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24
광마전생 (124)
사신기제(四神旗祭).
무림에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사신기제는 네 개의 방위를 수호하는 사신(四神)에게 념을 올리며 무림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일종의 제사였다.
이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사신기제에는 정파의 실세가 모두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보면 사신기제는 후기지수에게 등용문이자 새로운 인맥을 열어 갈 대화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사신기제가 열리는 이맘때쯤 하남은 무림인들로 득실득실했다.
설사 후기지수가 아니라고 해도 사신기제는 누구나가 참여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첫 제사가 지내지는 오늘.
제사가 진행되는 낙양은 미어터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우와! 저기 좀 봐요! 사람이 불을 먹고 있어요!”
사람이 많은 곳엔 당연히 여러 잡상인이 모이기 마련.
흑련은 이런 큰 행사는 처음인지 주변을 열심히 돌아보면서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난 손에서 불도 일으키는데?”
“에이, 그래도 저렇게 먹진 못하시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먹지.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저건 불을 먹는 게 아니라…….”
“와! 이 색동 옷 좀 봐! 예쁘다!”
흑련의 난리에 모용진은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를 어깨에 걸쳐 들어 올렸다.
“으아앙! 저 비녀! 저 가락지도 예쁜데!”
“빨리 가자고 재촉한 건 너였거든?”
“히잉…….”
이럴 때 보면 흑련 역시 영락없는 소녀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모용진이 흑련을 업고 이동한 곳은 사신기제가 진행되는 거대한 장원이었다.
이 장원은 낙양의 대지주 중 한 명의 집인데 매번 사신기제가 열릴 때마다 이곳을 빌려주고 있었다.
모용진은 그 대지주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소소한 복수를 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부우웅!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거대한 뿔피리 소리.
안쪽은 이미 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흑련을 내려놓은 모용진은 무려 네 개의 관문을 거처 신분 검사를 받은 뒤 행사가 진행 중인 장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장원에는 어마어마한 인원들이 몰려 다 함께 사자탈 공연을 관람 중이었고 모용진은 사람들을 헤치며 자신의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사신무의 출전자에게는 전용 좌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지나가자 아까 먼저 가 있겠다던 정인 사태와 백문이 보였고 모용진은 그 둘의 사이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오셨군요, 여립 님. 그런데 흑묘 소저께선…….”
“아, 일이 있어서 잠시 어딜 갔다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나저나 자리가 참 좋군요.”
“예. 재작년엔 없던 그늘막도 생겨서 그런지 한층 더 쾌적한 것 같습니다.”
자리에 앉은 모용진은 한창 시선을 끌고 있는 공연을 보지 않고 눈을 돌려 주변을 관찰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린 이곳에도 당연히 상석은 존재했다.
모용진과 같은 사신무의 참가자들이 앉아 있는 곳도 어떻게 보면 상석이었는데 맞은편에 있는 곳에 비하면 이곳은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다.
얼마나 돈이 많은지 금으로 때려 박은 화려한 장식들과 편안하다 못해 잠이 올 것만 같은 좌석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을 이들을 위해 마련된 다과와 수십 명이 넘는 시종들까지.
말 그대로 현 무림의 실세들이 앉는 자리였고 그중 가장 중간 높은 곳에 있는 금빛 좌석은 그야말로 황좌(皇座)와 다름이 없었다.
아직은 공석인 그 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모용진은 아래로 내려오며 천천히 사람들을 훑었다.
가장 높은 자리 아래에 위치한 네 개의 좌석 역시 빈자리였지만 그 아래에는 사람들이 착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맨 왼쪽에 있는 자의 면상을 확인한 모용진은 순간 분노가 가슴속에서 확 끓어올랐지만 금세 마음을 다스리며 화를 억눌렀다.
맨 왼쪽에서 누구와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는 자.
그는 바로 석가장의 장주인 석산우였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역시도 모용진이 아는 인물이었는데 바로 현 개방의 방주인 방풍이었다.
천기린이었던 시절 방풍은 방주가 아니었지만 지금 그의 새끼줄에는 아홉 개의 매듭이 걸려 있었다.
이는 용두방주를 뜻하며 곧 방풍이 현 개방의 방주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옷차림을 보아하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만한 자들이 앉아 있었지만 실제로 모용진이 아는 얼굴은 거의 없었고 오른쪽 끝에 도착하고 나서야 익숙한 얼굴이 앉아 있었다.
백두철과 황보유선.
그들은 누군가와 언변을 벌이고 있었는데, 옷에 그려진 자수로 보아하니 각각 천룡학관과 현무학관의 관주로 보였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아무 말 없이 찻잔을 들이켜고 있는 자.
분명 그 자리는 주작학관의 관주 자리임이 분명한데 그곳에는 팽가의 도복을 입은 자가 앉아 있었다.
“저 팽가의 사람이 주작학관의 관주인가?”
“아, 네. 저분은 주작학관의 팽기문 관주이십니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정인 사태가 대답을 해 주자 모용진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관주의 자리인데 팽가의 도복을 입은 분이 앉아 계셔서 궁금했었습니다.”
“한번 만나 뵌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허례허식을 싫어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문의 도복을 입고 나오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딱히 그가 궁금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모용진은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팽기문……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뭐, 상관없나.’
그가 팽기문을 보고 반응한 것은 그저 팽가였기 때문이다.
서로 맨 끝에 위치한 석가장과 팽가.
그들을 이렇게 직접 보니 새삼스럽게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이 많다는 생각이든 모용진이었다.
그렇게 사람의 얼굴을 구경하며 모용진이 시간을 보내는 그때.
문지기의 우렁찬 외침이 장내를 크게 뒤흔들었다.
“소림사의 방장이시자 현 무림맹의 맹주이신 공성 대사님께서 입장하십니다!”
한 문지기로부터 파도처럼 장내에 울려 퍼지는 입장 알림 소리.
그 소리에 한창 하늘을 날고 있던 용의 탈이 바닥에 내려앉았고,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쿠궁, 쿵.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여태껏 열리지 않던 대문이 열리고 잠시 후 그곳엔 황금빛 승포를 입은 스님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등장했다.
한없이 인자한 미소와 함께 등장한 공성 대사.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화산파의 장문인인 청화 진인과 무당파의 장문인인 태허 진인이 모습을 드러냈고 곧이어 뜻밖의 인물도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전 무림맹주이자 곤륜파의 장문인인 구영 도장이었다.
구영 도장의 얼굴을 본 모용진은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하고 눈으로 그를 좇았다.
‘구영 도장이 모습을 드러내다니.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계속해서 입장하는 무복을 입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통합무림에 속해 있는 문파의 장문인이거나 가주들이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혁.
하북팽가의 가주 팽여운.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궁.
아미파의 장문인 현월 사태.
공동파의 장문인 상여지.
종남파의 장문인 종소유.
그리고 점창파의 장문인 경혼까지.
이로써 거의 모든 정파가 통합무림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용진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기에 딱히 그들에게 눈이 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오직 딱 한 곳.
바로 공성 대사의 얼굴이었다.
지금 그가 공성 대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단순히 그가 통합무림의 수뇌이자 복수의 대상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익히 본 빡빡이 얼굴 굳이 쳐다보면 속만 끓어오를 것 같았기에 오히려 시선을 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다.
천기린이었을 때는 신물 나게 본 얼굴이었고 모용진으로 죽을 뻔했던 그때도 분명 봤던 얼굴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머릿속에는 계속 그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이유는 모용진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첫 제사는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첫째 날 행사가 모두 끝나 해산했을 때에도 모용진은 그 기시감에 대한 실마리를 전혀 잡지 못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둘씩 장원을 떠나기 시작하는 그때.
모용진의 옆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급하게 달려왔다.
“이여립 대협!”
그들은 다름 아닌 제갈세가의 사람들이었다.
총관인 제갈적이 앞장서서 그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덥석 붙잡았다.
“하하. 여기에 계셨군요, 이여립 대협.”
“오랜만입니다. 제갈적 총관님.”
“저를 기억하고 계셨군요, 대협. 하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는데……”
“아! 예. 그런데 일단 그 전에, 시간도 시간인데 시장하진 않으십니까?”
“흠…… 예. 뭐, 아직은…….”
“제가 아주 잘 아는 객잔이 있는데 그곳 동파육이 그렇게 끝내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제가 모실 테니 저랑 함께 죽엽청 한잔 어떻습니까!”
마치 그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는 듯한 제갈적의 제안에 모용진은 마지못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그럼 그럽시다. 대신 제 동료들도 함께 사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모용진이 말하는 동료는 정인 사태를 비롯한 백호학관의 관도들이었다.
이에 제갈적은 흔쾌히 승낙했고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모용진의 팔을 붙잡고 객잔을 향했다.
도착한 객잔은 정말로 동파육의 맛집이었다.
제갈적의 돈으로 배를 가득 채우자 제갈적은 본격적으로 모용진을 구슬리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뻔하디뻔한 것이었다.
제갈세가에서 전적으로 모용진을 지원해 줄 테니 학관 생활이 끝나게 되면 제갈세가의 문양을 달고 일해 줄 수 없겠냐는 말이었다.
사실 제갈적은 이번 한 번으로 모용진을 얻을 수 없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모용진은 진짜 용이었고 백호학관의 백호비무제에서 그 역량을 증명해 냈으니 최대한 몸값을 올려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곧 사신무가 열리기에 사신무를 치르고 나면 그 몸값이 더 오른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갈적에게 있어서 그저 밑밥만 뿌리는 날이었다.
최대한 밑밥을 뿌려 그를 꾀어내기 위한 자리.
그런데 이게 웬걸.
잠시 고민하던 모용진의 입에서 제갈적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죠, 뭐.”
“예?”
너무나도 뜻밖의 대답에 제갈적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질문해 버렸고 이에 모용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싫으세요? 그럼 말든가…….”
“아아아아아, 아닙니다, 대협! 그저 너무 놀라서 그럽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좋지요! 저희야 좋고말고요!”
생각지도 못한 수확에 제갈적은 뛸 듯이 기뻐했고 모용진은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럼 이제 한솥밥을 먹게 되겠군요. 앞으로 같이 잘해 봅시다. 제갈적 총관님.”
자신보다 어린 모용진이 등을 마구 두드리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지금 제갈적에게 예의고 나발이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며 객잔 전체의 술값을 내겠다고 선언했고 그 이후 객잔은 한바탕 잔칫집이 되어 시끌벅적해졌다.
그런 소란을 틈타 모용진은 죽엽청 한 병을 들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내기를 이용해 술기운을 순식간에 날려 버린 그는 떠들썩한 객잔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고 조용히 자리를 떠나는 그의 곁엔 어느새 흑련이 붙어 있었다.
“찾았습니다, 흑제 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