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5
“씨부랄……”
“모처럼 욕도 하시네요. 인내심 넘치는 도사 흉내는 이제 끝인가 보죠?”
“흥! 도사는 염병…… 이 마당에 내가 지금 도나 찾게 생겼어?”
“그러니까요. 이제야 제가 아는 그 공자님 같네요. 도사 놀이 하시는 동안은 어찌나 남 같던지. 진작에 그러셨으면 한 번이라도 덜 맞으셨을 거 아녜요.”
“쳇!”
왕천의 핀잔에 능운비가 마뜩잖은 표정을지었다.
이게 지금 사람 꼴인가?
흰 천으로 얼굴이며 몸이며 둘둘 말고 입과 눈만 빼꼼하게 내밀고 있다.
와중에 뭔 침은 이리도 많이 꽂아 뒀는지…….
“빌어먹을 원로원주. 다 그 노인네 때문이야. 두고 봐, 내가 반드시 복수해줄 테니까.”
이를 바득바득 갈아 대는 능운비의 모습에 왕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저리 욕을 하시는 건지…….
그나마 교주님을 욕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랬다간 능운비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자들이 당장에 들고 일어나 문제 삼을 것이 뻔하니까.
“교주님께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뭐가! 뭐가 어쩔 수 없어! 사랑하고 아껴 마지않는 제자라면서! 그 제자를 요 모양 요 꼴로 만든 게 어쩔 수 없이 할 만한 행동이냐!?”
“그럼요. 당연하죠. 아끼고 사랑하시니 부득불 손을 쓰신 겁니다.”
“뭐야? 명색이 호위란 놈이 지금 누굴 편드는 거야?”
“응?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공자님과 교주님이 어디 비교나 됩니까?”
“……”
하긴, 비교 대상은 될 수 없지. 아무리 자신의 호위라고 해도, 교주의 권위에 우선할 순 없으니까.
일인 독재가 당연한 세상에서 제자가 다 무슨 소용인가?
마교인이 충성하는 대상은 첫째도 교주, 둘째도 교주다.
당연히 왕천에게 있어서도 자신은 그다음이고.
게다가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교주가 제게 붙여 준 파견직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빈말로라도 편은 들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가만히 보면 이놈도 매정한 구석이있다.
“하아, 내 편이 없네. 내 편이 없어. 외롭다, 외로워.”
“공자님도 참……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나마 교주님씩이나 되시니까 그 정도로 무마하신 겁니다.”
“뭐? 뭘 무마해? 그럼 차라리 자르면 그만이지! 누가 제자 따위를 하고 싶다고……”
“그만하세요. 괜히 또 불려 가서 혼쭐나고 싶으세요?”
“……끄응!”
그건 또 싫었는지 능운비가 입을 꾹 다물었다.
빌어먹을 교주.
무슨 동물 농장 주인도 아니고, 낮말이며 밤말이며 꼰질러 대는 쥐 새끼랑 새 새끼를 뭘 그리 많이 키우고 있는지.
“하여간 너무했어. 때려도 정도껏 때리셨어야지. 마지막엔 진짜 골로 가는 줄 알았다고.”
“그래도 제법이시던데요?”
“뭐가?”
“삼 격까진 잘 막으셨잖아요.”
“……”
그게 칭찬이냐?
왕천의 말에 능운비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씩씩거렸다.
뭐, 그래도 세 번까지 버틴 건 사실이니까.
그 때문에 원로원주가 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가기도 했고.
게다가 말이 삼 격이지, 상대는 무려 교주 아닌가?
첫 번째는 엉겁결에 정면으로 부딪쳐 맞섰고, 두 번째는 뒷머리가 쭈뼛 설 만한 간격을 두고 피했으며, 세 번째는 땅바닥을 열심히 굴러야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다음부터는…….
윽, 켁, 꽥!
정말 복날 개 맞듯 흠씬 두들겨 맞았다.
어찜 그리 안 때린 데를 골라 가며 때리시는지, 미리 표시해 놨어도 그렇겐 못할것 같았다.
“대호법께서도 눈을 크게 뜨고 놀라시더라니까요?”
“놀라긴……”
“아니에요. 지금 교내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응?”
“교주님께서 전력을 다한 공격을, 삼공자님께서 세 번이나 무력화하는 신기를 보였다구요.”
“으응?”
“원로원주께서 괜히 한마디도 못 하고 물러 나셨겠어요?”
“……”
“생각해 보세요. 원로원주가 교주님을 찾아갔을 때는 반드시 결착을 보고자 했을 거란 말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꼬투리를 잡아서 내쫓으려 했겠죠.”
“그야 그렇겠지. 그 정도 각오가 아니면 교주님께 독대를 청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능운비가 원로원주의 비열한 성정을 떠올리며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 덕에 공자님 명성이 껑충 뛰었단 말입니다.”
“명성?”
“암요! 그분이 맘먹고 행한 공격을 어느 누가 피할 수 있겠습니까? 도련님께선 그런 분의 공격을! 무려 세 번씩이나! 피하셨다구요.”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뭘 또라뇨? 누워 계셔서 모르시는 거예요. 지금 교내에 소문이 소문이 아주 파다합니다.”
“벌써 소문이 났어?”
“당연하죠! 교주님께서 딱히 함구하라 명하신 것도 아닌데요.”
“거참……”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더니, 하루 조금 더 지난 일이 벌써 교내에 파다하단다.
“어쨌든 덕분에 여론이 좋아졌습니다. 다른 제자님들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만하면 엄청나죠. 죽다 살아난 도련님이 교주님의 공격을 삼 격씩이나 버텼으니까요. 그 때문에 지금 도련님께서 교주님의 뒤를 잇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칭찬, 아니 거의 칭송이 자자하다니까요?”
“그, 그래?”
신이 잔뜩 난 듯한 왕천이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짓자, 능운비도 싫지 않은 듯 귀를 쫑긋거 린다.
세상에 칭찬 듣고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일단은 기분이 좋았다. 다만,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경쟁자들의 견제가 심해질거란 소리였고, 그만큼 자신이 가고자하는 길에 방해가 될 테니까.
“그래도 좀 너무하셨어. 삼 격을 피한 것만으로도 충분했잖아.”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능운비가 볼멘소리를 하자 왕천이 당치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에 교주님이 그러셨으면 원로원주가 그냥 안 물러났죠.”
“응?”
“교주님 면전에서 제자 안 하겠다고 당차게 선언까지 하셨잖아요.”
“아, 자네도 들었어?”
“뭐 얼마나 떨어져 있었다구요?”
“그건…… 그렇지.”
“아마 입증과 더불어 단죄도 하신겁니다. 직접 혼풀을 내는 걸 보여 주셨으니, 원로원주도 더는 말을 못 한거죠.”
“그것도 그렇네.”
능운비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맞는 말이다. 교주가 직접 벌을 내린 사항에 대해 다시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불충이니까.
그랬다간 차후에 입장이 난처해질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원로원주가 두말없이 발을 물린 것이다.
“그래도, 왜 굳이 지금이야? 맞은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젠장, 이틀 연달아 맞았더니 몸이 아주……”
“어? 모르고 계셨어요?”
“뭘?”
“하아, 하여간 주변 일에 관심이라곤 없으시다니까?”
“……?”
“제가 전에 말씀을 드렸잖습니까?”
“뭘?”
왕천이 황당하다는 듯이 연신 한숨을 쉬자 능운비가 눈을 찡그렸다.
“하아, 제발 교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신경 좀 쓰세요.”
“그러니까 뭘 말하는 건데?”
능운비가 짜증을 내자 왕천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분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분들? 누구?”
“누구겠어요? 다른 제자분들이지.”
“응? 걔들이 왜 와? 아직 임무 시한이 남은 걸로 아는데?”
더욱 의아해진다.
교주의 제자는 총 다섯. 그중 사이좋게 위로 둘, 아래로 둘인 다른 제자들은 지금 본성을 떠나 있었다.
교주를 대신해 마교의 영역을 감찰하는 막중한 임무였지만, 겉으로만 그럴 분 실상은 세력 다지기였다.
원래는 능운비도 동북쪽 지역에 내정되어 있었으나 주화입마에 빠지는 바람에 제외되었다.
“임무 연한은 삼 년 아니었어? 아직 이 년 가까이 남았는데?”
“내 참, 이러니 혼나지.”
“……”
말끝마다 자신을 무시하는 왕천의 모습에 능운비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다가오는 초닷새!”
“……?”
“교주님의 탄신연!”
“아!”
“다들 그 때문에 잠시 돌아오는 거 아닙니까.”
“그렇구나.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주화입마에 빠지는 우환을 겪은 탓에 전년도에는 생략된 행사였던 터라 잊고 있었다.
“하니 원로원주가 나선 겁니다.”
“그렇네.”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원로원주는 모든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서 교주를 압박했을 것이다.
아무리 교주라도 그런 상황에서까지 계속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을 테니까.
젠장, 그냥 반응하지 말 걸 그랬나?
그랬으면 아무 문제 없이 내쳐질 수 있었을텐데…….
일이 더럽게 꼬였다.
무엇보다.
“귀찮게 됐네.”
“뭐가요?”
“그놈들이 돌아오니까.”
능운비가 사형제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얼굴을 찌푸리자 왕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찌 모를까?
그의 호위가 된 지 오 년. 내내 곁을 지켜 온 왕천은 지금껏 능운비가 겪은 일들을 누구보다 소상히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손대지 말아야 할 금서를 익히다 주화입마에 빠지기까지 했겠는가.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많은 위기를 거쳐 온 능운비였기에, 왕천은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걱정 마십시오. 이 왕천이 공자님 곁에 있지 않습니까? 제가 지킬 것입니다. 암습이든 뭐든 해 보라죠!”
“……”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걱정하지 말라며 호언장담하는 왕천의 모습을, 능운비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았다.
이 자식아, 그래서 더 걱정이야.
니가 옆에 있어서…….
날 이용해 입신양명하고자 하는 욕구로 목말라 있는 니가 하등 쓸데없는 짓을 할까봐…….
암습? 음모?
사실 그딴 건 걱정도 하지 않는다.
교주님의 탄신연이 다가오는 마당에 어떤 미친 제자 놈이 딴짓을 꾸며 분위기를 어지 럽히겠는가?
문제는 교묘한 시비다.
기억 속의 능운비에게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자신이 문제를 일으키도록 귀찮게 할 것이 틀림없다.
만약 사달이 벌어지면 상황이 더욱 좋지 않게 변한다. 그들은 자신을 무너뜨릴 생각일 테니 최소 뇌옥쯤은 각오해야할것이다.
과연 자신은 진짜 능운비처럼 그 많은 멸시와 수모를 참을 수 있을까?
지난 일 년 동안 참 좋았는데, 새삼 머릿속이 갑갑해졌다.
깊어져 가는 고민에 절로 표정이 굳어지던 그때, 의실의 총책임자인 칠장로 한의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삼공자, 몸은 좀어떠십니까?”
“아, 칠장로님.”
“허허, 무리해서 일어나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래도……”
“제 말대로 하세요. 치료 중에 굳이 예의를 차리실 필요 없으니까요.”
“예……”
몸을 일으켜 맞이하려던 능운비를 한의겸이 극구 만류했다.
마의(魔醫) 한의겸.
성격 좋은 옆집 아저씨처럼 후덕한 인상을 가진 그는 능운비가 왕천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친근히 여기는 인물이었다.
권력 싸움에 휘말려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중립을 지키며 의술에만 집중하는 그와는 약간의 전우애 같은 것이 있었다.
주화입마에 빠졌던 능운비를 되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보살펴 주었고, 때마다 찾아와 진맥하며 몸에 좋다는 것은 아낌없이 챙겨 주었으니까.
그 헌신적인 모습에서 진정한 의인(醫人)의 모습을 느꼈던 능운비는 그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마교에 이렇게 희생과 봉사 정신이 투철한 인물이 있다니.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회복하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연일 싸움박질하기 바쁜 마교도들이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전부 그의 공이다. 그와 칠장로부의 의원들이 어떻게든 고치고 되살려 놨으니까.
아마 지금도 바쁜 중에 짬을 내서 찾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삼공자, 제가 잠시 몸을 살펴도 되겠습니까?”
“번번이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허허, 별말씀을요. 교주님과 제자분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은 제 책무 중 하나이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능운비가 공손한 태도로 한의겸에게 몸을 내맡겼다.
“그나저나, 이번엔 제대로 한 건 하셨다면서요?”
한의겸이 능운비의 몸에 꽂힌 침을 뽑아내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아, 장로님께서도 들으신 모양입니다.”
“암요, 듣고말고요.”
“어쩌다보니……”
능운비가 머쏙한 듯 웃으며 부끄러워하자 한의겸도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교주님께서 전력을 다한 공격을 삼공자님께서 세 번이나 무력화하는 신기를 보였다면서요?”
“예? 아…… 그게……”
“그 때문에 삼공자님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더군요.”
“……예?”
“듣자 하니 교주님께서 맘 단단히 먹고 공격하셨다던데, 그걸 세 번이나 피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주화입마에 빠졌다가 회생하신지 일년만에 그 정도로 성장하시다니요.”
“……”
한의겸의 말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능운비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지? 이 기시감은?
분명 누군가에게 똑같은 말을 들은것 같은데…….
“어째 소문이 한결같은 모양입니다?”
“소문요?”
“예?”
“허허, 소문은 잘 모르겠지만 왕천이 그러던데요?”
“……왕천이요?”
“예.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신이 그 싸움을 직접 봤다면서 어찌나 자부심 넘치게 설명해 대던지, 저도 한참이나 들었지 뭡니까? 허허.”
“……”
“이참에 호위도 모집하신다면서요?”
“……제가요?”
“왕천이 그러던데요? 앞으로 교주위에 오르실지도 모른다고.”
“……”
왕천, 이 입신양명에 목마른 새끼.
소문의 출처가 너 였냐?
그 천 리를 간다는 발 없는 말이 너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