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41
00640 男 : 미안해. 女 : 뭐가 미안한데? =========================================================================
나는 약간 멍한 기분을 느끼며 눈앞을 응시했다. 갑자기 찾아온 것도 모자라, 어느새 허락도 구하지 않고 들어온 연혜림은 의자에 앉은 채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보고 있다.
“큰일났네~. 큰일났어~. 김수현은~. 큰일 났대요~.”
거기다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까지. 나는 차분히 정신을 추슬렀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이야?”
“으응? 내가 별로 반갑지 않은가 봐?”
조용히 입을 열자 연혜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뭔가 굉장히 자신감 있어 보이는 얼굴이다.
“아니, 당연히 반갑기는 하지. 그냥 조금 당황했을 뿐이야.”
“그렇지, 그래야지. 너를 위해 무려 두 가지나 중요한 정보를 들고 오신 몸인데.”
“오호. 그거 구미가 당기는데?”
“흐응~. 말해줄까~. 말까~.”
연혜림은 고개를 갸웃갸웃 움직이며 까불었다. 얼른 경청하겠다는 자세를 잡자 연혜림이 킥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말해줄 테니까, 너 나한테 하나 빚진 거다?”
“아니. 무슨 빚까지야….”
“아까 한소영의 태도에 관해서 하나. 그리고 너한테 경쟁자가 생긴 거 하나.”
“Deal.”
나는 곧바로 연혜림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자 까르르 웃어 젖힌 연혜림이 새침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그만 웃고 어서 말해봐.”
“좋아. 그럼 우선 첫 번째.”
“응.”
“너 왜 그동안 소영이 연락 안 받았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동안 자꾸 까먹은 게 있었나 싶었는데, 바로 수정구 연락이었다.
“보아하니 아예 모르지는 않았나 보네? 고연주 고것이 중간에서 끊어내는 줄 알았는데.”
“으음, 까먹고 있었달까. …많이 화나셨어?”
“정확히는 네가 멀쩡한 상태인걸 확인하고 나서부터. 그전까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애태우면서 지냈다니까?”
“애태우면서 지내셨다고?”
“고럼.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내 눈은 못 속여. 특히 네가 마지막 전투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 때가 절정이었지.”
“그, 그건….”
나는 말을 더듬고 말았다. 사실 부상을 당한 건 맞으나 그렇게까지 큰 상처는 아니었다. 고작해야 마력 탈진 현상을 겪었을 뿐인데. 그런데 이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잖아.
‘어떡하지.’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고 싶은 충동을 느낄 즈음, 연혜림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달려와 내 옆으로 풀썩 주저앉는다. 침대가 한층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있잖아 있잖아. 그리고 너 경쟁자도 생겼다?”
그런 연혜림의 얼굴은 한층 상기돼있는 게, 아주 입이 근질거려 죽겠는 모양이다. 이쯤 되면 정보를 주려고 온 게 아니라, 자기가 말하고 싶어서 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기야 얘도 남 얘기 하는 거 엄청 좋아했지.’
그러고 보니 1회 차 때는 고연주를 자주 씹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조금 느닷없기는 하지만, 갑자기 1회 차 때 기억이 떠올라 우선은 가만히 들어보기로 했다.
“경쟁자라니?”
“한소영 말이야, 한소영!”
“그분이 왜?”
“조성호가 한소영한테 꼬리쳤다니까?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 순간, 나는 1회 차고 뭐고 무언가가 와장창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이 새끼가?’
감히 조성호 따위가, 그분한테 꼬리를 쳤다고?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봐.”
“그러니까…. 조성호가 소영이한테 어떻게 했냐 하면….”
갑자기 연혜림이 목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돌연 내 어깨를 감싸듯이 손을 얹는다.
“이스탄텔 로우 로드.”
이어서 일부러 굵은 목소리를 내며 얼굴을 서서히 들이밀기까지. 아마 그때의 일을 재현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긴장된 기분으로 이어질 언행을 기다렸다.
잠시 후, 연혜림의 입술이 떼어졌다.
“우리는….”
“연혜림.”
그때였다. 한창 하이라이트를 기다리던 찰나, 차가우면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한 줄기 흘러들었다. 나와 연혜림은 차례대로 한 번씩 흠칫하고서 거의 동시에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그곳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을 뿌리는 여인이 우리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한소영이었다.
“하, 한소영?”
연혜림은 후닥닥 떨어지더니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낯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어, 언제 왔어?”
“방금.”
“이, 일찍 왔네?”
“회의가 일찍 끝났으니까.”
한소영은 고저 없는 음색으로 연혜림을 쉬지 않고 압박하며 몰아쳤다.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인데, 분명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연혜림이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 방증이리라.
“그, 그렇구나.”
“그래서. 답변은?”
그렇게 한소영이 말한 순간, 이어지는 연혜림의 행동은 무척이나 신속했다.
“아, 아하하하! 나는 그럼 이만!”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소리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놓은 것이다. 이내 삽시간에 멀어져 가는 연혜림을 보며 나는 뜻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배신감은 곧 서늘한 바람으로 되돌아왔다. 한소영은 도망가는 연혜림을 쫓지 않았다. 계속 그 자리에 서서는 서릿발 같은 두 눈동자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목에 절로 침이 넘어간다.
‘사, 사과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찰나, 돌연 한소영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천막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아까 연혜림이 처음 앉았던 의자에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붙이기까지.
“…….”
“…….”
그러면서도 아무런 말도 없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면서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할 뿐.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화나셨구나.’
화났다. 100% 화났다. 1회 차에서 겪었던 패턴과 비교해 분석해보면, 지금 한소영의 행동은 화났을 때와 100%의 싱크로율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연락을 받지 않은 건 내 잘못이 크기에 뭐라 할 말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더 늦기 전에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이스탄텔 로우 로드.”
“…….”
“미안합니다.”
“뭐가 미안한데요?”
비로소 한소영이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도전적이라 느꼈다면 내 착각일까? 마치 단단히 벼르고 온 느낌이다.
“그…. 연락을 받지 못한 건 말이죠….”
“아니요. 괜찮아요. 바쁘셨다면 못 받으실 수도 있었겠죠. 사실 공략도 끝났는데 뭐가 바쁜지 이해는 잘 안 가지만요.”
“그, 그러니까요.”
“뭐, 다쳤다는 말을 듣고 조금 걱정하기는 했는데, 연혜림이랑 시시덕거리시는 거 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나 보네요.”
…엄청나게 빠른 말속도. 한소영은 내가 알고 있던 한소영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한소영이다. 예의 고요하고 색스러운 태도는 보이지 않고, 성난 암사자 같은 기세를 뿜으며 나를 압박한다.
‘수현아. 마누라랑 싸워봤자 하등 좋을 거 없다. 무조건 져줘라.’
문득 떠오른, 이제 10년도 더 된 아버지의 격언을 떠올리며 나는 속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마지막 전투 이후 약간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연락이 왔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언뜻 들은 터라 저도 모르게 까먹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건 괜찮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아무튼, 정말 미안합니다. 이스탄텔 로우 로드. 혹시 제 행동이 심기를 거스르게 했다면….”
“그러니까 뭐가 미안하신데요. 아까부터 자꾸 사과만 하시는데, 이러니까 꼭 제가 나쁜 년이라도 된 것 같잖아요.”
아니 오늘따라 왜 이러십니까.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화난 이유를 말해줘야 내가 제대로 사과할 거 아니냐고.
“아 솔직히 화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러시는 거고요.”
“지금 화내시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왜 화내시는지를 모르겠으니까….”
“그럼 머셔너리 로드는, 결국 제가 왜 화났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는 거네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지금껏 참고 참아온 무언가가 뚝 끊어진걸 느꼈다.
‘…아. 더는 못 참겠다.’
말을 할 때마다 말꼬리를 잡으니까 대화가 쳇바퀴를 돌고 있다. 무엇보다 아까 경쟁자가 생겼다는 말도 묘하게 신경 쓰이는데, 한소영마저 이렇게 나오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진짜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는데, 울컥하는 포인트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와버렸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나도 어디 가서 말로 밀리지는 않는다. …형한테는 빼고.
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 척을 하다가 한소영을 똑바로 직시했다. 그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알 것 같네요.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지.”
그러자 한소영이 의외라는, 아니 뜨끔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뭔데요?”
“알지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네?”
“왜 화를 내시는지 알겠는데, 말하지는 않겠다고요.”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씀이라니요?”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려왔기에 나는 곧바로 받아 쳤다.
“그럼 이스탄텔 로우 로드는, 제가 왜 말하고 싶지 않은지 모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적반하장 격으로 말을 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하게. 말인즉, 지금 이 상황을 거하게 꼬집은 뜻이 담긴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나자 한소영의 몸이 순간적으로 빳빳하게 굳었다. 이내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치는걸 확인하자 속이 다 시원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한소영도 방금 말뜻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 할 말이 없겠지. 이게 조금 전 내가 느낀 기분이라고.’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최대한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어깨를 들먹였다.
그렇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려는 찰나, 나는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걸 직감했다.
“…….”
“……?”
한소영은 확실히 할 말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무에 그리 서운한지, 온몸을 파르르 떨면서 나를 흘겨보고 있다. 거기다 길고 예쁜 눈썹은 서서히 치켜 올라가는 중.(1회 차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이건 한소영이 심히 삐치거나 토라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잠시 후.
탁!
탁자를 강하게 짚은 한소영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 이만 갈래요.”
그리고 결 좋은 머리칼이 사르르 흩어질 정도로 몸을 세게 돌리기까지.
‘이건 반칙이잖아.’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리고 얼른 달려가 한소영을 붙잡았다.
“자, 잠시만요.”
“됐어요. 놔요.”
*
그렇게 김수현과 한소영이 한창 자존심을 건 살벌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이, 이스탄텔 로우 로드.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좀….”
“흥.”
…아니. 사실은 알콩달콩한 연인 다툼을 하고 있을 즈음.
중간부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천막과 조금 떨어진 거리서 양손을 꾹 쥐고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동부 총 사령관 조성호였다.
“배, 배 안 고프십니까? 식사라도 하실까요?”
“몰라요. 제가 무슨 먹을 것만 밝히는….”
꼬르륵~.
“…마, 마음대로 하세요.”
천막 내 벌어지는 콩트를 보는 조성호의 얼굴은 묘하기 그지없었다. 김수현의 태도도 놀랍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한소영의 태도는 조성호에게 절로 비틀린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문득, 조성호의 머릿속으로 며칠 전 한소영에게 거부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스탄텔 로우 로드. 동부와 남부는 오랫동안 동맹 관계를 지켜오지 않았습니까?’
‘네?’
‘하하하. 말인즉, 우리는 조금 더 친해질 필요가 있다는 소리입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곧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가 양분하게 될 텐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손대지 마세요. 굉장히 불쾌하네요.’
그 당시, 은근슬쩍 신체 접촉을 하려 했던 조성호는 단번에 퇴짜를 맞고 말았다.
‘큭. 예민하시군요.’
‘제 어깨에 손을 올리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이건 거부라고 봐도 상관없습니까?’
‘무슨 말씀이시죠? 저는 다른 사람이 제 몸에 손대는걸 굉장히 싫어해요. 특히 사내는 더더욱.’
‘이런, 그러셨군요.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머셔너리 로드와의 소문이 상당히 뜨겁던데요.’
‘그쪽이 머셔너리 로드는 아니잖아요?’
그때, 조성호는 자신을 쳐다보던 한소영의 눈을 잊지 못했다. 일견 무표정해 보이면서도 자신을 비웃는 듯한 차가운 눈빛.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혐오 어린 눈초리.
‘그렇게 말한 주제에.’
이내 조성호의 시선이 도로 천막을 향한다.
조성호는 손도 대지 못했던 한소영의 어깨와 팔을 붙잡은 채, 살살 달래는데 여념이 없는 김수현. 그리고 싫은 척, 쌀쌀맞게 시치미를 떼면서도 결국에는 김수현에게 이끌려가는 한소영.
그런 두 남녀를 확인한 순간, 조성호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래도 그나마 똑똑한 계집인줄 알았는데 말이지…. 뭐, 상관없나.’
한순간 가슴속에 굴욕감이 치밀어 올랐으나 곧 사그라졌다.
‘어차피 공략은 끝났어. 이제 새로운 도시에만 도착하면….’
그렇게 생각한 조성호의 입가에 전보다 더욱 진한 미소가 자리잡는다.
한편, 같은 시각.
부상자 관리소.
번쩍.
간이 침대에 누워 있던 사내가 눈을 떴다. 일전 하챠르의 캠프에서 성과 은닉 작업을 하던 사내였다. 이후 오랫동안 기절해있었는지, 사내가 초점이 맞지 않는 듯 여러 번 눈을 깜빡였다.
“어, 이제 깨어났어? 깨어난 거야?”
그때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 사내는 간신히 음성이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천막에 비스듬히 기댄 채 놀란 얼굴로 사내를 보고 있었다.
“야, 이정필. 괜찮아? 정신이 들어?”
“…어떻게 된 거지?”
여인이 천천히 다가오자 이정필이 힘겹게 물었다. 잔뜩 쉰 목소리였다.
다가온 여인은 침대 끝에 살짝 엉덩이를 붙이고는 물끄러미 이정필을 내려다보았다.
“그건 오히려 나야말로 묻고 싶은 거야. 너야말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 터전 정리하는 것까지는 기억해?”
“기억한다.”
“그럼 너 작업 치다가 기절한 거는?”
“…거기서부터 끊긴 것 같다.”
이정필은 약간 늦게 대답했다. 여인의 말에서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 ‘작업 치다가.’ 라는 말이 나온 이상 확실하다 봐도 무방하다. 다만 여인이나 이정필이나 서로 비슷한 부류라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을 뿐.
“내가 얼마나 누워 있던 거지? 하루? 이틀?”
“엄청 오랫동안. 일주일도 넘을걸?”
사내가 은근슬쩍 화제를 돌리자 여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그제야 깜짝 놀랐는지 사내가 두 눈을 치뜨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여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거짓말이 아니야. 사제들은 원인을 모르겠다 말하고, 너는 죽은 듯이 자고 있고.”
“일주일도…. 넘는다고…?”
“그래. …설마 이것 때문인가?”
“……?”
혼잣말을 중얼거린 여인이 가슴 안으로 손을 넣었다. 이내 손끝에 걸려 딸려 나온 물건은 다름 아닌 뼈로 장식된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를 보는 순간 이정필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이정필이 기억하기로는 목걸이에 분명 시뻘건 빛을 뿌리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목걸이는 그저 뼈로 이루어진 장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정필은 본능적으로 여인을 노려보려다 그만두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설령 여인이 보석만 따로 챙겼다 하더라도 큰소리칠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성과 은닉 사실을 덮어준 것만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였다.
“이건 돌려줄게. 어차피 별로 값나가 보이지도 않고.”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인은 태연한 목소리로 말하며 침대에 목걸이를 놓았다. 이정필의 낯에 그늘진 피로를 읽었는지 여인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든 지금은 푹 자둬.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내일?”
“그래. 강철 산맥의 끝이 다가왔거든. 원래 너는 여기 두고 가려고 했는데, 클랜 로드가 꼭 챙기고 가겠다고 하더라. 나중에 잊지 말고 감사 인사나 하라고.”
“자, 잠시만.”
이정필은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터라 머리를 갸웃했으나, 여인은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는 빙글 몸을 돌렸다. 결국 여인은 그대로 천막을 나섰고, 이정필은 침대에 덩그러니 놓인 뼈 목걸이를 한동안 하염없이 응시했다.
“아차.”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정필의 눈동자에 강렬한 이채가 스쳤다. 마치 무언가 잊고 있던 걸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짓더니 황급히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정필이 하챠르의 천막에서 얻은 건 목걸이 하나뿐이 아니었다. 자그마한 흙 무덤에 얻은 성과가 하나 더 있었다. 비록 급한 와중에 챙긴 터라 정확히 확인은 못했지만 서도.
“부, 분명 여기에 넣었을 텐데?”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지 이정필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웃옷을 벗었다.
그 순간이었다.
두근!
막 옷을 벗으려는 찰나, 갑작스레 심장이 크게 펄떡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이정필의 움직임이 일시 정지했다.
두근두근!
이윽고 심장이 재차 크게 뛰자, 이번에는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지며 시뻘건 빛으로 물들었다.
“크으으윽!”
============================ 작품 후기 ============================
1차전.
女 : …………………….
男 : …미안해.
女 : 뭐가 미안한데?
男 : 이러저러해서 미안해….
女 : 아닌데? 나 그거 때문에 화난 거 아닌데?
男 : 그래? 그럼 왜 화냈는지 가르쳐주지 않을래?
女 : 그럼 오빠는 결국 내가 왜 화났는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는 거네?
男 : …………………….
2차전.
女 : 정말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男 : 아니. 생각해보니까 알 것 같아.
女 : 그, 그래? 뭔데?
男 : 알지만 말하고 싶지 않아.
女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왜 말을 안 해?
男 : 너야말로 내가 왜 말하고 싶지 않은지 몰라?
3차전.
女 : 나 갈 거야!(간다고 안 잡기만 해봐?!)
男 : 자, 잠시만!(치, 치사하다!)
女 : 됐어! 놔!(이런다고 진짜 놓기만 해봐! 빨리 더 안 끌어당겨?)
男 : 미, 미안해. 응?(이씨…. ㅜ.ㅠ)
…아마 공감하시는 분들은 경험해보신 분들이겠지요? 🙂
아무튼, 이 정도면 김수현도 쉴 만큼 쉬었지요(?). 이제 그만 갑시다. 떠납시다.
Move, Move, M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