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15
#914.
복귀하다 (4)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강진호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수습하는 것은 언제나 이현수의 몫이었다.
배가 항구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현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니, 바빠야 했다.
하지만 의외로 이현수는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는데?’
그동안 그가 수습해 온 일들에 비하면 이번 경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 영남회와 총회의 전쟁을 수습할 때처럼 영남회를 흡수하여 원활하게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편제를 재편할 필요도 없고, 영남회의 재산을 수습할 필요도 없었다.
강진호가 중국에서 마교를 끌고 왔을 때처럼 강진호의 부상에 기겁할 필요도 없고, 막대한 난민(?)들을 수용할 필요도 없다.
그냥 적당히 상처 입은 놈들을 병원으로 보내고, 남은 놈들을 회로 돌려보내면 그만이었다.
덕분에 이현수는 간만에 널널한 사후 정리를 즐길 수 있었다.
“예, 소장님. 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거,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거 아닙니까?]“조심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네요.”
[일본 놈들이 문제 삼지는 않겠습니까?]“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그놈들이 아직 바다 위에 떠 있거든요.”
[예? 바다 위에 떠 있다구요?]“예. 아마 일본에서 배를 보낼 겁니다. 그러니 그건 좀 눈감아주십시오. 그것까지 막으려 들면 정말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까요.”
[음. 뭐, 어쩔 수 없죠. 여하튼 저도 한국인인지라 일본 놈들이 쳐들어온다니 최대한 협조하기는 했습니다만…… 앞으로는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는 건 삼가주십시오. 요즘 세상이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카메라가 수도 없어요.]“저희도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미친놈들이 쳐들어오는 걸 뭐 어쩌겠습니까.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윗분들이 영 불편해하고 계시거든요.]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이 새끼들은 누구 편이야?’
자신들이 쳐들어간 것도 아니고, 일본 놈들이 쳐들어와서 상대한 것뿐인데 이쪽을 물고 늘어지면 어쩌라는 건가. 그럼 사고 안 치려고 앉아서 당하기라도 하란 건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현수는 최대한 쾌활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노고에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고생해 주신 것 알고 있으니, 섭섭잖게 준비하겠습니다.”
[에이, 큰일 날 소리 하십니다. 요즘 그런 것 받으면 모가지 나갑니다, 모가지.]“저희가 건네는 건 다들 이해해 주시잖습니까. 티 안 나게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뭐, 그렇다면야.]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보고는 잘해보겠습니다. 아마 협조 요청이 한 번쯤 갈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감안해 주세요.]“물론입니다.”
[그럼.]전화가 끊기자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말을 말아야지.”
생각 같아서는 욕을 한바탕 퍼붓고 싶지만, 그럴 가치도 없다.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소장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소장이라는 자리가 실권자가 앉는 자리이고, 실제 군을 움직일 수 있는 사령관의 자리라고는 하나, 그것도 옛날이야기고, 전쟁을 수행할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는 쓰리 스타가 넘쳐 난다.
국방부 장관도 국회의원들에게 욕을 퍼먹는 세상인데, 고작 소장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인접국과 트러블을 초래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 앞에서 소장은 파리 목숨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는소리를 할 수밖에.
‘여하튼 이건 해결했고.’
어차피 저 사람이 뭔가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 사람은 단순히 연락책이다. 진짜 해결은 윗선에서 할 것이다.
무인계와 드러난 세계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확고하며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서로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특정한 루트를 통해서만 연락을 주고받으며 협의가 전혀 없던 것처럼 대응한다.
우스운 일이었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과거부터 해오던 일들이 관례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굳이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현수는 이쪽이 더 편하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왕래하게 된다면 그만큼 이현수의 일이 늘어날 테니까.
‘돈으로 떼울 수 있다면 이득이지.’
이현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돈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그들이 무인이라고는 해도 결국 자본주의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돈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돈으로 간편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돈을 쓰는 걸 주저해서는 안 된다. 돈이야 또 벌 수 있지만, 일이 꼬였을 경우에는 억만금을 퍼부어도 해결 못할 일이 생기니까.
“그럼 이건 해결됐고.”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물론 이걸로 다 끝난 건 아니었다. 이 일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꽤나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어떻게든 한 다리 뻗어 들어오려 하는 정치인이나 고관 놈들을 다물게 만들려면 한동안은 지갑이 영 서글퍼질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무인은 키워낼 수 없다.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돈을 쓰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지금쯤이면 난리가 났겠네.”
절로 웃음이 났다.
강진호의 지시대로 일본에 전화를 한 통 넣어주었다. 깔끔하고 담백하게 말했으니,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저들의 몫이다. 하지만 저쪽 상층부가 싸그리 병신들이 아니라면, 지금쯤은 사태를 파악했을 것이다.
아마 패닉이겠지.
거꾸로 이현수가 같은 일을 당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생각만 해도 휘파람이 절로 나올 만한 일이었다.
“한국이 바다 위에서는 지면 안 되지.”
“예?”
“……뭘 ‘예’야?”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온 이명환이 뚱하니 이현수를 보고 있었다.
“탑승 완료했습니다.”
“좋네. 퇴근해.”
“……그게 끝입니까?”
“그럼 뭘 또 하라고?”
이현수의 말에 이명환도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거, 영 이상한 기분이네.’
과거, 이중걸의 별장을 습격했을 때는 지금보다 거창한 것들이 많았다. 상대한 적의 수준은 급격하게 올라갔는데, 훨씬 일이 깔끔하게 끝나니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너는 애들 다른 데로 안 새게 신경 쓰고.”
“새긴 어디로 샙니까.”
“흘려듣지 말고, 새끼야.”
이현수가 정색하자 이명환이 자세를 바로 했다.
“원래 사고가 제일 많이 나는 때가 이런 때야. 머리에 혈기는 가득 찼는데, 딱히 할 일은 없을 때.”
“예.”
“오늘 사고 치는 새끼 나오면 너부터 갈아버릴 거야. 뭔 맡인지 알아들었어?”
“예!”
이명환이 기합이 잔뜩 든 자세로 대답을 하자, 이현수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복귀하자.”
출발하는 버스들을 보며 이현수가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담배를 한 대 천천히 빨아들이자 그제야 모든 것이 끝났다는 실감이 든다.
‘아니, 이제 시작이지.’
이현수가 깊게 담배를 빨았다.
생각보다 쉽게 끝나서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이건 한국 무인계가 생긴 이후 최초로 타국의 본격적인 침공을 받은 사건이었다. 이리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한 번 벌어진 일은 또 벌어진다.
일본이 침공했다면, 중국도 침공할 수 있다.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장기적으로 본다면 좋은 소식은 아니야.’
강진호가 나서서 저들을 전멸시켰다는 이야기는 곧 세상에 파다하게 퍼질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강진호와 총회를 노리는 이들은 좀 더 확실한 준비를 할 게 빤했다.
‘노파심이지만…….’
이현수가 눈을 비볐다.
이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다. 세상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공존한다. 이현수는 어떤 일을 보든 부정적인 부분부터 생각한다. 좋지 않은 버릇이다. 사람이 의기소침해질 수 있으니까.
지금은 그저 이 승리를 즐기면 된다.
‘난리가 나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겠지.’
다들 아직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일쯤이면 실감이 날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이뤄냈는지.
그 광경을 생각하며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그때였다.
“이현수.”
“예!”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현수가 격하게 몸을 꺾었다. 목소리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다.
이현수는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강진호를 보며 살짝 몸을 떨었다.
‘이럴 때는 적응이 안 된다니까.’
그가 적응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강진호에게서 전투의 여운이 빠지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장에 서 있을 때의 강진호와 전장에서 돌아온 강진호, 그리고 평소의 강진호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명하십시오.”
“정리는 끝났나?”
“예! 대충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남은 건 부탁하지.”
“예!”
대답을 해놓고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현수였다.
“어디 가십니까?”
“나도 퇴근해야지.”
강진호가 가볍게 웃고는 몸을 돌렸다.
“읏차.”
집 앞에 도착한 강진호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이것도 곤란하군.’
삼척에서 서울까지 오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두 다리라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평소에는 될 수 있으면 무학을 쓰지 않는 강진호다. 스스로가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니까.
그렇기에 달려가면 더 빠를 수 있는 곳도 최대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바람이 통하지 않아 갑갑한 붕붕이를 자주 몰고 다니는 이유에는 그것도 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피곤했기 때문일까?
‘복장.’
강진호가 복장을 다시 점검했다. 출발하기 전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오는 와중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냄새.’
그리고 혹여 몸에서 피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다시 확인한다. 모든 확인을 끝내고 휴대폰 카메라로 다시 점검을 마친 강진호가 깊이 심호흡을 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디리리릭.
도어락이 해제되고 문이 열렸다.
‘주무시…….’
“야!”
문이 열리자마자 뭔가가 날아온다. 강진호는 재빠르게 날아오는 것을 받아 들었다.
‘쿠션?’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이 인간이 미쳐 가지고 외박을 해? 요즘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더…….”
성난 들소처럼 뛰어오던 강은영의 눈이 흔들렸다.
“트레이닝복?”
“…….”
“못 보던 트레이닝복?”
“어…….”
강은영이 주먹을 쥐고 파르르 떨더니, 몸을 획 돌렸다.
“자, 잠깐…….”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빠가 어디 가서 옷 팔아먹고 새 옷 입고 왔어!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
“뭐?!”
안방 문이 벌컥 열리며 백현정이 뛰쳐나왔다.
“이게?”
“…….”
위아래로 강진호를 훑은 백현정이 손가락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
“…….”
강진호가 다소곳이 소파에 앉았다.
“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
“어서.”
이 평온함이 좋다고 하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제야 전장에서 벗어나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 집.
그래, 가족.
더없이 따뜻하고 즐거운…….
“웃어?”
아니, 솔직히 지금은 즐겁지는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