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10
#1709.
공격받다 (4)
이현주가 가운을 입은 채로 턱을 괴었다. 그러고는 빤히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저건 절대 제명에 못 죽을 거야.’
부스스한 머리를 한 이현수가 아침 댓바람부터 휴대폰을 붙든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걸 그렇게 처리를 하면 어떻게 하냐, 이 빌어먹을 놈아! 해외에서 들어오는 건 일단 품목이 뭐든 간에 MK를 통해 넣으라고 했잖아! 그걸 그렇게 처리해 버리면 밀수밖에 더 되냐, 이 새끼야!”
“…….”
이현수가 전화기를 붙들고 열을 삭였다.
“그리고! 갑자기 그건 왜 가지고 와야 하는데? 내가 돌아갈 때까지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왜 일을 만들……. 응? 위긴스 님이 빨리 처리하라고 했다고? 어……. 어, 그럴 수 있지. 그래. 그럼 빨리 처리를 하는 게 맞는데……. 아니 그럴 거면 차라리 미군 쪽에 요청을……. 아니지. 그래,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렇지.”
‘저쯤 되면 병이지.’
이현수도 병이지만, 총회도 병이다.
그녀와 이현수가 이곳에 도착한 지 정확하게 16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그사이 이현수는 체감상 160통 정도의 전화를 받았다.
“대체 총회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기에?”
그녀가…… 아니, 정확하게는 이중걸이 총회를 이끌고, 그녀가 보좌를 하던 시절에는 저런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물론 총회의 특성상 뇌주름이 매끈한 인간들이 워낙에 많아서 웬만한 일들은 이현주나 이중걸이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사람이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전화가 걸려오지는 않았다.
‘전제왕권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전제군주라더니.’
지금 이현수가 총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과거 회주였던 이중걸이 가진 영향력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이중걸은 회주이기는 하지만 방진훈 등의 반발 세력이 존재했고, 자신이 지닌 세력을 달래기 위해 중간중간 그들의 주머니를 채워줘야 했던 사람이다.
과거, 이중걸이 그 복잡하기 짝이 없는 총회의 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가.
하지만 지금의 이현수는 회주도 아니라 이인자에 불과하지만, 총회에서 행사하는 힘은 과거의 이중걸의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발로 한 번 더 걷어찰 수준이다.
말이야 바른말로, 이사진들을 제외하면 총회 전체에 이현수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가.
총회에서 가장 특수하고 과격한 집단인 마염들조차도 이현수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은 강진호의 친위대로서 오로지 강진호의 명령만을 따르게 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그만큼이나 총회를 휘두르고 있는 이현수지만, 그 대가 역시 이현수가 고스란히 치르고 있었다.
“아오!”
이현수가 전화를 과격하게 끊고는 버럭 성질을 냈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어!”
“……그게 누구 때문인데?”
“응?”
“댁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요.”
“하아…….”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현주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솔직히 그도 변명할 말이 너무 많다.
뭐?
분산? 육성?
‘그게 그렇게 쉽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그의 일을 나눠 줄 수 있는 새로운 인재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좀 못 미덥고 비효율적이 되더라도 일을 분산하는 게 옳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말이 쉽지!
‘언제 먼 미래를 보고 있냐고!’
당장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태를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유지하고 있는 총회에서 뭐? 미래?
‘그런 꿈같은 소리가 어딨어!’
당장 일처리가 우선이지!
예전에 이현주가 그의 일을 좀 나눠 줄 때는 한동안 살 만했지만, 이현주가 MK로 가버리고 나니 다시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제는 사무직들이 재경에서 연수를 받고 나름의 체계를 잡기 시작해서 일에 치여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하루 자리를 비웠다고 이렇게 개판이 날 줄이야.”
돌아가면 진짜 다시 단단히 교육을 해야…….
“오빠.”
“응?”
“그거, 오빠 착각이야.”
“……뭔 소리야?”
이현주가 피식 웃었다.
“이번에 오빠가 중국에 며칠 다녀왔다고 총회가 망했어?”
“…….”
“아니지?”
이현수의 입가가 실룩였다.
그러자 이현주가 그거 보라는 듯 피식 웃었다.
“일 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누가 죽는 줄 알거든.”
“아니. 내가 먼저 연락을 한 게 아니잖아. 얘들이…….”
“오빠가 그렇게 일을 하니까 그 사람들도 오빠한테 혼날까 봐 전전긍긍해서 일단 연락부터 하는 거 아냐.”
“으으음…….”
“이건 서로 죽는 짓이야. 자.”
“응?”
“휴대폰 이리 내.”
“……아니, 내 휴대폰은 왜?”
“알았으니 이리 내세요.”
“이건 프라이버시…… 네, 드리겠습니다.”
이현주가 이현수의 휴대폰을 받아서 전원을 껐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방 안에 던져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현수가 입맛을 다셨다.
“자, 지금부터는 회사를 잊으세요.”
“그게 생각처럼…….”
“걱정하지 마. 연락이 안 되면 강제로 잊게 될 테니까. 그럼 아침부터 먹으러 가자, 오빠.”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괜찮을까?’
불안하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에게는 이현주의 가방 안에 있는 휴대폰을 뺐을 힘이 없다.
“어때?”
“응?”
“생각보다 괜찮았지?”
“으음…….”
이현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서쪽 바다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해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침만 해도 회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싶어서 발이 동동 구를 지경이었는데, 막상 오후쯤 되니 나름 마음이 편해졌다.
‘휴대폰이 요물이구나.’
사람이 기계에 종속되서 사는 세상이라더니, 휴대폰을 하루 꺼두고 나니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오빠나 회주님이나 너무 일을 과하게 하려는 경향이 좀 있어.”
“알아.”
“좀 쉬어가며 해도 될 텐데……. 아니, 아니다. 이런 말은 의미 없는 잔소리밖에는 안 되지.”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래서 무섭다니까.’
여자 친구가 그가 하는 일을 알고 이해해 준다는 건 대부분의 경우는 힘이 되는 일이지만, 때로는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빤히 안다는 소리니까.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이현수가 석양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나라고 해서 평생 이렇게 살 생각은 아니니까. 결혼했는데 집에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남편이 되고 싶지는 않아.”
“그랬다간 죽지.”
“……농담으로 안 들리는데?”
“농담 아니야.”
“……네.”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나나 회주님이나 평생 이렇게 총회에 얽매여 살 생각은 없어. 솔직히 그 양반이나 나나 빨리 은퇴해서 노후나 즐기는 게 인생의 목표 중 하나니까.”
“그걸 믿으라고?”
“우린 지금 완벽한 연금을 만들고 있는 중이지.”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그 연금이라는 건 내부적인 이익 창출보다 외부의 위협이 더 문제거든. 외부만 해결할 수 있으면 언제 손을 떼도 상관이 없지. 거기까지 가는 게 힘든 거야.”
“……힘든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외부에 적이 없는 상태면 그게 세계 정복이랑 뭐가 달라?”
“비슷하지.”
이현수가 희게 웃었다.
“하지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시는 분이 내 위에 있거든. 그러니 별수 없지. 말도 안 되는 꿈이라고 해도 일단은 들이받아 보는 수밖에. 그게 직장인의 역할 아냐? 까라면 까는 것.”
참 뭐랄까.
별것 아닌 것처럼 말을 하는데, 따지고 보면 어마어마한 스케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현수가 그녀를 꼬시기 위해서 허세를 떨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현수가 하고 있는 말은 거의가 진실이었다.
“얼마 안 걸릴 거야.”
“진짜 얼마 안 걸릴거라고 생각해요?”
이현주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응. 얼마 안 걸릴 거야. 이건 내가 미루고 싶다고 해서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곧 결론이 나겠지.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옳았는지, 내가 제대로 해왔는지.”
이현수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마지막 시험을 앞에 두고 있으니 밤을 샐 수밖에. 벼락치기가 좋은 공부법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없을 때는 최고의 공부법이니까.”
“그래서 성적표를 받아보시겠다?”
“그렇지.”
이현주가 가볍게 웃었다.
“어차피 성적 같은 건 신경도 안 쓸 거면서.”
“…….”
이현주는 안다.
이현수가 말한 두 가지 중 그가 제대로 해왔는지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옳은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결과와는 상관 없을 것이다.
이현수는 목이 잘리는 그 순간에 와도 강진호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한 번씩 질투 난다니까.’
이현주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두 사람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 아마 이 기분은 그녀뿐 아니라 최 이사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남자와 남자의 영역과 남자와 여자의 영역은 분명 다르지만, 때로는 저들만이 가지고 있는 영역이 너무도 빛나 보여 눈이 부실 때가 있다.
‘나도 속이 좁네.’
축하는 해주지 못할망정 질투라니.
이현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네, 좋은 성적표 받으시길…….”
“그러니까 그때가 오면…….”
“응?”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이현주를 똑바로 바라봤다.
“결혼하자.”
“…….”
뜬금없이 터져 나온 프로포즈에 이현주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현수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많고,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아. 너도 네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아직은 좀 이르지. 하지만 정말 머지않아 너도 나도 삶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순간이 올 거야. 그리고 내 삶에 여유가 생기면, 그건 너로밖에 채울 수 없어.”
“…….”
“그때 가서 다시 말하겠…….”
“아니, 좀!”
“응?”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라고, 인간아!”
이현수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현주는 그런 이현수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빨갛게 익어버렸을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다.
‘진짜 못말린다니까.’
무드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머릿속에는 계산밖에 없는 인간이 한 번씩 오류가 나는지 이런 일을 무턱대고 저지른다.
“가!”
“응? 어딜?”
“해…… 해 다 졌잖아! 이제 차 타고 저녁 먹으러 가야지!”
“야, 대답은?”
“대답은 무슨 대답이야! 대답은 그때 가서 들어.”
“거, 대답하는 게 뭐 그리 어렵……. 아, 같이 가!”
이현수가 재빨리 이현주의 뒤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앞서가는 이현주의 발걸음이 너무 빨라서 이현수로서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같이 가자니까!”
이현주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경공을 펼쳐 앞으로 뛰쳐 나간다.
‘진짜 때리고 싶다.’
할아버지, 어떻게 해요?
진짜 이상한 사위 맞이하게 생겼는데. 나중에 저승에서 보고 패지 말고요. 저 사람 약해 빠졌으니까.
이현주의 입가에 어찌할 수 없는 미소가 피어난다.
그렇기 때문일까.
평소의 그녀라면 어쩌면 감지했을지도 모를 거리에서 흘러나온 미약한 살기를 지금의 그녀는 놓치고 말았다.
“결행합니까?”
“해가 지면.”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이들의 시선이 서쪽으로 향한다. 어슴푸레져 가는 해를 본 이들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