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77
#1376.
도착하다 (1)
“아아아아아악!”
“입 좀 다물라고!”
“아, 아니! 내가! 으아아아아아아악!”
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비명 지르는 게 더 힘들겠다.’
풍압이 얼굴을 찢어버릴 것 같은데, 그 와중에 비명을 지를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아니, 이게 이해가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하고.’
이현수조차 처음 이 상황을 겪었을 때는 혼이 빠지는 줄 알았다. 나름 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현수도 정신을 못 차렸는데, 평범한 사람인 장필재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보다 열 배는 더 무서울 텐데.
“히이이이익! 아니! 히이이이이익!”
이해는 한다.
정말 이해는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품에 안긴 채 버둥거리는 장필재를 억누르고 있으려니 기분이 뭔가 묘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상황이…….
“아니! 달라붙지 말라고!”
“누가 달라붙고 싶어서 그럽니까! 내가 떨어지게 생겼는데!”
“안 떨어진다구요! 안 떨어져! 내가 잡고 있잖아!”
“놓지 마세요! 절대 놓으면 안 됩니다!”
“아오, 진짜!”
성질 같아서는 확 던져 버리고 싶지만, 그놈의 정이 뭔지.
“히익! 피! 피!”
얼굴로 쏟아지는 피에 장필재가 기겁을 하며 몸을 뒤틀었다. 장필재가 떨어지지 않게 꽉 움켜잡은 이현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무슨 정보원이라는 사람이 고작 피 가지고 호들갑이야!”
“정보원이 피 볼 일이 뭐가 있어, 인마! 피 볼 상황이면 이미 뒈진 건데!”
“인마?”
이현수가 장필재를 잡은 손을 살짝 풀었다.
“으아아아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도 미쳤지.’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짓거리라니.
고개를 돌려보니 주변 경관이 가공할 속도로 지나간다.
‘고속 열차와 그리 다르지 않은 속도일 텐데.’
하지만 안전한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광경과 바람을 직접 맞으며 보는 광경이 같을 수는 없었다. 같은 속도라 하더라도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체감이 달라지는 법이니까.
삐끗해서 처박히면 죽는다는 공포감이 이현수의 심장을 조여왔다.
게다가…….
파아아아아앗!
이현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강진호의 앞을 가로막은 이가 말 그대로 조각나 사방으로 비산한다.
전면이 붉은 핏빛으로 물든다 싶더니, 이내 화악 밝아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안개처럼 뿌려진 피가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진짜 적응 안 되는 광경이라니까.’
강진호에게 더없이 익숙한 이현수지만, 아직 강진호가 만들어내는 광경에는 익숙해질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평생을 가도 이런 광경에는 익숙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에 익숙해진다면 더는 스스로를 사람이라 정의하기 어려워질 테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슬쩍 들어 강진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그 뒷모습이 더없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모습이야 수도 없이 봤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고…….
“회주님! 회주님! 방향이 틀렸습니다! 왼쪽! 왼쪽으로!”
강진호가 급격하게 옆으로 회전한다.
우드드득.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급격하게 꺾인 몸의 하중을 목이 버티지 못하고 있다.
“아악! 피 쏠려!”
이현수는 할 수 있다면 바늘과 실을 구해와 장필재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다. 이현수는 두 사람분의 하중을 버티느라 목이 부러질 지경인데, 이놈은 그 와중에도 입이 쉬지를 않는다.
“회, 회주님! 어깨! 어깨! 목 부러집니다!”
강진호가 순식간에 이현수의 목에서 손을 떼고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강철로 만들어진 손가락이 어깨를 파고드는 느낌이다.
“으…….”
이현수가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며 신음을 참아냈다. 지금 그들은 강진호의 짐일 뿐이다. 짐이면 짐답게 얌전히 탑승해야 한다.
장필재처럼 난리를 쳐서 강진호의 부담을 늘릴 수는 없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중국의 감시?
그럴 리가.
만약 중국이 강진호가 북한으로 간다는 걸 알았다면, 북한에 진입하기도 전에 막아섰을 것이다. 운신이 어려운 타국으로 넘어가는 걸 방조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중국도 모르는 것을 북한이 알아챘다는 건데…….
‘그게 말이 되나.’
북한이 가진 정보력과 중국이 가진 정보력은 비교할 수도 없다. 물론 세상에는 소 뒷발로 쥐 잡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진호들은 그런 여지를 주지 않았다.
“온다.”
강진호가 담담하게 말하고는 속도를 올렸다.
‘벌써 몇 명째지?’
포위망이 사라지지 않는다.
중국에서 겪은 것처럼 엄청난 병력이 밀려오는 포위망은 아니다. 하지만 포위가 끝이 없다. 마치 북한의 모든 병력이 그들을 막으려 드는 것처럼.
게다가…….
퍽!
강진호답지 않은 가벼운 타격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앞을 막아서던 한 사람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빌어먹을, 애잖아!’
얼핏 확인한 바로는 분명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다.
“씨발, 아무나 막 밀어 넣냐고! 이 개새끼들!”
중국에서 그들을 막아선 이들은 확실히 훈련된 군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강진호들을 막는 이들은 중구난방이었다.
흠칫 놀랄 정도의 예기를 뿜어내는 무인도 있는가 하면, 아무런 훈련이 되지 않은 평범한 군인도 있다. 심지어는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아이조차 벌벌 떠는 눈으로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빌어먹을!’
그렇기에 강진호의 부담이 가중된다.
강진호는 자신의 기준이 확실한 사람이다. 막아서는 이는 죽인다. 하지만 막아서는 이가 제 의지로 막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죽지 않기 위해, 명령불복종으로 사살당하지 않기 위해 떨어지지 않는 억지로 발을 떼는 이와 강진호를 죽이려 달려드는 이가 같을 수는 없다.
‘그냥 다 죽이시면 훨씬 편할 텐데.’
고속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강진호는 무인과 군인, 그리고 군인을 가장한 민간인을 구분해 내고 있다.
막아서는 무인은 시체조차 남기지 않게 철저히 박살을 내버리고, 군인은 의식을 끊어놓는 선에서 해결하려 한다. 그리고 민간인이나 아이는 어떻게든 최대한 다치지 않게 기절만 시키고 있다.
밀려오는 적을 순간적으로 구분하고 다르게 대응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이겠는가.
‘아무리 회주님이라고 해도…….’
체력은 둘째 치더라도 정신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현수가 재빨리 GPS를 확인했다.
‘빌어먹을, 아직 거리가…….’
위긴스와 약속한 곳에 도달하려면 이 속도로 가더라도 30분은 더 필요하다.
강진호가 이 정도에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곳은 워낙 변수가 많은 곳이다.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콰아아아아아!
그 순간, 이현수의 귀에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강진호가 헛바람을 삼키는 소리도 들렸다. 뭔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몸이 허공으로 부웅 떠오르는 느낌이 났다.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터졌다.
이현수가 반사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발을 딛고 있던 곳이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가고 있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사람이 있다.
이곳에는 강진호를 막기 위해 동원된 이들이 있다. 그런데 아군이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도 파악하지 않고 일단 포를 쏘아댄 것이다.
사람을 사람이라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흐…… 흐으으?”
귓가를 파고드는 낯선 목소리에 이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강진호의 손에 인민복을 입은 사람이 잡혀 있다.
“그…….”
앳된 얼굴.
일부러 묻힌 건지, 아니면 원래 묻어 있던 건지 알 수 없는 검댕으로 얼굴을 검게 물들인 아이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폭발이 터지는 와중에도 앞을 막아서던 아이를 붙들고 허공으로 솟아오른 것이다.
으득.
낮게 이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현수는 그 소리가 강진호의 입에서 나왔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파앗!
바닥으로 내려선 강진호가 아이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다리가 꼬여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강진호가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실감이 난다.
‘여기가 북한이구나.’
특별히 더 위험한가.
아니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북한이라는 말이 거부감을 주는 이유는 이곳이 아직 야만의 땅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부하는 곳. 사회가 가지고 있는 우선순위가 뒤집혀 있는 곳.
그 사실을 실감하자마자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빠져나가야 해.’
이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이제는 다른 의미로 이 땅에 발을 딛고 싶지 않다. 한시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현수!”
“예!”
“방향!”
이현수가 재빨리 GPS를 확인했다.
“우…… 아니! 좌측입니다!”
그리고 강진호는 일말의 지체도 없이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무언가가 대기를 찢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고, 이내 등 뒤에서 연속적으로 폭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거 대체 뭐야!”
“뭐긴 뭡니까! 빌어먹을 알라의 요술봉이지!”
장필재의 발작적인 대답에 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돈도 없는 새끼들이 뭔 탄을 이렇게 쏴대!”
“돈이 없어서 못 쏘는 게 아니라, 저런 거 산다고 돈이 없어진 거죠!”
“그 와중에 빌어먹게 논리 정연하네!”
포탄이 등 뒤에서 터지는 경험이야 온몸의 솜털을 곤두세우기에 충분했지만, 냉정하게 볼 때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저 정도 속도로 날아드는 포탄은 강진호를 절대 잡을 수 없다.
강진호의 반사 신경이면 날아오는 걸 확인하고 피하는 것도 어렵지 않으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거, 대체 얼마나 동원된 거야?’
중국은 그래도 최소한은 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자국 내에서 화력을 동원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은 아니다.
지구상 유일한 완전통제국가인 북한은 자국의 영토 내에서 핵실험을 하고도 반발이 쏟아지지 않는 국가가 아닌가.
포탄 몇 개 터진다고 문제가 생길 리 없다. 그 말인즉, 중국이 동원하지 못한 더 큰 화력도 얼마든지 쏘아댈 수 있다는 점이다. 폭격기라든가, 전차라든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있다면 말이지.’
믿을 건 노후화된 장비가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 상황뿐이다. 돈이 저들의 발목을 잡아주기를…….
그 순간이었다.
불쑥.
갑자기 시커먼 손이 바닥을 뚫고 나온다. 그러고는 손에 쥔 나이프로 강진호의 발목을 노려온다.
강진호가 달리던 속도 그대로 나이프를 쥔 손을 걷어찼다.
우드드득.
둔탁한 소음과 함께 팔이 통째로 뜯겨 나가 허공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덕분에 강진호의 속도도 조금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위, 위!”
이현수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위로 꺾이듯 젖혀졌다.
그와 동시에 이현수는 보았다.
하늘에 떠오른 달을 가리며 바닥으로 하강하는 수십 개의 그림자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