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09
#1408.
석방되다 (3)
[경찰은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김씨의 머리카락을 감정한 결과, 마약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씨는 대한민국 총리직을 역임한 김명찬 씨의 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아직 정확한 사항을 발표할 시점은 아니라고…….]주름 가득한 손이 리모컨을 잡아 든다.
[김명찬 전 총리가 여러 가지 죄목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김명찬 전 총리의 손자마저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확인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국민들은 재벌가뿐 아니라 권력 상층부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경각심을 보이고 있습니다.]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다른 채널로 돌린다. 하지만 화면에 뜬 것은 역시나 김명찬의 얼굴이었다.
[김명찬 전 총리에 대한 조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김명찬 전 총리의 탈세와 뇌물에 대한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김명찬 전 총리는 과거 부동산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을 의도적으로 은폐하여 거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에 국세청에서는 최대한 빠른 시기에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김명찬 전 총리가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황도 확인되고 있는데요. 이에…….]다시 채널을 돌린다.
[김명찬 전 총리의 비리와 죄목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오늘 아침 전격적으로 김명찬 전 총리에 대한 경질을 발표했습니다. 국민들은 과거 민주화 투사였던 김명찬 총리의 민낯에 경악하는 한편, 김명찬 총리가 몸담은 정권에 대한 도덕적 불신마저 표출하고 있습니다.]손가락이 신경질적으로 버튼을 누른다.
[검찰은 김명찬 총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끝나는 대로 김명찬 총리를 구속할 예정입니다. 이미 김명찬 전 총리가 여러 가지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아직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은 것은 권력층에 대한 봐주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으며…….]“으아악!”
날아간 리모컨이 TV를 후려친다. 액정을 부수고 튀어 오른 리모컨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김명찬이 낮은 숨을 토했다.
너무 긁어 붉게 물들어 버린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나는…….”
더는 달아날 곳이 없다.
나름 깨끗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뇌물? 탈세?
웃기지도 않은 소리.
저만한 일을 뇌물로 엮고, 저만한 일을 탈세로 엮는다면 대한민국 국회에 출입하는 이들 중 감옥에 가지 않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건 김명찬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확신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이란 그렇지 않은가.
법을 지킨다고?
모든 이들이 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면, 세상에 법 같은 건 필요가 없다.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사람은 법을 지키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법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 평생을 살면서 죄 한 번 짓지 않고 사는 이들이 몇이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잘못을 손가락질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김명찬은 스스로가 청렴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다른 정치인들처럼 막대한 돈을 몰래 모아둔 것도 아니고, 권력을 이용해 평범한 국민을 짓누르려 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지금 세상은 김명찬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끔찍한 비리 정치인인 것처럼 성토하고 또 성토하고 있었다.
“내가…….”
김명찬이 울부짖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내가!”
그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사람이 바로 김명찬이다. 밤마다 누군가 찾아올까 떨었고, 대낮에도 모르는 이의 얼굴만 눈에 보여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언제라도 끌려가 야산에 묻힐 수 있다는 공포에 떨면서도 오로지 민주주의 하나만 보고 살아가던 시절이다.
국민들이 얻어낸 승리?
웃기는 소리.
그가 목소리를 높이고 목숨을 걸 때, 국민들은 그저 침묵했을 뿐이다. 그가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할 때 국민은 무엇을 했는가. 코로 고춧가루 물이 들어오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릴 때 국민들은 다 뭘 하고 있었나.
침묵.
그저 침묵했다.
지금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과실은 모두가 당시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몇몇 열사들을 거름 삼아 열린 것들이다.
역설적이게도 김명찬이 권력자들에 대한 비리를 성토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해 국민에게 주었기에, 지금 저들이 김명찬을 까고 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그 모든 것이 김명찬들의 공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 뭐?
“부패? 내가 부패했다고? 내가? 이 개 같은 새끼들아! 으아아아아아!”
김명찬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재산을 잃는 것은 참을 수 있다. 지위를 잃는 것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평생을 쌓아온 업적이 무너지고, 그를 지탱해 주던 명예마저 사라지는 꼴은 지켜볼 수가 없다. 하루하루 날카로운 면도날로 심장을 한 겹씩 벗겨내는 기분이다.
“흐흐…….”
기사화된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제는 과거 그와 함께한 동료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아마 내일쯤 되면 그가 과거에 그를 쫓던 형사를 죽여 묻었다는 의혹과 성폭행 의혹까지 터질 것이다.
사실이냐고?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겠지.’
그와 함께 싸워온 동료들이 먼저 돌아서서 침을 뱉고 욕을 하는데, 누가 김명찬의 변명을 믿어주겠는가.
오랜 정계 생활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
진실이란 꾸며내기 나름이라는 것과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
사람들은 진실을 중요히 여기지만, 내심으로는 진실을 그리 중요히 여기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구미에 맞는 진실만을 원한다.
맨바닥에서 시작하여 그 공포스럽던 독재정권에 항거하고, 마침내 총리에 자리까지 올라선 이의 몰락.
이보다 재미있는 사건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은 몰락하는 이가 강대할수록 더 큰 환호를 보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김명찬은 딱 좋은 먹잇감이다.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 이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틀어도 몇 안 될 테니까.
그렇기에 물어뜯는다.
전신이 너덜너덜해지도록.
한 번 물어뜯기 시작한 피라냐들은 그가 뼈만 남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뼈만 남아도 멈추지 않는다. 저들은 김명찬이 이룩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욕하고, 짓밟을 것이다. 김명찬이 죽고 난 뒤에는 그 무덤까지 찾아와 침을 뱉고 조롱하겠지.
끝도 없이 추락하는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평소라면 벌써 몇 번이고 울렸을 휴대폰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고작 일주일 전만 해도 사소한 뉴스 한 줄만 나도 안부를 묻는 전화와 문자가 쇄도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와 연락을 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필사적으로 그의 연락을 피하려 할 것이다.
“흐흐흐…….”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어쩌다가?
정계에 발을 들인 것이 실수였나?
아니면 우리가 진정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룩하자고 지껄이던 동료들을 믿은 게 실수였나?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지 않아서?
그게 아니면?
“흐흐흐흐.”
알고 있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건드리지 말았어야 해.’
모든 것은 강진호를 적대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김명찬이 강진호를 파멸시키려 들지 않고, 그저 적당히 공조하면서 살았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총리로 국정에 전념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를 건드린 탓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모든 것이.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
그의 삶, 그의 명예, 그리고 그의 가족까지.
김명찬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움켜잡았다. 담뱃갑에서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힘겹게 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눈을 따갑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이 담배만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술을 찾지 않는 이유는, 이 정신에 술까지 먹었다가는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일까 두려워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모든 것은 국가를 위해서였다.
정확하게는 이 나라를 살아가는 국민들을 위해 바친 삶이었다. 이제는 조롱밖에 남지 않았지만, 김명찬은 정말 그리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의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 하나가 몰락하고 다른 이들이 살 수 있다면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텐데, 왜 김명찬은 지금 분노와 증오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가.
“흐흐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진짜 그의 삶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저들이 아니었다. 김명찬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가 진정으로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삶을 살았다면, 그리고 아직도 그리 생각하고 살고 있다면, 결코 이런 분노가 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자기혐오.
세상이 그를 부정하고, 그가 그를 부정한다.
초조한 손동작으로 담배를 빨아 제끼는 순간, 그의 휴대폰이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김명찬이 살짝 풀린 눈으로 휴대폰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잡고는 귀에 가져다 댄다.
“……김명찬이오.”
“……무슨 일이오?”
[제가 전화드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의중을 전달하라 하셨습니다.]그분, 그분이라…….
그 말, 참 낯설게도 들리는구만.
때로는 의지할 수 있는 선배고, 때로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단 한마디로 그를 정의해야 한다면,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온 친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명찬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직급이 다른 이상 존대를 쓰고 우대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다.
그런데도 오늘따라 저 ‘그분’이라는 말이 참 멀게만 느껴진다.
“……뭐라시던가?”
[이쪽도 더는 막을 수 없습니다. 내일 구속영장이 발부될 겁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대국민 사과를 하기로 하셨습니다.]“대국민 사과라…….”
이쪽은 이제 숫제 죄인이구만.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이제는 그만 현실을 봐야 할 때입니다. 총리님.]“나는 이제 총리가 아니지.”
너희가 경질했으니까.
[결단을 내려주십시오.]“결단?”
[모든 일은 모양새가 중요하기 마련입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에 자진 출두를 해 조사를 받는 게 모양새가 좋습니다.]“모양새라…… 그래, 모양새는 좋겠지.”
김명찬이 낮게 웃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차피 구치소로 들어가게 될 거, 하루 일찍 들어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끌려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의 발로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게 그분의 의중이신가?”
[그렇습니다, 총리님. 많은 우려를 보이고 계십니다.]“그래, 그렇군. 그래…….”
김명찬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마치 악귀처럼.
“이보게, 비서실장.”
[예, 총리님.]“내 보좌관이 내게 마지막 남긴 충고가 뭔지 아는가?”
[글쎄요.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안고 죽으라더군.”
휴대폰 너머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낮은 침묵. 더없이 무거운 침묵이다.
“아니면 그냥 죽게 될 거라고 말이야.”
김명찬이 피식 웃었다.
죽음, 죽음이라…….
언제나 그는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죽이게나.”
“내가 내 손으로 죽어주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내 입을 막고 싶다면 나를 죽여. 그게 아니면…….”
김명찬의 눈에 시뻘건 핏발이 선다.
“다 같이 죽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