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
일년 전.
주화입마에 빠졌다가 깨어난 능운비, 아니 그 몸에서 깨어난 척월린은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곳, 처음 보는 사람 간혹 이런 기사(奇事)를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나, 실재할 줄이야?
하지만 마교라니?
어째서? 왜!
아무리 한때 죽어 가던 자신의 적들이, ‘이런 마교도 같은 놈!’, ‘마교에나 어울릴 놈!’, ‘마교도보다 악독한 놈!’이라고 외치긴 했어도!
말이 씨가 되는 것도 적당히 선을 지켜 야지.
진짜로 마교인이 되어 버리면 어쩌자는 말이냐? 그 와중에 삼공자라니?
이런 빌어먹을…….
그냥 마교인도 아니고, 수괴의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처음엔 도망치 려고 했다.
한데 마교의 경비가 생각보다 삼엄했다.
주화입마를 겪은 직후의 몸이라 십리는커녕 거처의 담벼락도 못 넘고 잡혀 버렸다.
절망, 실의…….
전생에서 느껴 보지 못했던 별의별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어찌 되셨을까?
일순 짙은 그리움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과연 그분께선 자신의 대의를 이루어, 꿈꾸던 세상을 보고 계실까?
궁금했고, 보고싶었다.
소식을 알고자 했으나, 마교인이 되어 버린 자신의 안부가 혹여 누가 될까싶어 참았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야 할 이유.
마지막 순간, 그분께 전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그대로 죽었다면 묻혔을 일이나, 황당하게도 살았으니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살기로, 진짜 능운비가 되어 주기로.
새로운 몸, 새로운 무공을 가진 채 다시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목표는 첫째도 마교 탈출이요, 둘째도 마교 탈출이다.
목적지는 그분이 계신 곳.
살아 계신다면 반드시 만날 터다.
목표를 정한 능운비는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주화입마로 인해 처참하게 망가져버린 몸이었지만, 치료 과정에서 먹었다던 마령신단이 체내에서 녹지 못하고 응어리진 것마저 긍정적인 기연으로 느껴졌다.
그래, 기본부터 하나씩 천천히해서 몸을 추스르자마자 마당부터 쓸었다.
무릇 행자는 비질로써 마음을 깨끗이 갈고 닦는 법이요, 또한 새로운 곳에 익숙해질 때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마공도 익히기 시작했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달리 출발했으나 하나로 통하는 법이라 종내에 한 방향에 놓이는 법이니…….
그렇게 다시 검을 잡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검이 제일 익숙하니까.
비록 자신의 것이 아닌 마교의 그것이나, 기본은 같았다.
찌르고, 긋고, 자르는 간단한 동작들.
그 결과, 거처에서 일하던 시종들과 시비들이 전부 직업을 잃었고, 자신을 가르치던 원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한직 중의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염병할 마교.
왕천에게 그 내용을 듣고는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 뒤에 곧바로 거처를 떠났다.
인적 이 드문 곳에 움막을 짓고, 오직 왕천과 둘만 지냈다.
때맞춰 교주가 자신의 거처에 그 누구도 접근치 못하도록 도와주니 금상첨화였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서생이 산중절간에서 세상과 연을 끊고 공부에만 전념하듯 그리 지냈다.
몸의 본 주인인 능운비의 기억을 더듬어 마공을 익혀 나가며 차츰차츰 회복했다.
하나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일도 함께 찾아오는 법.
좌선 중에 채 녹여 내지 못한 마령신단의 공능이 마공심법에 발광하듯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게 문제다.
망할 마교의 영단 같으니.
뭐 자랑할 거리라고 눈빛을 이리 흉폭하게 만들어? 십 리 밖에서도 눈깔만 봐도 마교인인 줄 알겠다. 솟구치는 살심은 또 어떻고?
아차 싶었다.
마공을 익히는 것은 좋으나, 제어되지 않는 마기를 대체 어찌한단 말인가? 이 꼬라지를 하고 어찌 ‘그분’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단 말인가?
이대로 중원으로 나갔다가는 도가와 불가의 인물들이 인사 대신 칼부터 들이밀게 생겼다.
해서 익힌 것이었다.
마교의 서가에서 어렵게 발견한 한권의 서책 맨 뒷장에 적힌 도가의 주문을.
그래, 본디 선기는 마기와 상극이라, 억누르는 힘을 가졌다 하지 않던가?
또한 불가의 반야심경은 암송하는 것만으로 번뇌를 이기는 힘을 가졌다 하지 않던가?
선도의 비기를 익힘은 상극하니 불가할 것이나 주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속는 셈 치고 해 봤다.
“나의 뇌공이시여……”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들끓던 마기가 몸에 스미듯 가라앉았다.
기혈을 살피지 않는다면 마공을 익힌 것조차 알아채지 못할 것 같았다.
하도 기뻐서 내친김에 도포도 입고 도가와 관련 있는 법구들도 구해 놓자 생각했다.
도망칠 때도 그편이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마교에 그딴 게 있을리가?
그래서 곤륜파와 맞닿은 청해성 근처 암시장까지 다녀왔던 것이다.
몇 가지 소소한 사달은 측은지심에 휘둘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한 덕분에 생겼던 것이고…….
어쨌든, 그때부터 도사 흉내(?)를 내 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왕천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마기는 자부심이요, 자긍심이 었으니까.
피치 못한 이유로 전부 빼앗겼으나 주문은 머릿속에 확실히 외워 두었다.
부적도 이미 수십 번 써 봐서 눈 감고도 가능했고…….
* * *
“공자님! 공자님!”
“으응?”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아! 아닐세. 그냥 잠시……”
“……?”
사색에 빠져 있다가 왕천의 반복된 부름에 번쩍 정신이 든 능운비가 멋쩍게 웃었다.
“본성에서 전령이 와 있습니다.”
“응? 전령이?”
왕천의 말에 능운비가 흠칫 놀라며 입고 있던 찢어진 도포 자락을 움켜쥐었다.
다 뺏어가 놓고…….
이것만은 안 된다!
“뭐 하세요?”
“으응?”
“왜 옷을……”
“아, 하하. 그냥.”
어색하게 웃는 능운비의 모습에 왕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찾으신데요.”
“누가?”
“교주님요.”
“왜? 어제 뵙고 왔는데?”
“그야……저는 모르죠.”
“음, 그리 패시고도 아직 화가 안 풀리신 건가?”
“저라면 그랬을지도……. 여하튼 서둘러 가시죠. 그놈의 도포는 꼭 벗으시구요.”
“음……”
왕천의 지적에 능운비가 잠시 고민하다가 두말없이 옷을 벗었다.
괜한 고집은 사망의 지름길이다.
무엇보다 어제 맞아서 생긴 멍이 아직 선명한데…….
“왕천.”
“예?”
“부디 소중하게 보관해 주게.”
“……”
“목숨 걸고 지켜 주게. 혹여 외압이 있더라도 절대 빼앗겨서는 아니 될 것이야. 내 말 알겠는가?”
도포를 곱게 개어 내어주며 진지하게 당부하는 능운비의 모습에 왕천이 황당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삼공자님.”
“왜?
“저 호욉니다.”
“같이 가야 한다구요.”
“아!”
왕천의 말에 능운비가 탄성을 질렀다.
그럼 어디에 숨겨 놔야 하지?
마지막 남은 것이라 이것만은 지키고 싶은데……. 없다고 주문을 외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허전할 것 같은데……. 뺏기면 도망갈 때 뭘 입지?
……새 옷을 위해 돈이라도 좀 흠쳐야 하나?
* * *
교주가 능운비를 부른 곳은 자신의 거처가 아닌 제마령지(諸魔靈池)였다.
교주의 거처가 있는 탑의 뒤편, 공터 중앙에 위치한 작은 연못.
담운천이 참선을 하다 마공의 정수를 깨달은 뒤, 그의 개인 수련장이 된 곳이다.
담벼락 하나 없이 사방이 뚫려 있는 곳이나, 그 어떤 이도 교주의 허락 없이는 그 안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볼품없이 선 나무와 석등, 잠시 쉬어갈수 있는 정자.
그 모든 곳에 날카로운 칼이 스미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담운천을 지키는 그림자이자 그 별호를 따서 이름 지어진 제천마령대의 무인들이.
전령의 안내를 따라 그 입구에 도착한 능운비가 멀리 정자에 앉아 있는 이들을 쳐다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가 아니다.
교주의 옆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것은…… 원로원주?
저 노인네가, 긴 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로원주와 함께 만나는 자리라면 응당 대전이나 교주의 거처여야 했다.
한데 어째서 수련장이지?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리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난 일 년 동안 없었던 일이 아닌가?
또한 원로원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가르침을 주기 위함은 아닌 듯한데.
“삼공자, 어서 오시오.”
“아, 대호법. 어제 뵙고 또 뵙습니다.”
능운비의 등장에 입구에 서 있던 애꾸의 사내가 고개를 까딱거려 왔다.
교주의 제자를 향한 인사로는 무척이나 불손하다고 여겨질 일이었으나,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는다.
교주를 제외한 마교의 모든 이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사내.
제천마령 대주 양선.
교주를 제외하면 누구도 그 실력을 알지 못할 만큼 비밀스러운 무인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호법이라는 것은 주인이 위험해졌을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데, 지키는 인간이 좀 강해야지?
아마 일생을 살면서 위기라고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자주 처맞아 본 왕천의 말에 따르면 대호법은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하고 무자비하다고…….
“스승님께서 어찌 하루가 멀다고 저를 다시 찾으시는 겁니까? 원로원주님까지 계신 것을 보면…… 혹시 도사 짓을 한 것 때문에?”
“삼공자, 제가 어찌 교주님의 높은 뜻을 알겠습니까? 이유는 직접 가서 들으시지요.”
“……아, 예에. 뭐, 그러시겠네요.”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딱딱한 말투에 능운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투덜거리곤 정자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젠장, 뭐가 그리 보고싶다고 이틀 연이어 부른단 말인가?
할 말 이 있으면 한 번에 하지 않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첫발을 내딛는 순간 양선이 그 앞길을 막아섰다.
“왜요?”
“검.”
“아! 이런, 죄송합니다. 습관이 돼서……”
짧은 지적에 능운비가 허리에 찬 검을 풀어 왕천에게 내밀었다.
해검(解劍)의 율이 어디 무당의 해검지에만 있겠는가?
모든 문파가 수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무구를 차는 것을 금한다.
마교도 마찬가지다. 호법을 제외한 누구도 교주의 앞에서 무구를 패용할수없었다.
그것이 교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 사실 검을 들고 간다고 저 무시무시한 교주를 죽일 수 있는 사람도 없겠지만.
“하나 더.”
검을 풀어 왕천에게 넘겼음에도 양선은 비켜 주지 않았다.
“그 옷도 벗어 두시지요?”
“……”
양선이 가슴팍을 빤히 바라보며 하는 말에 능운비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염병할, 그걸 봤냐?
둘 데가 없어서 속에 받쳐 입고 왔구만…….
“스승님의 안위를 위협할 만한 물건이 아닌데요?”
능운비가 옷깃을 여미며 입을 삐죽거리자 양선이 무심히 고개를 저었다.
“혈압이 있으십니다. 어제 삼공자님 덕에 더욱 심해지셨고요. 충분히 건강상에 위협이 될 수 있지요.”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뭐 그리 진지하게 하는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양선의 모습에 능운비가 연신 구시렁거리며 겉옷 안의 도포를 벗어 냈다.
“제겐소중한 물건입니다.”
“……”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 주시길.”
“책임지고 보관토록 하지요.”
“시간 되시면 찢어진 부분도 좀 기워 주세요. 호법부 사람들과 실랑이하다가 그리된 거라서요. 아끼는 물건인데.”
안타까움 가득한 표정으로 곱게 갠 도포를 내어 주는 능운비의 모습이 어이 없어서였을까?
무심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양선이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중얼 거렸다.
“……그러죠.”
왕천과 양선을 뒤로하고 홀로 정자를 향해 다가선 능운비가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
“셋째 운비가 교주님과 원로원주를 뵙습니다.”
“오! 어서 오시오, 삼공자.”
교주는 힐끗 쳐다보기만 했으나, 원로원주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손주가 찾아오기라도 한 양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해주었다.
원로원주 사마휘문.
기억이 있기는 해도 실상은 처음 만나는 사이다.
그리고 저럴 노인네가 아닌데……?
몸에 남아 있는 감정이 본능적으로 그를 거부하며 말해 온다.
저 친절한 주름 곳곳에 멸시와 조롱이 가득했었다고.
봐라, 보는 순간 팔뚝에 소름이 돋지 않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담운천의 표정이 좋지 않다. 때리면서도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던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몹시도 언짢은, 그리고 당장에 무슨 사달이라도 낼 듯한…….
이거 좀…… 아니 꽤 심하게 위험한데?
탁.
입을 축이던 찻잔을 내려놓은 담운천이 정자에서 내려왔다.
“이런, 교주님. 바로 시작하시려구요?”
“……?”
시작해? 뭘?
사마휘문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 리던 능운비가 담운천을 쳐다보았다.
“기다릴 것이 무어요? 운비는 자세를 잡거라.”
“……”
자세? 뭔 자세?
의문이 더욱 강해졌을 때.
“지금부터, 원로원주의 입회 아래 너를 시험할 것이다.”
“……!”
그때까지도 능운비는 교주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뭘 하려는지는 깨달을 수 있었다.
거친 마기가 사위를 에워싸듯 퍼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아, 아니 잠깐만요?
너무 흑 들어오시는 거 아닙니까?
딱 봐도 패시려는 모양샌데, 이유나 압시다. 이유나!
설마 속에 도포 입고 온 걸 본 겁니까? 아니 면 양선 씨가 전음으로 꼰질렸어요?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것이다. 봐주지 않을 터이니.”
“……”
흉폭한 절대자의 살기가 질문 따위는 허용치 않겠다는 듯이 몰아쳐 왔다.
……아, 씨발.
다신 도포를 입나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