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09
#1708.
공격받다 (3)
“좋아?”
“흐으으음.”
이현수의 시선이 바다 위로 향했다.
해안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확실히 그 느낌이 달랐다. 감흥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해안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배 위의 바다와 비교할 만한 게 아니었다.
‘발이 바닥에 붙어 있지 않아서 그런가?’
물론 배의 갑판도 바닥은 바닥이지.
흔들리는 바닥 말이다.
“반응이 영 미적지근하신데? 해외도 심심하면 나가시는 분이 겨우 제주도라 실망하셨나?”
“해외를 심심하면 나가?”
“자주 갔잖아?”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그게 다 여행이 아니라서 그렇지.
“유럽에, 미국에, 일본에, 중국에, 몽골……. 몽골은 그걸 갔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국경 안으로 발을 들인 것은 사실이니까.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들른 나라만 따지자면 거의 프로 여행러 수준이다.
“나름 전문가 아냐?”
“……관광지는 들러보지도 못했어. 그리고 그중에 피 안 보고 돌아온 곳은 겨우 미국 정도뿐이라고.”
그걸 피를 안 봤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말이다.
“일과 관련없이 쉬러 나가는 걸 여행이라고 칭한다면, 나도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야.”
“국내도 안 가봤어?”
“응.”
이현주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면 이현주는 이현수에 대해서 아는 게 딱히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냐고?
물론 이현주는 이현수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제 세상을 다 뒤져도 이현주보다 이현수를 더 잘 아는 사람이라봐야…….
‘아니, 내가 회주님은 이길 수 있나?’
이거 미묘하다.
여하튼 강진호를 제외한다면 이현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이현주였다.
하지만 이현주가 아는 이현수는 영남회의 이인자에서 시작한다. 그전에 이현수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는 게 없다.
“오빠.”
“응?”
“내가 조금 그래서 안 물어봤는데, 오빠는 가족이 없어?”
“응.”
너무도 담담하게 돌아온 대답에 이현주가 살짝 겸연쩍은 얼굴을 했다.
“돌아가신 거야?”
“아냐. 나 고아야.”
“응?”
이현주가 눈을 끔뻑였다. 이런 말은 처음 듣는다.
“……미안.”
“왜?”
“어…… 민감한 부분인 것 같아서.”
“왜?”
이현수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자, 이현주가 살짝 당황했다.
‘이거, 연기가 아닌 것 같은데…….’
태연을 가장하는 사람에게는 미묘한 이질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이현수에게는 그런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고아라며?”
“그게 왜?”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사람은 다 다르게 사는 거지. 부모가 있고 없고가 뭐 그렇게 대단한 요소가 되나? 결국은 다 없어지는 건데.”
“헐…….”
“으음, 물론 어릴 적에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해서 내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 건 문제지만, 뭐, 딱히 돈 버는 게 어려웠던 적은 없으니까.”
“원망 같은 건 안 해?”
“원망? 엄청 감사하고 있지.”
이현수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좋은 집안에서 멍청이로 태어나는 것보다는 똑똑한 머리로 사회에 던져지는 쪽이 훨씬 낫거든. 부모가 준 머리로 잘 먹고 잘살고 있으니 감사해야지. 뭐, 이건 내가 잘난 거지만.”
“……오빠.”
“응?”
“진짜 재수 없는 것 알고 있지?”
“하하, 농담도.”
진심이야, 이 새끼야.
이현주가 복잡한 심경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걸 불우한 가정사에 개의치 않고 성공하고 있는 기특한 남자 친구로 봐야 할지, 그 불우한 가정사를 짊어지고도 충분히 재수 없을 수 있는 인간으로 봐야 할지.
‘여하튼 보통 인간은 아니야.’
그녀의 남자 친구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이현수는 총회를 통틀어도 독보적인 캐릭터였다.
“오빠는 정말 쉽게 안 죽겠다.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 오래 살아야지.”
“그렇게 따지면 나는 불로불사야.”
“……미친.”
이현주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내가 진짜 이런 인간이랑 만나도 되나?’
쾌청하기 그지없는 하늘에서 이중걸이 그녀를 보며 아련하게 욕을 해 대고 있는 것 같다. 당장 떨어지라고.
‘할아버지, 미안해요.’
그래도 어쩌겠어, 좋은데.
본인의 취향도 참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하며 이현주가 고개를 내저었다. 한때는 왜 자기가 이런 막장 인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고민하던 시절도 있지만, 이제는 대충 결론을 내렸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참 무성의한 결론이지만, 그것 외에 다른 결론은 내릴 수 없었다.
“오빠.”
“응?”
“아니야.”
이현주가 빙그레 웃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내가 왜 지금 제주도에 가고 있는가’라는 얼굴을 한 이현수가 더없이 귀엽게 느껴졌다.
“아오,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평일인데도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주말에는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지금 성수기도 아닌데, 대한민국에 놀러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 어떻게 하냐. 하, 진짜 이러니 문제지. 나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죽어라 일하고 사는데,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놀러 다니고 있었네. 이러면서 불경기다 어쩌다 하니까 세상이…….”
‘제발 닥쳤으면 좋겠다.’
이현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배 위에서 높아진 호감도가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었다. 이런 과격한 호감도 그래프의 요동을 본다면, 주식을 하는 사람은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이래서 내가 안 온다고 했는데. 회주님은 뭐 하러 사람을 이런 데다 보내서 고생을 시키는 건지 모르겠네. 힐링이 뭐 별건가, 집 소파에 드러누워서 넷플릭스 켜놓고 커피나 마시면 그게 휴가…….”
“저기요, 이현수 씨.”
“네?”
“그러다 맞으면 혀 잘릴 수도 있으니 진정하세요.”
“……네.”
이현수가 얌전히 입을 닫았다.
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현주는 지금 자신이 한 말을 실행할 수 있는 무력과 의지를 동시에 갖춘 사람이다.
“원래 여행지란 그런 거야.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피곤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아쉬운 거지. 이해해?”
“너는 여행 많이 가봤어?”
“아니. 이번이 처음인데?”
“…….”
이현수가 눈을 찌푸리고 자신을 바라보자, 이현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여행은 무슨 놈의 여행이야. 그럴 시간에 수련이라도 더 해야지. 할아버지가 들었으면 저승에서 버럭하고 화를 냈을걸?”
“지옥까진 안 들려.”
“이게 뒈지려고!”
이현주가 이현수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가볍게 걷어찬 것에 불과하지만, 이현수는 골반이 척추에서 분리되는 충격을 받고 차를 움켜잡았다.
‘절대 부부싸움은 하지 말아야지.’
아니, 그전에 결혼부터 다시 생각을 해봐야…….
“머리 돌아가는 소리 들리는데?”
“아닙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백치입니다.”
“진짜 백치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슬슬 운전하지?”
“네!”
이현수가 쓴웃음을 짓고는 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거, 차가 좀 불편한 것 같은데…….”
“이거, 너 팔아도 못 사! 어디 회주님이 주신……. 응. 나도 좀 좁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커플링을 낀 손이 살짝 말려 ‘주먹’이라는 형태를 취하자, 이현수가 급격하게 온화해졌다. 저 반지 낀 주먹에 맞으면 두개골에 구멍이 뚫린다.
강제적으로 뇌압을 낮출 계획이 없다면 입을 닫는 게 현명했다.
“요즘 슬슬 기어오르십니다, 이 실장님. 직위가 높다고는 하지만, 여기는 무인계잖아요. 주먹질 잘하면 장땡인 동네에서 목이 좀 높으시네요.”
“……당신, MK 소속이잖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때려치우면 그 순간부터는 총회 소속 되는 거니까.”
“……알아 모시겠습니다.”
한국을 통틀어 보면 이현주보다 강한 여자 무인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현주처럼 폭력과 권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무인은 없다.
그러니 알아서 기어야 한다.
“어휴, 내가 진짜. 도움받은 것만 아니면 벌써 세 번은 지하실로 끌고 갔을 텐데.”
“그래. 내가 많이 도와줬지. 신경도 많이 써주고. 알아서 모셔.”
“뭐가 도움된 건지는 알고?”
“여러가지로?”
“……출발해. 여러 가지로 패버리기 전에.”
“넵!”
슬며시 액셀을 밟는 이현수를 보며 이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여하튼 머리는 비상하면서 이상한 부분에서 눈치가 없다니까.’
이현주가 자신의 출신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외에 가장 큰 도움이 되어준 이는 둘이다.
하나는 그런 이현주를 의심 없이 써준 강진호.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이현수다.
‘이 양반은 모르겠지, 자기가 나한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물론 이현수가 이현주를 딱히 신경 써준 건 아니다. 이현수는 그럴 인간이 아니니까. 바퀴벌레라도 쓸모가 있으면 쓰고, 성인군자라도 쓸모가 없으면 바로 걷어찰 인간이 이현수 아니던가.
하지만 이현수는 그 존재만으로도 과거 이중걸파로 분류되는 이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
저 강진호를 적대하고도 살아남은 이들.
원래라면 다 숙청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나야 할 이들이지만, 총회의 최중심에 영남회의 이인자였던 이현수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불만이 있는 이들도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이중걸의 잔당들을 저리 활개치게 내버려 둬도 되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그럼 이 실장님은?’이라는 말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설의 실드, 살아 있는 인간 방패.
만약 이현수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현주는 절대 지금처럼 중용받지 못했을 것이다. 설사 강진호에게 그런 편견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방진훈을 위시로 한 이사진과 총회의 실무진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묻어버렸을 테니까.
“실장님.”
“응?”
“고마워요.”
“……응?”
이현수가 불안함이 잔뜩 담긴 눈으로 이현주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 ‘빌어먹을, 내가 또 뭘 잘못했지?’라는 표정이 피어나는 걸 본 이현주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뭔가 잘못됐어, 이건.’
아무래도 그와 그녀의 관계를 근본부터 다시 뜯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우선은 수틀리면 팬다는 소리부터 그만해야지.’
이러다가 저놈이 정말 무서워서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물론 도망간다고 순순히 놔줄 그녀는 아니지만, 여기가 뭔 고대 몽골도 아니고, 도망가는 사람을 잡아서 납치혼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오빠.”
“응?”
“일단은 정말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자.”
“……그래야지.”
“놀 때는 확실하게 놀고, 쉴 때는 확실하게 쉬고, 일할 때는 확실하게 일해야지. 그래야 재충전도 되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이번 여행 동안은 다른 생각 하지 마. 알았지?”
웬일로 이현수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나도 정말 쉬러 온 거니까.”
이현수의 말에 이현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도, 이현수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쉬고 싶어 하지만, 쉰다는 건 자신의 의지대로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제대로 쉬어본 적 없는 이들이 하는 전형적인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