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31
00630 ShowDown. =========================================================================
– 잠깐만. 저 녀석 뭔가 좀 이상한데?
슬슬 2회전을 개시하려는 찰나, 화정의 목소리가 나를 제지했다.
‘이상하다니?’
– 아까는 저놈이 무조건 너만 노리는 줄 알았거든? 여기서 네가 가장 강하기도 하고, 또 나를 품고 있으니까.
‘그런데?’
– 그런데…. 잘 모르겠어. 처음에는 너를 처리하려다가, 이제는 걸리적거려 하는 것 같아.
‘그게 그거 아냐?’
– 아니야. 그러니까 저놈의 목적이 네가 아니라는 소리야.
쿠샨 토르의 목적이 내가 아니다?
일순 화정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곱씹을 틈은 없었다.
“도와리야!”
성난 코뿔소처럼 달려온 공찬호가 돌연 이상한 기합을 지르며 쿠샨 토르의 넓적다리에 몸을 들이받았기 때문이다.
꾸웅!
그러자 격한 충돌음이 들리며 거인의 몸이 살짝 기울어졌다. 이어서 번쩍 들린 수라마창이 그대로 허벅지를 찌르려 했으나 거인의 빠른 반응에 빗나가고 말았다.
이내 쿠샨 토르는 나직한 울음을 흘리며 자세를 잡고는 공찬호를 노려보았다. 그 틈을 타서, 이번에는 내가 달려들었다.
좌로 비스듬히 지나가며 정강이를 노리고 검을 날렸지만, 쿠샨 토르는 빠르게 몸을 틀어 회피에 성공했다. 나는 쉴 틈 없이 빠르게 발을 놀렸다. 그리고 양손의 검을 교차시킨 후, 이번에는 원을 그리듯이 거인의 뒤로 돌아가 발목을 노리려는 찰나였다.
– 조심!
화정의 경고가 들려온 순간, 나는 곧바로 연타를 포기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무언가 쇳덩이 같은 것이 정수리를 살짝 치고 지나갔다. 약간 스친 정도에 불과했으나 그 정도만 해도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나는 입을 깨물며 그대로 앞쪽으로 몸을 내던졌다.
쿵!
곧이어 등 뒤로 전해져 오는 충격파. 몸이 살짝 뜨는 기분이 들었지만 아까처럼 황급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잔잔하다. 왜냐하면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방금 앞으로 굴러 피했다고는 하나, 쿠샨 토르는 내가 자세를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줄 마음씨 좋은 녀석이 아니다. 아마 지금쯤 바로 나를 쫓아와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칼리고 아브락사스의 잠재 능력. 부서진 파편(Broken Fragments)을 발동합니다.』
땅을 구른 후, 나는 바로 일어나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왼손에 쥔 칼리고 아브락서스를 있는 힘껏 투척했다.
키아아아아아아아!
칼리고 아브라삭스가 거친 울음을 토해내며 수직 상승한다. 뭉클뭉클한 검은 기운이 허공에 물감처럼 번졌다.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한 걸까? 역시나 바로 뒤에 서 있던 쿠샨 토르가 주춤, 몸을 멈칫한다.
그 순간이었다.
와장창!
쿠샨 토르에 닿기 직전, 칼리고 아브락사스가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 흡사 수류탄이 터졌을 때처럼, 산산조각 난 주먹만한 파편들이 거인을 목표로 전방위적으로 덮쳐 들어간다. 계속해서 몸을 물리는 와중에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크릉!”
쿠샨 토르가 순간적으로 묠니르를 앞세운 이후, 이어지는 광경에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퍼퍼퍼퍼퍼퍼퍼펑!
수십 개의 검은 조각들이 갑작스레 생겨난 바람에 종이처럼 나부낀다. 한껏 튕겨져 나간 파편이 공중에서 하릴없이 폭발한다.
이 순간만큼은 그저 놀랍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나를 상대했던 마볼로가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어마어마한 반응 속도. 쿠샨 토르가 묠니르를 전광석화처럼 휘두르며 파편을 받아 치고 있다. 한 번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매서운 폭풍이 휘몰아친다. 그 짧은 시간에 반응한 것도 놀랍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사방으로 흩어진 파편을 하나하나 보고 쳐낸다는 게 진정 놀라운 일이었다. 실로 엄청난 동체 시력이요, 솜씨였다.
그렇게 간단히 막히기는 했지만, 효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애당초 투척한 이유가 잠시라도 좋으니 쿠샨 토르의 발을 묶어주기를 원했고, 칼리고 아브락사스는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물러나고 쿠샨 토르가 주춤하는 동안, 다른 사용자들 또한 이미 자세를 추스르고 기회를 포착한 상태였다.
“천벌을 내리소서!”
광휘의 사제 권능 천벌.
“극뇌!”
그리고 형의 잠재 능력인 극뇌.
이 두 능력이 만나자 무시무시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 하늘에서 추락하는 새하얀 번개가 송곳처럼 예리하게 모이더니 쿠샨 토르의 정수리를 그대로 관통한다!
짜작, 짜자작!
“크허허헝!”
비로소 몸을 경직시킨 쿠샨 토르가 가열찬 비명을 내질렀다.
형의 마력 능력치는 97. 안솔의 마력 능력치는 99. 아무리 거인들의 제왕이라도 이 수치에 아무런 타격도 없을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저렇게 합격을 맞고도 잠깐 움찔했다는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마법 저항력의 방증이리라.
그러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유운은 자신의 화살로는 거인의 방어력을 뚫을 수 없음을 확인, 집요하게 눈동자만을 노리며 쿠샨 토르가 자꾸만 눈을 깜빡이게 만들고 있었다. 고연주는 있는 대로 그림자를 끌어올려 거인의 사지를 묶고, 곳곳에 깔린 어둠에서 솟아나와 목 아니면 고환 부분을 돌아가며 공격하고 있다.
그러자 기겁한 거인이 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허벅지를 움츠린 사이, 이번에는 그 틈을 타서 공찬호가 허벅지를 목표로 끈질기게 창을 찔러간다.
다른 클랜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형이나 공찬호나 기막힌 협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들 1회전을 겪은 이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나름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쿠샨 토르 역시 이 정도에서 무너질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1회전과 다르게 진행되는 양상에 화가 난 걸까? 갑작스레 전신에서 새하얀 빛을 뿜어내더니 왼손으로는 온몸을 훑어 내리며, 오른손으로는 묠니르를 미친 듯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몸을 감은 그림자를 우악스럽게 찢어발기고, 묠니르는 흡사 두더지를 잡듯이 땅을 세차게 파헤친다.
그러나 이미 어그로가 풀렸을 때부터 사용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진 상태였다. 이내 쿠샨 토르가 눈을 번쩍 빛내며 몸을 돌리고 물러나는 이들을 쫓으려 자세를 잡는 찰나, 나는 가볍게 호흡을 추스른 후 빅토리아의 영광을 왼손에 쥐었다. 그리고 나를 등진 거인의 등을 향해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단숨에 등에 무검을 꽂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쿠샨 토르가 몸을 반쯤 비틂으로써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어서 빅토리아의 영광을 휘둘러 횡으로 베듯이 쳐봤으나, 그것 또한 왼팔에 가로막혔다.
막 사용자들을 향해 으르렁거리던 쿠샨 토르가 그제야 나를 되돌아본다. 그리고는 마치 귀찮다는 듯이, 나를 물러나게 만들 기세로 묠니르를 휘둘러왔다.
부웅!
커다란 망치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져 온다. 이 찰나의 순간, 여러 생각이 한 번에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쿠샨 토르가 아까처럼 전력을 다해 내리쳤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일격은 어디까지나 나를 물러나게 만들 요량으로 뿌린, 비교적 약한 아니 덜 강한 공격.
무슨 생각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까 화정이 건넨 말이 마음에 걸린다. 그런 이상 놈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생각은 없어, 나는 곧바로 두 검을 교차시켰다.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마력을 힘차게 끌어올렸다.
이 정도면, 어떻게든 막을 수는…!
카앙!
그 순간, 엇갈린 검의 중앙 지점에서 격렬한 불꽃이 튀겼다. 동시에 양손이 저릿해질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지만, 분명한 건 도로 튕겨 올라가는 묠니르가 보인다는 것.
‘성공…!’
카앙, 카앙!
버티는데 성공했다는 생각을 한 찰나, 연이은 두 번의 공격이 가열차게 엇갈린 지점을 타격한다. 한 번 막을 때마다 절로 혀를 깨물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으나, 그 두 번의 공격조차 나는 모조리 튕겨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는 와중 문득 웃음이 나왔다. 사용자 중 최강을 자처하던 내가 고작 공격 3번 막았다고 이러는 게 자못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아아앙!
마침내 4번째 공격을 막아냈을 때, 칼을 쥔 감각을 일부 상실함과 동시에 더 이상의 연타가 이어지지 않았다. 슬쩍 시선을 올리자 묠니르가 중앙 지점을 맞춘 상태서 우뚝 멈춘 게 보였다. 그러더니 이대로 나를 눌러버리려는 듯 그대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속절없이 팔이 굽혀지려는 순간.
『잠재 능력, 쓰러질 수 없는(Rank : A Plus Plus Plus)이 발동합니다.』
나는, 두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는걸 느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쿠샨 토르의 묠니르를 붙잡은 순간이, 내가 그토록 바래왔던, 그려왔던 한 번의 기회였다.
“끄으으으으으으으!”
짓눌린 신음을 지르면서도, 나는 지체 않고 마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사용자 정보나 장비는 물론, 이화접목이나 사량발천근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원리를 동원해, 쿠샨 토르의 묠니르를 막아내는 중앙 지점에 집중한다.
웅웅웅웅웅웅웅웅웅웅웅웅!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그러자 마력 회로가 거센 울음을 토하는 동시에, 주변의 지면이 모조리 들썩들썩 일어나며 사방으로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속으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언제나 마를 일 없었던 마력이, 갑작스레 기하급수로 소모되며 서서히 말라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더 이상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게 전부였지만, 적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시시각각 회로가 녹아 내릴 것처럼 뜨거워지며 뜻 모를 신호를 보낸다. 아마 한순간에 이 정도로 마력을 사용하는 일은 앞으로도 어지간해서는 없을 것이다.
파츳! 파츠츠츳!
무검과 빅토리아의 영광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마주친 묠니르도 강렬한 스파크를 쉴 새 없이 터뜨린다. 결국에는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쿠샨 토르가 한 걸음 물러나며 묠니르를 거두려는 찰나였다.
그러나 쿠샨 토르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전신전력을 다한 어빌리티가 묠니르를 붙잡아두고 있었으니까.
“크릉?!”
깜짝 놀란 쿠샨 토르가 이번에는 양손으로 묠니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화정!”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 발을 굴렀다. 그나마 남은 마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내면이 텅 비는 기분이 들었다.
– 좋아!
화륵, 화르륵!
그 결과는 주변에 우수수 떠오른, 이글이글 타오르는 수십 개의 열화검으로 나타났다.
– 간다!
화르르르르르르륵!
그렇게 수십 개의 열화검이 쿠샨 토르를 향해 뿜어져 나가는 동시에, 묠니르를 끌어당기던 마력이 뚝 끊기고 말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쿠샨 토르는 삽시간에 물러나며 방어 자세를 잡았다. 비록 마력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반신이라면 화정의 힘을 기반으로 한 열화검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느꼈을 것이다.
물론 알고는 있다. 이 공격으로 부족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열화검만 날렸을 것이다. 아니, 애당초 열화검은 쿠샨 토르의 방어를 무너뜨리기 위한 1차 공격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 중앙 지점에 모인 마력을 회수하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
즉, 황급히 물러나는 쿠샨 토르를 향해.
“흐읍!”
교차시킨 두 검을 굴리듯이 그어 내리며, 집중된 마력을 한꺼번에 발출시켰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회전이 가미된 마력은, 한순간 어마어마한 파동으로 변해 쿠샨 토르의 가슴을 향해 짓쳐 들었다.
*
전쟁이 새로이 개시된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사용자들은 김유현의 지시에 따라 조를 이루어 움직였고, 거인들 또한 그에 맞춰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초원 곳곳에서 비명과 마법을 사용하는 소리가 들려오며, 중앙에서는 당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연신 심상찮은 진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아직 제대로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여인이 한 명 있었다.
“으으으! 어, 어떡하지?”
중앙에서 약간 후방으로 물러난 비비앙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현재 비비앙의 고민은 하나. 김수현의 임무를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홧김에 맡겠다고는 했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저 괴조 군단을 상대할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아무 군단이나 소환해도 어느 정도 활약은 해주겠지만, 문제는 바로 괴조들의 비행 능력에 있다.
적어도 똑같이 비행 능력이 있는 군단이나 아니면 대응할 수 있는 군단을 소환해야 하는데, 마땅한 마수들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나마 비행 능력을 지닌 마수가 하위 군단에 편성돼있으니 소환해봤자였고, 대응 능력이 있는 상위 군단을 소환하자니 없다는 게 문제였다.
1, 2, 3군단은 현재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
4, 5군단은 강력하기는 하나 공중 괴물에는 대응 능력이 없는 군단들이다.
그리고 6군단은….
“어….”
그때, 발만 동동 구르던 비비앙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6군단. 그리고 66군단.
마수들에게 있어서 ‘6’이라는 숫자는 범상치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두 군단의 특징은, 6군단은 4, 5군단보다 더욱 강한 군단이며 66군단은 6군단보다 더 강한 군단이다. 다만 그냥 소환할 수 있는 게 아닌, 특정한 요소를 만족시켜야만이 소환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었다.
“…좋아.”
이윽고 무언가 결정을 내렸는지, 비비앙의 두 눈이 결연한 빛을 띠었다. 어느새 오른손에는 질서의 오르도가 쥐어져 있었다. 비비앙으로서는 드물게도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 ────.”
폭음이 터지는 초원에, 비비앙이 주문을 영창 하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 작품 후기 ============================
자정 업데이트! 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