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51
#1450.
입증하다 (5)
“그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나?”
윌리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말이 나올 줄 알았지.’
하지만 눈앞의 상관을 욕할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불과 하루 전이었다면 윌리 역시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테니까.
“명령권이라니,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는 있는 건가?”
윌리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상관을 바라보았다.
“황당한 이야기로 들린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황당한 이야기?”
국방부 육군부 차관인 레이놀드 스펜서가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윌리를 바라봤다.
“이게 겨우 그런 단어로 해석이 될 만한 일인가? 명령권을 넘긴다는 건 작전권을 넘긴다는 뜻이고, 작전권을 넘긴다는 건 주권을 넘긴다는 뜻이네. 이건 역사에 없는 일이야.”
“그리 과대 해석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거꾸로 보자면 한국의 전시 작전권 역시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교환한다고 생각하시면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니지요.”
“대령!”
레이놀드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자네, 그 동양인들을 만나 홀리기라도 했나? 왜 아까부터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반복하는 건가? 우리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뭔데?”
“너무 빤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득?”
“저들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멍한 눈으로 윌리를 바라보던 레이놀드가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차관님도 이미 확보된 영상을 보셨을 겁니다.”
“…….”
윌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차관님의 반응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영상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요.”
레이놀드가 미간을 꾹꾹 눌렀다.
‘확실히 이해가 어렵긴 했지.’
동양의 마왕이라 불리는 강진호가 보여준 능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레이놀드조차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곳에 있던 천에 가까운 병사들이 일제히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떠는 모습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윌리의 말대로 영상으로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한두 사람이라면 몰라도 천 명이 동시에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건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설사…….”
생각을 가다듬은 레이놀드가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말대로 그들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고 치세. 하지만 저들의 강함이 우리가 권리를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네.”
“차관님.”
“애초에 이 협상의 목적은 한국을 이용해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것에 있네. 모든 것을 다 내주고 뭘 얻겠다는 건가? 결국에는 한국에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 아닌가. 자네를 보낸 내 선택이 잘못된 것 같군.”
윌리가 말없이 레이놀드를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윌리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현실을 보셔야 합니다.”
“현실? 무슨 현실?”
“미군은 세계 최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고가 아닙니다.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우리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밖에 낳지 못합니다.”
레이놀드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무인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했네. 자네 역시 그 첨병에 있었지. 그런데 그게 지금 자네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우리가 최고가 아니라고?”
“실패는 끔찍한 겁니다.”
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건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거죠. 늦으면 늦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자금을 소모해야 할 겁니다. 피해는 점점 늘어나겠죠.”
“하…….”
레이놀드가 의자에 목을 기댔다.
그러고는 조금 허무한 얼굴로 윌리를 바라봤다.
그가 윌리를 강진호의 상대로 보낸 것은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 윌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이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는다. 거꾸로 말한다면 그가 일을 맡긴 이에게서 나오는 말은 신뢰할 만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가 가진 상식과 수하에 대한 신뢰가 충돌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럴 경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모를 레이놀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레이놀드가 양손으로 얼굴을 비비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의 판단으로는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저들과 동맹을 맺는 게 이득이라 이거겠지?”
“그렇습니다.”
“미친 소리지.”
레이놀드가 웃어버렸다.
미친 소리다. 위쪽으로는 차마 보고도 올릴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어이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거래라는 건 눈 딱 감고 미친 짓을 저질러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자네의 선택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나?”
“예.”
“이유는?”
“저만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H27에서 강진호와 대면한 SOB들 모두의 생각입니다.”
“모두라…….”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그에게 당한 이들조차도 다수가 한국행을 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후드려 팬 이에게 호감이라도 느꼈다는 건가? 3류 하이틴 소설도 아닐 텐데 말이야.”
“적어도 그 강함은 제대로 실감했겠죠.”
“으음.”
레이놀드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방식의 문제라…….’
이건 골치 아픈 문제였다.
이 일을 보고하고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훈련 체계에 오류가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인정이야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누가 이걸 책임질 수 있겠는가.
“……허가가 떨어질 것 같나?”
“예.”
윌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건 실패가 아니라 앞으로도 실패하는 거니까요.”
“…….”
“바로잡을 기회를 얻어내는 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실패로부터 배운다. 그게 우리의 방식 아닙니까?”
“실패하지 않는 게 우리의 방식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레이놀드도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체계를 만들었다. 거꾸로 말하면, 이 방식이 실패했다면 미국 내에는 더 이상 오류를 수정할 만한 능력을 갖춘 이가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치욕적이군.’
레이놀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나? 원탁에 도움을 요청한다든가.”
“차관님.”
윌리가 눈을 찌푸렸다.
“의미 없는 자존심으로 상황을 흐려서는 안 됩니다.”
“……지금 뭐라 했나?”
“미국이라 해서 모든 분야에서 최고인 건 아닙니다. 당장 자동차 업계에서 독일 3사의 기술력을 빼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이 망설이겠습니까?”
“…….”
“미국이 최고일 수 있던 이유는 최고를 지향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자존심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찼습니까? 그건 국가에 대한 죄악입니다.”
레이놀드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그 불쾌함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잘도 지껄이는군.”
옳은 말을 하는 걸 탓할 수는 없다.
결국 레이놀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얻는 것이 있어야 할 거야, 대령. 그게 아니라면 자네나 나나 옷 벗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 말이야.”
“각오하고 있습니다.”
레이놀드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해 보지. 자네의 선택이 옳기를 빌게.”
“예.”
레이놀드가 가만히 윌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자네가 본 강진호라는 인물은 어떤 이였는가?”
“질문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딱히 명확하게 대답할 필요도 없네. 느낀 그대로 말해주면 되니까.”
윌리가 입을 다물었다.
조금 시간을 들여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한 윌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쉽지 않습니다.”
“너무 명확하지 않군.”
“그런 게 아니라……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에게서 받은 인상이 너무 여러 가지라……. 일단 확실한 것은 그의 성격에 관해 수집한 정보들은 다 폐기하는 게 나을 겁니다.”
“흠?”
레이놀드가 흥미롭다는 얼굴을 했다.
윌리는 데이터의 신봉자다. 그런 이가 소스를 포기하라는 말을 한다는 건 굉장히 특이한 일이었다.
“정보가 오염되었다는 건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하는 정도로는 강진호라는 인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양인의 스트레오 타입에서 극도로 벗어나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예측한 성격과도 무척 동떨어져 있습니다. 아니…….”
한숨을 내쉰 윌리가 말을 이었다.
“비슷한 부분은 있을 겁니다. 문제는 상황에 따라 그의 성격이 너무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거죠.”
“다중인격자라는 건가?”
“그것과는 또 다릅니다. 부정적인 의미도 아니구요. 음, 그는 정의 내리기 어려운 자입니다.”
레이놀드가 의자에 고개를 기대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군.’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말이다.
강진호라는 사람이 그렇게 복잡한 인간이라면 그와의 관계를 이끌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건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일이다.
하지 않기로 했다면 모를까, 일단 시도를 하기로 정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시켜야 한다. 미국의 미래와 레이놀드의 미래를 위해서.
“상부는 내가 맡지. 자네는 지속적으로 강진호, 그리고 총회와의 관계에 힘을 써주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인간미를 보이지 않는 분이라……. 술도 즐기지 않고, 사치도 하지 않습니다. 무인이다 보니 약물 쪽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고.”
“……무슨 재미로 사는 거지?”
“그게 고민입니다.”
레이놀드가 살짝 미간을 좁힌다.
“여자 쪽은 어떤가?”
“……예?”
“여자에 관심이 없는 남자는 없지. 적당한 미녀를 붙여보는 것도…….”
“꿈도 꾸지 마십시오. 펜타곤이 날아갈 겁니다.”
“…….”
“그쪽은 절대 안 됩니다. 너무 확고한 여자 친구가 있는데다가 제가 보기에는 강진호 씨보다 여자 친구인 최연하 씨의 성격이 열 배는 더 셉니다.”
“……못 들은 걸로 해주게.”
게다가 미인이기도 하고 말이지.
강진호가 특별히 서구 스타일의 미녀를 선호하지 않는 이상은 최연하 이상 가는 미모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동양인 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윌리조차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미녀가 아닌가.
‘세상은 불공평하다니까.’
고개를 내저은 윌리가 슬그머니 레이놀드의 눈치를 봤다.
“여하튼,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네는 항상 내게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군.”
“그게 직급 아니겠습니까?”
“꼭 성공해서 승진하게, 꼭.”
“감사합니다. 그리고…….”
레이놀드의 눈치를 슬쩍 본 윌리가 품 안에서 단단히 봉해진 서류 봉투를 꺼내 레이놀드의 책상에 살짝 올려두었다. 손이 바로 닿지 않을 만한 거리에 말이다.
“이게 뭔가?”
“부대 사항입니다. 중요한 요소 말고, 그저 저희가 가볍게 추가적으로 응해줘야 할 거래 내용이지요.”
“흐음, 그래? 검토해 보지.”
“예. 그럼 저는 이만.”
윌리가 재빨리 몸을 돌려 차장실을 빠져나갔다. 그 다급한 동작에 살짝 의문이 든 레이놀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그의 시선이 서류 봉투에 가닿았다.
손을 길게 뻗어 서류 봉투를 끌어당긴 그가 봉투를 열고 안에 든 서류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얼마 후.
“윌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차장실에서 악에 받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새끼 당장 잡아와! 당자아아아아앙!”
협상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사람은 강진호가 아니라는 걸 모른 자들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