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4
서 있다.
하지만 그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오직 그만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무심히 바라보는 눈빛에서 전해지는 아찔한 압박감에 숨마저 참게 된다.
제천마제 담운천.
모든 하늘에 존재하는 마의 정점에서 있다는 그는 이름만큼이나 강렬한 존재감을 뿌리고 있었다.
꼿꼿이 든 머리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하고, 단단히 딛고 선 두 발은 대지를 짓눌러 밀어 내는 듯하다.
와중에 마기가 태생적으로 품은 살기가 회오리치듯 휘돌며 제마령지를 헤집는다.
그 안에 그저 가만히 선 그 자세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왔다.
절대의 이름 앞에 선 능운비는 일그러진 얼굴로나마 버티고 또 버렸다.
그러니까……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고!!
어제 덜 팬 게 그렇게 후회됨디까?
자다가 새벽녘에 막 생각나고 그랬어요? 예?
아니, 도포 좀 입을 수도 있지!
부적 좀 뿌릴 수도 있지 H
나 좋자고 그랬어?
그게 다 당신을 걱정해서 그런가 아니냐고!? 몸에 걸친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무섭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왕천이 그랬다고!
미친 짓도 한 번씩 쉬어 가야 하는거라고!
불과 어제 팼잖아!
그럼 오늘은 쉬어야지!
새삼 밀려온 억울함이 능운비의 눈빛에 어렸다.
지난 일 년, 아무 문제도 없지 않았던가?
어제를 제외하면 그간 이런저런 사고를 쳤음에도 교주는 묵묵히 지켜보기만했었다.
하여 이해심과 배려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라고 내심 착각하기도 했다. 간악하고, 교활하고, 잔인함의 대표주자로서 존재하는 사람일지 언정 제자에게는 따뜻한 이라 여겼다.
한데 왜 이제 와서…….
“운비야.”
“예?”
“언제까지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고 있을 참이냐?”
“……”
서늘히 가라앉은 무심한 눈길에 능운비가 침을 꿀꺽 삼켰다.
왜겠습니까?
거기 손에 막, 어?
누가 마교 아니시랄까 봐 시커먼 강기 같은 걸 막 휘감고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죽일 듯 노려보시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도사 흉내를 내느라 점잖은 척했지만, 일단 위기는 넘겨야지.
당장 뒈지게 생겼는데…….
“자, 잠깐만요! 교주, 아니 스승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
“비무든 대련이든! 일단 이유를 말씀해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다급히 손을 내벧으며 뒷걸음질 치는 능운비를 본 담운천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녀석, 어제까지만 해도 그리 자기 주장이 강하더니만 어째 지금은 똥 마려운 강아지보다 못한 꼴인고?”
“제자가 지금 똥이 문제겠습니까?”
등줄기를 타고 흐른 땀 때문인지 아랫도리가 축축하다.
뭔가를 지린 것 같기도 하고…….
완강하게 거부의 뜻을 드러내었기 때문인지 담운천이 사마휘문을 힐끗 쳐다보다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흠, 좋다. 그리 간곡히 원하니 설명은 해 주마.”
“……?”
그 말에 능운비가 다시 한번 침을 삼키며 눈치를 살폈다.
“시험이다.”
“……시험요?”
“그래.”
“무슨…… 시험요? 제가 무언가에 응시 원서를 낸 적이 없는데요?”
“당연히 없지.”
“그런데 왜 제 의사와 상관없이 시험을 치르시는 건데요?”
“의사? 그게 중요하겠느냐?”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입증이다.”
“이, 입쯩이요?”
이를 악문 능운비가 된소리로 반문하며 표정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래. 너는 나의 제자다.”
“……”
“하여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항시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되어야 한다. 의혹, 의문, 불신…… 모두의 머릿속에서 그러한 것들을 불식함으로써 존재 할수있다.”
담운천의 말에 능운비가 원로원주를 쳐다보았다.
그 주름 가득한 웃는 얼굴을 보니, 이제야 어찌 돌아가는 영문인지 알 것 같았다.
“허허허.”
“……”
아, 망할 노인네.
내가 아무리 어린 시절 삼강오륜을 무려 세 번이나 읽어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넘친다 해도 참을 수가 없다. 히죽이 웃는 얼굴에 살포시 주먹을 얹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원로원주 사마휘문.
다분히 정치적인 인간이다. 기억이 그리 말해 주고 있다.
다른 모든 곳이 그러하듯, 권력이 모인 곳에는 내부적인 분란이 끊어지지 않는 법.
마교도 마찬가지다.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모두가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교주에게는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으나, 그 이전의 과정은 권력의 각축장이다. 말하자면 후대 싸음인 것이다.
단일 세력으론 최강이라 불려 온 마교는 그 규모만큼이나 내부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교주 직속의 호법원, 여덟 곳의 장로부, 전대 고수로 구성된 원로원, 그리고 각지에 퍼져 마교의 영역권을 다스리는 수많은 가문까지.
그들에게 있어서 차기 대권은 향후의 명운이 걸린 문제였다.
해서 쉼 없이 싸운다. 본시 그러한 싸움은 내밀해야 마땅하나, 마교에선 통용되지 않는 얘기다.
아주 대놓고 싸운다. 남의 가문을 풍비박산 내고도 떳떳이 자랑하는 그런 놈들이다.
애초에 적자생존이며 강자존을 최고의 율법으로 치는 놈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교주의 제자들이다.
치열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그들은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올라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때론 독을 쓰기도 하고, 때론 암기도 사용한다.
각종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한 위기에서도 살아남아야만 비로소 교주에 오를 수 있는 강자라 여기니까.
능운비는 그러한 위치에 있었다.
교주가 외유 중에 거둔 세 번째 제자, 하필이면 마교가 아닌 곳이라 변변한 기반 하나 없는 그런 제자.
와중에 재능은 충만해서 권력을 뜯어 먹고 살아가는 아귀들의 따가운 견제를 받아 온, 그런 불쌍하디불쌍한 제자.
이른바 먹잇감이다.
처음 능운비의 기억을 얻게 되었을때 어찌나 불쌍하던지.
제자가 된 이후로 살아남기 위해 발악해 온 그에게, 친구라고는 오직 호위인 왕천뿐이었다.
그 어미인 소설옥수까지 그를 지지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여태껏 능운비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더 강해지려 노력하다 주화입마에 빠져 죽었고, 그 육신마저 자신에게 털려 버린 불쌍한놈이다.
손을 내밀어 도와줘도 모자랄 그 불쌍한 놈을, 저 망할 노괴가 세력을 모아 험담한 것이 분명하다.
내쳐야 한다고. 이미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나 다름없는 놈이니 회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와중에 도사 짓 같은 기행까지 벌이고 있으니, 이때다 싶어 경쟁자를 줄이고자 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지지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빌어먹을.
불쌍하고 불쌍한 인생이로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이상향을 위해 끊임없이 달렸던 전생도 그 모양이더니, 어째 후생도 이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후우…… 그렇군요.”
모든 것을 깨달은 능운비가 차분히 한숨을 내쉬었다.
무심해진 두 눈이 교주를 바라보다 이내 원로원주에게로 향했다.
“결국 제게 원하는 것은 제자로서의 입증이군요. 아니 그렇습니까?”
“옳다.”
담운천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였고, 원로원주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피어 났다.
온화하기만 한 그 미소가, 능운비의 눈엔 토악질이 나올 만큼 비열해 보였다.
망할 뒷방 노인정 대장 같으니.
일선에서 물러났으면 한가로이 화초나 키우며 시간을 때울 것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남의 인생에 초칠, 아니 똥칠을 한단 말인가?
지금의 시험은 당연히 그, 아니 그가 추종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교주는 그래서 자신을 부른 것이다.
그들에게 보여 주려고.
너희의 뜻이 그렇다면 내 보여 주겠노라고. 능운비가 내 제자로서의 자격이 있음을 직접 보라고.
시작부터 강기를 내보인 것도 바로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야 입을 닫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교주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요.”
마음을 굳건하게 다잡은 능운비가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땅을 디딘 발에 힘을 주고, 허리를 곧게 편다.
두 눈 똑똑히 보아라.
나 능운비!
다시 살기로 한 이상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해 주진 않을 것이다.
교주의 뜻, 원로원의 뜻, 나아가 마교의 뜻이 그러하다면!
능운비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말했다.
“그럼, 안 하겠습니다.”
“……”
“……”
당당하고도 당당한 그 말에 침묵이 흘렀다.
“뭘…… 아, 안 해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던 것일까?
사마휘문이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뭐긴 뭐야, 인마?
뒷방에 오래 머물더니 가는 귀라도 먹었어?
안한다고!
내가 설마 네놈들 아귀다툼에 들러리나 설줄 알았어?
그딴 건 조금도 관심 없다!
“제자요. 모두가 그리 바라시는 일인데 굳이 제가 고집을 피워서 뭐 한답니까?”
“……”
“깨끗이 포기하겠습니다.”
만족스럽다.
마교의 중심에서, 저 무시무시한 교주를 앞에 두고도 조금의 위축됨 없이 당당히 뜻을 밝혔다.
장하다, 척월린! 아니, 능운비!
“아시다시피 저는 이미 주화입마로 폐인이 된 몸입니다. 굳이 고집을 피워 괜한 분란으로 여러 사람 힘들게 할 필요는 없겠지요. 또한, 이 거대한 마교를 이끌어 나갈 자신도 없습니다.”
“……”
“그러니 다른 이들을 위해 포기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 후련하다는 듯 씩 웃은 능운비가 옷매무새를 정갈히하고 천천히 절을 올렸다.
“스승님. 이리될 줄은 몰랐지만, 제자 더는 뜻이 없습니다. 제 한계를 깨닫고 이제 초야에 묻혀 살아가고자 하니, 부디 너그러이 허락해 주십시오. 그동안 살펴 주신 높으신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능운비의 모습에 담운천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래, 충격이 클 테지.
하지만 이리해야만 했다.
물론 다소 성급한 감이 있었고 원치않던 자리기도 했으나, 쇠뿔도 단김에 빼는 법이라고 뭐든 생각났을 때 행해야 하는 것이다.
제자? 교주?
그딴 게 다 뭔 상관이란 말인가?
마공을 익히고자 하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마교를 떠나는 것 아니었던가?
“……운비야.”
고개 숙인 능운비의 머리 위로 잘게 떨리는 담운천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하긴, 기르던 개가 집을 나가도 가슴이 시린 법인데 아끼던 제자와의 이별에 마음이 오죽할까?
심지어 생각지도 못했던 말로 뒤통수를 맞았으니 충격이 클 만하다.
그래도 울진 마마세요. 마음 약해집니다.
뭐, 그래도 얼굴은 한번 보여 주자.
마지막이 아닌가.
“스승……니이 임?”
고개를 들던 능운비는 자신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담운천의 모습에 일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붉으락푸르락.
그 낯빛이 어찌도 형형색색인지.
그런데 급살 맞은 사람처럼 왜 그리 부들부들 떠세요?
와중에 저 손에 다시 맺힌 강기하며 온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검붉은 마기까지…….
어째…… 뭔가…….
“스, 스승님?”
“운비야.”
“……”
“제자를 하고 말고는 네가 아니라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
내디뎌 온다.
가벼이 밟은 발걸음에 담운천의 몸이 공간과 함께 밀려 들어왔다.
“허헉!”
튕기듯 일어나며 몸을 내뺀 것은 본능이었다.
아니, 무의식의 발로(發露)다. 자신도 모르게 방어기제가 튀어나왔고, 그간 감추어 왔던 마기가 쁨어졌다.
목을 꺾어 놓을 듯한 살기와 함께 뻗어 오는 손길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일단은 살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마치 낭떠러지 위에서 발을 헛디딘 이처럼 본능적으로 휘두른 주먹은, 절대 닿지 말아야 할 곳에 닿고 말았다.
콰아아앙!
마기가 서린 주먹이 뻗어 온 담운천의 손에 닿은 순간, 거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주르르륵.
“크윽.”
때린 건 자신이나 밀린 것도, 신음을 흘린 것도 자신이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길게 파인 땅바닥을 쳐다보던 능운비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자신이 있던 자리.
그곳엔 담운천이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동요 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큭, 크크큭!”
“……”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반응이었다.
담운천은 만마와 함께 웃는 듯 만족스럽게 웃음을 터트렸고, 사마휘문은 떫은 감이라도 씹은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 져있었다.
“운비야.”
“……”
왜요? 스승님?
왜 자꾸 부르시는데요?
“매우 인상적인 주먹이었다. 그간 너에 대한 불만을 완전히 불식시켰을 만큼.”
“……”
실수였어요. 갑자기 죽일 듯이 다가오시는 바람에…….
언짢으셨다면 사과드릴게요. 본심이 아니었다는 거 잘 아시죠? 그쵸?
“시험은 이제부터다.”
“……!”
마기가 구름처럼 몰려와 능운비를 덮쳤다.
그날, 제마령지에서는 땅이 터져 나가는 폭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원로원주는 화가 잔뜩 난 채 돌아갔다.
물론…….
“씨발, 진심으로 때렸어……”
능운비는 어쩐지 잔뜩 신이 난 듯한 담운천의 무지막지한 구타에 온몸이 넝마가 되어 들것에 실려 나갔다.
원래 첫 싸움은 또래와 하는 거 아니었냐? 사부작사부작 겨뤄 보면서 명성 쌓는 거 아니냐고!
왜 시작부터 끝판왕인데!!
이놈의 인생, 안 봐도 재수 없을 게 뻔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