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56
#1255.
연합하다 (5)
“우리 회사는 안 돼.”
“…….”
황정후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인자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던 황정후는 어디로 가고 없고, 과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이 같은 눈을 한 황정후가 강진호를 경계했다.
“사람 절대 못 빼 가! 우리 직원들은 내 식구야, 식구! 어디, 산도적 같은 놈들이 우리 사람을 빼 가려고?”
“……그럴 의도는 아닙니다.”
“그럼?”
“꼭 재경이 아니어도 되잖습니까.”
“응?”
이현수가 맞장구를 쳤다.
“회장님께서는 발이 넓으시니까 유통 기업이나 식품 기업 중에 연이 닿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없어.”
“예?”
“다 죽었어.”
“…….”
황정후의 말에 이현수의 눈이 떨렸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인연 맺은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어? 그리고…… 남아 있으면? 네가 그 사람들을 부릴 수 있을 것 같아? 최소 60은 넘었는데?”
“무리죠.”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실제 강진호의 나이가 몇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일일이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으니, 결국 그들은 강진호를 20대 청년으로 볼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20대 청년이 60대를 부리는 게 사실상 쉽지가 않다. 능력이 우선이고 나이보다 직책이 중요한 시대가 되긴 했지만, 그 미묘한 불편함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
“그럼 좀 젊은 놈을 영입해야 하는데, 나는 그쪽 분야에는 아는 놈이…….”
그 순간, 황정후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때를 맞춰 조규민이 바로 입을 열었다.
“있지 않습니까, 회장님. 적임자가.”
“없어.”
“아닙니다. 있습니다, 회장님.”
황정후의 날카로운 눈빛이 조규민에게 쏘아졌다.
“없다고 했을 텐데?”
“회장님.”
조규민도 물러서지 않았다.
“MK는 상관없잖습니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고려해 주십시오, 회장님.”
노한 얼굴로 조규민을 노려보던 황정후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뭔가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던 황정후가 기어이 허탈한 얼굴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래, 있긴 있군.”
돌아가는 영문을 모르는 강진호와 이현수는 그저 멍하니 황정후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놈은 내가 소개를 해줄 수가 없는 사람이야. 추천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고.”
황정후가 고개를 슬쩍 돌려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조규민이 황정후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조 실장.”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것까지는 괜찮지 않습니까?”
황정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거참.”
그러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바람 좀 쐬고 올 테니까,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 결정은 자네가 하는 거니까.”
“……예?”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추천하지 않아.”
황정후의 앙다문 입매가 그대로 보이는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강진호와 이현수는 영문을 몰라 하며 황정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저러시는 거야?”
이현수의 물음에 조규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그리 많지도 않고, 한창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그쪽 계열의 전문가가.”
“능력은?”
“확실합니다.”
조규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능력으로 따지자면 저는 비교도 안 됩니다. 특히나 경영 능력이나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은 사업가로서 완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일하고 계시겠네.”
“마침 쉬고 계십니다.”
“으응?”
조규민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생각해 보면 페이도 높지 않을 거고, 영입만 할 수 있다면 단숨에 MK를 안정시키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카리스마와 능력, 그리고 열정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니까요. 걱정이 되는 건…… 단순히 프렌차이즈 사업부에 앉히기에는 능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점이죠. 하지만 이건 뭐, 강 회장님이 잘 알아서 컨트롤하실 테니까.”
“그런 사람이 왜 놀고 있어?”
“아무도 써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
“그야…….”
조규민이 슬쩍 닫힌 문을 힐끔거리고는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재경의 폐족을 누가 함부로 쓸 수 있겠습니까.”
“폐족? 설마…….”
“네.”
황정후가 왜 그렇게 역정을 냈는지 알 것 같았다.
“황민수.”
조규민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황정후 회장님의 둘째 아들입니다.”
살짝 침묵이 오간 뒤에야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아직 관계가 그러신가요?”
“개인적인 기분은 푸신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전에 강진호 씨가 관계를 이어준 덕분이겠죠.”
“음, 그런데요?”
“하지만 개인적인 호오와 사업적인 과실은 별개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회장님이십니다. 실수를 저지른 아들은 용서할 수 있지만, 업무적으로 비도덕적인 짓을 저지른 사업가는 다시 쓸 수 없다는 게 회장님의 방침이시죠.”
“으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철저하게 지켜왔기에 지금의 황정후가 있는 것이다.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자식조차 용서하지 않는 사람. 그 청렴함이 있기에 존경을 받고 충성을 받는다.
“황정후 회장님의 자제분들은 하나같이 능력이 뛰어나신 분들입니다. 특히나 황민수 사장…… 아니, 황민수 씨는 유통학을 전공한데다 과거에 재경 내에 식품 사업부를 운영하려 한 경험이 있습니다.”
“적임이네.”
이현수의 말에 조규민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지금이라도 복귀한다면 큰일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이지만, 회장님이 완고하시니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국내 기업들은 황 회장님과의 관계 때문에 그분들을 쓸 수가 없습니다. 능력이 되레 발목을 잡는 거죠. 차라리 능력이 없었다면 적당한 곳에 취직해서 잘살 수 있었을 텐데.”
“해외는? 그 정도 능력이면 해외도 괜찮지 않아?”
“……그래서 최근에는 해외를 알아보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외로 나가지 않은 이유는, 그래도 언젠가는 회장님이 용서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겠죠.”
“흐음.”
조규민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강진호 씨.”
“예.”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능력 있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한 번의 실수로 이렇게 묻히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쪽에 감정이 안 좋은 것 아니었나요?”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조규민이 볼을 긁었다.
“그런데 뭐, 지난 일로 언제까지 꽁해 있을 수는 없죠. 그쪽에서도 저를 일부러 엿 먹이려고 한 건 아니니까요.”
강진호가 조규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는다.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
조규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네네. 저 성격 안 좋습니다. 사실 여전히 감정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규민의 시선이 슬쩍 문 쪽으로 향했다. 조금 전, 저 문을 열고나간 황정후의 뒷모습을 쫓는 것이다.
“옆에서 등을 밀어주지 않으면 끝까지 움직이지 않는 분도 있거든요.”
“흠.”
“제 기분 같은 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저는 황 회장님께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고, 할 수 있다면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이현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 은혜를 갚는 데 우리가 이용당하고 싶지는 않은데.”
“뭔 소립니까? MK가 모셔가기에는 과분한 인재입니다. 제가 형님 입장이었으면 맨발로 달려가서 머리부터 조아리고 봤을 겁니다. 이건 윈윈이라구요.”
“알 수가 있나.”
“끄응.”
조규민이 이현수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강진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능력은 제가 보증합니다. 황정후 회장님의 자제분들인 만큼 기본적인 능력이 있고, 가혹할 정도의 교육을 소화해 낸 분들입니다. 황 회장님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회장님을 도와 그룹을 성장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우신 분들입니다.”
이현수가 볼을 긁으며 말했다.
“사실 재경이 동력을 잃은 이유도 세대교체를 해주셔야 할 분들이 일선에서 물러난 이유도 있습니다. 덕분에 회장님도 힘이 좀 빠지신 것 같구요.”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란 원래 그렇다.
처음에는 자신을 보고 달리지만,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 때는 후대를 보고 달리게 된다. 하지만 황정후에게는 후대가 없었다.
그러니 무엇을 보고 뛰겠는가.
“단순히 회장님을 봐서 고용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 그 일을 가장 잘해낼 사람이 황민수 사장님이기 때문에 드리는 제안입니다. 게다가 부차적인 이득도 있습니다.”
“부차적 이득?”
“사장님이 숙청되면서 같이 갈려 나간 인재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겁니다. 그만한 인망은 있는 분이니까요. 사람은 혼자 일할 수 없습니다. 운영을 위해서는 팀을 꾸려야 합니다. 경력직들을 모아서 일할 수 있다면, 그만큼 안정화가 빨리 되겠죠.”
강진호가 가만히 조규민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안 빨라도 상관없습니다.”
“…….”
“그쪽으로 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효율성이나 돈만 보고 일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강진호의 스타일이다.
사업가로서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
“그래서 묻고 싶은데…….”
강진호가 가만히 조규민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능력적인 부분은 접어두고서,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조규민이 장고에 빠졌다.
선뜻 입이 열리지 않는다.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던 조규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강진호 씨.”
“네.”
“강진호 씨도 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조규민의 눈이 진지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저도 그렇고, 강진호 씨도 그렇죠. 모두가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를 되갚으며 삽니다. 물론 그분들이 저지른 실수는 용서받기 쉽지 않은 실수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신뢰로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인 조규민이 입을 열었다.
“제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하지만 제 대답이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그럴 게 아니라 직접 한 번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사람은 직접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으니까요.”
강진호가 뇌리 속에서 황민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깊게 만난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몇 번 안면이 있던 사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를 한 번 만들어주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현수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툴툴거렸다.
“아니, 뭔 사업체 하나 굴릴 사람 찾아달라니까 갑자기 거물이 튀어나와?”
“이왕이면 잘하는 사람이 좋죠.”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뭔 회주님만 끼면 일이 끝도 없이 커지냐?’
과연 이 일은 또 어떤 식으로 수습될까를 고민하던 이현수의 눈에 문이 슬쩍 열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
문 뒤에서 황정후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안쪽을 바라본다.
이현수와 눈이 마주친 황정후가 슬쩍 눈을 내리깔고는 조용히 다시 문을 닫았다.
“…….”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회주님, 아무래도 그 약속 좀 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숨넘어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요.”
“…….”
강진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