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220
“예, 예랑.”
“……?”
윤안로를 품에 안고 있던 신예랑이 김산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어째서 자신을 불렀는지 깨달았다.
눈을 흉흉하게 빛내며 다가오는 무인들.
설마 이자들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비키시오.”
창서가 다가서자, 남궁가의 무인 공양은이 그 앞을 막아섰다.
“검제께서 싸우고 계시네.”
“알고 있소.”
“뭐?”
“이미 명을 받은몸이오.”
“그게 무슨?”
공양은이 얼굴을 찌푸리며 조금 떨어져 있는 제갈민을 노려보았다.
“도련님께선 확실한 승리를 원하시오.”
“그렇다 한들! 무인 된 자들이 어찌 이런짓을 한단 말인가? 그대들은 무인으로서의 자긍심도 없단 말인가?”
“……자긍심?”
공양은의 말에 창서가 피식 웃었다.
“그게 뭐요?”
“뭐라?”
“우리는 명령 이외에는 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이자가!”
“도련님께서 그러시더군. 만약 검제께서 당하면 책임을 질 것이냐고.”
“닥쳐라! 네놈이 지금 검제님을 무시하는 것이냐!”
“글쎄…… 하면 당신이 책임을 지면 되겠군.”
“뭐?”
“만약 검제께서 패배하신다면, 남궁가의 평판은 바닥에 떨어지겠지. 그리고 능운비를 놓친 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테고.”
“……”
“괜찮겠소? 지금 저 상황을 보고도?”
일전이라도 벌일 듯 서늘한 창서의 눈빛에, 공양은의 눈 주위가 씰룩거렸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도리라는것이 있는 법인데…….
하지만 힐끗 쳐다본 검제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이 알던 만큼의 실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창서의 말대로 검제가 패배하면……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겠지만, 아주 만약…… 정말로 그리된다면?
“비켜 주겠소?”
“으음…….”
만약에서 기인한 두려움이 공양은의 고개를 떨어트렸다. 결국 그는 남궁가의 무인들을 뒤로 물리고 창서에게 길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길을 확보한 창서와 그 휘하의 무인들이 다가오자 신예랑이 윤안로의 몸을 힘주어 안았고, 김산이 검을 뽑아들었다.
“쯧, 다 늙은 몸으로……. 윤안로를 내놔라. 그리하면 남은 삶이 조금이나마 길어질 것이다.”
“닥쳐라!”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김산의 외침에 창서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고, 휘하의 무인들이 일제히 김산을 공격했다.
삼무보로 빠르게 피해 낸 김산이 자신을 공격한 무인 중 한 명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푹!
깊이 파고든 검이 몸을 꿰뚫었고, 김산은 곧바로 다음 상대를 찾으려 했다.
한데, 검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놈, 잡혔구나!”
“……!?”
복부를 꿰뚫린 무인이 검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네, 네놈!”
“설마하니 네놈들에 대해 파악도 하지 않았을까?”
“뭐?”
“일전의 싸움에서 보았다. 네놈의 장기는 빠른 경공으로 진퇴를 반복하며 검을 쓰는 것이었지?”
“이, 이런!”
자신의 육체로 검을 봉쇄해 버린 무인의 잔혹한 미소에 김산이 당황하며 검을 놓고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짧은 당황의 순간이 그의 운명을 결정하고 말았다.
푹! 푸푹!
그의 몸에 박힌 다섯 개의 검.
“산!”
비척거리며 물러나는 김산의 모습에 신예랑이 눈을 부릅뜨며 비명처럼 외쳤다.
“끄으…….”
하나 김산은 더 이상 서 있지도 못했다. 몇 걸음 물러나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듯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예……랑…….”
“산…….”
“미안……하……네.”
푹, 푸푹!
다섯 개의 검으로도 부족했는지, 쓰러진 김산의 몸에 검들이 박혔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검이 박혔다 빠질 때마다 들썩이는 김산의 몸.
그 흔들리는 시선의 끝은 여전히 신예랑을 향해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졌음에도 그의 눈에서는 피와 눈물이 뒤섞여 흘러내려 땅바닥을 적셨다.
평생을 함께해 온 벗.
언젠가 옳은 것이 옳다고 여겨지고, 그른 것은 반드시 처벌받는 세상이 올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음지를 자처했던 동료.
그의 죽음에 신예랑의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 놈 잡았군.”
김산의 시체를 밟고 선 창서가 붉은혀로 입술을 할으며 잔인하게 웃었다.
“사아안!”
북받친 신예랑이 성대가 찢어지는 듯한 괴성을 질렀다.
“이놈! 죽여 버리겠다!”
윤안로을 내려놓은 그녀가 비수를 움켜쥐고 창서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응?”
숨이 턱까지 차올랐음에도 남궁무위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몰아붙이던 능운비의 귓가에 확연히 들려온 목소리.
힐끗 돌린 눈에 보인 것은 창서의 손에 목이 잡혀 축 늘어진 신예랑의 모습이었다.
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검을 잡은 손에서 힘이 빠졌다.
깡!
이전보다 한층 가볍고 경쾌해진 소리.
능운비의 검격에서 힘이 빠져 버리자, 겨우 숨 돌릴 틈을 찾은 남궁무위가 작심하여 일장을 뻗었다.
쩌어어엉!
옆구리를 강타하는 둔탁한 충격에 능운비의 몸이 뒤로 쭉 밀려 나갔다.
쉬이익!
이어 향이의 비수가 날아들었으나, 반격의 기회를 잡은 남궁무위에게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까아앙!
비수를 쳐 냄과 동시에 휘둘러진 남궁무위의 검에 향이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칫!”
능운비와의 합격이 깨져 버린 이상, 더는 그림자에 숨어 공격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능운비의 상태도 좋지 못했다. 남궁무위의 일장을 맞은 충격이 상당할 터인데, 그의 시선은 윤안로와 그 일행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산…….”
이미 죽어 버린 사내의 이름.
우드득.
“예랑…….”
막 창서의 손에 목이 부러져 절명한 여인의 이름.
“……안돼.”
그리고 윤안로를 향해 다가가는 창서의 모습에, 능운비가 몸을 부들부들떨며 중얼거렸다.
“안돼!!”
이어 포효하듯 소리친 능운비가 삼무보를 펼쳐 날듯이 쏘아져 나갔다.
창서가 윤안로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빠르지 못했다. 남궁무위와의 싸움에서 너무 많은 힘을 쏟아 버린 탓이었다.
푸우욱!
창서가 윤안로의 가슴에 검을 꽂아넣는 광경이 능운비의 눈동자에 생생하게 담겼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며 도망치듯 물러 나는 모습까지도.
한발 늦어 버린 능운비는 창서를 뒤쫓지 못하고 윤안로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으으…….”
목이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능운비가 잘게 떨리는 손을 겨우 들어 윤안로의 몸을 잡았다.
아직 따뜻했다.
피를, 가슴에서 솟구치는 피를 멈춰야 했다.
살 수 있어. 아니 살아야 해!
능운비의 손이 바빠졌다. 사력을 다해 그의 가슴팍에 난 상처를 눌러 보지만,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는 핏물이 야속하기만 했다.
“능…… 공자…….”
“말하지 마십시오! 힘을 아끼십시오!”
“……미안하네. 나 때문에.”
“말하지 말라고!”
목놓아 소리쳤지만, 윤안로는 들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입을 벙긋거렸다.
그저 치열한 싸움 가운데 벌어진 누군가의 죽음이었으나, 모두가 얼굴을 찌푸린 채 지켜봤다.
남궁무위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전음으로 다그치자, 제갈민이 사죄의 답을 전해 왔다.
그런데 상황을 논하다니? 그 말인 즉, 자신이 질 것을 염려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리고 벌을 받겠다는 놈이 어찌 저리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고개는 숙였으나, 부채로 가린 입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무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이 그랬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나, 자칫 낭패를 당할 뻔했다. 담운천에게 패배한 뒤로 그리 절치부심 수련을 해 왔는데, 이제는 그 제자와 암살술이나 익힌 어린 년에게 이토록 많은 상처를 입지 않았던가.
어찌 보면 제갈민으로 인해 되레 자존심을 세운 셈이었다.
“크흠!”
헛기침을 뱉어 낸 남궁무위가 향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놈이 저 모양이니, 너부터 죽여야겠구나. 이제 보니 내 아들의 목을 바른 것은 네년의 비수렷다?”
검극이 자신을 향하는 모습에 향이가 코웃음을 치며 이죽거렸다.
“지랄하고 있네.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
“……뭐라?”
“너 같은 새끼가 대체 어떻게 검제라는 이름을 얻었지?”
향이의 독설에 남궁무위의 눈 주위가 씰룩거렸다.
“뒤질 뻔했는데, 아주 잘됐다 싶지?”
“닥치거라.”
“왜? 쪽팔린 건 아나 보지?”
“……”
“지금은 저따위 짓으로 무인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한 놈들부터 단죄해야 하는 거 아냐?”
“닥치라 했다!”
“그래, 너 같은 놈과 무슨 대화가 필요하겠어.”
“……”
“그런데 그거 알아? 난 아직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도 않았어. 그리고…… 나와 이렇게 길게 대화한 놈들은 대부분 죽었지.”
“이년이! 주둥이를 틀어막아 주마!”
수치심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남궁무위가 눈 끝을 치켜올리며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슈아아악!
분노가 가득 담긴 검의 궤적이 향이의 몸을 반으로 갈라 놓는 듯싶었다.
사아아…….
하나 흩어졌다. 마치 허상이었던 것처럼, 잘려 나간 그녀의 몸이 재가 흩날리듯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자리에 어둠이 서렸다.
-네놈은 어떨지 보마, 검제.
“……?”
향이의 목소리가 도무지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곳에서 울려 퍼졌고, 이내 사방에서 살기 어린 비수들이 쏟아져 내렸다.
향이가 가진 암살술의 극예, 암천우(暗天雨).
“이런 빌어먹을 년이!”
그제야 자신이 암살자의 살법에 갇혀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남궁무위가 눈에서 환한 정광을 토해내며 검을 양손으로 움켜 쥐었다.
“하아압!”
힘껏 뱉어 낸 기합성과 함께 남궁무위를 검제로 만들어 준 제왕검이 그 신위를 드러냈다.
콰아앙!
* * *
거대한 폭음과 함께 요란하게 부딪치는 향이와 남궁무위의 일전.
하나 능운비의 눈과 귀는 오직 죽어가는 윤안로를 향해 있었다.
아무리 손으로 상처를 틀어막아도 피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능 공자…… 고마웠소…….”
“……”
“더는…… 애쓰지 마시오…….”
작아지는 목소리에 능운비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월린, 월린입니다.”
“……?”
“제가 바로 월린입니다.”
“……!”
능운비의 작은 목소리에 윤안로의 눈빛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월린이라고? 정말로 월린이라고?”
“예.”
“아아…… 살아 있었던 게냐. 정말로 살아 있었단 말이냐.”
“예.”
윤안로가 생의 마지막 힘을 짜낸 듯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이젠……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능운비가 덩달아 떨리는 손을 뻗어 그의 두 손을 움켜쥐었다.
“단주님…….”
“아, 월린아. 살아 있었구나. 네가 살아 있었어.”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윤안로는 마치 환상이라도 보는 것처럼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그에 능운비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무려 삼십 년 전. 이제는 기억도 안날 과거로 돌아가 다시 만난 것만 같았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내 미안하였다. 네게는 정말로 미안하였어. 그리 보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단주님 잘못이 아닙니다. 제 선택이었습니다.”
“아니다. 너를 그리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미안하다. 내 너를 지켜 주지못했어.”
“단주님……”
그랬던가?
자신의 죽음이 그리 마음에 맺혔던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 우형(愚兄)이…… 미안……하…….”
그러나 윤안로는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끝맺지 못했다.
축 늘어지는 그의 두 손을, 능운비는 더욱 힘주어 움켜쥐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찌 다시 만났는데…….
아직 과거를 제대로 밝히며 술잔을 부딪치지도 못했는데 …….
“단주님, 단주님!”
거듭 불러 보지만, 윤안로는 더 이상 대답해 주지 않았다.
“형니임!”
차마 불러 보지 못했던 그 말을 지금에서야 했음에도, 윤안로는 답해 주지않았다.
능운비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어깨를 늘어뜨린 채, 식어 가는 윤안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대체 저자는 자네에게 어떤 의미인가?
종리강이 물었고.
-제 삶입니다.
자신이 답했다.
비록 낯간지러운 표현이었지만, 그것이 진심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삶이 무너졌다.
되살아난 이후 오직 그를 다시 만날 목적으로 살아왔는데…….
이젠 그마저도 사라져 목적 없이 방황하게 되었다.
공허했다.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잃어 버렸다.
이제 어찌한단 말인가?
자신은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 순간,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월린? 형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
능운비가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갈민.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김산을 죽여 짓밟고, 신예랑의 목을 꺾었으며, 윤안로의 목숨을 앗아간 그놈이 있었다.
“네놈…….”
핏발이 돋아 올라 터진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극에 달해 머릿속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능운비의 몸 안에퍼져 있던 마령신단이 검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지, 원래 누구였는지.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네놈…… 죽여 버리겠다.”
다만, 음산하기까지 한 목소리와 함께 창서에게 시선을 고정한 능운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