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36
#1435.
접촉하다 (5)
“재미있군.”
이 나라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환영하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굳이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겠지.
강진호가 막 존 팩터의 주둥아리를 부숴 버리려는 찰나였다.
“멈춰! 멈추라고, 이 병신 놈들아! 어디를 겨누는 거냐! 저 돼지 새끼를 겨누라고 했잖아! 당장 총구 내려!”
뒤쪽에서 들려온 다급한 음성과 함께 강진호를 겨누고 있던 총구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향했다. 그런 후, 정문으로 군복을 입은 사내가 전력으로 뛰어 들어왔다.
순식간에 강진호와 강진호의 손에 잡혀 있는 존 팩터를 확인한 군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스터 강, 아니, 강진호 씨. 저는 미 국방성 육군부의 윌리 리스입니다. 그 멍청한 돼지 새끼를 처리하시기 전에 부디 제 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강진호가 흥미롭다는 듯이 윌리 리스라 자신을 소개한 이를 바라보았다.
“국방부?”
“예, 그렇습니다. 무척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결코 저희가 의도한 바가 아닙니다. 모든 문제는 저놈의 개인적인 일탈이 만들어낸 겁니다.”
강진호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꼬리라도 자르겠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귀측에 끼쳐 드린 피해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일련의 사태가 저희 미국 측의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이현수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럼 이자가 가짜라는 겁니까?”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자는 정말 CIA 소속이 맞습니다. 다만…… 휴, 이게 조금 복잡한 문제라 이 자리에서 설명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부디 제 사과를 받으시고, 그자의 신병을 양도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강진호와 이현수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현수가 먼저 눈치 좋게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데요?”
“음…….”
“어떻게 할까요?”
“흐음.”
강진호가 가만히 윌리 리스를 바라보다가 손에 잡고 있던 존 팩터를 바닥으로 던졌다.
쿠웅!
바닥에 쓰러진 존 팩터가 허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이 돼지 새끼를 끌고 가! 반항하면 죽을 때까지 패버려도 괜찮다. 이 미친놈이 결국에는 사고를 치는구나. 제발 반항해라. 그 모가지를 꺾어버릴 테니까!”
‘오, 포스 보소?’
금방이라도 존 팩터에게 달려들어 파운딩이라도 먹일 기세였다. 저게 연기라면 굳이 군인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리 멀지도 않은 할리우드로 가면 떼돈을 줘가며 캐스팅하려 들 테니까.
군인들이 우르르 달려와 존 팩터를 잡아끌었다.
“이놈들이! 당장 이거 놓지 못…….”
퍼억!
존 팩터가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개머리판이 그의 턱을 날려 버렸다.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존 팩터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강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난하자는 건 아닌 것 같고. 이게 뭐 하는 짓거리지?”
윌리 리스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명드리자면 조금 깁니다. 그러니…….”
윌리 리스가 주변을 한 번 쭉 둘러보더니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장소도 엿 같은 곳으로 골랐군요. 센스도 더럽게 없는 놈 같으니.”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 강진호와 이현수가 입을 꾹 닫았다.
이럴 때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윌리가 난처하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장소는 별로지만, 지금 이 분위기에서 적당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군요. 혹시 이곳에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선 존 팩터와는 전혀 다른, 정중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미묘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본 강진호와 이현수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대충 설명을 들은 강진호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피식 웃고 말았다.
“CIA는 맞다는 거로군.”
“……그러니 더 환장할 노릇이죠.”
윌리 리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CIA는 좋게 말하면 역사와 전통이 넘치는 조직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아직도 자신들이 냉전시대를 사는 줄 아는 시대착오적인 놈들이 득실거리는 암 덩어리 같은 놈들입니다. 대화로 풀 수 잇는 걸 폭탄으로 풀려 하고, 이메일 한 장이면 처리될 일을 저격으로 해결하려 들죠.”
“……자국의 조직을 그렇게 말해도 됩니까?”
“알 게 뭡니까. 빌어먹을, 실제로 그런 것을.”
“…….”
강진호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사람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 윌리란 자는 생각보다 꽤 재미있다.
“여하튼 정말 죄송합니다. 공식적으로 해외의 정보를 주관하는 곳은 CIA다 보니, 강진호 씨에 대한 정보도 저쪽의 의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강진호 씨와 접촉하는 건 이쪽의 소관으로 넘어왔는데 저 멍청한 작자가…….”
“공을 탐했다?”
“그렇습니다.”
“저런 태도로?”
“……그러니 접촉할 이들을 이쪽으로 돌린 것 아니겠습니까? 저런 식으로 일을 망쳐 먹은 게 몇 번인데. 빌어먹을 놈이.”
“아니, 그런 사람을 왜 아직 쓰고 있는 겁니까?”
“저게 통할 때가 있습니다.”
“…….”
“황당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저놈은 이미 몇 번이나 저런 식으로 거래를 가로채 더 좋은 조건으로 결과를 바꿔 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사고를 친 거죠.”
“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조금 전처럼 존 팩터가 고압적으로 나왔을 때, 강진호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과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었을까?
‘무리지.’
절대 불가능하다.
이현수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강진호다 보니 군말 없이 일어난 것이다. 괜히 미국의 눈치를 보겠답시고 조금 더 앉아 있다가는 강진호가 저놈을 걷어차 굴리며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꼴을 보게 될 확률이 높았으니까.
이 자리에 같이 있던 이가 강진호가 아니라 위긴스만 됐더라도 마지막 그 순간까지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려 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를 등에 업은 이를 상대하는 건 그런 것이다.
“혹여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저 빌어먹을 놈은 감히 미국을 대변하지 못합니다. 일개 정보국의 수장인 놈이 제가 대통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어서 문제지요. 이제 다시는 그럴 수 없겠지만.”
섬뜩한 윌리 리스의 눈빛에서 이번 일을 통해 어떻게든 존 팩터를 묻어버리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보였다.
“그런데 그거 참 신기하네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합니까?”
“……국방부와 CIA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FBI와 CIA가 사이가 나쁘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만.”
“자꾸 국가의 치부를 꺼내는 느낌입니다만, 사실 미국 내 대부분의 조직들은 서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잘 돌아가는군요.”
“스타일의 문제죠. 각자가 자신의 일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면 그 최선의 결과들이 모여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 이게 저희의 모토입니다만, 때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죠.”
윌리 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진호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여하튼 폐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동양식의 사과다.
그건 이자가 강진호에 대해 미리 많은 공부를 했거나, 동양의 문화에 대해 이해도가 높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야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이현수였다.
‘그러면 그렇지.’
저게 말이나 되나.
강진호가 윌리 리스를 빤히 바라보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담배.”
“예?”
“담배 한 대 피워도 됩니까?”
“얼마든지 피우십시오, 얼마든지.”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조금 전만 해도 존 팩터의 목을 꺾어버리고 주변에 있는 이들까지 다 쓸어버릴 생각이었던 강진호지만, 윌리 리스가 연신 굽실대다 보니 그럴 기분이 사라졌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좀 황당하기는 한데, 듣고 보니 이해가……. 아니, 이해가 안 가는데 이해는 되는, 좀 이상한 상황이네요.”
“죄송합니다.”
이현수가 손을 내저었다.
“아뇨. 그쪽이 사과할 일은 아닌 것 같군요.”
“하, 입장이라는 게 참…….”
윌리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은 대통령 각하께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안입니다. 그래서 저 망할 놈이 뻘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그만큼 이야기를 했는데……. 개 같은 CIA놈들, 분명 뒤에서 부추겼을 겁니다.”
아니, 니들 내부 사정 같은 건 관심 없고…….
그걸 왜 우리한테 한탄하냐?
이현수가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재미는 있지만, 나이 든 아저씨의 한탄 같은 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저희 회주님과 접촉할 생각이셨다구요?”
“물론입니다. 저희는 강진호 씨께서 미국에 비자를 신청한 순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빤히 아는 일이지만 다시 묻는다. 혹시나 저들의 생각과 총회의 예측이 어긋날 수도 있으니까.
“이만한 거물이 오시는데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잖습니까? 일행분들이 워낙 많이 오셔서 입장을 생각하여 나서지 않았지만, 만약 두 분만 오셨다면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모든 편의를 봐드렸을 겁니다.”
‘이거 봐라?’
일행 때문에 나서지 않았다는 말은 강진호가 자신의 정체를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숨기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의 정보까지 확보하고 있다라…….
‘아까 그놈들이랑은 질이 다른 것 같은데.’
“아니, 잠깐만. 해외 정보는 CIA에서 주관한다고?”
“공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게 효율의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자체적으로 정보원을 굴리지만, 체계 때문에 의뢰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뭔…….
‘미국이라고 뭐가 다 잘 돌아가는 건 아니구나.’
하기야 지금 대통령만 봐도 그리 스마트하지는 않지.
“쓸데없는 이야기는 치우지.”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끊고 들어왔다.
“어차피 덕담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으니, 용건만 간단히 해. 나를 찾은 이유가 뭐지?”
“오해하시는 모양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음?”
윌리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회주님께서는 중국의 삼왕이 한국에 들어오면 그를 찾지 않으실 겁니까?”
“…….”
강진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삼왕이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확실히 신경은 쓰일 것 같다.
아니, 만나볼 확률이 높겠지. 일단 삼왕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부터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니까. 하기야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유가 있든 없든 일단 접선을 해보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
“다만, 회주님이 오신 김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있는 편입니다.”
“뭔가 다른가?”
“조금 다르지요.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럼 말해봐.”
“먼저…… 지금 나오는 이야기는 제가 전하는 것일 뿐, 저는 감히 국가를 대표하여 회주님과 대화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흐른다면 진짜가 나와 회주님을 만날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해보지.”
어차피 내용이 같다면 다를 것도 없다.
윌리 리스가 깊이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지요?”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텐데?”
“같은 걸 해보고 싶습니다.”
“같은 것?”
살짝 이해하지 못한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에 미국의 무인들을 파견하도록 허가해 주십시오.”
“……파견?”
강진호의 미간이 좁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