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a world on your own with an infinite capital RAW novel - Chapter 174
4화 어머니의 유언
뉴욕에는 수많은 사람이 어울려 살아간다. 각국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거주한다. 국제연합(UN) 본부가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세작, 소위 스파이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워싱턴 D.C 못지 않게 바글거린다. 이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임무가 있었다.
-콜리.
-오랜만이야, 예브게니.
-좀 토해 봐.
-글쎄…….
-이봐, 이건 미국과 러시아 간의 문제가 아니잖아?
-더 심각한 문제지.
-제길, 최신 미사일 정보를 넘겨주마.
-그래도 안 돼.
-빌어먹을, 아예 뽕을 뺄 거냐?
-그게 아니란 걸 당신도 알잖아? 이건 진짜 1급 비밀, 그 이상이야.
-솔직히 우린 마이다스 킴과 어떠하든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네. 중재만 해 준다면 어떤 정보라도 넘겨줄 의향이 있어.
-예브게니, 내가 자네를 처음 만나는 것 같나?
-뭔 뻘소리야? 우린 그래도 십 년 이상 거래하지 않았나? 비록 블랙이지만 서로 적당한 선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야.
-그게 아니라, 여섯 번째란 말이다. 네가.
-엉?
-영국도, 독일도, 일본도, 하다못해 꼭꼭 숨어 있던 이란, 북한 애들도 다 만났어.
-X발, 덕분에 자네 바운더리가 훨씬 더 넓어졌어. 그쪽 애들 정체만 다 까발려졌겠군.
-황제의 가족 문제니까. 다들 모친을 이용해 접근하려는 거지.
-그 빌어먹을 놈들이 뭘 제안하던가?
-뭐… 자국의 의료진을 보내겠다는 놈도 있고, 허참… 북한에서는 말이야. 김일성만 먹던 만병통치약이 있다며 만나게 해 달라고 하더군.
-뒈졌잖아? 만병통치약은 왜 안 처먹었데?
-큭큭큭, 하긴 그래. 처먹고도 뒈졌지.
* * *
유엔 주재 북한 대사 관저.
“아, 거 더 용쓰지 못하간?”
“대사 동무, 양키 아들이 협조를 안 합네다.”
“우리가 고칠 수 있다 말해 봤슴둥?”
“일없시요. 바늘도 안 들어갑네다.”
“아… 하늘이 주신 기횐데 말이디. 김시혁 선생만 꼬드기면 우리 공화국이래 한 방에 숨이 틔인다야.”
“기런데 말입네다. 칠보안궁환이 만병을 고치긴 합네까?”
“이 종간나 새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평생 애용하던 약이지비. 고거이 처음 먹는 사람은 숨이 깔딱깔딱해도 벌떡 일어나는 거 모름메?”
“짱깨들도 비슷한 약이 많습네다만…….”
“다 짝퉁이디, 고 아새끼들이 제대로 만드는 기 어디 있슴둥. 우리 공화국 칠보산에서 채취한 산삼이 들어간 안궁환이야말로, 암! 만병통치약 아니갔어?”
“괜시리 양키 놈한테 제 정체만 드러낸 꼴이 됐슴메다.”
“…동무래 바로 귀국하라. 꼬투리 잡히지 말라우. 알간?”
* * *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다름아닌 백악관의 지령을 받은 CIA였다.
이미 병원 의료진 한 명을 포섭했고, 그를 통해 모친의 상태를 시시각각 보고받아 왔다.
-닥터 호버, 지금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어요.
-우리 CIA 파일은 어떻게 입수했다든가?
-그것까지는 제가…… 다만 KCIA(안기부)의 공작 요원 권덕용이라는 사람 이야기가 분명 나왔습니다.
-덕용 권?
-네, 마침 제가 장비를 만질 때, 모친이 딸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이다스 킴의 반응은?
-넋이 나갔습니다. 쌍둥이 여동생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멍한 상태입니다.
-혹시, 미국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글쎄요… 부친 찰스 리 박사가 미국에서 죽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중간에 끼어들 기회가 있을까? 예를 들어 미국이 찰스 리의 죽음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만들 수 없나?
-…저는 의사입니다. 뜬금없이 정치적인 부분을 거론하면 들킬 겁니다. 어쩌면 출입금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
이게 딜레마였다.
더 깊이 들어오면 안 된다.
진짜 진실을 알게 되면, 마이다스 킴이 폭주할 것이다. 미국은 그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다. 월가도, 백악관도.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CIA는 진짜 감당하기 힘든 적을 만드는 것이다.
이게 최악이다.
* * *
“내 아들.”
“예, 어머니.”
“내 딸.”
“어, 엄마.”
실로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의료진도, 공사홍과 엘리, 이현과 퍼피, 김보성까지 눈물을 훔치느라 바빴다.
이젠 모두 알았다.
시혁의 태생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아버지 이효수 박사와 어머니 박혜선의 슬프고 애절한 사랑, 무엇보다 보스가 저리 기구하게 버려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미는 것이다.
“혜림 씨, 아니 혜림이가 제 동생이라는 게 너무 놀랍고 행복해요. 어머니.”
“엄마, 저도요. 평생을 고아라는 걸 가슴에 품고 살았거든요.”
시혁과 혜림의 훈훈한 광경에 뒤이어 박혜선의 힘겹지만 또렷한 말이 이어졌다.
“혜림아, 권 선생님을 원망하지 마렴.”
“예, 엄마. 키워 주신 아빠도 사랑해요. 지금껏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 그분은 어쩔 수 없었단다. 한강으로 뛰어든 건 엄마의 의지였다. 너라도 살리려면 그래야 했다.”
하지만 시혁의 생각은 달랐다. 모든 걸 알아 버린 이상 치솟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어, 어머니. 저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들, 시혁이라는 이름… 너무 멋지구나. 스님께 절을 올려야 하지만… 힘들겠지?”
“어머니!”
“그러지 마렴.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가 너희 둘을 안고 도망가다가 정부 사람들에게 붙잡힐 때, 시혁이 너는… 숨을 쉬지 않았단다. 그래서 딸이라도 살리려고 권덕용 선생님께 부탁을 한 거야.”
“무슨 그런 부탁이 있어요? 말도 안 돼.”
“아냐, 멀리서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어. 권덕용 선생님은 엄마 처지를 딱하게 여겼던 거야. 바로 옆의 공원 화장실에 너를 내려놓고 딸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어.”
“……!”
“그래, 공원 화장실에 너를 버린 것도, 한강에 스스로 몸을 던진 것도, 모두 엄마의 선택이었다. 엄마를 용서해라, 시혁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시혁은 마음이 급했다.
“어머니, 그만하세요. 황 박사님, 우리 어머니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우리 어머니 좀…….”
하지만, 현도 병원장 황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도 빨갛게 변해 있었다.
“김 회장, 시간이 없어요. 조금이라도 더 말씀을 들으세요. 이미 의학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한국말이지만 다 알아들었다. 다른 의료진 역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찾은 어머니고, 어떻게 트인 말문인데.
기적처럼 되살아난 어머니다. 혜림이가 쌍둥이 동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상할 수 없이 모진 삶을 부여잡고 살아온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다시 스러지고 있었다. 이렇게 보내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멀고먼 길로 떠나게 된다.
“말을 못 해도 좋아. 전처럼 움직이지 못 해도 좋다고. 그저 따뜻한 체온을 계속 느낄 수 있도록 해 달란 말입니다. 황 박사님!”
시혁은 목이 터지도록 소릴 질렀지만, 황 박사는 차마 시혁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이미 의학의 영역을 벗어난 상황이다.
이상하기는 했었다. 코마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생명유지 장치를 부착해도 통상 몇 개월 내에 사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박혜선 환자의 경우 벌써 몇 년간 숨이 멎지 않았다. 또 눈도 뜨고 있었다. 의료진들은 여기에 희망을 걸고 온갖 검사를 했으나, 결과는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코마 상태라고 진단했던 것이다.
그랬던 박혜선이 순식간에 손을 움직이더니 눈에 힘이 들어오고, 나중에는 말까지 하는 상황이 닥치자 기적이라 본 것이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문제는 박혜선과 연결된 생명유지장치에서 계속되는 경보음들… 선을 넘었다. 이미 사망했어도 무방한 상태였다.
“김 회장, 마지막 말씀을 듣는 게 어떻겠소? 이럴땐 정말… 내가 의사라는 게 부끄럽지만… 시간이 없어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시혁.
아!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시혁아, 혜림아.”
“네. 어머니. 시혁이 여기 있어요.”
“엄마! 끄윽, 엉엉엉!”
“울지마렴. 내 딸, 보자마자 또 엄마가 떠나서 미안해. 시혁이와는 지난 몇 년간 행복했다. 그래도 엄마가 한 번도 너를 안아 주지 못했네.”
박혜선은 누구보다 자신의 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병실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시혁도 어린아이가 된 듯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누군들, 이 상황에서 이성을 찾을 수 있을까.
“네 꿈, 엄마는 응원한다. 멋지게 해내렴.”
“어머니!”
“아들… 네 동생, 잘 부탁한다. 믿어도 되지?”
“흐엉! 끄끅!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해 줄게요. 약속합니다.”
“그래, 내 아들… 고마워. 너희 둘 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꿈을 이루도록 아빠랑 지켜볼게. 고맙다.”
“엄마, 가지 마. 혜림이 시집가는 것도 봐야잖아? 엄마!”
“쿨럭! 아빠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이 박사님이 그만 오래. 너무 긴 세월 혼자 기다렸다고.”
“엄마! 안 돼!”
쥐고 있던 손이 툭 꺾였다. 기계들이 삑삑거리다가 삐이익 하고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박혜선은 이 짧은 시간의 만남을 위해 그토록 버틴 것이다. 언젠가 찾아와 줄 딸과 아들을 보기 위해서.
별이 졌다.
뉴욕의 하늘 아래로 긴 꼬리를 달고 유성이 떨어졌다.
* * *
병실에는 오직 시혁과 혜림만 남았다.
현도 병원장 황 박사의 부라리는 눈을 이길 사람이 없었다. 그의 눈도 촉촉히 젖어 있었다.
다들 더 있고 싶었지만… 지금은 가족만의 시간이다. 차마 방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꺽꺽거리며 울던 두 남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벌써 뿌연 동이 트고 있었다.
“혜림아.”
“응, 오빠.”
“어머니, 참 곱지 않냐?”
“자세히 보니까 오빠랑 판박이다.”
“너는 안 닮았고?”
“사진을 보면, 나는 아빠를 닮은 것 같아.”
“그랬구나… 너를 처음 보면서 남 같지 않았어. 그래서 그랬나 보다.”
“나도.”
“너도?”
“응, 이게 말로만 듣던 피 끌림이 아닌가 싶어.”
“맞다. 그래서 우린 서로에게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본능적인 호감을 느꼈던 거야.”
“응, 오빠.”
아직 어머니를 보낸 슬픔이 너무 깊지만, 동생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은 ‘동생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니?”
“음… 지금 그대로. 나는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오빠를 만났다고 특별하게 변할 게 없어.”
“사귀는 놈팡이는 없니?”
“꼰대처럼 놈팡이가 뭐냐? 씨!”
“아버지도 안 계시고, 어머니까지 보낸 마당에 이젠 오빠가 그 역할을 해야지.”
“싫어. 사귀는 사람도 없지만… 그렇게 꼰대처럼 말하지 마.”
하아… 그렇구나.
그런데 어쩔 수 없다. 가족의 문제가 걸리면 시혁도 꼰대가 되고 만다.
“재단 이사장은 이현 변호사에게 넘겨라. 그리고 너는 뉴욕에서 오빠랑 같이 살자.”
“오빠야! 우리 쌍둥이거든? 꼭 10년은 더 연상처럼 행동한다?”
“…….”
“오빠는 주변에 미인이 득시글한데 맘에 두고 있는 사람은 없어?”
“…….”
“에휴! 우린 왜 이렇게 연애에 관해서 쑥맥일까?”
“너… 키가 너무 커.”
“그래서? 이것도 오빠 보니까 이해가 되는데? 피가 어디 가나?”
한마디도 안 진다.
“하여튼 나는 지금 그대로 살 거야. 다행히 오빠란 걸 모를 때 맡겨 준 희망 재단, 좋은 기회였어. 오빠는 돈 많이 벌어. 나는 그걸 최대한 값어치 있게 써 줄게. 펑펑!”
“야!”
영락없는 현실 남매다.
* * *
뉴욕 메트로폴리탄 병원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처음 있는 일이다.
우선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자가 보였다. 다음으로 독일 총리와 영국 총리, 이탈리아와 폴란드 대통령 모습도 보였다.
그 외에도 정상급 인물만 십여 명이 넘는다. 웬만한 나라의 외교 장관급은 구석에 찌그러져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미국에서는 추도사를 이렇게 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고인을 추모하던가 아니면 묘지에 사람들이 둘러싸고 꽃을 바치는 정도가 전부였다.
초청받은 자나, 그냥 온 자나 한결같이 시혁과 혜림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분주했다.
최소한 문상객을 맞이하는 시혁과 악수라도 나눌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 한복판 뉴욕에서 한국식 장례식장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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