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32
00631 ShowDown. =========================================================================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고작 주문 하나 가지고 고민하고 있다고. 혹은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냐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돼보면 전혀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야 인간으로 돌아왔다고는 해도, 비비앙은 한때 이 능력을 얻으려 일생을 바친 여인이다. 그러할진대 아직도 모든 마수 군단을 소환하지 못한다.
비록 자세한 사정은 잠깐 넣어둔다 치더라도, 최소한 비비앙의 입장에서 상위 군단을 하나 소환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 ────. ────. ────.”
비비앙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주문을 영창하고 있었다. 온몸에서 땀을 비오 듯이 흘리고, 꼭 감은 눈에서 뻗어 나온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심지어는 온몸마저 떨고 있는 중이었다. 예전 다른 군단을 소환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비비앙의 등 뒤로 커다란 마법 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때보다 2배는 커 보이는 마법 진이었다.
온갖 형이상학적인 문양이 그려진 마법 진이 곧 느릿하게나마 핑그르르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질서의 오르도가 잠시 빛을 잃었다가, 도로 빛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마력 충전 시 일어나는 현상.
말인즉, 비비앙의 주문이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소리였다. 마법 진이 돌아가는 속도가 가일층 빨라진다.
이내 주문을 마친 비비앙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내 들었다. 심장처럼 보이는 물건이다.
일순 얼굴에 아깝다는 빛이 스쳤지만, 곧 표독스러운 표정은 지은 비비앙은 심장을 마법 진에 던져 넣었다. 신기하게도, 심장은 마법 진에 닿은 순간 믹서기에 갈아버린 것처럼 분해돼버렸다.
“오라!”
마침내, 비비앙이 질서의 오르도를 번쩍 들며 외쳤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초원에서는 여전히 전쟁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오라!”
한 번 더 외쳤지만, 결과는 똑같다. 적어도 이쯤 되면 모종의 반응이라도 느껴져야 한다. 하지만 그저 마법 진만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 그 어떤 마력의 흐름도 잡히지 않는다.
비비앙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오라, 오라, 오라, 오라! 오라오라오라오라! 아 쫌 오라고! 이 나쁜 자식아!”
그런다고 올리는 만무하나, 연신 오라를 외치는 비비앙의 목소리가 어느새 서서히 울먹이고 있었다.
마수 군단을 소환하는데 우선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3가지. 정확한 소환 술식, 충분한 마력,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의지. 나머지는 모두 마수의 의지에 달려 있다. 마수가 소환에 응해 마법 진에 반응한 순간, 비로소 첫 계약을 맺게 되는 것이다.
사실 비비앙도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는 모른다. 반쯤은 도박한다는 기분으로 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실패해버리면, 스스로 소환할 수 있는 군단에 한계를 그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 그렇기에 비비앙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질서의 오르도가, 돌연히 내려와 초원의 흙 바닥을 향한다.
“오라! 네비로스! 제 6군단을 지배하는, 시체와 사령을 관장하는 불멸의 왕이여!”
그리고 비비앙이 목이 터져라 외친다.
“나는, 아직 너희가 쓰러지는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평소와는 조금 다른 영창이 추가된 순간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잉!
느닷없이 마법 진에서 불쾌한 소음이 새어 나오더니.
– 끼히히히히히히히….
불현듯 어디선가 섬뜩한 웃음소리가 홀연히 흘러나온다. 비비앙의 눈이 크게 떠졌다. 드디어 6군단을 관장하는 불멸의 왕이 소환에 응한 것이다.
“어, 어디? 어디어디?”
비비앙이 빠르게 고개를 돌려 마법 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 없이 전과 같이 돌고만 있는 마법 진.
그때였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전역을 덮을 정도의 어둠이 덮쳐옴에, 비비앙이 엉겁결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살그머니 눈을 도로 뜰 무렵.
– 쿠우우우….
– 우우우우….
– 기우우우….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울음이 초원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한창 격전이 벌어지는 전장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죽었던 거인이 몸을 일으키고, 죽었던 사용자가 깨어나며, 죽었던 괴조가 날갯짓을 보인다. 단 하나도 예외 없이 깨어나 심상찮은 기운을 피어 올린다. 그 수는 거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건….”
비비앙이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랬다.
제 6군단, 시체와 사령을 지배하는 네비로스.
거인이든, 사용자든, 괴조든. 분명 한 번 사망한 이들이었으나, 네비로스의 권능을 부여 받고 되살아나 다시 한 번 전장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하나 부여 받고서.
그 능력이란, 다름 아닌 날개 소환.
파악!
주섬주섬 일어난 목 없는 거인의 등에서, 시커멓고 커다란 날개가 살을 찢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
화정이 신호한 순간, 공중에 떠오른 수십 개의 열화검이 일제히 쿠샨 토르를 향해 쇄도했다.
한 박자 늦게 발출한 파동은, 허공을 가르며 열화검을 잇따르듯이 짓쳐 들었다. 주변의 마력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두 어빌리티가 내뿜는 빛무리는 잠시나마 초원의 어둠을 몰아내고 시야를 환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윽고 열화검들이 황급히 물러나는 쿠샨 토르를 금세 따라잡고서 상반신에 폭격을 퍼붓는다.
펑펑펑펑펑펑펑펑!
폭음과 함께 들려오는 가열차기 짝이 없는 타격음. 한 발 한 발이 꽂힐 때마다 쿠샨 토르의 상체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몸은 연신 뒤로 밀려난다. 허나 그러한 와중에도 거인은 여전히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자 잇따라 들어간 파동이 흔들리는 쿠샨 토르의 가슴 정중앙을 직격했다.
꽈앙!
“크르르륵!”
그제야 헛바람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간신히 버티는 것 같던 쿠샨 토르의 몸이 한순간 크게 휘청거린다. 이내 그대로 몸이 무너져 내리는가 싶었으나, 거인은 안간힘을 쓰며 넘어가려는 상체를 도로 기울였다.
쿵!
그렇게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던 쿠샨 토르가 결국에는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말았다. 하지만 구부린 무릎이 바닥에 닿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무릎만은 꿇을 수 없다는 듯 절반 정도 접힌 상태에서 버티고 있었으니까.
쿠샨 토르와 일전을 벌인 주변 지역은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다. 흡사 지진 혹은 융단 폭격이라도 맞은 듯한 모양새.
그러나 쿠샨 토르의 몸은 더욱 처참하다. 1차로 들어간 열화검 무리는 거인의 몸 곳곳을 뚫고 들어가 상처를 남겼고, 지금도 이글이글 타들어 가며 지속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파동에 직격당한 가슴은 아예 흉하게 일그러진 상태였다. 자상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상체를 흠뻑 적시기 시작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샨 토르는 아직도 무너지지 않았다. 비록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을지언정, 한쪽 무릎을 구부렸을지언정, 여전히 두 발로 버티고 선 채 여전히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 공격조차도 버텨내는가.’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차분히 숨을 가다듬었다. 한순간 마력을 거진 사용해 회로가 불안정해진 게 느껴졌지만, 심장에 각인된 고대 무녀의 문신이 흐름을 안정시켜주고 있다.
그런 만큼 지금은 어설프게 행동하기 보다는, 3회전을 대비해 호흡을 추스르고 마력을 모아야 한다.
그러는 사이, 쿠샨 토르도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우리와의 거리를 한껏 벌렸다.
그렇게 2회전이 끝났다 여겼을 때였다.
“크르르릉!”
별안간 구부려졌던 다리 하나가 똑바로 세워졌다. 그리고 쿠샨 토르가 묠니르를 쥔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문득 나를 노려보는 두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안광을 발했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파츠츠츠츠츠츠츳!
그때, 갑작스레 고막을 아릿하게 울려오는 우레와 방전음. 소리의 근원으로 시선을 들어올리자, 묠니르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푸르스름한 빛깔의 번갯불이 눈에 들어왔다. 시퍼런 불똥이 사방으로 튀기며 허공에 춤추듯이 흩뿌려진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묠니르가 변한다. 묠니르가 변하고 있다. 그저 커다란 망치에 불과했던 묠니르가, 미친 듯한 전광을 일으키며 서서히 형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을 도대체 무어라 형용해야 할까?
색이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전신이 지그재그로 비틀리고, 점차 크기와 두께를 키워나간다. 종래에는 흡사 거대한 번개와 같은 모양새로 변해나간다.
그래, 번개. 어느새 쿠샨 토르는 형상화된 번개를 하나 손에 쥐고 있었다.
아니, 중요한 건 모양이 아니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하나의 번개로 화한 묠니르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흐르는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주변 공간을 우그러뜨리며,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를 방출한다.
흡사 폭풍이 강림한 것처럼, 무시무시한 바람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지상마저 깡그리 뒤엎어버렸다.
쿠르르르르르르릉!
두두두두두두두두!
하늘이 갈라지고, 대지가 일어난다. 빛의 기둥이 강림한다.
동시에, 기둥을 받은 쿠샨 토르의 온몸이 찬란한 빛무리를 뿌려내기 시작했다.
눈부실 정도의 찬연한 빛깔.
그 빛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뜻 모를 압력이 느껴졌다.
사방으로 퍼지는 신성한 기운.
그 기운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감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리저리 휘날려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걷어내며,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치뜨며, 나는 억지로 정면을 응시했다.
문득 쿠샨 토르의 허리가 꼿꼿해진다. 약간 웅크렸던 상처 입은 가슴을 똑바로 핀다. 가슴과 어깨가 일직선을 그린다.
그렇게 오연히 머리를 젖힌 거인들의 제왕이, 하늘을 바라보며 거칠게 포효한다.
“Ego Sum Dominus Gigantum, Kuschani Thorrrrr!”
이윽고 하나의 선언처럼 들려오는 천둥과도 같은 울부짖음이, 창공을 떠르르르 뒤흔들며 초원 전역을 떨쳐 울린다.
그리고 그 순간.
– Ohhhhh, Domine Deus Noster! Kuschani Thorrrrr!
– Ohhhhh, Domine Deus Noster! Kuschani Thorrrrr!
– Ohhhhh, Domine Deus Noster! Kuschani Thorrrrr!
– Ohhhhh, Domine Deus Noster! Kuschani Thorrrrr!
나는, 비로소 진정한 반신(DemiGod)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귓전을 울려오는 음성들은 메아리 따위가 아니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나,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쿠샨 토르의 포효를 들은 거인들의 함성, 아니 환희였다. 우리가 최강이라는,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제왕의 외침에 거인들이 일제히 소리 높여 환호한 것이다.
마치 승리를 노래하는 듯한 함성이 멀리멀리 퍼져나가, 초원의 전장을 가득히 메운다.
빠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묠니르도 그 환호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한층 가열찬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쿠샨 토르가 마침내 오른팔을 한껏 뒤로 젖혔다.
그리고.
“Mjolnirrrrrr!”
쿠샨 토르의 우레와 같은 외침과 함께, 번개가 허공을 갈랐다.
투척된 묠니르가 푸르스름한 빛을 분사하며,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한 번갯불을 튀기며, 일직선으로 내리 꽂히듯이 하강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를 노리고 들어오던 번개가 갑작스러운 궤도 변화를 보였다. 그리고 내가 아닌, 머리 위를 한참이나 지나쳐 기다란 잔상을 남기며 후방으로 넘어간다.
거의 동시에, 쿠샨 토르가 힘껏 땅을 박차 하늘 높이 도약한다.
그 행동이 무어라 생각하기도 전.
‘그러니까 저놈의 목적이 네가 아니라는 소리야.’
문득, 화정의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쿠샨 토르를 따라 허공으로 솟구치고 말았다. 왠지 모르게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 작품 후기 ============================
오늘도 자정 업데이트에 성공했네요. 기분이 정말 좋아요. 😀
거인들의 파트도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 군요.
보자~.
으악, 이놈, 쩌정, 갸웃, 꺄악, 우엉.(각 단어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제가 임의로 압축한 단어임을 알려드립니다. 후후.)
아마 2회~3회안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거인들과 사용자들의 전투는 쿠샨 토르와의 전투처럼 몇 회를 소비할 생각은 없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