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65
#1164.
고조되다 (4)
“전원?”
“예. 전원입니다.”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대한민국의 모든 무인이 총회의 소속인 것은 아니다. 강진호가 이중걸 일파를 몰아내면서 총회와 영남회의 중진들은 적당히 총회를 떠났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은 이들이 더 많았다. 적어도 40대 이하의 무인들은 모두가 총회의 소속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그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수가 일만까지는 안 되지만, 오천은 깔끔하게 넘는다. 그런데 그 많은 이들을 모두 동원한다?
“장민에게 한 말과 같은 말을 하고 싶은데.”
“알고 있습니다. 다만…….”
모두가 무학을 익힌다고 해서 모두가 강할 수는 없다. 재능과 노력의 차이, 그리고 무학을 익혀온 시기의 차이가 존재하니까. 총회에서 가장 강한 일반 무인은 방진훈과도 대등할 정도지만, 가장 약한 이는 평범한 마교도에 비해서도 딱히 더 강하지 않다.
전장에 투입할 정도의 능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회주님.”
방진훈이 진중하게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총회는 이제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그 변화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
“회주님은 총회의 많은 부분을 바꾸셨습니다. 모두가 회주님만 따라가면 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건 굉장한 일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독이기도 합니다.”
“독?”
“예. 예전에는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나서려 하던 이들이 이제는 자연히 회주님의 명을 기다립니다.”
“음…….”
“여기가 군대라면 그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는 군대가 아닙니다. 총회를 지켜가야 하는 것은 총회에 소속된 모두의 의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진훈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저들 스스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합니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것을 누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니까요.”
싸늘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누구도 방진훈을 매정하다 말하지 못했다.
총회의 회원들을 가장 아끼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방진훈이다. 그들이 피를 흘리면 가장 아파할 사람도 방진훈이고, 그들의 죽음을 가장 안타까워할 이도 방진훈이다.
애초에 외부에서 들어온 그들이 가지는 소속감은 방진훈이 총회에 가지는 소속감과는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방진훈이 지금 피를 흘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감히 그를 매정하다 비난하겠는가.
“희생이 적지 않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다만…….”
방진훈이 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
“주어진 것을 받아먹기만 하는 놈들로 이루어진 총회라면 어차피 오래 못 갑니다.”
위긴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화초는 신경 써서 키워야 하는 법이지. 강하게 키운다고 밖에 내놓으면 대부분은 죽어버리는 게 아닌가?”
“언젠가는 하우스를 걷어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중에 죽으나 지금 죽으나 별다를 게 없다면, 지금 하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놈들에게 언제까지 온실을 제공해 줄 수는 없잖습니까. 이번 일뿐이라면 저도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려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일도 못 버티는 놈들은 홍왕계와 싸울 수 없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장민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마존이시여, 저도 같은…….”
“그쪽은 경우가 좀 다르지.”
“…….”
“그래도 밖에 나가 싸워볼 수 있는 화초와 바람만 맞으면 죽어 나가는 화초는 구분해야겠지. 교는 아직 그 정도 능력은 없어. 바람을 맞고 싶다면 나중에 따로 방법을 마련하지.”
장민이 부복했다.
“마존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그런 장민을 보며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대단하다니까.’
아마 장민도 내심은 다를 것이다. 총회가 전원이 동원된다면, 장민 역시 마교도들을 모두 동원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하지만 강진호의 명이 떨어지는 순간, 더 이상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강진호의 명에 전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장민의 반응 덕분에 강진호의 권위가 확고하게 잡히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존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존중이란 드러나야 그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
강진호가 모두를 한 번 둘러봤다.
“알다시피…….”
강진호의 목소리가 가라앉있다.
금방이라도 쇳소리가 울릴 것 같은 저음을 듣는 순간, 모두의 몸에 팽팽한 긴장이 밀려들었다.
“적은 강하다.”
불과 반년 전만 하더라도 총회는 감히 일본의 무인계에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년 사이에 총회는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은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적이 쌓아온 전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인 눈으로 적의 능력을 정확하게 재단하고, 그에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전쟁은 단순히 싸우고 이기는 전쟁이 아니다.”
모두가 강진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이 전쟁의 승패로 운명이 갈리는 것은 한국과 일본만이 아니다.
단순히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과 싸우면서 전력을 크게 소모한다면, 이긴다고 해도 이긴 전쟁이 아니게 된다. 호시탐탐 한국을 노리고 있는 홍왕계가 기회를 잡고 날뛸 테니까.
원탁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그들이 총회에 굴복했다지만, 일본에 패하거나 이기더라도 피해를 크게 입을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위긴스는 마스터를 신뢰한다. 하지만 그건 마스터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지, 그를 신용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애초에 총회와 원탁은 신용으로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니잖은가.
“결국 무인은 힘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존재다. 승리하는 자는 모든 것을 가질 것이고, 패하는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마교가 부흥할 수 있던 이유는 패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마교가 몰락한 이유는 패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강진호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가 불패의 마인으로 세상을 지배할 당시, 마교의 힘은 정말 중원 전체를 상대할 만큼 강했던가?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어렵지 않게 중원을 지배했다. 마교와 강진호가 패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저들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진호가 쓰러지자 그런 인식은 사라졌다. 마교는 막대한 전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서서히 몰락하여 결국 비참하게 연명하는 처지까지 떨어졌다.
힘이란 그런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저놈들이 한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하는 것.”
이사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차선은 이 땅을 밟은 이들이 단 하나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
살짝 소름이 돋는다.
이곳에 오는 인원이 몇인지 확정된 것은 없지만, 적어도 천 단위를 넘는다는 건 확실하다. 지금 강진호는 그 많은 이들을 단 하나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다른 이들의 입에서 나왔다면 그저 그만큼의 단호한 결의를 내보이는 비유가 되겠지만, 강진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무게가 다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강진호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알려줘야지.”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주제도 모르고 날뛴 대가가 뭔지 말이야.”
이사들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한국과 일본은 지난 침략 이후로 양립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어느 한쪽이 완전히 붕괴할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수밖에 없다.
일본도 그걸 알기에 무리한 침략을 강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남은 것은 승리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위긴스.”
“예!”
“정리해.”
“예!”
위긴스가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회원과 교도들에게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십시오. 지금부터 전시 체제로 운영하겠습니다. 외부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총회로 모아주십시오. 그리고 전쟁을 대비해서 편제를 정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쪽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정계 및 군대와 연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군대가 나서도 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저번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도움은 될 수 있겠죠.”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긴다니까.’
빤히 한국 땅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는 움직일 수 없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는가.
‘언젠가는 파탄이 나겠지.’
세상 안에 또 다른 세상을 숨긴 채 서로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이 상황도 언젠가는 끝을 고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방진훈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나중 일이다. 지금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저들도 우리 쪽에 정보가 흘러 들어올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을 겁니다. 한 번 움직인 이상,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한국으로 밀고 들어오려 하겠지요. 지금부터는 잠잘 시간도 없습니다.”
바토르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위긴스를 노려보았다.
“놈들이 어디로 들어오는지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혹여라도 놈들이 흩어진다면 전쟁이 장기화된다. 소모값이 클수록 좋아할 놈이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차이커창의 이름을 떠올린 위긴스가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놈이 뭘 꾸미고 있는지야 빤하지만, 절대 그놈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위긴스 이사가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지는 것 아닙니까? 그 프랑스 놈들도 컨트롤해 줘야 하고, 정보도 확인하면서 자기 부대도 정비해야 하잖습니까. 그런데 외부 접촉도? 시간 내에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방진훈의 말에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실무를 맡아본 사람이라고 이런 부분을 걱정해 준다.
“그 점은 걱정할 것 없네. 외부 접촉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할 테니까.”
“다른?”
그때였다.
쾅!
문이 격하게 열리며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은 이현수가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이, 일본 놈들이 쳐들어왔다면서요!”
“…….”
“…….”
이사들이 이현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왔네, 할 사람.”
“자질구레한 겉 맡기면 되겠지.”
“있을 때는 귀찮은데, 없으면 섭섭하다니까.”
이현수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사들을 돌아보았다. 강진호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뭐가 빠졌다 싶더니, 이현수가 없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위긴스.”
“예, 로드.”
“원탁에서 일본의 정보를 받고 있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상층부 명단을 작성해 와.”
“……예?”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스름이 내리고 있는 하늘을 보며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다면 좋겠지만, 이럴 때 책임을 져야 하는 놈들은 움직이지 않는 법이지. 하지만 그런다고 책임을 피해 갈 수는 없다는 걸 알려줘야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강진호는 이 전쟁을 단순히 전쟁으로 끝낼 생각이 없다. 전쟁이 끝나는 순간, 그는 한국을 침공한다는 선택을 한 이들을 단죄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위긴스도 강진호를 막을 생각이 없었다.
‘전면전이란 그런 거지.’
철저하게 파괴한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찰칵.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물고는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피는 피로 갚는 법이지.”
이제 저들도 알게 될 것이다.
총회를…….
강진호를 건드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똑똑히 알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