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45
#244.
잡아채다 (4)
“……저 새끼, 뭐라는 거야?”
목소리는 호기로웠다.
하지만 그 끝이 살짝 떨려 나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뭔가 좀 이상한데…….’
상황이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사냥꾼이고, 성공적으로 사냥감을 몰아넣는 것에 성공했다.
그런데 구석으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한 사냥감이 입구를 틀어막더니 그들을 보며 웃고 있다.
마치 사냥감은 그가 아니라 자신들이라는 듯이 말이다.
평소라면 웃었을 것이다.
허세에 쫄 만큼 그들은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비공식적으로 그들이 처리한 무인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건 뭔가 이상했다.
아까부터 자꾸 가슴이 조여온다.
강은영을 잡아넣는 것까지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저 강진호가 문을 들이받으며 등장하는 순간부터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만 해도 여덟이나 된다. 그 많은 인원이 있는데 갑자기 등장한 한 놈 때문에 불안함을 느낀다고 솔직하게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강진호가 문을 틀어막고 웃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가슴에 불안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더 격렬하고 확연하게.
이재석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떨려오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오늘 이 임무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현수가 심각한 얼굴로 목표가 한 놈이라고 말했을 때는 혹시나 머리가 돌아버린 줄 알았다.
그도 당연한 것이, 그들이 한 사람 때문에 이만큼이나 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 때문에 열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이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그놈을 바로 처리하지 않고 외곽으로 유인해 내야 한다는 것에는 더욱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그들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단 하나.
회장님의 명령.
노망이 났다고 욕했다.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이게 얼마나 큰 인력의 낭비이고,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를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때 눈치를 채야 했다.
이현수도, 회장님도 결코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이만한 인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그게 정확한 예측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저놈은 대체 뭐하는 놈인가.
이재석이 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강진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틀리고 꺾여 버린 철제문을 강제로 입구에 욱여넣은 강진호가 몸을 돌리고는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입가에는 이상하리만큼 섬뜩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잔뜩 머금고 말이다.
꿀꺽.
이재석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씨발.”
낮은 욕지기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이재석은 욕을 한 이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욕을 하고 싶은 마음은 그 역시 간절했으니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이재석은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상황은 별다를 게 없다.
평소처럼 처리해야 할 놈을 유인해 냈고, 이제는 처리할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너무도 다르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면서 호기 부리는 놈들을 한둘 본 것이 아니다. 무인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것들이고, 때때로는 자존심을 넘어 자만심의 영역에 속해 있기도 했으니까.
일반인들만을 상대하던 무인들의 경우, 그런 경향이 더욱 심했다. 자신을 슈퍼맨쯤이라 알아서 몇이 몰려오더라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믿는 놈들.
팔다리가 뽑혀 나가고 바닥을 벌레처럼 기고 나서야 눈물, 콧물을 뿜어내면서 살려 달라고 비는, 그런 쓰레기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놈은 그런 놈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어떻게 아느냐고?
모른다.
그 이유는 이재석도 알 수 없었다. 지금 강진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그런 놈들과 뭐가 다른지는 그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느껴진다.
그의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강진호는 뭔가 다르다고, 지금까지 그들이 보아왔던 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심장이, 피가, 영혼이 소리치고 있었다.
낮은 욕지기를 뱉어낸 이재성이 이를 꽉 깨물었다.
“뭐해, 새끼들아. 저 새끼…….”
그때,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짓거리를 했군.”
“…….”
이재석은 다시 입을 닫았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별것 아닌 행동 하나, 별것 아닌 말 한마디가 왜 이렇게 그의 심장을 움켜쥐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느낌이 좀 더 확연해지고 있었다.
“아주 재밌는 짓을 했어.”
강진호가 환히 웃었다.
그러면서 그의 이가 드러났다.
새하얀 이.
이 어둠 속에서 보이는 그 새하얀 이가 너무도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재석은 이빨을 드러낸 맹수가 그의 목덜미 바로 옆에서 으르렁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찔하는 순간, 사정없이 그의 경동맥에 송곳니가 틀어박힐 것 같은 긴장감.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내에게서 그런 압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다.
이건 만화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다.
사람이 그저 멀리 서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함을 넘어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경험을 말한다면 이재석은 크게 웃었을 것이다.
겁쟁이라고.
멍청하다고.
하지만 이재석은 웃을 수 없었다. 그 경험을 하고 있는 이는 다른 이들이 아니라 바로 이재석 자신이니까.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내에게 쫄아버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그란 말이다.
“이…….”
달싹거리던 입술이 힘겹게 벌어지며 낮은 신음을 흘려낸다.
겨우 손을 펴보니 손바닥이 흘러내린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제야 이재석은 이현수가 그토록이나 신신당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방심하면 안 된다. 외도도 당했어. 너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놈은 괴물이다.”
비웃었다.
이재석은 이현수도 다 되었다고 비웃고 또 비웃었다.
하지만 그 비웃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이현수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무인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세다. 하지만 이재석은 보지도 못했음에도 상대를 얕잡아보고 당연히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다.
작은 동굴 안에 있는 여우를 사냥하러 들어갔더니, 그 안에서 범이 나온 것과 같은 꼴 아닌가.
벌벌 떨리는 손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키려 할 때, 그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떨지 마.”
그 목소리는 마치 아이를 달래는 어른의 목소리 같았다.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하는 듯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어차피 결과는 같은 텐데, 왜 떨지? 떤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어.”
묘한 일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재석은 순식간에 진정되는 자신을 느꼈다.
그 말이 옳다.
강은영을 납치해 강진호를 불러들인 순간부터 이미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둘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바보처럼 뭘 떨고 있다는 말인가.
떤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는가.
‘죽든가, 죽이든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자 시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는 게 무척이나 병신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이재석의 말에 다른 이들이 귀를 기울였다.
“……저 새끼, 보통 놈은 아닌 것 같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도 이재석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던 모양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농담 따먹기를 하며 낄낄대던 이들이 하나같이 얼굴을 굳히고 주먹을 꽉 쥔 채 강진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회장이나 이현수가 쉬운 일을 시킬 리가 없지.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 양반들도 아마 저놈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 같다. 까딱하다가는 우리 전부…….”
죽는다.
말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이재석이 목구멍 너머로 삼킨 말을 알고 있었다.
상대의 분위기만으로 이런 예상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우습고 어이없는 일이지만, 아무도 그런 이재석을 비웃지 못했다.
“준비는 끝났나?”
강진호의 표정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너무도 확연했다.
유쾌함.
강진호는 지금 상황이 너무도 즐거워 어쩌지를 못하겠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재석의 목을 조여왔다.
‘이건 진짜 미친놈이다.’
강진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약간의 침묵.
모두가 뒤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그저 살짝 말을 끈 것뿐인데, 공장 안의 모든 것들이 강진호를 주목하고 있었다.
“누구부터 시작할까?”
이재석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말이 있다면 바로 저 말일 것이다. 개전을 알리는 동시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공포를 주는 말이니까.
“이 새끼가!”
이재석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강진호의 말에 분노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더 이상은 압박을 참아낼 수 없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재석은 그를 말릴 수 없었다.
아니, 말리지 않았다.
그도 궁금했던 것이다.
저 강진호가 정말 강할까?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압박만큼이나 정말 그들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할 것인가.
보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의 두 눈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재석의 예상을 여러 의미로 한참 뛰어넘어 버렸다.
강진호가 다가오는 이를 보며 웃는다.
새하얀 웃음.
일체의 다른 감정을 배제하고, 오로지 못 견디게 즐거워 웃는 것 같은, 그런 미소였다.
강진호의 우수가 달려오는 이를 마중 나갔다.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손.
지나가는 모기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은 느릿한 손놀림이었다. 일반인의 손짓이라 해도 되레 느리다는 느낌이 들 것 같은, 그런 손길.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이 일순 허세라 느껴질 것 같은, 그런 손놀림의 결과는 너무나도 괴이했다.
달려들던 복면인이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자신의 목을 강진호의 우수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재석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지금 달려든 이는 무인이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일반인이라고 해도 저 느릿한 손에 자신의 목을 맡기지는 않을 것인데, 어떻게 무인이 저런 손에…….
하지만 이재석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이어질 수가 없었다.
으드드득.
그건 이상한 소음이었다.
뭔가 찢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뽑아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 자체만으로는 이상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사람의 목이라면 이건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이재석은 보았다.
촤아아아악!
소리가 일순 전환된다.
마치 맹렬하게 틀어놓은 수도꼭지를 억지로 틀어막았을 때 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보면 별다를 것 없는 소리다.
하지만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람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라고 하면 말이 달라진다.
공장 안에 피 보라가 몰아쳤다.
달려든 이의 머리가 통째로 뽑히며 뿜어져 나온 피가 마치 분수처럼 허공을 가득 채워 나간다.
털썩.
툭.
몸이 쓰러지는 소리와 머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그리고 그 비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피 보라로 전신을 적신 마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