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76
#1175.
시작되다 (5)
‘속 터지겠네.’
김원혁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그리고 그의 다리는 한시도 쉬지 못하고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슬쩍 밖을 향했다.
아직 새벽.
세상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에 그를 태운 버스는 신호와 과속 카메라를 무시하며 도로를 질주하는 중이다. 그가 탄 버스 뒤쪽으로도 수십 대의 버스가 따라붙고 있다.
동해에 있던 이들이 전속력으로 서해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흔들리는 차만큼이나 김원혁의 심장도 흔들리고 있었다.
김원혁이 한숨을 쉬었다.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다.
총회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무인으로서 저 쪽발이 새끼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 싶다는 게 조금 전까지 김원혁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배치되어 감시를 하고 있는 중에 그도 몰랐던 두려움이 자꾸만 머리를 들이밀었다.
죽음.
전쟁은 반드시 죽음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겪는 이가 김원혁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그의 시선이 슬쩍 옆자리로 향했다.
그의 옆자리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새끼…….’
한숨이 나온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그의 옆자리에는 성주찬이 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성주찬은 결국 총회를 그만뒀다. 무인의 길을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기로 했다.
그 선택이 옳은지 아닌지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원혁에게는 그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었다.
확실한 건 이 전투에서 살아남아 꾸준히 무인의 길을 걸을 수 있다면, 김원혁의 선택은 성주찬의 선택보다 우월해질 것이다.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는 총회의 성장세를 감안한다면, 분명 지금보다 높은 삶의 질이 보장될 테니까. 무인의 길을 걷는다는 게 쉬운 일일 리는 없지만, 적어도 그 보상은 확실하게 챙겨주는 게 강진호의 스타일이니까.
하지만 김원혁이 이번 전투에서 죽는다면?
그렇다면 무인의 길을 버리고 살아남은 성주찬이 훨씬 더 좋은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자에게 돌아갈 영광은 없으니까.
김원혁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흔들리는 건 아니다.
설사 이 전투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김원혁은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무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은 그의 꿈이자 목표였으니까.
다만, 지금까지 그가 무인으로 살아오며 다져 온 각오가 실제로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적과 싸운다. 상대와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를 전쟁을 앞두고서야 새삼 깨달았다.
“후우.”
김원혁이 심호흡을 해 가슴을 진정시켰다.
‘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척하지 마.’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무인뿐만이 아니다. 군인도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운다. 세상에는 군인이란 직업을 가지고 전쟁에 투입된 이들도 많지 않은가.
그들도 하는 일을 김원혁이 못할 리가 없다.
“아, 빌어먹을. 왜 이렇게 느려!”
김원혁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저 뒷자리에 앉아 있는 공영길이 부대낀다는 듯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저 거대한 덩치가 한 번 뒤틀릴 때마다 버스가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좌우로 넓은 것은 원래 두 사람이 앉아야 하는 자리에 한 사람이 앉는 걸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앞뒤가 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제대로 다리를 뻗지 못하니 버스가 불편할 수밖에.
“야! 멀었어?”
“지금 최속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이상 어떻게 빨리 달립니까? 더 빨리 가다 보면 사고 납니다.”
총회의 버스를 운전하는 이들도 다들 무인이다.
워낙 은밀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보니, 기사도 평범한 이들을 쓸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무인들은 반사 신경에서 평범한 이들보다 뛰어나다. 그렇기에 이리 고속으로 달리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더 빨리 갈 수 있잖아, 인마. 버스 뒤집힌다고 여기 있는 애들이 죽겠냐?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할 거 아냐!”
“사고 나면 우리는 안 죽어도 상대 차량에 탄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그리고 사고 내서 사람 죽이면 방 이사님이 절 찢어 죽일 겁니다.”
“전시 아냐, 전시!”
“우리가 전시지, 저 사람들이 전십니까?”
“끄응.”
공영길이 버럭 화를 내다가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우겨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야, 운전하는 애 괴롭히지 마.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더 늦게 도착한다고!”
“……아, 알았어, 새끼들아!”
“이 새끼, 하여튼 뇌까지 근육으로 차서는.”
주변의 비난에 공영길이 얼굴에 한껏 짜증을 담았다.
그 모습을 보며 김원혁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나와는 다르구나.’
김원혁은 지금 전장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니라고 부정해 보고 싶지만, 조금 전부터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떨리는 손을 감출 도리가 없다.
하지만 공영길은 지금 오히려 전장으로 빨리 가지 못해서 안달을 내고 있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걸까?
김원혁이 살짝 눈을 감았다.
대답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감의 차이겠지.’
쌓아 올린 것이 다르다.
김원혁도 나름 열심히 수련을 해왔지만, 그 수련이 바토르계로 분류되는 공영길의 수련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바토르계는 그 마염들과 비견될 만큼 하드한 수련을 하는 걸로 유명했으니까.
총회 수련장에서 바토르의 제자들이 하늘로 처 날려지는 모습은 이제 명물처럼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이제는 다들 익숙해져서 그 모습을 웃으면서 보지만, 거꾸로 말하면 그 광경이 명물이 될 만큼 하드한 수련과 벌을 버텨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신감이 있겠지.
애초에 자신감이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에서 나온다. 저들의 수련은 일본 무사들과의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김원혁이 떨리는 손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믿자.’
저들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열심히 수련을 해왔다. 이제는 노력만 있으면 올라갈 수 있는 판이 되어버린 총회에 그의 족적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오지 않았던가.
김원혁의 눈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때,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집결지 거의 다 왔습니다. 하차 준비해 주십시오.”
“오!”
공영길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리고 공영길의 주변인들도 당장 튀어나가겠다는 듯 앞 의자를 움켜잡았다.
끼이이이익!
버스가 고속으로 달리다가 그대로 풀 브레이크를 잡았다. 앞으로 뒤집어질 듯 버스가 쏠리다가 덜컹, 멈춰 섰다.
“하차!”
문이 열리자마자 타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앞쪽으로 달려든다. 신속한 하차였다.
김원혁은 눈을 감고 셋까지 센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들만큼의 의욕을 보일 수는 없어도, 제 몫을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부신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그를 맞이했다.
뒤따라온 버스들이 줄을 지어 주차하고 있었다.
“앞쪽으로. 이 새끼들아, 정렬해!”
공영길이 소리를 질렀다.
공영길의 공식적인 직위는 과장이다. 평시에야 다들 친구처럼 어울리고, 되레 과장이라고 욕을 하고 놀리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 직함이 힘을 발휘한다.
평소에 공영길의 말을 지나가는 개 짖는 소리처럼 여기던 바토르계도 두말없이 정렬했다.
“빨리빨리! 인마들아, 쪽발이 새끼들 처 죽이러 가야 할 거 아냐! 빨리 서!”
공영길이 소리를 칠 때, 한 사람이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역광을 받아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 실루엣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순식간에 알아챘을 것이다.
“바토르 님!”
공영길이 바토르 쪽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지금 하차 중입니다. 곧 모두 정렬…….”
그 순간이었다.
콱!
귀에 틀어박히는 소음과 함께 바토르가 공영길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끅.”
공영길이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바토르의 손을 움켜잡았다. 보통 사람이 보면 입을 떡 벌릴 덩치를 가진 공영길이지만, 바토르의 앞에서는 어른과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손이 바토르의 손가락을 움켜잡고 파들파들 떨렸다.
그 순간, 바토르가 공영길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털썩.
바닥에 떨어진 공영길이 격한 숨을 토해냈다.
“바, 바토르 님?”
공영길이 의문이 담긴 눈으로 바토르를 올려다보았다. 바토르가 싸늘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공영길을 내려다봤다.
“어딜 왔지?”
“……예?”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
공영길이 몇 번 입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전장입니다.”
“아는군.”
바토르가 고개를 들어 모두를 쭉 둘러봤다. 그새 유창해진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전장에서 제일 먼저 죽는 놈이 누군지 아나?”
공영길은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건 대답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들으라는 말이다.
“흥분해서 날뛰는 놈이다. 차라리 겁을 집어먹고 쪼는 놈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는 법이지. 너희가 지금 흥분하고 있는 게 용감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냥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을 뿐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나?”
“예!”
공영길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흥분이 가라앉자 반동으로 몸이 싸늘히 식는 느낌이었다.
“열을 식혀.”
바토르가 나직하게 말했다. 결코 높지 않은 그 음성이 듣는 이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두려움을 느끼는 걸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도 언제나 전장에 나설 때면 두려움을 느낀다. 여전히 죽는 게 무섭다. 용기라는 건 두려움을 모르는 게 아니다. 두려움이 있어도 나설 수 있는 게 용기다. 나는 두렵지 않다고 소리 지르고 발악하는 건 병신이나 하는 짓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가만히 공영길의 상태를 바라보던 바토르가 시선을 돌려 모두를 한 번 일별했다. 충분히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고 생각한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놈들을 때려잡고 싶으면 흥분하지 마라. 머리는 언제나 차가워야 한다.”
“예!”
“대답은 낮게.”
“예.”
바토르가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그가 총회에 왔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놈들을 찾기 어려웠지만, 지금의 총회는 과거 그가 봤던 총회와는 다르다. 모두가 정병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단련됐다.
단지 경험이 부족하기에 실수를 저지를 뿐이다.
“좋아. 지금부터 포위망을 형성한다. 이곳뿐 아니라 좌우에서 방 이사와 위긴스 이사가 포위를 도울 거다. 무리하지 말고, 오버하지 마라. 맡은바 임무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우린 절대 지지 않는다. 알았나?”
“예, 바토르 님!”
바토르가 슬쩍 턱짓을 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바토르의 거대한 덩치에 가려 보이지도 않던 이현수가 앞으로 나섰다.
싸늘한 눈으로 공영길 등을 바라본 이현수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한심한 새끼들.”
“우…….”
“지금부터 똑바로 들어라. 오 인 일 조로 조를 짠다.”
이현수가 폰을 들었다.
“앱에다가 편제 올려뒀으니, 자기 편제 확인하고 지금 빨리 조장 중심으로 모여. 당장!”
그 말에 모인 이들이 소란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토르가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이현수에게 슬쩍 말했다.
“앱으로 공지한다고?”
“예. 편하잖습니까.”
“……거, 세상 많이 바뀌었네.”
세상의 변화가 전쟁마저도 바꾸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바토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