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47
제37장 장천파 (6)
부글부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벌써 두 판을 내리 져버렸다.
주사위를 손아귀에 그러쥐며 점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저자가 손을 썼나?’
은천관의 상급 교관이라면 무려 절정의 고수.
얼마간 허공을 격하고 공력을 투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
기껏해야 작은 물건도 간신히 움직이는 정도다.
그것도 절정 중급을 돌파하고 나서야 간신히 가능하다.
어설픈 젊은 애송이가 해낼 수 있는 신기가 아니었다.
‘더구나 단순히 움직이는 정도로는 판을 가져올 수 없어.’
공력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것과 정확하게 원하는 패를 만들어내는 것은 또 다른 부류의 일이니까.
‘진짜 운이 좋은 놈이군.’
이제 저 오만불손함이 대강 이해가 가기도 했다.
어린놈이 나이에 비해 무공도 고강하고, 운도 따르니 세상이 모두 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겠지.
“큭큭큭. 이거 참 즐거운 승부로군.”
잔뜩 꼬부라진 혀로 키들대는 것을 보니 짐작은 확신이 되었다.
“자신만만하군. 다음 판도 자신이 있나?”
“다음 판은 자신이 없어.”
툭 어깨를 떨어트린 초운휘가 와락 고개를 들며 웃었다.
“질 자신이 없어! 으핫핫핫!”
‘이 개 잡놈이?’
살심이 치밀어 올랐다.
저 주둥이만 딱 보기 좋게 뭉갰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이내 점주는 당황하고 말았다.
“와아아아아-!”
‘어느새.’
엄청난 수의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연승이야! 점주를 상대로!”
“엄청난 승부다. 판돈이 어마어마한걸?”
“판돈이 문제가 아니야. 박진감이 넘친다고!”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상당한 실력자인걸?”
도박이라면 환장하는 이들답게, 간만에 펼쳐진 큰 판에 눈을 반짝이며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쳇. 조용히 덮기는 글렀군.’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이렇게 되면 선택지는 하나.
‘다음 판에서 박살을 내주마.’
손기술이나 기물의 힘을 빌린 것은 안일했다.
‘아예. 승부가 결정된 판을 만들면 돼.’
꼭꼭 숨겨왔던 비장의 패를 떠올리며 점주가 외쳤다.
“내 투전통을 가져와라!”
***
덜그럭.
두 사람 사이에 투전통이 놓였다.
“오-. 마지막은 투전인가?”
그것은 일반적인 투전통과는 생김이 무척 달랐다.
검은색으로 옺칠을 한 뒤에 자기로 장식했고, 테두리에는 은과 금을 녹여 붙였다.
투전통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예술품에 가까웠다.
“꽤 비싸 보이는군.”
“귀인이 왔을 때만 내어 보이는 비장의 물건이라.”
그래 보여.
“큰 판은 귀한 물건으로 승부를 봐야지.”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에 점주는 한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장치가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는 모양이군.’
반편이 자식.
전문 도박꾼들은 특이하거나 새로운 물품은 경계부터 한다.
상대가 어떤 속임수를 준비했을지 모르기 때문.
이런 이유로 꼭 흔하고 일반적인 물건으로 승부를 보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저 운 좋은 어린놈은 이런 간단한 사실조차 모르는 모양.
상대의 우둔함에 안도하며 점주가 입을 열었다.
“다음의 승부는 간단하게 가지.”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 슬슬 술기운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거든.”
흐트러진 입가에 앞섬을 잔뜩 적신 술을 보며 점주가 슬쩍 투전통을 흔들어 보였다.
잘그락.
통을 절도 있게 흔들고 기울이자, 안에서 한 장의 투전표가 튀어나왔다.
“각자 한 장의 투전표를 뽑아 높은 수가 나오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지.”
“간단해서 좋네.”
“이 통 안에 든 수는 일(一)부터 구(九)까지.”
“아홉수를 뽑으면 되는 거구먼.”
“동수가 나온다면, 그림으로 승패를 정하는 것. 알고 있나?”
“황용봉응호극취승. 황(皇). 임금이 가장 높고, 승(乘). 수레가 가장 낮았지?”
“바로 시작하지.”
딸그락. 딸그락.
점주가 투전통을 흔들었다.
‘후후후. 너는 모를 것이다.’
말은 일(一)부터 구(九)까지 있다고 했지만, 통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오직 팔(八)까지 뿐.
운이 좋아 가장 높은 패를 뽑아도?
‘내가 가진 아홉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소매에 감춰진 구패를 만지작거리며, 점주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막 통을 흔들어 패를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잠깐.”
처음으로 구경만 하던 놈이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
“더 이상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서. 먼저 패를 뽑아도 되나?”
“그쯤이라면.”
투전통을 넘기자 상대는 성의 없이 통을 흔들었다.
“산신령님. 용왕님. 수리수리마바사.”
“청성파의 도사가 잡신에게 빌어도 되나?”
“이길 수 있다면 거지 똥구멍에 낀 콩나물이라도 빼먹는 거지, 뭘.”
달그락.
통을 기울여 패가 나오자, 초운휘가 바로 덮었다.
“함께 패를 까야 쫄리는 맛이 있는 것, 알지?”
쫄리는 맛은 무슨.
‘승부가 난 마당에 작은 여흥 정도는 어울려주지.’
점주가 투전판을 흔들어 패를 덮었다.
—–.
—–.
—–.
구경꾼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꿀-꺽.
누군가 목울대를 출렁거리다가 주변의 눈총을 받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두 사람이 덮은 패를 노려보며, 이 장대한 승부의 끝을 지켜보고 있었다.
좌중의 시선을 느끼며 점주는 내심 웃었다.
‘후후.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나락으로 떠밀어주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매의 패와 바꿔치기하려는 순간이었다.
“내가 먼저 까지.”
팔락.
패를 뒤집은 상대가 ‘어이쿠!’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황(皇)에 구(九)야.”
이거 어쩌지?
최고의 패가 나왔네?
“그쪽은 패를 깔 필요도 없겠어.”
깜짝 놀란 점주가 재빨리 소매를 더듬었다.
‘없다! 없어!’
소매에 감추고 있던 패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흉수는 두고 볼 것도 없었다.
분명 소매에 감추어 놓았던 패는 저놈의 손에 들려 있으니까.
그제야 점주는 술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상대의 눈을 보고 확신했다.
‘당했다!’
승부 결과를 본 중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와! 저걸 뽑아?”
“운이 대체 얼마나 좋은 거야?”
“이거 점주 완전히 거덜 나겠는걸?”
우와아아아!
명쾌한 결과에 함성을 내지르는 사람들.
하지만 점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귓가에 벌떼가 우는 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없었다.
그저 보이는 것은.
“후후. 이건 잘 챙겨가겠어.”
판돈 위에 올라간 전표에 손을 뻗으며 얄밉게 웃는 상대의 모습.
뚝.
인내심이 끊어지며, 애써 억눌러온 살심이 뒷골을 쳤다.
파악!
좌수로 판을 뒤집으며, 점주가 악귀처럼 외쳤다.
“저 새끼! 잡아!”
와르르륵!
골패며 주사위가 어지럽게 비산하는 가운데, 퍽! 자리를 박차고 뛰어오른 점주가 초운휘의 목을 향해 조법을 펼쳤다.
“이것 참. 승부에 승복을 못 하는구먼.”
이래서 흑도 방파란.
살심(殺心)이 터진 점주가 매섭게 양손을 찔렀다.
“죽어랏!”
독수리 발톱처럼 구부려진 조법에 마주해 초운휘의 쌍수가 움직였다.
빙글.
맞댄 손목을 중심으로 손바닥을 뒤집자 일순 쐐액! 하는 파공음과 함께 장법이 터져 나왔다.
펑!
장력에 담긴 기운이 적지 않은지라, 감히 경시하지 못한 점주가, 도박판을 밟으며 뛰어올랐다.
장세를 피한 후 재차 목과 가슴을 쥐어뜯을 셈이었다.
“누가 밥상에 발 올리라고 했냐?”
하지만 초운휘가 한 수 빨랐다.
쾅!
도박판을 밀어 차자, 발끝으로 도박판을 찍던 점주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쿠웅.
균형을 잃고 등부터 도박판에 떨어지자, 이어지는 것은 장세의 파도.
파파파팍! 펑!
원을 그리다, 선을 그리고.
선을 그리다가, 손을 옭아매는 장법에 점주가 비명처럼 외쳤다.
“풍뢰장(風雷掌)?”
풍(風). 바람처럼 흐르다가.
뢰(雷). 벼락처럼 쏟아진다는.
청성파의 장법(掌法)이 아닌가.
구파의 절기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라, 매섭기만 한 조법이 멋대로 장세에 휘말렸다.
“쳇!”
점주가 다급하게 신형을 뒤로 뺐다.
“어허.”
아이야.
어디를 그리 급히 가느냐.
“갈 때는 어른께 허락부터 받아야지.”
쿵.
후-욱.
한걸음에 상대가 코앞까지 따라붙어 양손을 흔들자.
웅웅웅웅!
수백 마리의 벌떼가 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구름처럼 흔들리던 손그림자가 헤아릴 수 없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쇄비천수장!”
비석을 파고든다는 강맹한 장력이 수십 개나 일어나자, 점주는 혼백이 달아날 만큼 놀랐다.
‘청성파 기재라더니.’
나이에 하나도 대성하기 힘든 장법을 두 개나 펼치는구나.
‘만만히 볼 수 없는 놈이다.’
한 번의 부딪힘으로 상대의 실력을 파악한 점주가 갖은바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쐐액!
사아악!
펑펑펑펑!
조법과 장법이 부딪히자, 충격파가 일어나며 주변의 도박판들을 일제히 날려 버렸다.
와르르르르!
허공에서 비처럼 골패와 은자들이 떨어지는 가운데, 두 사람의 손이 빠르게 얽혔다.
***
“저놈들이다!”
“저기 네 놈이 공모자들이다!”
스릉. 스릉.
스르릉. 달칵.
도박장 직원들과 기도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아악! 이게 또 무슨 경우예요?”
“어쩐지. 이럴 줄 알았어.”
“…조용히 넘어갈 리 없지.”
“각자 조심해. 우리는 맨손이야.”
원을 그리며 포위망을 좁혀오는 적들을 보며, 일전을 준비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정정당당한 승부였어!”
“이런 비겁한 놈들. 내 돈 가져갈 때는 칼 같더니!”
“예잇! 그렇다면 우리도!”
갑자기 관중들이 홀린 듯 약탈꾼으로 돌변했다.
칼에 겁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막장 인생들은 난장판이 된 가운데 각자 떨어진 은자를 줍겠다며 설치기 시작했다.
“이, 이런! 모두 멈춰라!”
“멈춰! 멈추지 않으면 베겠다!”
“거기! 멈추란 말이다!”
칼을 들이밀었지만, 이미 한탕 할 생각인 도박꾼들을 모두 막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이렇게 되니 도박장 직원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놈들! 멈추란 말이다!”
“아악! 사람 살려!”
결국 한 직원이 돈통에 손을 넣던 도박꾼을 붙들었다.
“이때예요!”
기회를 보고 있던 모용소혜가 바닥을 박차며, 훌쩍 뛰어올랐다.
이어 가벼운 몸놀림으로 허공에서 신형을 뒤집더니.
뻑!
비조처럼 날아, 도박꾼을 찍어가던 직원을 후려쳤다.
“켁!”
퍽퍽퍽퍽!
몇 개나 되는 도박판을 엎으며 쓰러지자, 도망치던 사람들도 눈을 빛냈다.
“기, 기회다!”
“이때야. 잃은 돈을 되찾을 기회!”
“훔치는 것이 아니야! 돌려받는 거야!”
“와아-! 전부 내 거야!”
기회다-.
아수라장이 된 장내에 세 사람이 뛰어들었다.
“이것 참.”
남궁윤호가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박도의 검광의 사이로 몸을 피하며, 짧게 권격을 내질렀다.
퍼-억!
“크르륵.”
상당한 덩치였지만, 일격에 풀썩 주저앉아 거품을 물었다.
기껏해야 삼류 수준.
정공의 무학을 깊이 익힌 남궁윤호의 일격에 차례차례 고꾸라졌다.
차악! 퍽!
어디에선가 쥘부채를 주워든 제갈탄은 부채를 펼쳐 상대를 현혹하고, 허공에서 접어 미간을 후려치고 있었다.
팔랑! 따닥!
눈앞에 아른거리는 부채에 놀라 뒷걸음질 치다, 머리를 싸쥐며 주저앉는 상대에 제갈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식후 해장거리도 안되는군.”
이런 손쉬운 싸움은 정말 오랜만인걸?
퍽!
박도를 앞세워 달려드는 상대의 손목을 수도로 때리고, 선풍각으로 차 날린 백리설이 빙글 몸을 돌렸다.
어느새 허공에서 떨어지던 박도를 받아 든 채였다.
“영 조잡해서 못 쓰겠네요.”
콰득. 태앵!
손에 힘을 줘 검을 부러트린 백리설이 미간에 고운 주름을 만들었다.
“툭 치면 부러지네요.”
확실히 그랬다.
오히려 상대가 죽어 버리지 않도록 힘 조절을 하는 쪽이 더 신경이 쓰일 정도.
“얼마 전까지는 은월비적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불법 도박장 기도들이라니.”
너무 격차가 극심한 것 아닌가요?
백리설의 말에 남궁윤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리 소저. 긴장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교관님께서 만든 판이 간단히 끝을 내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아니나 다를까.
콰앙!
굉음과 함께 시커먼 것이 이쪽을 향해 훌훌 날아오고 있었다.
뒤이어 나른한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거기 조심해라.”
애가 좀 사나워.
쿠당탕!
몇 개나 되는 도박판을 박살 내며 바닥을 구른 점주가 주르륵 남궁윤호 곁으로 밀려왔다.
“으득! 이 X자식!”
퍽퍽!
자신 위에 쏟아진 부서진 집기들을 쳐내며 일어난 점주가 봉두난발이 된 채로 악을 썼다.
“죽여 버리겠다!”
화르르륵!
갑작스레 일어난 불꽃이 점주를 감싸는 가운데.
고오오오오-.
소름 끼치는 기운이 폭사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