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64
광마전생 (164)
33장
제갈적의 말에 모용진은 슬쩍 설백의 눈치를 살폈고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정을 통했다기보다는 이제 조금씩 알아 가고 있는 사이입니다.”
“아, 그렇군요…….”
모용진의 말에 제갈적은 아쉽다는 듯 끝말을 흐렸지만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갈세가와의 혼인은 그의 딸인 제갈중화가 깨뜨린 것이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단 둘은 대외적으로는 혼인이 아닌 사귀고 있는 것으로 알리기로 했는데 이는 모용진이 부탁한 것이었다.
대신 북해에 있는 빙제와 흑천파에는 사실대로 고하기로 했고 식도 나중에 북해에서 올리기로 약속했다.
“그럼 난 잠시 대주에게 다녀올게. 북해에 알릴 것이 있어서.”
“그래. 갔다 와.”
허물없이 대화하는 둘의 모습을 보며 제갈적이 신기한 듯이 쳐다봤지만 모용진은 그저 겸연쩍게 웃을 뿐이었다.
제갈적을 돌려보낸 모용진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도 가면을 쓰고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을 지나 골목 몇 개를 더 돌아 들어간 모용진은 허름한 집들이 가득 모여 있는 빈민촌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그는 어느 거지와 마주했다.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술을 마시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는 보통 거지가 아니었다.
다섯 개의 매듭을 지닌 자.
그는 한 당(黨)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개방의 당주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앞에선 모용진은 허리를 숙여 그를 바라보더니 발로 그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당신이 절 부르신 분입니까?”
모용진의 말에 거지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웬 놈이냐. 귀찮게 하지 말고 썩 꺼져라, 이놈.”
술에 잔뜩 취한듯한 목소리.
하지만 모용진은 저게 모두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신을 받았다. 이쪽으로 가라고 하더군.”
“으음?”
서신을 받았다는 말에 그 거지가 조금 반응하듯 몸을 움직이더니 가면을 벗어 보란 듯이 손짓했다.
이에 모용진은 가면을 들어 얼굴을 보여 줬고 그 거지는 그제야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개라고 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자신을 여개라고 소개한 그 거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앞장서서 어디론가로 안내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매우 작고 허름한 집이었다.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모용진은 홀로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 모용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창월단의 단주인 악비였다.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절 불러야 했습니까?”
모용진의 말에 악비는 살짝 당황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용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게, 일단은 은밀하게 만나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개방에 부탁을 하여…….”
“개방을 불러낸 것부터 이미 은밀하지 않습니다. 저들은 정보원이니까요. 아마 곧 무림맹에 제가 악비 님과 밀회를 가졌다는 소문이 퍼질 것입니다.”
“그런…….”
악비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스러워했고 이에 모용진은 피곤하다는 듯이 목 뒤를 손으로 눌렀다.
사실 이는 무림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경험이 없는 몇몇 이들이 벌이는 실수.
하지만 모용진은 뻔히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 자리에 일부러 나타났다.
바깥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셋.
이여립은 무림에 떠오르는 신성과 마찬가지였고 그가 무림맹의 단주와 밀회를 가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모용진은 미리 준비한 쪽지를 악비에게 건넸고 조용히 하라는 듯이 입에 손을 얹었다.
악비에게 건넨 그 쪽지엔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예전의 도움은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는 창월단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살펴 돌아가시길.”
모용진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돌아갔고 홀로 남은 악비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쪽지의 뒤에 다른 무언가가 적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쪽지에 적혀 있는 것은 어떠한 장소와 당부였고 그곳은 모용진과 그가 이야기를 나눴던 작은 호숫가였다.
시간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악비가 여개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지만 잠시 눈치를 보며 기다리던 여개는 조용히 악비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대협의 말이 사실이었군. 은밀히 내 뒤를 밟고 있다.’
의식을 하자 개방의 인물들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 악비는 일부러 그들을 떼어 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그들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골목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갑자기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졌고 놀란 악비가 조심히 골목을 살펴보자 놀랍게도 그곳엔 개방의 거지로 보이는 인물을 셋이나 쓰러뜨린 모용진이 서 있었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분이군요, 단주님은.”
“하하……. 죄송합니다.”
“따라오시죠.”
모용진이 악비를 데리고 안내한 곳은 그 근처에 있는 작은 기루였다.
기루는 처음이었던 악비는 살짝 놀라긴 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곳에 들어갔고 방을 안내받아 자리했다.
“이…… 이런 곳을 더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루는…….”
“오히려 여기가 더 안전합니다. 기생을 부르지 않는다면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일이 없고 누군가가 엿듣는다고 해도 개방보다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설마 기생을 부르지 않아 아쉬운 건 아니시죠?”
“아,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완강하게 부인한 악비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려 했는데 놀랍게도 모용진이 먼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아쉽지만 요전번에 했던 말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예? 대협,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껏 죽을 각오를 하고 모용진을 찾은 악비였는데 모용진이 먼저 없던 것으로 한다고 하니 그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 악가는 대협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러니…….”
“아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예? 그렇지 않다니요?”
그날, 악비를 돌려보내고 난 이후 모용진은 곧바로 산동악가에 대해 조사했고 직접 사람을 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딱히 좋지 않았고 결국 모용진은 산동악가를 거두지 않겠다는 결론을 낸 것이었다.
“단주께선 그 산여독에 중독되었음에도 열심히 노력하여 어느 정도 강한 내공과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조사한 결과 지금 산동악가엔 단주님을 제외하고는 일류에 드는 자가 한 명도 없더군요.”
모용진의 말은 사실이었고 이에 악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악비님도 겪어 보셨듯이 제 치료법은 직접 내기를 흘려보내 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치료법은 단주님처럼 기본이 되어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것이고 평범한 이에게 사용한다면…….”
“내공이 역류하여 사망하겠지요…….”
“맞습니다.”
악비도 알고 있다는 듯 말했고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비 님은 제게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몸에 축적된 산여독을 제거하는 방법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럼…… 저희 가문은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분하다는 듯 악비가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고 이에 모용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작은 주머니를 품에서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걸 드리기 전에 먼저 해 드릴 말이 있습니다. 산동악가의 후계자이니 적어도 그날의 진실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진실이라니 그게 무슨…….”
“피의 저주 그리고 정사대전의 진실입니다.”
모용진은 품에서 너덜너덜한 책 한 권을 꺼내 그 주머니 옆에 놓더니 악비에게 내밀었다.
“이건 그대의 할아버지 되는 악중의 일기입니다. 조사를 의뢰했던 제 지인이 우연히 그대의 아버지인 악송의 서재에서 찾았다고 하더군요.”
모용진의 말에 악비는 살짝 의심이 가긴 했지만 그 책을 펼치자마자 모용진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의 할아버지인 악중은 비록 무골은 아니었지만 붓글씨에 재주가 있었고 그가 남긴 글귀들은 아직도 산동악가 여기저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잘 읽어 보십시오. 거기엔 왜 그대의 할아버지만이 살아 돌아왔는지, 왜 가족들이 산여독에 중독되어 있는지도 아주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그 책은 악중의 일기장이었다.
만일을 위해 그가 보험처럼 가지고 있던 것.
그 일기장에는 그날의 진실이 모두 적혀 있었다.
산동악가는 정사대전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 아니고 태허 진인의 손에 의해 악중을 제외하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 이유는 당시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산동악가의 가주가 공성 대사를 필두로 한 통합무림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통합무림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그들을 통합무림이 살려 둘 리가 없었고 정사대전이 일어났다고 꾀어 그들을 모두 사살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부러 악중만은 살려 돌려보냈는데 그 이유는 가주가 사라진 산동악가를 어떻게든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악중은 목숨을 부지하는 대가로 가족들에게 산여독을 먹여야 했고 그 관습이 현 가주인 악송에게 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지금 제게 이걸 믿으라는 것입니까?”
“아쉽게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 주머니를 준비한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모용진이 그 주머니를 풀자 안에는 갈색빛 가루가 잔뜩 들어 있었고 모용진은 그것을 들어 악비에게 보여 주었다.
“여기 담겨 있는 것인 바로 산여독입니다. 이 책에 적힌 글이 의심스럽다면 이것을 들고 돌아가 주방을 살펴보십시오. 틀림없이 그곳에 이 가루가 있을 겁니다.”
모용진의 말에 악비가 손을 덜덜 떨며 그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던 악비는 고개를 들더니 모용진을 쳐다봤다.
“복수하고 싶습니다, 대협. 저는…….”
“아니 됩니다.”
악비가 복수하고 싶다며 말했지만 모용진은 단박에 그의 말을 잘랐다.
“어째서입니까. 설마 제 실력이 부족하여 그런 것입니까?”
“지금 관주에겐 복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이라니……. 이 서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저는 지금껏 원수들의 아래에서 죽어라 일을 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 그들에게 한 방 먹여 주지 않는다면 전……!”
“그럼 가문은요?”
가문이라는 말에 악비가 움찔거리며 말을 멈추자 모용진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악비 님은 산동악가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후계자입니다. 만일 복수를 꿈꾸다 단주님이 죽으신다면 이대로 산동악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악비 님이 하셔야 하는 일은 산동악가를 다시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악가를…… 바로 세우는 것…….”
“지금 즉시 단주라는 직함을 버리시고 악가로 돌아가셔서 가문을 다시 바로 세우시지요. 금전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한 지원은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모용진의 말에 악비가 살짝 놀라며 자신의 바짓단을 손으로 부여잡더니 덜덜 떨었다.
“어째서 제게 그렇게 잘해 주시는 겁니까. 알게 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않았는데…….”
“그거야 저도 악비 님과 비슷한 사람이니까 말이지요.”
“예? 저와 비슷하다니…….”
악비의 말에 모용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많은 걸 알려 드릴 순 없지만 저 역시도 통합무림에 복수를 꿈꾸고 있는 자입니다. 제 가족은 그들의 손에 모두 죽임을 당했지요. 이 정도면 답변이 되겠습니까?”
모용진의 말에 악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복수는 악비 님의 몫까지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니 악비 님은 악가로 돌아가셔서 후일을 준비하시지요.”
“이 은혜를 제가 어떻게 갚아야 할지…….”
“언젠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가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야겠지요.”
그 후 악비는 모용진에게 수십 번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고 곧바로 무림맹에 사직서를 제출하러 떠났다.
그리고 그를 마중하며 기루 밖에 나온 모용진은…….
“왜 서방님께서 기루에서 나오신 걸까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니, 잠시만. 이건 오해야, 오해!”
그리고 그는 그날 깨달았다.
높임말을 쓰는 설백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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