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2
제41장 서옥랑 (7)
다그닥. 다그닥.
빠르게 관도를 나아가는 백색의 마차.
금장으로 장식된 휘황찬란한 마차의 안에는 한 명의 노인과 중년인이 마주하고 있었다.
개중에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응시하고 있는 노인.
백발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드리운 채, 티 없이 새하얀 장포를 입은 노인의 모습은 흡사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을 닮았다.
하지만 구름 같은 표표한 외양과 다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노인의 기도였다.
열 사람은 넉넉히 앉을 수 있는 거대한 마차 안이었지만, 노인의 존재감은 그 안을 모두 채우고도 남았다.
풍성하게 배꼽까지 흘러내린 백염을 쓸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노인의 눈에 아련함이 담겼다.
그때 맞은 편에 앉은 중년인이 반응했다.
“잊은 게지요. 미련한 자들이.”
노인이 시선을 던진 곳에는, 단단한 체구의 중년인이 두루마리를 거칠게 구겨내고 있었다.
“십 년은 긴 시간이지.”
“하지만, 대 남궁세가의 위엄을 잊기는 짧은 시간입니다.”
빙긋.
다부진 대답에 노인이 웃음기를 머금었다.
“너무 타박하지 마라. 무지한 자들이다.”
“무림맹은.”
구긴 전서를 옆으로 밀어내며 중년인이 흑백이 선연한 눈에 분노를 담아냈다.
“일방적인 요구를 보내올 정도로 본가가 우스워 보이는가 봅니다.”
중년인, 남궁가주 남궁무산이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냈다.
“너무 불편해하지 말거라. 무림맹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모양이니.”
망천회.
이들을 맞아 꽤 고역을 치르는 모양이니까.
“어떤 사정이 있다고 한들, 무림맹의 요구는 과합니다.”
남궁무산은 한결같았다.
남궁세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높은 그로서는 고작 사도의 무리 몇을 잡기 위해 남궁세가가 나서야 한다는 점이 무척 못마땅했다.
“부탁 또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 혈루석을 부탁합니다.
고작 돌 따위를 맡아두는 일에 세가의 힘을 동원해 달라니.
자존심을 상당히 건드리는 일이기도 하였다.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혈루석이라는 것에 꽤 흥미가 생기기도 하고.”
강호를 종횡하며 진귀한 보물을 몇 번이고 본 적이 있는 남궁찬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혈루석이라는 물건은 들어본 적도 없는 신기한 것이었다.
“이종의 진기에 대한 비밀이 감춰진 돌이라.”
신기하지 않느냐?
“또한, 혈루석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다면 본가의 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테지.”
남궁찬의 말에도 남궁무산은 딱히 좋은 반응이 아니었다.
“사특한 물건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본가의 무학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이종의 진기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임은 분명하다.
“허나. 깊이 수련하여 얻는 깨달음 대신 기물에 의지해 얻는 힘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네 말이 맞다.”
남궁찬이 웃었다.
“동시에 틀리다.”
“무슨 뜻이십니까?”
“비로소 제왕검형을 익혀낸 너라면 분명 천하의 어떤 강자라도 꺾을 수 있을 테지.”
부친의 말에 남궁무산의 얼굴 위로 자부심이 스쳐 갔다.
“하지만.”
남궁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본 가의 무공은 너무 심오하다.”
“심오하기에 본 가의 무공이 천하제일인 것이 아닙니까?”
허허. 백염을 느긋하게 쓸어내리며 남궁찬이 미소 지었다.
“허나 단점이 있지.”
단점?
“본 가의 심오한 무공을 익혀낼 수 있는 것은 너와 나 같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뿐이라는 것이다.”
“아!”
“재능이 극히 뛰어나야 검술 한 자락 이해할 수 있으니, 본 가의 무공의 정수를 깨닫는 이가 얼마나 되겠느냐?”
이것이 평생의 아쉬움이었다.
“너는 가주다.”
스스로 갈고 닦아 천하제일의 이름을 얻는 것만으로 부족하지.
“고금 이래로 수많은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강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당대에 위명을 떨치는 것에 그쳤지.”
“반면에 너는 가문의 천년 기틀을 세워야 하는 가주다.”
가문의 수장이란 그런 것이다.
덧붙이며 남궁찬이 제 아들을 타일렀다.
“부족한 이들조차 넉넉히 품에 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혈루석이라는 것은 꽤 좋은 기회일지 모르지.
질책에 남궁무산이 생각을 곱씹고는 말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혈루석이라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군요.
“나아가 망천회라는 자들 또한 눈에 밟히고 말입니다.”
하늘을 무너트리겠다니.
“강호의 하늘이란 즉 본 가. 남궁세가를 노린다는 뜻 아닙니까?”
실로 자신만만한 대답에 남궁찬이 껄껄 웃었다.
“핫하하! 과연! 너의 말대로다.”
“무림맹의 부탁 때문이 아니라, 천하제일가의 가주로서 결정하겠습니다.”
혈루석과 망천회.
불측한 것들을 남궁세가의 뜻대로 할 것을.
“네가 가주다. 네 결정은 곧 가문의 결정이니.”
남궁찬은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네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남궁세가가 원한다면,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법칙이니까.
가주로서 당당하게 성장한 자식을 보며, 만족한 남궁찬은 다시 차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혈루석이라….”
중얼거린 남궁찬이 백염을 쓸어내렸다.
“노부의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느덧 개방의 경고 따위는 이미 잊혀지고 난 후였다.
***
“오!”
장철심이 보낸 전서를 읽던 초운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라고 하세요?”
얼마 전 장철심을 통해, 매검굴에서 잡은 낭인을 넘겼다.
이후 짧게 근황에 대해 보고했는데, 이제야 답신이 온 것이다.
“별건 아니고.”
무덤덤한 채로 초운휘가 휙 전서를 펼쳐 보였다.
“공적을 인정해 너희들의 징계를 무효로 하겠대.”
듣고 있던 서옥랑이 폴짝 뛰었다.
“와! 정말이요?”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수척한 얼굴 위로 감격이 어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학관의 목적은 인재 양성이니까.”
다소간 죄를 지었다고 해도, 갱생의 여지를 증명한다면 냉정하게 손절하지는 않는단 말이지.
“하…. 가능할 줄 몰랐습니다.”
응, 그럴 거야.
‘사실 나도 몰랐거든.’
장철심 상급 교관이 혼자 중얼거리던 말을 참고했을 뿐이다.
‘수하들의 뒷조사도 도움이 꽤 되었고.’
어쨌든 이로써 이번 일도 무사 종결이다.
“이제 돌아가면 된다. 벌점과 가산점을 상쇄한다는 모양이니까.”
하지만 너무 긴장을 푸는 것은 좋지 않아.
“얼마간의 징벌은 피할 수 없을 거니까.”
짐짓 엄하게 말해봤지만, 서옥랑과 일표는 싱글벙글이었다.
“뭐, 근신 정도는 괜찮아요. 퇴관에 비한다면.”
“정신 교육도 꽤 번거롭긴 하지만, 참을 수 있습니다.”
쫓겨나지 않은 것만으로 어디인가?
비록 안 좋은 구설수는 어쩔 수 없다지만, 앞으로 그럭저럭 감내할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이제 이 귀찮은 일도 끝인가?’
슬슬 돌아가서 게으른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다들 알지? 모두 내 덕분인 거.”
그러니까 말이야.
“교관 평가 같은 거 할 때 꼭 ‘월봉 두 배는 올려줘야 함.’이라고 쓰는 거야.”
일표가 질겁을 하며 되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그럼.”
나도 박봉 인생 좀 벗어나자.
***
소호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한가로웠다.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하던 서옥랑이 곁에서 중얼거렸다.
“처음 밤중에 야반도주할 때까지만 해도 암담했는데.”
옆으로 붙으며 서옥랑이 몸을 기울이며 웃었다.
“이렇게 빨리 금의환향할 줄은 몰랐어요.”
“그랬어?”
“맞다. 교관님은 이후에 따로 계획이 있으세요?”
“나 바쁜 사람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꼬여내려고 해도 바쁜 어른은 속아 넘어가지 않아.
덧붙이자 치이 서옥랑이 입술을 비죽였다.
“맨날 바쁘대….”
“난 인기쟁이에 능력 있는 사람이라 바쁜 것이 당연해.”
“밥도 혼자 먹고, 게으름 피우는 것이 일상이라던데요?”
“모두 거짓말이야.”
철벽으로 일관하는 초운휘에 서옥랑이 서운한 태를 냈다.
“바쁜 척하지 말고, 시간 좀 내요. 크게 대접할게요.”
“차라리 돈으로 줘.”
“쳇. 쳇. 쳇.”
혀를 찬 서옥랑은 토라졌다.
사실 이번 일로 제법 이 임시 교관이 마음에 들던 참이다.
‘능력도 좋은 것 같고, 묘한 구석에서 실력 발휘를 하는 것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묘하게 어른스러운 분위기였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것 같은데.’
곁에 있는 것만으로 듬직하게 의지가 된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사무적인 교관들과는 다른 인간적인 면모도 호감이 생기는 요인이었다.
‘접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구사일생으로 퇴관을 면하자, 사그라들었던 연심과 장난기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제가 무슨 눈을 했는데요?”
“먹이를 노리는 암사자 같았어.”
“무슨 실례되는 소리예요!”
빽 소리친 서옥랑이 전략을 바꿨다.
“흥흥! 혼자 사는 분께 좀 도움을 주려 했는데 말이에요.”
“도움? 무슨 도움.”
“이래 봬도 은천관의 인기인이란 말이에요. 분명 도움이 될걸요?”
예를 들면.
“잘 알려지지 않은 인재를 추천한다던가?”
“그런 것이 왜 필요해?”
“정식 교관이 되면 담당 관도를 맡아야 하지 않아요?”
“헉!”
놀란 얼굴을 보는 서옥랑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설마…. 앞으로도 계속 농땡이만 피울 셈이었나요?”
“아니.”
말과 달리 날카로운 턱선을 따라 흐르는 식은땀이 영롱하다.
‘정곡을 찌른 모양이네.’
기세를 잡은 서옥랑이 몰아붙였다.
“은천관은 관도 선점이 엄청나게 어렵다던데.”
“재능 있는 관도는 교관들이 경쟁까지 해서 빼 온다고요?”
“쟁쟁한 교관들 사이에서, 사문도, 의욕도 없는 분께서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아요?”
“심지어 소문은 안 좋은 쪽으로만 난 분께서!”
“윽. 윽. 윽. 윽.”
서서히 침몰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서옥랑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봐요! 이 제가 얼마나 귀한 인재인지.”
가슴께를 움켜쥔 초운휘가 울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좋아. 귀한 인재께서는 누구를 추천할 생각인데?”
“일단, 저.”
“기각.”
단호한 거절의 말에 서옥랑이 오리입을 하며 덧붙였다.
“…와 비견되는 정도라면.”
뒤이어 몇 개의 이름이 나왔다.
“허. 당애희 소저와도 알고 지냈습니까?”
“후후. 꽤 친밀한 사이죠.”
사천당문의 금지옥엽.
당애희와도 절친한 사이라고요.
자랑 섞어 말해봤지만, 딱히 초운휘는 반응이 없었다.
‘쟁쟁한 가문의 사람이라 그런가?’
임시 교관은 시골 문파 출신이니까, 너무 좋은 가문의 관도는 꺼려질지도 몰라.
뒤이어 적당한 이름을 이어가던 때였다.
“누구라고?”
초운휘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응? 설향이 말이에요?”
“응. 이름이 익숙한 것 같아서….”
그럴 리가.
서옥랑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진설향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워낙 존재감이 없는 아이거든요.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기도 하고요.”
“아냐. 익숙해. 묘하게.”
“의외네요.”
검지로 입술을 밀어 올리던 서옥랑이 몇 마디 말을 할 때였다.
문득 뒤처지는 초운휘를 보며 일표가 물었다.
“교관님. 왜 그러십니까?”
“아, 별건 아니고.”
품속에 손을 넣던 초운휘가 울쌍을 했다.
“…돈주머니를 흘린 모양이야.”
“엑? 칠칠치 못하게.”
“하하. 내가 그렇지.”
일표가 목발을 고쳐 잡으며 나섰다.
“돌아가서 같이 찾아보시죠.”
“괜찮아. 몸도 성치 않은 놈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금방 찾아서 뒤쫓아갈 테니까.”
먼저 가고 있어.
등을 떠미는 모습에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옥랑과 일표.
두 사람의 인형이 길 너머로 사라졌을 때.
“하. 이것 참.”
초운휘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간만에 들려온 희소식이라 딱 좋았는데.”
허공을 향한 시선에 불쾌함이 어렸다.
“웬 귀찮은 것들이 나타난 거야?”
퉁.
거슬리는 기운을 향해 초운휘가 신형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