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297
라그나로크의 마지막에 세상 모두를 불태운 이후 무스펠헤임에 서서 또다시 나서야 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쾅!
수르트가 검을 휘두르니 산 하나가 통째로 불타서 무너졌다. 마왕들의 강력한 마력조차 불길에 휩싸였다.
허무의 마왕은 공허의 바다를 열어 그 지독한 불길을 모두 삼켜서 무로 돌리고자 했으나, 수르트의 불길은 공허의 바다조차 불태웠다.
수르트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했다. 법칙이란 것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죽음과 삶이 나뉘기 전에도 숨을 쉬었다.
다른 모든 이에겐 공허의 바다가 두려운 곳이었으나, 수르트에게는 익숙하기만 했다. 태초의 혼돈에서 태어난 자가 어찌 혼돈을 두려워하겠나.
스걱!
수르트가 다시금 검을 휘두르니 차원의 벽이 무너졌다. 지독한 화염에 세상과 세상의 경계가 불타서 구멍이 뚫렸다.
쿵!
길게 찢어진 차원의 틈으로 수르트가 불타는 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억누르고 있던 힘을 토해 내듯 불길을 내뿜었다.
화르륵!
무스펠헤임의 불길이 불타는 검을 통해 쏟아졌다. 단번에 마계가 뜨거워졌다. 연기가 치솟고 땅이 녹아내렸다. 하늘이 요동쳤다.
마계가 불타고 있다. 그 잔혹하고 강력한 세계가 잿더미로 변하고 있었다. 마계의 악마들이 불길을 피해 도망치고, 아홉 세계의 전사들이 추격해 목을 베어 냈다.
이제 마계화의 권능은 의미가 없었다. 마계 그 자체가 불타서 무너지는데 마계화가 무슨 소용인가.
오히려 마왕들은 약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힘의 기반이 되는 세계가 무너지니 마왕의 격이 흔들렸다. 신성과 기운이 흩어졌다. 허무의 마왕과 파멸의 마왕은 그걸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탁!
파멸의 마왕이 수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마계를 불태우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프레이가 붙잡았다. 한때 수르트에 맞서 세상이 불타는 것을 막던 그가 이제 마계가 더욱 거세게 불타도록 수르트를 지켰다.
챙!
스스로 움직여 거인을 베는 검이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의 목을 노렸다. 날카로운 검이 스치고 지나가자 핏물이 튀었다.
파멸의 마왕 크툴라스는 고개를 젖혀 칼날이 더 깊게 박히는 것을 막으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프레이의 가슴을 후려쳤다.
쾅!
단번에 가슴이 뭉개진 프레이는 바닥으로 추락하면서도 파멸의 마왕을 노려보았다. 프레이의 검은 여전히 크툴라스를 위협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검을 튕겨 내고 파멸의 마왕이 돌아서자마자 티르가 덤벼들었다. 헤임달이 막아섰다.
– 저리 꺼져라!
사사삿-
크툴라스가 소리치자 파멸의 마력이 퍼졌다. 걸리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지독한 마력이 아스가르드 신들이 몸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울컥-
헤임달이 핏물을 뱉었다. 티르도 이를 악물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아주 끔찍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아스가르드 신들은 모두 요툰의 피가 흘렀다. 강인한 육신은 파멸의 마력에도 단번에 무너지지 않았다.
거기에 생명의 여신 이둔이 그들을 도왔다. 끝없는 생명력이 깃들어 파멸의 마력에 격렬히 저항했다.
크툴라스가 그들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것처럼 허무의 마왕도 붙잡혀 있었다. 토르가 묠니르를 굳게 쥐고서 거칠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허무의 마왕은 토르의 공격을 그대로 맞받아쳤다. 묠니르의 힘을 공허의 바다로 던져 버리고, 또 그것을 그대로 복사해 토르에게 끼얹었다.
쾅!
자신이 휘두른 공격이 그대로 돌아왔다. 스스로 망치로 후려치는 듯했다.
그러나 토르는 그 묵직한 충격을 버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렇지 않다는 것처럼 다시 묠니르를 휘둘렀다.
처음에는 완벽히 공허의 바다로 던져 버렸던 충격이 점차 새어 나와 허무의 마왕을 덮쳤다.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점차 강해졌다.
– 이런 무식한……!
흘러들어 오는 고통을 통해 묠니르의 파괴력을 짐작한 허무의 마왕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충격이 새어 나온다고 해서 토르가 얻어 맞는 것이 약해지지는 않았다. 토르는 일이나 이, 기껏해야 십의 피해를 주기 위해 백의 충격을 견디고 있다는 뜻이다.
묠니르가 한 방에 산을 평지로 만들 정도의 위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홉 세계를 통틀어도 감히 비교할 존재가 없을 만큼 튼튼한 육신이 아니라면 시도는커녕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 하하하하! 누가 먼저 쓰러지는지 보자고!
수십 번이나 묠니르로 얻어 맞았으니 그 튼튼한 육신이라고 해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토르는 오히려 껄껄 웃으며 허무의 마왕을 도발했다.
수르트의 불길을 온전히 막아 내지 못한 것처럼 마왕의 권능에도 한계가 있으니 그 단 한 번의 틈을 만들기 위해 토르는 자해하듯 몰아쳤다.
분명 싸울수록 토르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허무의 마왕만 점점 더 초조해졌다. 마계가 불타면서 힘은 점차 약해지는데 토르는 아무리 때려도 쓰러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쾅!
그러다 묠니르에 얻어 맞은 허무의 마왕 머리가 터져 나갔다. 강력한 번개가 쏟아지고 살점이 흩어졌다.
– 응?
호쾌한 손맛을 느낀 토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쉽게 쓰러질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토르의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수십 번의 망치질을 버티던 것이 무색하게 그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허무의 마왕이 멀쩡한 모습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저 충격을 흡수해서 되돌리는 것이 아니었다. 과정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결과를 마음대로 꺾어서 자신이 입은 상처를 토르에게 덧씌운 것이다.
그렇게 머리가 사라진 채 토르가 쓰러지자 허무의 마왕은 수르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가 더는 마계를 불태우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
그러나 허무의 마왕은 떠나지 못했다. 머리가 깨졌던 토르가 멀쩡하게 일어나 망치를 휘둘러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토르의 곁에 아이반이 있었다. 그는 겨우살이에 휘감긴 궁니르를 쥐고서 낮게 말했다.
“오크투신이 심장이 헛되게 쓰이지는 않았군.”
297화 밤의 끝
오크투신 타르칸은 자기 심장을 대가로 허무의 마왕이 숨기고 있던 권능을 알렸다. 인과를 뒤틀고 결말을 뒤바꾸는 힘을 아이반에게 보여 주었다.
그렇기에 막을 수 있었다. 허무의 마왕이 가진 권능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아이반은 무수한 가능성을 움직여 방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토르는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어이없이 쓰러지려다 다시 일어나 망치를 휘두를 수 있었다.
쾅!
묠니르가 허무의 마왕을 후려쳤다. 공허의 바다가 나타나 그 충격을 흡수하려 했으나, 천둥신의 힘이 거칠게 반항하며 벽을 넘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덤벼든 끝에 토르는 마침내 마왕의 권능을 비집고 들어가는 법을 깨우친 것이다.
– 윽!
허무의 마왕이 가슴을 부여잡고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치명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이전과 상황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쉬이익-
쿵!
아이반이 날린 묠니르가 마왕의 손짓에 튕겨 나왔다. 그리고 그걸 토르가 붙잡아 다시 내려찍었다.
치지직!
강한 번개가 몰아쳤다. 천둥신 토르는 지치지 않는다는 듯 몸을 던졌다.
– 머리통을 으깨 주마!
공허의 바다에서 갖가지 모습을 한 초월자들이 튀어나왔으나 토르가 묠니르를 휘두를 때마다 터져 나갔다.
그동안 허무의 마왕이 쓰러뜨린 강자는 참으로 많았으나, 그 누구도 홀로 토르를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토르는 상처 입으면서도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탁!
아이반은 어두운 용의 발톱으로 전갈 같은 괴물을 꿰뚫고, 궁니르로 땅을 내려찍었다. 창을 휘감고 자라난 겨우살이가 꽃을 피웠다.
발드르, 아홉 세계의 모든 가능성.
아이반이 가진 신성이 빛나기 시작했다. 본디 있을 수 없는 희망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막혀 있던 운명이 길을 열고, 보이지 않던 미래가 드러났다.
혼돈과 공허가 힘을 잃었다. 그 무엇도 아닌 것이 점차 질서를 찾고 법칙을 새겼다.
허무의 마왕은 물론이고 파멸의 마왕마저도 급격하게 약해졌다. 마계는 지금도 불타고, 아홉 세계는 지금도 자라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콱!
허무의 마왕이 공간을 넘어서 아이반의 목을 쥐었다. 이곳에서 가장 껄끄러운 자가 바로 아이반이었기 때문이다.
마왕이 둘이나 모여서 힘을 합쳤으면 도저히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세상의 운명이 이미 결정된 셈이었다. 그 흐름을 바꾸고 있는 것이 아이반이라는 것을 알았다.
– 네놈이 모든 것을 망쳤다!
으드득-
허무의 마왕의 손가락이 목을 파고들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극도로 위험한 순간. 그러나 아이반은 마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