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122
#2121.
내어놓다 (1)
기이이이이잉!
한 대의 차가 고속도로 위를 광속으로 돌진한다. 앞서 달리던 이들이 뒤따라오는 차가 내뿜는 커다란 엔진음에 기겁하여 핸들을 좌우로 틀어 댔다.
“더 빨리 달리라고, 더 빨리!”
“아니, 이 미친 새끼야!”
핸들을 잡고 있는 방진훈이 버럭 고함을 질러 댔다.
“그렇게 급하면 운전 네가 하지, 이 또라이야!”
“저는 운전을 이사님만큼 못하잖아요! 나는 일반인이라고!”
“자랑이다!”
방진훈이 궁시렁대면서도 액셀을 더 힘껏 밟았다. 하지만 이미 한계까지 가속하고 있는 차는 아무리 밟아대 봐야 힘겨운 엔진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도무지 더 빨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차의 속도에 이현수가 쌍소리를 질러 댔다.
“아오, 이 똥차! 뭐가 이렇게 느려!”
“이거 독일 차야, 이 미친 새끼야! 돈이 얼마짜린데!”
“독일 차 꼬라지가 뭐 이래요! 주인 닮은 것도 아니고!”
“근데 이 새끼가 진짜?”
“앞! 앞앞! 아아아아앞!”
“히이이이익!”
빡쳐 고개를 돌린 방진훈이 기겁하며 핸들을 틀었다. 달리던 차가 앞차의 후미를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며 비켜난다.
“운전 똑바로 못해요? 누굴 죽이려고!”
핸들을 잡은 방진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 대체 뭘 어떻게 더 빨리 가라는 거야?”
“지금 회주님이 사고치기 일보 직전이라니까요! 빨리 가야 한다고!”
“그렇게 급하면, 이 새끼야! 차로 갈 게 아니라 헬기를 타고 가든가! 왜 애꿎은 차에 지랄이야!”
“……어?”
방진훈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의 눈에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이현수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 새끼, 진짜 또라인가?”
누가 이 새끼더러 총회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했나. 이건 총회의 평균 지능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었다.
“이, 일단 이렇게 됐으니까 그냥 달리십쇼! 이제 이사님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나가 죽어, 이 새끼야! 너는 영남회에 있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언제 적 이야기를 아직까지 합니까! 거, 텃세 더럽게 부리시네!”
“텃세? 텃세? 너, 말 다했냐?”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와중에 등 뒤에서 매우 열이 받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닫았다.
“주둥아리 좀 닥치고 갔으면 좋겠는데……. 차가 울릴 때마다 좀 불편하거든? 성질 같아서는 천장 뜯어버리고 싶으니까.”
“……이거, 할부도 아직 3년 남았어요.”
“그러니까 닥치라고.”
결코 작지 않은 차에 힘겹게 몸을 구겨 넣고 있던 바토르가 대놓고 으르렁댔다. 룸미러로 슬쩍 그 표정을 본 방진훈이 조용히 입을 닫았다.
“이 돼지 같은 놈아! 좁으니 옆으로 좀 가라!”
“옆? 지금 나한테 옆이라는 게 남아 있을 것 같나, 영감?”
“그러니까 그냥 거기 있으라는 걸 왜 굳이 따라온다고 설쳐 대느냐!”
“……이 영감이 오늘 진짜 관짝에 들어가고 싶나?”
“관짝은 내가 아니라 네가 들어가 있지. 관이 좀 많이 작은 것 같은데?”
방진훈이 기겁을 하여 소리쳤다.
“아, 아니! 성질 긁지 마십시오, 장로님! 날아가는 건 제 차라고요!”
방진훈이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액셀을 질끈 밟았다. 새로 뽑은 지 두 달도 안 되는 새 차가 폐차되는 참사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이 소중한 차에 이런 폭탄들을 셋이나 실었단 말인가.
“그런데…….”
고개를 옆으로 꺾어 겨우 차 천장에 머리를 대고 있던 바토르가 불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이 뇌까지 근육만 찬 멍청이가…….”
장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어디에 가는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차에 탔단 말이냐?”
“그러는 영감은 알아?”
“나야 모르지.”
“……이 영감이 진짜 미쳤나?”
“아악! 들썩이지 마시라고요! 천장 뚫린다고!”
방진훈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러 댔다.
“방송국! 방송국으로 갑니다!”
“방송국?”
바토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려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천장에 머리를 댄 채로 고개를 내저으려니 천장에다 버리를 비벼 대는 꼴밖에는 되지 않은 것이다.
“방송국은 갑자기 왜?”
“그건 우리가 아니라 회주님한테 물으셔야죠. 회주님이 거기에 있다지 않습니까.”
“주인이?”
바토르가 영 모르겠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주인도 이상한 짓을 하는군. 갑자기 이게 뭔…….”
장민이 의아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 실장.”
“예, 장로님.”
“마존께서 뭐라고 하신 건가?”
“그게…….”
이현수가 한숨을 푹 쉬어 댔다.
“저도 정리가 덜돼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확실한 건 회주님이 뭔가 하기 전에 빨리 대화를 좀 나눠봐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런가?”
장민은 이현수가 뭔가를 숨긴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가 아는 이현수라는 이는 이유 없이 말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빨리 밟으라고요!”
“아니, 이 새끼야! 눈알 없어? 앞에 차들 안 보이냐? 이제는 빨리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그럼 차 세워요!”
“뭐?”
“뛰어야지! 뭘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릴 거야!”
“……이거, 진짜 또라인가?”
“그거 정말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차 세워라, 방 이사.”
“……다시 생각해 보니 아주 옳은 결정 같습니다.”
방진훈이 급격하게 핸들을 틀어 길가에 차를 댔다. 그러자 차문이 동시에 열리며 안에 타고 있던 이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아우, 좀 살 것 같……. 너, 뭐 하는 짓이냐?”
차에서 내려 몸을 펴기가 무섭게 제 등에 달라붙는 이현수를 보며 바토르가 눈을 부라렸다.
“업고 가십시오.”
“뭐?”
“저는 느리잖습니까! 그리고 저 없으면 방송국 찾아가지도 못하시잖아요?”
“…….”
“달리십쇼. 빨리!”
“……내가 언젠가는 너 꼭 죽인다.”
바토르가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도 이현수를 들쳐 업었다.
“어느 쪽이야?”
“저깁니다!”
“제길! 꽉 잡아라, 망할 자식아!”
바토르가 이현수를 업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 옆을 장민이 킬킬대며 따라붙었다.
“저기요, 제 차는요? 여기 이대로 두고 가? 저기요! 야, 이 새끼들아!”
그들의 등 뒤로 방진훈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 * *
“……괜찮으시겠습니까?”
방송국 대기실에 앉아 있는 강진호를 보며 고한봉이 걱정스레 물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저보다야 총리님 입장이 더 곤란하신 것 아닙니까?”
“…….”
“감사합니다. 무리한 부탁이었을 텐데.”
“무리라니요.”
고한봉이 제가 쓰고 있던 금테 안경을 슬쩍 밀어 올렸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회주님의 편입니다. 권력을 쥔 양반들에게 꼬리쳐 봐야 돌아오는 것은 그놈들이 던져 주는 간식밖에 더 있겠습니까?”
“……본인도 충분히 권력자 같으신데.”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말을 전한 지 두 시간도 안 돼서 방송사를 섭외하고, 전 세계로 송출할 준비를 마친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고한봉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
“회주님.”
고한봉이 걱정 어린 눈으로 말한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건 전에 회주님이 하신 방송과는 그 궤가 다릅니다. 그때, 사람들은 회주님이란 사람이 아니라 흑왕의 존재와 그들이 겪고 있는 위기에 집중했습니다.”
“…….”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한 번 더 같은 일을 해버리게 되면, 사람들은 회주님이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하게 될 겁니다.”
고한봉이 자꾸만 안경을 고쳐 쓴다. 타들어가는 속내를 드러내듯이.
“저 위에 앉아 있는 양반들도 마찬가지겠지요. 회주님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막으려 들 수는 없겠지만…… 그들과 협의하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회주님을 불편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조용히 뇌까리는 듯한 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강진호는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그래도…… 정말 하시겠습니까?”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닙니다.”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저는 조금 소심한 사람이라서…… 될 수 있으면 조용히 사는 쪽을 선호하거든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고한봉도 이제는 강진호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막후 세력인 총회의 회주 강진호가 아니라 인간 강진호를 말이다.
만약 그를 뒤흔든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강진호는 그저 작은 카페의 주인으로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가 전 세계에 자신을 알리고, 세상에 휩쓸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그런데 이건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강진호의 두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저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이의 눈이다.
고한봉은 오랜 정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저런 눈을 한 사람은 자신의 뜻을 꺾지 않는다. 설사 그 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해도 이미 각오를 굳혔으니까.
“……그러시다면 더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걱정도 되실 텐데.”
방송을 준비해 달라는 말을 한 이후부터 고한봉은 단 한 번도 강진호에게 대체 뭘 하려는 것인가 묻지 않았다. 지금 고한봉의 걱정은 그저 강진호가 전면에 나서는 것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야 뭐…….”
고한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회주님께서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사실 제가 회주님의 혜안을 짐작한다는 게 부질없는 짓이기도 하고.”
“혜안까지야…….”
강진호가 어색한 표정을 짓는 순간, 대기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아니, 회주님!”
문을 거의 박차고 들어온 이현수가 고한봉은 보이지도 않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강진호에게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제정신이십니까? 돌으셨어요?”
“…….”
일국의 총리가 힘겹게 올려놓은 강진호의 권위가 낭떠러지 아래로 수직낙하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뭔 생각을 좀! 아니, 혼자서 생각을 못하시겠으면 상의라도 좀!”
“아니…….”
“대책 없이 저지르면 그거 수습은 누가 다 합니까! 아니, 사람이 뒤를 좀 생각하고 일을 벌여야 하…… 아아악!”
장민이 이현수의 얼굴을 움켜잡아 뒤로 날려 버렸다.
“……버르장머리.”
이를 으득으득 갈아대는 장민을 본 이현수가 절로 어깨를 움츠렸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방송 시간 다 됐습니다. 준비하셔야 합니다.”
그때, 열린 문으로 피디가 얼굴을 내민다. 그러자 강진호가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가 빙그레 웃는 낯으로 방 안에 있는 이들을 돌아보았다.
“남은 건 다녀와서 하도록 하지.”
“회주님…….”
이현수의 눈이 흔들렸다.
“아니, 이건…….”
뭔가 말을 더 하려던 이현수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이곳까지 오면서는 어떻게든 강진호를 말릴 생각만 가득했지만, 막상 평온한 강진호의 얼굴을 보니 차마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강진호가 말없이 이현수를 보며 빙긋 웃었다.
천천히 걸어와 이현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준 강진호가 그를 지나치면서 작게 말했다.
“새삼스럽게.”
“…….”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이현수가 이내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십시오.”
“그래.”
그렇게 강진호가 문 뒤로 모습을 감추고도 이현수는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