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05
#1204.
응징하다 (4)
밀려온다.
강진호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적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기이하지 않은가.
수많은 전투의 나날, 그 기나긴 죽고 죽이는 나날 속에서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이를 상대로 싸운 적도 있었지만, 완벽한 결의를 품은 이만한 수를 그 혼자 상대하는 것은 강진호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뛴다.
조금도 쉬지 말고 죽이고 또 죽이라는 듯이 심장은 펌프질을 지속한다.
체온은 한참 전에 과열되어 뇌를 익혀 버릴 것만 같다. 그 말도 안 되는 고양감 속에서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이게 전투다.
이게 그가 살아가는 땅이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터져 나오며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고양감이 끝없이 치고 올랐다.
“죽어라아아아앗!”
날아드는 칼.
찔러 들어오는 칼.
그 눈에 어린 적의가 강진호를 검보다 먼저 찔러 댄다.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이들.
어떤 인연도, 어떤 원한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서로에게 끝없는 증오를 불태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전장이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 인류가 쌓아온 지성이 모조리 동원되는 칼날 같은 절벽이자, 인간에게 가장 금기시되는 살인이 정당화되는 야만의 대지.
이성과 본능의 두 갈래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전장이었다.
그리고 그 전장의 흉포함이 살을 에일 때, 강진호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까앙! 깡!
날아들던 칼이 강진호의 검에 부러져 나간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칼이 부러진 이들의 목을 쳐 날린다. 머리를 잃은 몸이 속도를 잃지 않고 달려와 강진호의 몸을 들이받고는 다리가 풀려 바닥으로 쓰러진다.
강진호의 검이 시커먼 마기를 물결처럼 품고 바닥으로 내려쳐졌다.
콰아아아아앙!
마기가 바닥을 터뜨린다. 닿은 모든 것을 터뜨린다. 그 안에서는 육체도, 영혼도, 그 무엇도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터져 나간 육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마기에 맞아 터진 몸의 파편들이 뒤따라 달려드는 이들의 몸을 꿰뚫었다.
“끄으으윽!”
“으아아아아아아!”
몸이 꿰뚫리는 고통 속에서도 무사들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뒤는 없다. 오로지 강진호의 목을 베고, 그 가슴을 갈라 심장을 뜯어내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자 생로(生路)였다.
허리가 반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허리가 끊겨도 뇌는 움직인다. 어차피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이들은 허리가 끊어졌음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허공으로 튀어 오른 이들이 강진호을 향해 혼신의 힘으로 칼을 틀어박는다.
콰드드득!
마기의 화염을 뚫지 못한 칼이 갈려 나간다.
하지만 살을 베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그 충격력만큼은 강진호의 몸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목숨을 걸어 죽인다’가 아니라 ‘목숨을 던져 상처라도 입힌다’로 의식이 전환된다.
그리고 그건 무시무시한 전술로 이어졌다.
달려들던 이가 들고 있던 일본도를 강진호에게 던지고는 바닥으로 슬라이딩하듯 뛰어든다.
콰득!
날아드는 이를 짓밟아 배를 터뜨린다.
“끄르르륵!”
하지만 몸의 절반이 터져 나간 이가 핏발이 선 눈으로 강진호의 다리를 움켜잡았다.
하나가 아니다.
십여 명의 무사들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강진호의 다리로 달려들었다. 강진호의 전신은 마기로 뒤덮여 대는 것만으로도 손이 녹아내린다. 하지만 뼈가 드러날 정도로 팔이 녹아내려도 결코 다리를 잡은 손을 풀지 않는다.
광기.
광기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집착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광기라면 강진호는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다.
적루를 휘둘러 달려드는 이들을 밀어내고, 청루로 바닥을 찍는다.
푸욱!
등이 꿰뚫린 이들이 경련을 일으켰다.
덜덜 떠는 이가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바라본다.
어둠.
어둠밖에는 보이지 않는 얼굴에 핏빛의 혈광이 넘실거린다. 그 광경을 보면서도 등이 갈라진 이가 피 묻은 웃음을 흘렸다.
“먼저 간…….”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튀어 오른 그림자들이 강진호를 움켜잡고는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연이어 터진 폭발에 강진호에게 달려들던 이들이 한순간에 핏물이 되어 휘날렸다.
강진호를 중심으로 반경 3미터의 영역이 말 그대로 무(無)로 되돌아간다. 손에 들고 있던 일본도는 폭발의 힘에 튕겨 나가 달려들던 이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끄으윽!”
“이 개자식아아아아아!”
몸에 도가 틀어박혔음에도 돌진은 멈추지 않는다.
달려든 이들이 베여 죽고, 터져 죽고, 폭발에 휘말려 죽는 모습을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물러서기는커녕 거품을 물고 돌진한다.
전장의 광기에 모두가 휩쓸렸다.
이 순간만큼은 의지도, 충성심도, 생존에 대한 욕구조차도 사라졌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증오만이 그들의 뇌를 검게 물들이는 중이다.
시야는 충분하다.
이들이 사용하는 폭탄은 영화처럼 폭염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저 충격력만을 온전히 전할 뿐이다. 그들의 눈에 검은 화염에 뒤덮인 괴물이 비틀거리는 것이 온전히 들어왔다.
적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뇌로 전해지자,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죽여어어어어어어어!”
우물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다.
하지만 우물에 뛰어드는 이들이 수십이라면? 수백이라면? 수천이라면?
제아무리 커다란 우물이라도 시체로 채워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우물은 더 이상 사람을 익사시킬 수 없다.
이들은 확실하게 제 목숨과 교환해 강진호에게 대미지를 하나하나 쌓아 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생채기에 불과하던 상처가 조금씩 더 벌어져 피를 흘리고, 이내 뼈를 드러낸다.
사방에서 짐승들이 달려든다.
앞뒤를 돌보지 않고 달려드는 짐승.
강진호 수준의 무인이라면 사방으로 달려드는 이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죽여도 죽여도 달려드는 이들을 상대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특히나…….
촤아아아아악!
어깨부터 옆구리까지가 깔끔하게 잘려 나간 이가 바닥을 기어와 하나 남은 손에 쥔 일본도를 강진호의 발에 쑤셔 박는다. 그 눈에 어린 독기는 강진호조차도 흠칫하게 만들 정도였다.
강하지 않다.
달려드는 이들 하나하나는 결코 강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기세는 지금까지 강진호가 상대해 온 그 어떤 고수들과도 남다른 면이 있었다.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각오.
그 끓어오르는 혈기가 강진호조차 동화시키고 있었다.
“흐아아아아아!”
강진호가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이들을 베고 또 베어냈다.
거칠기 짝이 없는 투로(鬪路).
그 투로의 빈틈을 쫓아 그림자들이 달려든다.
등 뒤에 나타난 그림자를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반으로 쪼개 버린 강진호가 마기를 뿜어냈다.
콰아아아아아앙!
어디서 어떻게 터지는지를 알면 방어할 수 있다. 방어한다고 해서 피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얻어맞는 것에 비하면 피해가 극도로 줄어든다.
욱신!
강진호가 양팔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이를 악물었다.
기이한 기분이다.
무학으로 받는 충격과는 확연히 뭔가가 다르다.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고, 그저 고통만 느껴진다.
무언가가 비어 있는 느낌.
하지만 이 공허한 고통은 확실히 그의 목숨을 갉아먹고 있었다.
‘끝이 없군.’
달려든다.
또 달려든다.
검에 찔리고 폭탄에 휘말리고도 멀쩡한 그를 보고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입에는 새하얀 거품이 맺혀 있고, 눈에서는 광망이 이글거린다.
흡사 광인.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좀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천에 달하는 광인들이 뻣뻣하게 굳은 몸을 꺾어 대며 사방에서 달려드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오금이 저릴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되레 웃었다.
생각도 못했다.
이 세상에서…….
야만과 광기가 사라진 이 세상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말이다.
악의가 전해져 온다.
반드시 그를 죽이고 말겠다는 악의(惡意)가.
상처 하나와 목숨을 교환하겠다는 각오.
이 전투가 끝났을 때 서 있는 것은 누구일까?
상처투성이의 강진호일까,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저들일까.
강진호가 적루와 청루를 앞으로 집어 던졌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두 검이 전방을 잘 익은 벼를 베어내는 낫처럼 깔끔하게 뚫어냈다.
“후욱!”
그 순간, 강진호의 눈에 광망이 어렸다.
양주먹이 폭발적인 마기를 품은 채 내지르고, 움켜잡고, 찢어발긴다.
순간적으로 그의 주변이 모조리 찢겨 나가며 공간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도 잠시.
“죽어라아아아아아!”
머리 위해서 누군가 떨어져 내린다.
바닥에서 세 사람이 동시에 튀어나온다.
저들은 곤죽으로 만드는 일?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건 크게 의미가 없는 일이다.
쾅! 쾅! 쾅!
연속으로 폭음이 터진다.
강진호의 주변에서 둘, 그리고 쏟아져 오는 일문의 무인들의 한중간에서 하나.
하나는 걷어차 날렸지만, 둘은 피해내지 못했다. 해머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과도 같은 고통에 순간적으로 의식이 확 멀어졌다 되돌아온다.
“흐…….”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미쳤다고 하겠지.
목숨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기분. 전신에 어느 한 부분 남은 곳 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온다니.
강진호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꾸만 흘러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 순간이었다.
스스슷.
옷깃이 바람에 스치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강진호의 바로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강진호의 눈이 싸늘해졌다.
츠키카게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려 했지만, 츠키카게의 속도는 강진호의 예상 이상이었다. 몸이 멀쩡했다면 잡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뒤로 휙 물러난 츠키카게가 양손으로 무언가를 던져 냈다.
갈색의 무언가로 둘러싸인 십여 개의 물체가 강진호의 주변으로 날아든다.
그 물체들의 정체는 너무도 빤했다.
여러 폭탄의 끝으로 이어진 긴 전선들이 츠키카게의 한 손에 들린 스위치로 연결되어 있다. 그 광경을 강진호는 똑똑히 보았다.
‘전선을 끊어…….’
“잘 가라.”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츠키카게의 손이 스위치를 누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세상이 무너지는 폭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후폭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광분하여 달려들던 이들이 그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진다.
콰아아아아아앙!
건물이 뒤흔들리고, 대지가 비명을 토한다.
가공할 파괴력.
순간적으로 뒤집어진 땅이 커다란 먼지구름을 피워 올리며 시야를 완전히 가려 버렸다.
콰당!
츠키카게마저도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가 예상한 이상의 폭발력이다.
“퉤!”
입에 맺힌 피를 뱉어낸 츠키카게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죽었을 것이다.
당연히 죽었겠지.
저만한 폭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무인이고 자시고,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절대 저 폭발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죽었겠지?’
머리는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가슴은 확신하지 못했다.
그의 두 눈으로 저 괴물의 시체를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 안심할 수 없다. 과연 저 폭발 속에서 시체를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천천히 먼지구름이 걷히고, 강진호가 있던 곳의 광경이 드러난다.
츠키카게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없어?’
시체마저 남기지 못했…….
그때였다.
덥석.
무언가가 그의 다리를 움켜잡는 느낌에 츠키카게는 전율했다.
바닥에서 누군가 땅을 부수며 솟아올라 츠키카게의 목을 움켜잡았다.
콰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