에 조금 진통은 있었지만…. 저는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낸 혁이의 노력에 박수라도 보내고 싶어요.”
신혁이 장황한 설명을 마치자 옆에 앉은 우설희도 얼른 말을 거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회의실 공기가 한없이 가라앉았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눅눅한 기류가 살금살금 탁자에 스며들었다. 잠시 머리를 돌린 서지환은 한두 번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혁이 입장은 들었고…. 태진이는 따로 할 말 없나?”
어차피 이번 회의는 박태진과 신혁에 초점을 맞춘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도 둘 중 하나가 선발될 것이라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박태진에게도 최종 투표 전 자신을 어필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딱히 할 말은 없으니 그냥 이대로 투표에 들어가시죠.”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박태진은 기회를 거절했다.
서지환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혁도 이건 예상치 못했는지 서너 번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곧 미소 지었다.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방금 발언은 헤일로를 포기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또한 지금껏 이어진 상황만 봐도 자신이 유리했다.
“…정말 괜찮겠어?”
“예.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연합은 한 가족인데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간에 깔끔하게 승복하겠습니다.”
서지환이 재차 확인하자 박태진은 끄덕끄덕 머리를 주억였다. 그리고 신혁을 보며 빙긋 웃었다. 신혁 또한 입꼬리를 올리며 응수했다.
“으음. 그럼….”
서지환은 박태진과 신혁을 번갈아 보았다. 이내 두 사내가 동시에 머리를 끄덕인 순간, 마침내 서지환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사전에 공지한 것처럼, 이번 투표는 기권이 없어. 무조건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알고 있지? 그럼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만 투표를 시작….”
그렇게 막 투표의 시작을 선언하려는 찰나, 외부에서 들려오는 어수선함이 서지환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쾅!
누군가 밖에서 문을 세게 걷어찬 듯, 굳게 닫혀있던 회의실 문이 활짝 열렸다. 아까처럼 조용히 문을 열었다면 또 모를까. 침묵과 숙연함이 가득하던 회의실에 불쾌한 소음이 울리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구겼다. 특히 신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짜증 섞인 음색으로 고함쳤다.
“누구야! 어느 미친놈이냐!”
그때였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뚜벅뚜벅, 뚜벅뚜벅.
“미친놈이라니. 말이 좀 험한데? 남벌 로드.”
수많은 발걸음 소리와 동시에 사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일단의 무리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와 비로소 걸음을 멈췄다. 탁자에 있던 사람들과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신혁은 의아한 얼굴로 입구를 보았다가 곧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서 말을 더듬었다.
“너, 너는…. 조성호?”
“고려 로드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우리가 서로 이름까지 부를 정도로 친근한 사이는 아니잖아. 안 그런가? 남벌 로드? 아니, 코란 연합 여러분?”
동부 일반 도시 프린시카의 대표 클랜, 고려 로드 조성호는 냉소하며 좌중을 훑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바로 대응할 생각을 못했다. 그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멍한 눈길만 보낼 뿐.
그랬다. 지금 회의실에 난입한 무리는 바로 중앙 관리 기구 소속 사용자들이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사용자가 아니라, 동부의 패자인 고려를 시작으로 리버스, 한, 해밀 등등 한 클랜의 로드를 맡고 있는 거물급 사용자들. 즉 코란 연합에 비해서 전혀 꿇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욱 강한 영향력을 지닌 사용자들이었다.
그러나 코란 연합이라고 해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연합의 일인자 박태진이었다. 곧바로 안색을 회복하더니 태연한 얼굴로 마주 웃으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물론 서로의 관계가 매우 좋지 못한 만큼, 나오는 목소리는 살벌하기 그지없었지만.
“이거 누군가 했더니만…. 공사가 다망하신 중앙 관리 기구 분들이 아니요. 아니 그런데, 이래저래 바쁘신 분들이 이런 외진 곳까지는 무슨 일이지?”
“그러게나 말이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웬 한 미친 새끼 때문에 이 외진 곳까지 와야 할 일이 생겼네. 응? 그러니까 관리 좀 똑바로 하지 그랬어.”
조성호가 답을 하자 일순 박태진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미친 새끼? 허, 지금 막 나가자는 건가?”
“먼저 막 나가신 분들께서 이리 말을 하니까 재미있네. 세상 참 재미있어.”
“…당최 뭐 때문에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남 관리 지적하기 전에 자신부터 되돌아보는 건 어떤지? 이게 과연 예의 있는 행동이라 생각하는 건가? 고려 로드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아, 클랜 로드를 날로 먹어서 배우지를 못한 건가?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나? 그래도 누구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그동안 키워주고, 이끌어준 사람을 잡아먹은 배은망덕한 놈들보다는 말이야.”
박태진은 전쟁 때 전대 고려 로드가 사망한 일을 들먹였고, 조성호는 전대 연합의 수장 격이던 김용만의 실종 사건으로 비꼬았다. 그렇게 서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주고받았지만, 결국 먼저 얼굴을 굳힌 건 코란 연합이었다. 김용만의 일은 꺼냈다는 것은 연합의 역린을 건드린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역시나 성미 급한 백두산은 두 눈을 부릅뜨며 분연히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한 순간이었다.
“워워, 진정해.”
일순간 강렬한 힘이 어깨를 짓눌러 백두산은 아주 조금 떼었던 엉덩이를 도로 붙일 수밖에 없었다. 반사적으로 왼쪽 어깨를 돌아보니 두툼한 손을 얹은 채 빙글빙글 웃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얼굴을 확인한 백두산은 가래 끓는 침음을 흘렸다.
“기, 김덕필….”
“오야. 오랜만이야 친구. 그런데 모션은 취하지 마라. 그러다 다친다.”
백두산은 어떻게든 일어나려 용을 쓰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더욱 강한 힘이 짓눌러와, 이를 바드득 갈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고요한 침묵이 아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과 같은 침묵이었다.
이윽고 조성호가 한발 짝 앞으로 나선 순간, 지금껏 잠자코 있던 서지환이 입을 열었다.
“고려 로드. 태진이 말대로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는 그대들의 안방이 아니요. 이런 행동을 해명할 원인이 충분치 못하다면, 지금의 무례는 그냥 일련의 사과만으로 넘어가기는 힘들 거요.”
“그건 제가 말씀 드리도록 하죠. 지금부터 중앙 관리 기구의 입장 발표를 하겠습니다.”
서지환의 경고에 답한 사용자는 한 로드 성현민이었다. 언뜻 보기로는 예의 바른 태도와 사람 좋은 인상이었으나, 눈동자 한구석에는 숨길 수 없는 냉랭함이 자리잡은 상태였다.
“오랫동안 보고 있기에는 서로 거북한듯하니, 거두절미하고 끝내겠습니다. 사용자 신혁. 이번 머셔너리 클랜의 용이 잠든 산맥 공략과 관련해 고발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잠시 같이 가주셔서 조사를 받으셔야겠는데요.”
“뭐, 뭐라고?!”
“못 들으셨을 거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냥 순순히 같이 가주신다면, 불필요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구차하게 굴지 맙시다.”
“우, 웃기지마! 용이 잠든 산맥? 고발? 갑자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기세 좋게 고함치고는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반사적으로 나온 말에 불과했다. 어느새 신혁은 얼굴을 하얗게 질리다 못해 창백해진 상태였다. 그러다 문득 송희선과 눈을 맞추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가다듬었다.
“그, 그래.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증거? 그럼. 있지. 그럼 증거도 없이 우리가 이럴까?”
여전한 목소리로 비꼰 조성호는 품에 차분히 손을 넣어 구슬 하나를 꺼내 던졌다. 이내 데구루루 굴러 정확히 탁자 중앙에 정지한 구슬이 환한 빛을 흘리며 한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녹화용 수정구였다.
(그래! 내가 했어. 그거 내가 한 거야….)
이윽고 모든 재생이 끝났을 때, 연합 사용자들의 얼굴은 자못 볼만했다. 그 중 특히 신혁의 얼굴이 가관이었다. 왠지 모르게 절박해 보이는 낯빛은 차치하고서라도, 두 눈은 충격으로 인해 찢어질 듯이 커진 상태였다.
“어차피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더는 말 안 한다. 어이, 저놈 끌어내.”
조성호는 까닥 고갯짓으로 멍하니 서 있는 신혁을 가리켰다. 그러자 불현듯 정신을 차린 신혁은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사용자들을 보며 발악하듯 외쳤다.
“이건, 이건 조작된 거야! 그래! 조작된 거라고!”
“조작? 구차하군. 아무튼 조사하면 다 나오니까 얌전히 따라오라고.”
“입 닥쳐! 지랄하지 마! 내가, 내가 따라갈 것 같아? 어디서 이딴 조작한 증거를 들이밀어!”
“음? 다들 조심!”
그때 눈을 날카롭게 한 조성호가 외쳤다. 한순간 신혁이 고함을 침과 동시에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마력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 클랜의 로드인 만큼, 그리고 클래스가 마법사인 만큼. 작정하고 마력을 일으키면 사상자가 일어날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렇게 생각한 조성호는 몸소 몸을 날려 상대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짜작! 짜자작!
문득, 입구의 가장 후방에서 한 줄기 황금빛 전류가 날아가 신혁을 덮쳤다. 굵기도 굵었지만 어찌나 강력했는지, 미처 대응도 못하고 얻어맞은 신혁은 쭈르륵 밀려 벽에 거세게 부딪쳤다.
꽝!
“껙!”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온 외마디 비명. 신혁은 온몸에 방전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가누었다. 그리고 연합의 사용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곧 조성호 옆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사용자를 보며 흠칫 몸을 움츠렸다. 오른손을 뒤덮은 황금빛 마력과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회의실을 깡그리 집어삼킬듯한 살기.
뇌제(雷帝) 김유현의 등장이었다.
“기, 김유현! 이게 무슨 짓이에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설희가 앙칼지게 외쳤으나, 마치 안중에라도 없는 양 김유현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신혁에게로 다가가 멱살을 틀어 올렸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신혁은 힘없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잠시 후, 김유현의 입술이 열렸다.
“너냐.”
“끄륵, 끄르륵….”
“세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내 동생 건드린 게 너냐고.”
“해, 해밀 로드! 그만두시오!”
어지간한 조성호도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는지, 다급히 김유현을 제지했다. 김유현은 지그시 조성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신혁을 바라보더니 코웃음과 함께 몸을 돌렸다. 물론 아직 멱살을 쥔 상태였고, 신혁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질질 끌려 나왔다. 이내 입구 바깥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김유현을 보며 조성호는 성현민에게 속삭였다.
“저러다 죽일지도 몰라. 빨리 쫓아가 봐.”
“아 그러게 제가 데려오지 말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잠시 볼멘 소리를 내뱉은 성현민은 쓰게 웃으며 김유현을 뒤쫓았다. 조성호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하지만 곧 만면에 가득한 웃음을 띠고는 잔뜩 얼어붙은 연합 사용자들을 향해 말했다.
“약간의 사고는 넓은 아량으로 양해해주시길. 애당초 남벌 로드가 반항한 것도 있었고, 또 해밀 로드가 워낙 동생 사랑이 지극한지라. 하하하.”
“뭐라고요? 약간의 사고? 장난하세요?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탕!
우설희는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사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보인 이상 지금 함부로 나설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신혁의 죄가 확정되면 우설희 또한 무사하지 못한다. 이 바닥 생리가 어떤지 잘 알고 있는 만큼, 어떤 억지를 부리더라도 부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건 횡포에요!”
“횡포? 저 영상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봤어요. 하지만 아직 시인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영상에서 나온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요? 또 혁이 말대로 이 수정구가 조작된 게 아니라는 증거도 없고요!”
“아하. 끝끝내 부인하시겠다?”
조성호가 불쌍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찼으나, 우설희는 한결같은 태도로 소리를 질렀다.
“시인할 게 없으니까요!”
“예, 예. 알겠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길. 조작 여부에 관해서는 확실히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우설희는 불안한 얼굴로 조성호를 응시했다. 목구멍 끝까지 ‘어떻게?’라는 말이 치솟았으나, 저리도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니 차마 꺼내지 못한 탓이다. 그런 낌새를 느꼈는지 조성호는 유들유들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그러니까 2년 전, 부랑자 색출 사건을 알고 계실 겁니다. 백서연과 관련된 사건을 말이지요.”
연합의 사용자들이 이 말을 이해하는 데는, 정확히 3초가 걸렸다. 그리고 3초가 지나고 나서, 모두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수정구는 이미 중앙 관리 기구에서 면밀히 조사한 상태로, 조작의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억지를 부리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는 머셔너리 클랜에 추궁 권한을 부여할 생각입니다.”
철푸덕!
우설희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조성호는 빙그레 웃었다.
“머셔너리 로드가 그러더군요. 머셔너리 클랜은 언제든지 준비돼있으니, 신혁만 넘겨달라고 말이지요. 오히려 그래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뼛속까지 털리기 싫으면 그냥 조용히 있으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이윽고 주변을 쭉 둘러본 조성호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그러나 비아냥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약간의 사고는 있었지만, 원하는 바는 이루었으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요. 그럼, 하던 회의 계속 하시길.”
그리고 회의실을 나가기 직전, 고개를 반쯤 돌려 말을 이었다.
“이번 사건의 추이나 결과는 중앙 관리 기구에서 아주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연합 분들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하하하.”
문은, 열렸을 때와는 달리 아주 자그마한 소음도 없이 얌전히 닫혔다.
그렇게 난입한 사용자들이 떠나고 회의실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조성호의 마지막 웃음소리만은 사라지지 않아, 마치 여운처럼 남아 감돌았다.
============================ 작품 후기 ============================
오늘 자정에 제사를 치릅니다. 하하하. 오늘 아버지가 출장 때문에 밤늦게 돌아오셔서 형이랑 이런저런 준비를 도맡아 했는데, 준비하실 때마다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오늘이야 이해했네요. -_-a 항상 병풍이랑 상 올리고 제기만 닦던 저를 반성해봅니다.
아마 이 글이 올라갈 때쯤, 저는 후다닥 거실로 돌아가 절을 하고 있겠지요. 아니면 초혼 의식을 치르고 있거나 요. 약 1시간~2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서, 코멘트 확인은 그 이후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