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23
#2022.
경탄하다 (2)
환영?
아니면 실체?
파악할 시간이 없다. 확실한 것은 수십으로 분열한 마스터가 각기 다른 형태로 검을 휘둘러 오고 있다는 점이다.
“읏.”
환사의 손이 재빠르게 주인(呪印)을 맺는다.
그의 몸에서 뻗어 나간 기운들이 주위를 지키며 도는 부적들에게 빨려 들어가며 기의 막을 더욱 강화시켰다.
채애애앵!
검이 방어막에 떨어지는 순간, 유리잔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환사의 몸이 크게 한 번 휘청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스터가 만들어낸 환영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정말 살아 있는 이처럼 제각각 움직이며 연이어 공격을 해온다.
‘불가능해!’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설사 그 육신은 분열할 수 있다고 해도 저 손에 들고 있는 무기가 여러 자루일 리는 없잖은가.
“갈!”
환사가 손을 좌우로 펼치는 순간, 휘돌던 부적들이 사방으로 솟구친다. 그와 동시에 그의 부적에 격중된 환영들이 순식간에 거품처럼 꺼지며 사라졌다.
“…….”
남은 것은 뒤쪽으로 물러난 마스터의 본체뿐.
검을 어깨에 걸친 마스터가 남은 한 손을 제 얼굴에 대고 뭔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매개체를 마나로 서로 이어놓은 거로군. 선으로는 강하지만, 면으로는 약점이 있는 건가.”
“으음.”
환사가 눈을 찌푸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환영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환영과는 뭔가 달랐다. 자신들의 환영은 상대의 정신을 파고든다. 하지만 저자는 그에게 딱히 어떤 수작도 부리지 않았음에도 환영을 만들어냈다.
그건 그의 뒤쪽에 있는 십이비도의 반응만 봐도 분명한 일이다.
십이비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보고 있다. 만약 저 환영이 그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면 저들의 반응은 지금과는 달랐을 터.
“환영이 공격을 한다라…… 그럴 리는 없을 테고. 검끝을 발출한 기운과 동화시켜 놓은 건가?”
“그건 영업 비밀이라 말해줄 수 없겠군.”
“…….”
환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우윳빛 동공이 꽤 여유를 되찾은 마스터를 가만히 응시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고 해서 살아 있을 리는 없다. 환영에게 의지가 있을 리도 없지.’
그럼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저자는 애초에 저 환영들의 움직임을 미리 다 만들어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략적인 패턴은 이미 다 짜놓은 상태에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형한 패턴을 사용한다는 의미겠지.
비밀을 밝혀냈지만, 오히려 놀라움이 밀려왔다.
전투 시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건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수십이 아니라 수백 개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때마다 수십 명의 움직임을 모조리 패턴화해 머리에 박아놓은 채 적절하게 꺼내 쓴다는 게 어디 인간의 두뇌로 가능한 일이던가.
‘경이적이로군.’
이건 무학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감탄이었다.
환사 역시 자신이 무적이라 생각하는 이는 아니다. 그보다 강한 이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상대의 무학에 감탄하는 일이야 흔한 일이지만, 상대의 두뇌에 감탄하는 일은 웬만해서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달리 봐야 할 모양이로군.”
“그럴 기회가 있다면 말이지.”
“음?”
그 순간, 마스터의 룬검이 새하얀 빛을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환사가 선 바닥에서도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느새 그가 선 곳을 중심으로 기괴한 문양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새?’
“받아보게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바닥에서 화염이 솟구쳐 오른다. 그야말로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거대한 화염이 환사의 육신을 말 그대로 집어삼켰다.
“하나 충고하지. 눈으로 보는 것에 현혹되면 발밑을 놓치는 법일세.”
마스터가 싱긋 웃었다.
“말 그대로 말이지.”
* * *
“저게 뭐…… 저…….”
식당에 앉아 TV 화면을 보고 있던 이들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게 현실이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전, 처절하기 짝이 없는 승부를 두 눈으로 지켜봤다. 그건 분명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은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영역에 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로 채찍을 휘둘러 대고, 사람이 제 팔이 뜯겨 나갈 상황에서도 달려들어 얼굴을 물어뜯고, 사람의 목이 단번에 날아가는, 끔찍하고도 처절한 광경을 보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현실을 초월하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화염을 뿜어내고, 눈보라를 몰아치고, 수십 명으로 분열하고, 또 용암 같은 불꽃을 바닥으로부터 쏘아 올린다는 말인가.
‘이걸 믿으라고?’
이젠 의심부터 생긴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저런 광경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는 걸 믿으라고 하는 게 오히려 더 말이 안 된다.
휴대폰을 연 사내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 조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지랄을 하고 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현실이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특수 효과 빠방한 것 보소. 돈 좀 썼나 보네
― 감독 누구냐? 특수 효과 클라스에 비하면 앵글이 영 개판인데, 제대로 된 놈으로 좀 쓰짘ㅋㅋㅋㅋㅋㅋ
― 크으, 천조국 CG 클라스!
― 이거 대체 뭐 하는 짓임?
대부분의 반응들이 이 상황을 부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당연한 반응이다.
다른 커뮤니티의 반응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온 나라들이 합심해서 조작을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래서 대체 얻는 게 뭐겠습니까?
― 안 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 저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한통속이 되어서 한마음, 한뜻으로 국민들을 속인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폭로하는 쪽이 막대한 이득을 가져갈 텐데, 그 나라들이 적과의 동침을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 물론 그건 현실성이 없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제가 눈으로 보는 광경이 더욱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그럼 님께서는 정말 저게 현실이라고 믿으시는 겁니까?
― 저도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가 더 어렵네요.
커뮤니티뿐만이 아니다.
포털 뉴스의 기사 댓글부터 시작해서 SNS까지. 너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난리가 나 있었다.
“아니, 저게…….”
그리고 그 반응은 단순히 웹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식당에 앉아 있던 이들의 입에서 떨림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저게 말이 되나.”
“사기 아닐까요?”
“저걸 사기 쳐서 뭐 하게?”
“……저 테러범 놈들이 핵을 가지고 있잖습니까. 협상을 해야 하는데 괜히 민망하니까 저만큼 위험한 놈들이라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려는 거 아닐까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럼 저놈들이랑 미리 짜고 촬영을 했다는 건데, 그 정도 관계라면 애초에 저길 장악한 놈들도 각국이랑 한패라는 의미잖아.”
“그게 또 그렇게 되네…….”
“그럼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지금 몇몇 나라들은 지지율이 폭락해서 수상이 길거리로 끌려 나올 판이라던데, 그 양반들이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하, 미치겠네.”
현실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는 건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저 무인이라는 새끼들은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
막연하게만 생각해 오던, 무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잡혀가고 있었다. 귀로 백 번, 천 번을 들어봐야 눈으로 한 번 보는 것만 못한 법.
아무리 듣고 읽어도 무인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던 이들에게 이 영상은 머리를 직접 열고 들어오는 것과도 같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저럼 군대도 소용없는 거 아냐? 저런 괴물들을 총으로 상대할 수 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총이 안 되면 대포로 쏴버리면 그만이지. 그래봐야 사람인데 무기가 안 먹힐까 봐? 저 새끼들이 대포를 이길 수 있으면 벌써 일을 벌였겠지. 그게 안 되니까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 아니냐고.”
“그, 그렇겠지?”
테이블에 앉은 사내중 하나가 사색이 된 얼굴로 말한다.
“그런데…… 그러면 저 사람들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 저런 사람들이랑 어떻게 같이 살아요? 내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타 죽을 수도 있다는 건데.”
“…….”
묘한 침묵이 흐른다.
사람이란 폭력 앞에서 나약한 존재다.
누구라 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할 때, 그가 맨몸인 것과 손에 칼을 들고 있을 때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는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어느 만큼의 폭력을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지는 법이다.
그건 칼이고, 또 총이고, 어떨 때는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짓누른다.
하지만 저들은 개개인이 그런 작은 폭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다. 정말 그런 이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뭐,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도 같이 어떻게 살아온 거잖아. 근데 뭐 별다를 거 있겠어?”
“몰랐으니까 가능하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게 되겠어?”
“…….”
“그리고…… 생각해 봐야 한다니까. 정말 아무 일 없던 건지. 일 년에 실종되는 사람의 수가 얼만 줄은 알아? 그 사람들 중에 저 새끼들이 쓱싹해 버린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
“아니, 그건…….”
“나는 저런 새끼들이랑은 같이 못 산다니까. 저 새끼들 다 죽여 버려야 돼!”
사람들의 얼굴에 혼란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호기심을 가졌고, 누군가는 공포에 질렸다. 누군가는 극단적인 말들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변해갈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같은 화면을 보았지만, 그 반응은 각기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모두가 무인이라는 존재들에 대해서 저 나름의 시각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아니, 그런데 그럼…….”
“응?”
“저 중에서 대체 누가 이기는 게 우리 쪽에 좋은 건데?”
“……으응?”
“저 새끼들, 서로 싸우고 있잖아. 이긴 놈이 저쪽을 대표한다며? 그럼 누가 온건판데?”
사람들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지금까지 싸움을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은 것이다.
“기사에 나와 있지 않을까?”
“차, 찾아보자.”
사람들이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들기 시작한다.
반쯤은 영화를 보듯 화면을 감상하던 이들이 이제야 저 싸움이 자신들의 삶을 뒤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변화의 방향이 과연 세상을 이롭게 할지, 아니면 세상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 세상은 분명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바뀐 세상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
세계가 들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