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69
#868.
밀려오다 (3)
“이게 뭐야?”
“스마트폰인데?”
“야, 이거 신형 같은데?”
본관으로 올라온 주강의 눈에 보인 것은 긴 행렬이었다. 아니, 행렬이라는 표현은 좀 이상하다. 한 줄로 쭉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줄로 늘어서 있었으니까.
마치 공항 검색대처럼 수십 개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줄 앞에서는 총회의 직원들이 그들에게 휴대폰을 나눠 주고 있었다.
“이거, 그냥 주는 거야?”
“쩐다.”
앞쪽에서 뭔가를 작성하는 것을 보아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나서 휴대폰을 주는 모양이었다.
“야야.”
주강이 휴대폰을 받아 나오는 이를 잡았다.
“그거, 그냥 주는거야?”
“그냥 주던데요?”
“뭐, 할부?”
“아뇨. 그냥 주던데요. 이름만 적고 나왔어요.”
“손에 든 그건 뭔데?”
“휴대폰 번호래요. 이거 쓰면 된다는데.”
“허…….”
주강이 헛웃음을 흘렸다.
― 마존은 부자이시다.
한동안 유행하던 말이다. 강진호는 진짜 부자다. 물론 그 재력만으로 세상에 회자되는 부자처럼 돈이 많은 것은 아니었…….
‘아닌 거 맞나?’
주강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여하튼 부자다. 정확하게 마존이 어느만큼의 부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많은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이 총회라는 곳도 돈이 많았다.
일만에 가까운 교도가 있으면서도, 장로들 월급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던 마교와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도 저 비싼 스마트폰을 공짜로 제공하지 않는가.
‘못해도 3,000위안은 넘을 텐데.’
한국 돈으로 치면 50만 원 정도는 되려나?
미치지 않고서야 최신 기종으로 때려박지는 않을 테니, 아마 그 정도 가격일 것이다. 하지만 그 돈이라고 해도 무지막지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마교도의 수가 몇인데 저들에게 모두 휴대폰을 나눠 준단 말인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어느새 주강이 줄의 가장 앞에 서 있었다.
“여기 작성하세요.”
직원이 내민 종이에 인적 사항을 기록하는 공란들이 보인다.
“이거 왜 써야 하는 겁니까?”
“그래야 저희가 어느 분이 어떤 번호를 가져갔는지 알죠.”
“아…….”
그건 왜 알아야 하지?
살짝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이내 주강은 머릿속에서 의문을 지워 버렸다. 뭔 상관인가, 공짜로 휴대폰을 준다는데.
공란을 채우고 나자 휴대폰이 지급됐다.
“번호는 여기 있어요. 혹시 번호를 잊어버리더라도 휴대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패턴 설정과 번호를 확인하는 방법은 매뉴얼로 같이 챙겨뒀으니, 꼭 읽어보세요.”
“아…… 예.”
유창한 중국어를 들으며 주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거 왜 주는 거지?’
마존이 보이는 것과 다르게 복지에 관심이 많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마존의 복지는 퍼주는 복지가 아니었다.
일을 하거나 노력한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는 것. 그게 주강이 파악한 마존의 복지였다. 그런데 이건 그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이거, 그거 같은데?”
“뭐?”
“그 한국 놈들이 요즘 동영상으로 배운다고 하더라고.”
“뭘?”
“뭐긴 뭐야, 무공이지.”
“뭐? 동영상으로 무공을 배운다고?”
“그렇다니까.”
“헐…….”
이게 무슨 미친 발상인가. 동영상으로 무학을 배운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정신인가?”
“안 될 건 뭐 있어.”
“아니, 당연히 안 되지! 동영상으로 배우면…….”
주강이 입을 닫았다.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듣자마자 거부감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왜 안 되는지 이유가 없다.
‘어설프게 배우거나, 잘못 배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를 대비하여 지금 마존이 장로들을 굴리고 있지 않은가.
전체적인 배움은 동영상으로 대체하고, AS를 장로들이 맡는다면 딱히 문제될 게 없다.
“……이걸 파격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정신이 나갔다고 해야 하나?
확실한 건 이건 중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곳이 한국이기에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마존이 마교를 움켜잡고 뒤흔들지 않았다면 백 년 내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추진력 하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분이시라니까.”
“그렇지?”
주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그럼 여기서…….”
그때였다.
“어이.”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주강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장다징?”
중국에서부터 인연이 있던 장다징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웬일이야?”
“주강, 회주님께서 찾으신다.”
“마존께서?”
“그래. 따라와.”
장다징이 손짓을 하자 주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다징을 따라 나섰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부르신다니 가야지.
“데리고 왔습니다.”
“어서 와라.”
주강이 바짝 긴장했다.
회의실 안에는 강진호와 이현수, 그리고 장민 장로가 앉아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껄끄러운 세 사람이 모여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긴장할 수밖에.
“앉아.”
이현수가 의자를 가리켰다. 주강은 조심스레 걸어 의자에 앉았다.
“별일은 없나?”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주강은 그런 강진호를 보며 조금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부드러워지신 것 같은데…….’
물론 강진호가 그들을 겁박한 적은 없다. 과거, 집결지에서 한 번 능력을 보여준 이후로 강진호는 딱히 그들을 통제하려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인상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과거의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위압감이 가신 느낌이다. 더 기이한건 그 와중에도 위엄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리누르는 위압감에서 절로 떠받들게 되는 위엄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할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가 강진호를 가까이서 몇 번이나 봤다고 이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주강이 살짝 고개를 휘저었다.
“다름이 아니라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불렀다.
“예, 하문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대답하겠습니다.”
위압감은 강진호가 아닌 다른 곳에서 느껴지고 있다.
강진호의 옆자리를 차지한 장민의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다. 마존의 앞에서 실수를 하거나 무례한 짓거리를 한다면 뼈와 살을 분리시켜 버리겠다는 눈빛이다.
주강이 절로 쪼그라들었다.
“장민.”
“예! 마존이시여!”
“나갈래?”
“…….”
“그렇게 보고 있는데 잘도 대답하겠다. 나가든지, 눈에 힘을 빼든지. 둘 중 하나는 했으면 좋겠는데.”
“소인이 생각이 짧았습니다.”
장민이 고개를 슬쩍 내린다.
그 모습을 보며 주강은 강진호의 힘을 새삼 실감했다. 장민은 그들에게 있어서 교주나 다름없던 사람이다.
교주의 자격이 없어 교주 위에 앉을 수 없다고 본인이 고사하지만 않았어도…… 아니, 감히 불경스럽게 교주의 자리에 자신 따위를 올리려 한다고 불같이 화를 내지만 않았어도 장민은 교주의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실제로 그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 뿐이지, 마교도들은 모두가 장민을 교주처럼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지금 강진호의 말 한마디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면 불만을 가질 만한 광경이다. 아무리 강진호가 힘과 위엄, 그리고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는 하나, 지금껏 마교에 헌신한 장민의 공적 역시 평가해야 하니까.
교주라고 한들 장민을 저리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데 뭘 어쩌겠어.’
눈을 내리까는 장민의 모습에서 침통함이나 억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우습지만, 마존에게 갈굼당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건 장민 본인이었다. 마침내 자신에게 명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더없이 기뻐하는 모습이랄까?
뭐, 여하튼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예.”
“이번에 수련의 방식을 조금 효율적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동영상 말입니까?”
“들은 모양이군. 그래.”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총회 쪽에서는 시행하고 있다. 이런저런 문제가 조금 생기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조금씩 시행착오를 줄여간다면 정착이 되겠지.”
“예.”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교도들은 일반적인 총회의 무인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걸 그대로 적용하는 게 가능한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자, 잠시.”
주강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말을 잇기도 전에 불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이 망둥이 같은 놈이! 감히 마존의 앞에서 그따위 말을 사용하다니! 네놈의 혀를 뽑아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마존이시여!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를 벌하려 주십시오! 제가 머리를 땅에 찧어 죽어야 이 죄를…….”
“그만…… 제발 그만 좀……. 제발.”
강진호는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관계는 아니네.’
관계 자체는 강진호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만, 장민은 행복해 보이고, 강진호는 고통스러워 보인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관계였다.
“하지만 마존이시여!”
“장민.”
“예!”
“5분만 입 닫고 있자.”
“으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5분만 참았다가 하자. 그래야 대화가 되겠지. 지금처럼 계속 끼어들면 시간만 버린다.”
“명심하겠습니다, 마존이시여.”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주강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주강이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저는 그 총회의 무인들이 어떤 과정을 겪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음…….”
“이야기만 얼핏 들었을 뿐입니다. 일단 그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봐야 분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음, 그래.”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현수가 스마트폰을 빼 들고 주강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대략적인 설명과 동영상까지 확인한 뒤에야 주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이런 식이다.”
“음, 확실히…….”
효율적이다.
굉장한 진보라고는 할 수 없다. 얻는 것이 있지만, 잃는 것도 있다. 하지만 주강이 보기에 이건 손해보다 이익이 압도적으로 컸다.
일단 저 중앙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인원을 동시에 교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단점을 모조리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확실히 좋아 보입니다.”
“문제는 없고?”
“네? 문제야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응?”
강진호가 의아한 눈으로 주강을 바라보았다.
“좋은데 문제가 많다고?”
“예. 확실히 개념 자체는 좋아 보이지만, 이대로 적용하는 건 힘듭니다. 일단 다른 건 다 접어두고라도 사이트가 한국어인데, 이걸 어떻게 씁니까.”
“…….”
“그뿐 아닙니다. 이거, 유출되면 어쩌실 겁니까?”
“유출되도 제대로 못 익히지.”
“그게 더 문제 아니겠습니까? 조잡한 마공들이 세상으로 유출된 탓에 마공을 익힌 범죄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이 주화입마에 들면서 살인귀가 되어 날뛰었습니다. 그런 탓에 마교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처박혔구요.”
“……아!”
“제대로 못 익히는 마공이 더 위험합니다. 당연히 먼저 고려해야 할 일 같은데요.”
“그래?”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현수도 강진호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천태훈이 오라고 해.”
강진호가 씨익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기 팀원 하나 생겼다고.”
“…….”
천태훈의 동영상 교육부에 최초의 팀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