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54
제39장 새로운 관도를 맡게 (2)
매캐한 연기.
역한 냄새를 내며 타들어 가는 시신들.
살아 있는 것이 모두 없어져 버린 잿더미의 세상에서.
초운휘는 눈을 떴다.
‘오랜만의 꿈이네.’
자각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꿈이 아니라면, 자신의 눈높이가 이렇게 높을 리 없으니까.
시선을 내려 두 손을 향하자, 검게 탄 손과 고목처럼 갈라진 손이 잡혔다.
하나 같이 피에 절은 채로.
목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보다 훨씬 낮고, 굵은 저음이었다.
‘확실히 내 기억이야.’
언제 즈음의 일일까?
하늘에서 눈처럼 내려 쌓이는 잿가루와 자욱한 연기 너머 불타는 화광을 보며 시기를 짐작해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자신이 보던 세상은 대개 이런 식이었으니까.
‘가만. 왼손이 까맣게 탔군.’
문득 왼팔을 다쳐 외수검을 익히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가물가물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시기와 때를 가름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가 들려 오기 전까지는.
[그래서. 받을 거예요, 말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다!’
꿈에 그리던 이의 달콤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려 하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등을 돌린 채로 묵묵히 잿가루가 날리는 허공만 응시하는 탓에 쉽지 않았다.
‘젠장. 색시나 보라고!’
우중충한 하늘 말고!
이 몸은 조종할 수가 없나?
꿈이니 이런 편의 정도는 봐주면 좋으련만.
괜한 하늘을 탓하고 있자니 다시 목소리가 울렸다.
[꺼져라. 계집.]빌어먹을. 몸은 좋으니까 말투라도 좀 어떻게 해봐.
‘색시에게 미움받고 말거라고!’
기원이 닿았음일까?
희뿌연 허공만 응시하던 시선이 슬쩍 어깨 너머를 향했다.
그곳에는 어깨에 잿가루가 소복이 쌓인 여인이 있었다.
‘그녀다. 그녀야.’
보는 순간 깨달았다.
하지만 얼굴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힐끔거리는 정도로는 음영이 드리운 아래 존재하는 그녀의 턱 끝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정말 후회하지 않을 거죠?]한 마디에 초운휘의 기억의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순식간에 과거의 편린이 떠오르며, 총천연색의 색이 살아났다.
‘아아. 처음 손을 잡은 날인가?’
모든 것이 기억이 났다.
눈만 감으면 언제나 그때의 생각이 생생하니까.
이어질 말도 떠올랐다.
‘마지막 식량이에요.’
[마지막 식량이에요.]‘싫다면 혼자 먹죠, 뭐.’
[싫다면 저 혼자 먹죠. 뭐.]이런 한 글자를 틀렸구나.
하지만 시선에 보이는 모습은 기억 대로의 것이었다.
다 식은 만두.
그나마도 잿가루에 지저분해진 만두 한 알이 앙증맞은 손바닥 위에 오도카니 올려 있었다.
대화가 이어졌다.
[그럼. 나 혼자 먹을. 아앙-.]눈앞에서 만두가 거두어지자, 자신의 목소리가 울렸다.
[계집.]무척 오만하고, 사나운 목소리였다.
[본좌는 혈교의 교주이자, 십만대산을 굴복시킨 군주다.]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고함으로 바뀌었다.
[내 손짓에 움직이는 교도가 십만을 헤아리고!] [말 한마디에 만 명의 목숨이 지워진다!!]휘익!
거칠게 손을 휘저으며 재차 외쳤다.
[내가 발을 구르면 하늘에 닿고!] [검을 뽑으면 천하고수조차 일초지적이 되지 못하니!!] [내가 바로 천하제일! 아니 고금제일의 고수란 말이다!!!]고오오오오.
목소리에 담긴 공력에 수십 장 안에 소복이 내리던 잿가루가 흩날렸다.
대기가 공명해 하늘이 벌벌 떨었으며, 충천한 화광마저 목소리에 담긴 기세에 사르르 불길을 삭였다.
목소리만으로 산천초목을 떨쳐 울리는 압도적인 기세.
그럼에도 초운휘는 생각했다.
‘아이고오-.’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수치심에 얼굴부터 가리고 싶었다.
기억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지금 만두 있어요?]여인의 말에 처음으로 목소리가 작아졌다.
[마, 만두?]겁을 먹기는커녕, 올곧은 눈으로 마주하는 상대는 처음이었으니까.
다소 횡설수설하고 말았지.
[나는 마도의 종주. 창고에 쌓인 황금은 강을 메울 만하고. 말만 하면 언제나 산해진미가….] [그래서. 지금 만두 있냐고요!]앙칼진 목소리에 처음으로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없어.]작아진 목소리에 여인이 기세를 타고 공격해왔다.
[여보세요. 혈마교주님.] […말해라.] [안 그래도 말할 거거든요?]왜 제가 그쪽 허락을 받아야 하죠?
쏘아붙이는 탓에 우물쭈물하고 말았다.
[이제 강호는 망했어요. 살아남은 사람도 거의 남지 않았고요.] […그건. 그렇다.] [믿을 사람은 더욱 없죠.] [그래.]세상은 이미 망천회의 것이 되고 말았다.
생각 없이 좌충우돌 하는 가운데, 충신은 모두 죽고, 등 뒤에 남은 것들은 오직 배신자뿐.
의리를 논하고 도리를 읊던 이들은 모두 죽어 없어지고 말았다.
이제 남은 세상은 득실이나 따지는 인면수심 한 자들의 강호.
그녀가 말했다.
[죽이겠다며 싸워왔지만, 이제는 사과하고 싶어서요.] [사과? 나에게?] [적어도 ‘살의’라는 감정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숨김없이 보여준 사람이니까.]웃음 뒤에 숨어 기만하는 동료보다, 차라리 가감 없이 증오하는 그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가?] [사과의 증표예요.] [만두 반쪽이? 허!] [싫다면 권하지 않아요.]거기까지 말한 그녀가 한 호흡을 들이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이 마지막 만찬을 끝으로 전 놈들과 싸우러 갈 거예요.] [혼자서 싸우겠다는 건가?] [그쪽은 알아서 해요. 망천회에 가담하든 말던.]누가 알아요?
교주 정도면 한자리 줄 것도 같은데.
이때의 그녀와 자신은 다른 것은 몰라도 한 가지는 일치했다.
[기만으로 살아가는 자들 따위와 협력할 성싶더냐?]상한 만두를 씹어 삼킬지언정, 기만자들과 어울려 호의호식을 할 생각은 없다.
소회를 밝히자 그녀가 웃었다.
[역시 사과할 만한 보람이 있었어요.]검상에 뒤덮였으나 여전히 환하게 빛나는 피부가 잿가루 속에서 유독 도드라졌다.
미안했어요-.
사과와 함께 한 걸음 물러나는 모습이 무척이나 서운해서.
[잠깐.]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말았다.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짓이죠?] [그…. 사과의 징표는 주고 가야지.] [호호. 산해진미가 아니면 안 먹는다더니.] […….]무안해진 채 발끝만 쳐다보고 있자니.
[자요.]시야 속으로 만두 반쪽이 내밀어졌다.
무뚝뚝하게 답하고, 만두를 입에 가져갔다.
‘기억대로의 맛이야.’
잔뜩 쉰데다, 잿가루마저 뒤섞여 도무지 먹을 것이 아니었지만.
난생처음 ‘허기’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멋대로 털어 넣다 질려 버린 산해진미에 비할 바도 없을 텐데.
어째서인지 줄어가는 만두가 너무나도 아쉬워서 마지막에는 만두 조막을 몇 번이고 잘게 쪼개 먹었다.
‘처음으로 음식이 맛있다고 느꼈던가?’
기억대로 자신이 말했다.
[맛있군.] [산해진미에 비할 바는 아닐 텐데요.] [무엇보다 맛있다. 그러니.]쑥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반의반 쪽이라도…….]아니, 작은 부스러기라도.
슬쩍 손가락을 세워 보이자 그녀가 호호홋! 웃음보를 터트렸다.
[풋 그쪽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요.]귀여워? 내가?
[자요! 선심 써서 반이나 줄 테니까.]꼬르륵. 소리를 내면서도 제가 가진 반절을 다시 떼어주는 그녀의 미소가 무척이나 환해서.
다시 횡설수설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창고에는 황금이 산처럼 쌓여 있고, 손짓만으로 각종 산해진미가.] [다시 줘요. 내가 먹을 테니까.] […있지만 가끔은 이런 별미도 좋군.]장난스럽게 내민 손을 피해 혼자 만두를 으적으적 씹었다.
그러면서도 자존심은 잃고 싶지 않아 불퉁하게 투덜댔다.
[이것은 어디의 만두인 거지?] [개봉성의 홍미관이라는 곳에서 파는 만두예요. 국수로 유명한 집이긴 한데, 만두도 괜찮죠?] [괜찮군. 나중에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면 개봉성을 통째로 사주지. 그러니….] [더는 못 줘요. 이건 진짜 마지막이라고요. 양심 없나요?] […….]어느새 잿가루가 내리는 세상은 더 이상 우중충하지 않게 되었다.
도리어 하늘에서 쉬지 않고 내리는 잿가루는 마치 회색의 눈과 같아서.
‘꽤 괜찮은 세상이군.’
처음으로 아름답다. 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
“어. 꿈인가?”
가물가물 돌아온 시야 속에 낯선 천장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자 온몸에 활력이 용솟음쳤지만, 일어나지 않고 침상에 박제된 채로 꿈의 여운을 즐겼다.
하지만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지는 꿈의 기억.
아쉬움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고양이 신점. 꽤 영험한데?”
가장 좋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더니.
“이것이 대길(大吉)의 의미인가?”
어쩌면 예지몽일지도 몰라.
“예지몽!”
분명 색시를 만날 것이라는 예지몽일 거야.
속삭이며 꿈의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침상 위를 굴러다녔다.
***
좋은 꿈 덕인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실패로군요.”
“미안해. 주군-.”
살수들이 색시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희소식도 있었다.
“어째서인지 소호에 찾아오는 관도들이 늘었어-.”
일손이 부족한 것은 불쌍하지만, 색시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진다니 이것도 희소식이지.
“단순히 관도들뿐이 아닙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상당한 거물들이 대거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전처럼 쉽게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이건 안 좋은 소식이네.
하지만 고양이 신점을 믿어보자.
“고난이 있겠지만 문제없다.”
이 몸은 대길(大吉).
고양이 신의 점지를 받은 남자.
무조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일 테니까.
***
‘…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쩐지 하루 종일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밥을 먹다 은천관 교관들에게 걸렸고.
여매홍에게 놀러 갔다가, 모용선야와 마주쳐 농땡이 치지 말라고 잔소리까지 들었다.
“어째 약빨이 떨어진 것 같네.”
생명력이 짧구나. 백묘신점.
다시 점을 볼 요량으로 어슬렁어슬렁 나섰다가, 백리설을 피해 도망치던 고양이 무리에 휩쓸려 버렸다.
너덜너덜해진 채로 바득바득 백묘신점에 도착했더니 최악의 전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으득. 여기 있었군.”
막 점을 보고 나오던 상급 교관 장철심과 마주치고 만 것이다.
손에 들린 ‘직장운’ 점괘와 ‘동료운’ 점괘에 시선이 빼앗긴 사이, 순식간에 뒷덜미를 잡혀 버렸다.
그 결과.
“…….”
맞은 편에서 깍지 낀 손을 탁자에 괸 장철심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꿀꺽.’
시선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싶은 무서운 눈이었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자네. 이 바쁜 와중에 어디 숨어 있었던 건가?”
묵비권을 행사하자, 장철심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소용없네.”
“……”
“딴청을 부려도 소용없어. 자네 동료들이 전부 불었거든.”
“!”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적당히 둘러대 달라는 부탁을 했으니까.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자네, 좋은 동료를 두었더군.”
이번에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지만.
장철심이 사나운 기세를 한 채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