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06
#605.
선보이다 (5)
현대에 들어 무인이라면 누구나 시달릴 수밖에 없는 명제가 하나 있다.
과연 무인은 현대의 화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다 달랐다.
누군가는 인간의 육체는 결국 총이 주는 충격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아무리 단련된 무인이라고 한들 총을 몸으로 버텨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권총이라면 어찌어찌 버틸 수 있겠지만, 기관단총의 수준만 되어도 인간의 육체는 너무도 무력하다. 바토르 정도 되는 외공의 달인이나 강기를 사용하여 몸을 방어할 수 있는 소수만이 총이 주는 충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도 이견은 있다.
모든 공격은 공격 자체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결국 공격이라는 것은 상대에게 적중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숙련된 포수가 아닐 시에는 기관총을 들고 있다고 해도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법이다. 그러니 무인이 총을 가진 이에게 딱히 불리할 것이 없다는 의견이다.
처음 총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무인들은 총이라는 무기를 무시했다. 그 당시에는 좀 더 편의성이 좋다 뿐이지, 활에 비해 딱히 나을 것이 없었다.
무인들이 던지는 돌팔매가 총보다 우월한 살상력과 사거리를 가질 정도였으니, 누가 총에 관심을 두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어 버렸다.
인간은 전쟁을 통해 발전한다. 적을 죽이기 위해서 연구한 기술만큼 인간을 진보시킨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총이라는 새로운 무기에 집중했고, 이윽고 그 어떤 재래식 무기보다 강하고 간편한 무기로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이쯤이다.
암암리에 세상을 움직여 오던 무인들이 심대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경지에 오른 초고수들은 총에 타격을 받지 않지만, 일반적인 무인들에게 그러한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탄환을 이겨낼 수 있는 무인을 길러내는 데는 수십 년이 필요했지만, 총을 쓸 수 있는 소총수를 기르는 것은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결국 무인들은 주도권을 내놓고 생존을 위해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 나서 세상은 좀 더 발전했다.
수많은 무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초절정고수라 자부하는 이들마저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화약이 만들어낸 파괴력이 마침내 강기가 만들어내는 파괴력을 능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인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암약하기 시작했다.
위기감을 조성하고 무기의 발전을 저해했다. 단 한 발만으로 인간을 부숴 버릴 수 있는 살상탄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수많은 조약을 만들어내 개발자들의 손을 묶었다.
그럼에도 벌어진 차이는 좁혀질 줄 몰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다.
어둠으로 스며든 무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암흑가는 총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길고 길던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자 어느 정도는 결론이 났다.
무인과 군대의 싸움은 그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고 넓게 펼쳐진 개활지면 개활지일수록 무인에게 불리했다. 소수가 시가전을 벌인다면 무인이 압살하지만, 사막에서 군대와 교전하게 되면 손도 써보지 못하고 몰살을 당한다.
이 사실은 무인들로 하여금 개발이 되어 있는 선진국과 도심으로 파고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과거에는 한적한 곳을 선호하던 무인들이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민간인들로 인의 장막을 쌓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무인들이 전멸하다시피 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그럼 고수는?
지금부터 알게 될 것이다.
정은호는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그가 조준하고 있는 20㎜ 테이크 다운 라이플의 조준경에 나이트 위긴스의 머리가 정확하게 잡혔다.
‘초조해하지 마.’
심장이 뛸 때마다 총구가 살짝살짝 들려졌다.
‘단 한 번이다.’
저만한 고수에게 두 번 저격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한 번에 끝내지 못한다면 고수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저격수와 무인의 싸움은 누가 서로를 먼저 발견하느냐의 싸움이고, 얼마나 침착하게 일격에 끝낼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머리에 저격을 맞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코끼리도 일격에 관통시켜 버리는 20㎜ 저격 라이플이다. 뼈와 살로 만들어진 이라면 절대 버틸 수 없었다.
“후우우우.”
정은호가 총에서 손을 떼고 가슴을 억눌렀다.
‘빌어먹을.’
긴장이 된다.
저만한 고수를 상대하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긴장감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긴장감 속에서도 저격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정은호가 천천히 자신만의 루틴에 따라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나이트 위긴스가 앞쪽으로 살짝 이동했다.
‘제길.’
저기로 가버리면 여기서는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즉시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쪽이 아무래도 깔끔하고 성공률도 높다.
하지만…….
‘그사이에 전멸한다.’
나이트 위긴스의 능력은 그들의 계산을 벗어났다. 장로들이 달려들면 최소한의 시간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장로들은 나이트 위긴스를 전혀라도 해도 좋을 만큼 막지 못하고 있었다.
태풍 앞의 낙엽보다 더욱 무력하다.
‘빌어먹을.’
포인트를 옮기는 순간, 나이트 위긴스를 막고 있는 장로들이 모두 쓰러져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초고수의 지각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 정도 거리로는 그의 살기를 눈치챌 것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모험을 하는 수밖에.’
정은호가 가만히 창가 쪽으로 걸었다.
눈으로는 서로 보이지 않을 거리가 있고, 절묘한 사각을 찾아 들었음에도 그는 결코 안심하지 않았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무인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인간이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인간은 결코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그의 시야가 이쪽에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후우우우.”
정은호는 마지막으로 낮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심호흡도 위험하다.
정은호가 총구를 슬그머니 창문 바로 뒤에 댔다. 일반인이라면 20㎏ 가까이 되는 이 총을 어깨에 견착하고 쏠 생각도 하지 못하겠지만, 그 역시 무인이었다.
무게와 자세에 자유로운 이상 이쪽도 이점은 충분하다.
이대로는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저격을 위해서는 총구를 창밖으로 내밀 필요가 있다. 더없이 위험하지만…….
‘해볼 만은 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 대물저격총이 없다면 그는 나이트 위긴스의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다. 감히 그가 눈도 마주칠 수 없는 무인을 잡는데 위험조차 감수하지 않겠다는 건 오만한 처사다.
도박이란 언제나 잃을 각오가 되어 있는 이들만 뛰어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잃는 것이 목숨이라 해도 정은호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간다.’
짧게 호흡을 들이켠 정은호가 숨을 멈췄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총구를 창밖으로 내밀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 거리에서 건물 유리창으로 총구가 나오는 걸 알아챌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상대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모자라지 않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공기 한 점 떨리지 않을 속도로 총구를 내밀고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댄다. 나이트 위긴스의 머리가 가늠자에 정확하게 닿았다.
‘죽어!’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과감성이다.
정은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
낮고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정은호는 명중을 확신했다. 이 거리에서라면 빗나갈 리가 없다.
총구에서 나온 매캐한 연기가 가시고, 조준경 너머로 나이트 위긴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
정은호의 말문이 막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는 분명히 방아쇠를 당겼다. 총을 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조준경에 보이는 나이트 위긴스는 조금 전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꿈이라도 꾼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지금 매캐한 화약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이게 꿈이란 말인가.
‘그럼 대체 뭐냐고!’
마치 이곳과 저곳이 유리된 것 같았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세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유리되었던 세상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나이트 위긴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조준경 너머로 정은호와 나이트 위긴스의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은호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나이트 위긴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악하군.”
나이트 위긴스가 손을 펼쳐 들었다. 그의 손에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총탄이 들어 있었다.
“총과 싸워온 건 이쪽이 먼저란 말이지. 총의 위력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이쪽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안일한 거지.”
특히나 나이트라면 말이다.
각국의 모든 정보를 머리에 넣고 있는 나이트가 저격 한 방에 목숨을 잃는다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그 뒷감당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수많은 정보가 소실될 것이고, 새로운 나이트를 뽑는다고 해도 이전의 나이트를 완벽하게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원탁은 언제나 그런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저격총이 등장한 이후부터 저격총을 막아내기 위한 마법의 개발에 착수했다.
마법이 실전 배치가 된 지가 삼십 년이 넘었는데, 이제 와 저격이라니. 올드하다.
‘하지만 좀 위험했어.’
총기가 금지된 이 나라에서 저격을 당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습관적으로 캐스팅을 해놓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이트 위긴스는 머리 없는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쪽도 잘 준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로드를 상대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였던 모양이군. 하지만!”
투웅! 투웅! 투웅!
상황이 좋게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정은호가 연속으로 총을 갈겼다. 어차피 들킨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쏜 탄환은 나이트 위긴스의 지척에서 휘어버렸다.
결코 탄환이 그릴 수 없는 곡선을 그려내며 모조리 비껴 나간 것이다.
“화살을 막는 마법 따위는 천 년 전에도 있었다.”
마법사들이 옛 마법만 파는 멍청이들이 아닌 이상, 현대에서는 총을 막는 마법으로 개량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 마법을 익힌다고 해서 모든 총을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충격량 내라면 날아오는 탄환 따위 모조리 비껴낼 수 있다. 마치 기적처럼 말이다.
“하지만 위험했어. 그러니 대가를 치러야지.”
나이트 위긴스의 우수가 새하얀 빛을 뿜어냈다. 그의 손을 타고 휘돌던 빛이 눈부신 속도로 정은호가 있는 창가로 날아든다.
“헉!”
발견한 순간 이미 빛은 그의 바로 앞까지 날아와 있었다. 뇌가 채 피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새하얀 빛이 그의 머리를 관통해 버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정은호가 쓰러진다. 바닥에 무거운 대물저격총이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자, 해볼 게 있다면 더 해보는 게 좋을 거요.”
나이트 위긴스의 여유에 최 상무의 얼굴이 시커멓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