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96
#2095.
이해하다 (5)
끼이이이이이익!
차가 격렬한 브레이크음을 내며 멈춰 섰다.
보조석에 탄 고한봉이 앞쪽을 바라보고는 눈을 찌푸렸다. 전차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서 차로는 진입이 불가능하다.
“더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여기서 내려야…….”
고한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연하가 문을 열어젖혔다.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우산 같은 걸 챙길 정신은 없다. 조금 전부터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이젠 어딘지 물을 필요도 없다.
눈에 보이는 모두의 시선이 오직 한 곳을 향해 있었으니까. 이들이 바라보는 쪽에 강진호가 있다.
최연하가 다짜고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뒤쪽에 있는 강진호의 가족들을 대동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슴에서 치미는 충동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척!
그녀에게 수십 개의 총구가 겨눠졌다. 최연하가 흠칫 떨며 뒷걸음질 치는 순간, 가까이 있던 군인 하나가 다가와 그녀의 목 바로 아래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자, 잠시만요!”
고한봉이 기겁을 하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차량 두 대로 이동하느라 경호원을 대동하지 못한 상황. 함부로 나선다면 그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고한봉은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저는 대한민국의 총리인 고한봉입니다. 책임자를 불러주십시오!”
어설픈 중국어로 재빠르게 말을 했지만, 군인들의 눈빛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헛소리 지껄이고 있네. 수상한 놈들이다. 모조리 끌고 가!”
“자, 잠시만요.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시면!”
“주둥아리 닥쳐!”
신경이 극한까지 날카로워진 군인들이 다짜고짜 그들을 끌고 가려 하는 그때였다.
“이것들이 미쳤나.”
우득!
누군가가 최연하에게 겨누어진 총구를 움켜잡고 그대로 비틀어버렸다. 강철로 만들어진 총구가 엿가락처럼 휘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군인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윽고 나타난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맹수 같은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이 개새끼들이!”
쾅!
공영길이 앞의 군인을 격하게 걷어찼다. 날아온 군인들과 충돌한 이들이 볼링공에 얻어맞은 볼링핀처럼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공영길.”
공영길이 막 고함을 내지르려는 찰나, 그의 뒤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렸다.
“오버하지 말고 비켜.”
“……씨발.”
공영길이 짜증 어린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마염들이 두 눈에 혈기를 담은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이 개새끼들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최연하에게 총구가 겨눠지는 순간, 마염들에게서 살기가 치솟았다. 공영길이 나선 이유는 어떻게든 그들이 직접 손을 쓰는 사태만은 막기 위해서였다.
저들이 손을 쓰면 자신이 나서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알았으니까 비켜. 너까지 뒈지기 싫으면.”
“말귀를 못 알아 처먹냐?”
공영길이 막 눈을 부라릴 때, 최연하의 입에서 짜증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 말에 마염들이 최연하를 돌아보았다.
“우리끼리 싸울 시간 있으면 빨리 길이나 열어요!”
“예, 이사님!”
마염들이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이것들 뭐야?”
“바, 발포합니까?”
군인들이 당황할 때, 누군가가 무전을 받고는 크게 소리친다.
“통과! 통과시키랍니다!”
“뭐?”
“당장 통과시키랍니다! 정중하게!”
위병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는 이해할 필요가 없다. 내려온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니까.
“통과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최연하가 강진호의 가족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염들이 재빨리 그들의 주변을 호위하듯 둘러쌌다.
“휴우.”
공영길의 입에서 거친 숨이 토해져 나온다.
‘빌어먹을 놈들.’
대체 여기서 사고를 쳐서 어쩌자는 건가.
일반인들이 무인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이 한 장면에서 다 나온다. 평범한 인간은 상대가 강압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즉각적인 보복을 하려 들지는 않는 법이니까.
물론 마염들이 무인 중에서는 특별하게 과격하다고는 해도……. 공영길도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저들과 그리 다를 게 없을지 모른다.
그 도무지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간극을 느끼며 공영길이 재빨리 앞서 달려간 이들을 뒤따랐다.
‘빨리!’
최연하가 더 빨리 달리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발을 재촉했다.
몰아치던 폭풍이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폭풍이 멎는다는 건 언제고 좋은 징조여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최연하는 그 사실이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는 전차들 사이를 빠져나온 그녀의 눈에 거대한 인의 장막이 들어온다.
하지만 최연하가 딱히 나설 것도 없이 마염들이 먼저 움직였다.
“비켜!”
앞으로 달려 나간 마염들이 순식간에 길을 열어젖힌다. 순간적으로 노기에 차 고개를 돌린 이들이 마염들이 뿜어내는 살기에 기겁을 하며 물러난다.
그들이 실력이 감히 자신들과 비할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질이 그들의 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강진호와 흑왕이 뿜어낸 투기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버린 이들에게 마염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열린 길을 따라 최연하가 달렸다.
어지럽다.
갑자기 나타난 군인들도, 그 군인들 너머에 있는 이 사람들도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최연하는 달렸다.
“어, 언니! 같이 좀…….”
최연하가 고개를 돌려 강은영을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강은영의 손을 움켜잡은 최연하가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그녀의 눈에 드넓기 짝이 없는 대지가 드러났다.
“…….”
최연하의 발이 점점 느려졌다.
넓디넓은 평야. 딱히 이상할 건 하나도 없음에도 묘한 위화감이 드는, 그런 땅이었다.
그리고 최연하는 금세 자신이 느끼고 있는 위화감의 정체를 이해했다.
‘없어.’
인공적인 건축물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땅. 하지만 그곳에는 자연적인 것조차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만큼 드넓은 대지라면 당연히 존재해야 할 풀 한 포기조차.
진부한 표현이지만, 죽음의 대지라는 말을 써야 한다면 바로 이런 곳에 써야 할 것이다.
최연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땅이 처음부터 이런 몰골은 아니었을 거라는 사실을. 이곳에는 분명 사람이 만들어낸 무언가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그 가혹하리만큼 낯선 광경이 최연하의 심장을 옥죄어온다.
그 삭막하기 짝이 없는 대지에서 최연하는 익숙한 이들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익숙한 뒷모습 너머에서…….
움찔.
최연하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알 수 있다.
“아…….”
너무도 작아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음에도 알 수 있다. 저곳에 서 있는 이가 누구인지.
‘진호 씨.’
멈췄던 최연하의 발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저 알 수 있었다.
최연하가 홀린 듯이 앞으로 걸어간다.
맞는가.
저 사람이 정말 그녀가 아는 강진호가 맞는가.
맞다. 하지만 아니다.
저 뒷모습은 그녀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하지만 또한 너무도 낯설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저토록 흔들리는 강진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몸을 굽히고 있는 강진호는.
너무도 작고 애처롭다.
그렇기에 낯설다. 그녀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서투르고 멍청하지만, 그래도…… 더없이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람이 지금 무너지고 있었다.
바로 그녀의 눈앞에서.
“아…….”
그녀의 안에서부터 뭔가 울컥한 것이 치밀어 오른다.
절로 손끝이 떨려오고, 눈가가 흐려졌다.
저곳에 있다.
이 삭막하기 짝이 없는 땅 한가운데에 강진호가 홀로 서 있었다.
머리가 채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에 그녀의 발이 홀린 듯 움직였다. 앞으로, 또 앞으로. 저 강진호가 있는 곳으로.
하지만 그때였다.
“아, 안 됩니다!”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최연하가 멍한 얼굴로 옆을 돌아보았다.
“……현수 씨.”
“아, 안 됩니다, 이사님.”
이현수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최연하를 만류했다.
“저긴…… 저기는 안 됩니다.”
최연하의 팔을 잡은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왜?”
최연하가 반쯤 풀린 눈으로 물었다.
알고 있다, 최연하의 이 ‘왜’는 물음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이현수는 대답해야 했다.
“저긴…….”
이현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저긴…… 우리가 끼어들 곳이 아닙니다. 저긴…….”
그 말 말고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현수는 그저 이해해 버렸다.
그건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
저곳에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무인이어서가 아니다. 저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인들이 자존심을 걸고 싸우고 있어서가 아니다. 이현수는 그런 무인들의 자존심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니던가.
무인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저곳에는 끼어들 수 없다.
하지만 최연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놔요.”
“……이사님.”
“놓으라고!”
최연하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의 두 눈에 들끓는 적의가 어렸다.
“제정신이야? 저 꼴 안 보여?”
“…….”
“못 끼어들어? 왜! 왜 안 되는데! 왜?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냥 뒤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고?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현수가 고개를 숙였다.
틀린 것이 아니다.
어쩌면 최연하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말려야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맞다. 누구라도 나서서 저 짓을 멈춰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움켜잡은 채 파멸해 가는 저런 미친 짓거리는 말이다.
하지만…….
“안…… 됩니다, 이사님.”
이현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이 싸움을 지켜봐 온 그이기에 알 수 있었다. 이건 다른 사람이 끝낼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저 둘을 강제로 떼어 놓는다면, 남는 것은 그저 파멸뿐이다.
결착이 필요했다.
강진호에게도, 흑왕에게도.
“현수 씨, 놔봐요.”
“…….”
“놔보라고, 이 새끼야!”
최연하가 악을 써 댔다.
하지만 이현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말할 수가 없다.
그저 믿고 지켜보자는 말조차 할 수가 없다. 지금 그 말은 너무도 무책임한 말이니까.
그러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지 않을 겁니다.”
“…….”
“회주님이…… 회주님이 원치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최연하의 어깨가 흔들렸다.
막 그녀가 무언가를 소리치려던 바로 그때였다.
콰앙!
날카롭고도 커다란 폭음.
그 폭음이 울리는 순간, 최연하와 이현수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보았다.
강진호가 천천히 허물어지는 모습을 말이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강진호가 바닥으로 스르륵 쓰러진다.
“진호 씨이이이이이!”
최연하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