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95
제49장 이별, 그리고 깨달음 (1)
“고루마공이라니!”
시커멓게 심장을 노리는 새카만 흑수(黑手)에 적무경은 대경하며, 신형을 박찼다.
쐐애액!
검게 번들거리는 손이, 공간을 헤집으며 소름 끼치는 파공성을 쏟아냈다.
팟! 파팟!
고루마공의 무서움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꽃을 잘라내?”
지금까지 태우지 못한 것이 없는 겁화가 마기에 흩어지자 적무경이 놀라 외쳤다.
“왕우! 네놈은 뭐냐!”
“말했지 않은가? 하늘을 섬기는 늙은 신하일 뿐이라고.”
“어떻게 곤륜파의 전인이 혈교의 극악마공을 사용할 수 있는 거냐!”
단순히 따라 하는 수준이 아니다.
검끝을 누르고, 검신을 때리는 묵빛 장세를 떨쳐내던 적무경은 알 수 있었다.
‘이건 고루마공의 경지를 아득히 상회하는 수준이 아닌가.’
기본적으로 어떤 무인이든 마공과 정종의 무학을 함께 익히지 못하는 것이 정설이다.
정순함과 패도라는, 두 극단적인 대 우주의 힘을 인간의 육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탓이었다.
“말했지 않으냐.”
검은 손그림자가 수백 개로 늘어나며, 반경 십여 장을 마기로 채웠다.
“내 하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고!”
사아아아아-.
“크윽!”
불길을 밀어내는 묵빛의 마기에 적무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빌어먹을. 소문보다 더 지독하군.’
이건 숫제 북천의 하늘에 버금가지 않는가.
번쩍!
사방을 잠식한 마기에 호흡을 거듭하던 적무경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마기에 담긴 독기에 정신이 아찔해진 것이다.
‘마신강림을 앞둔 내가 밀리다니.’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반쯤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진 와중이다.
그럼에도 밀리자, 팔천사도 적무경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콰가각!
검은 마기를 꿰뚫고 묵빛으로 빛나는 손이 정수리를 쪼개왔다.
휘-익!
상체를 젖히며 피하자, 수도가 조법으로 변하며 옆구리를 쑤신다.
펑!
“컥!”
상체가 구부러지며 비명을 뱉어낸 순간, 왕우의 신형이 사방에서 번쩍이며 귀신 같은 장법을 연거푸 날려왔다.
‘중첩장!’
쏟아지는 장세에 담긴 역도에 적무경이 본능적으로 양팔로 얼굴을 감싸며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펑! 펑! 펑! 펑!
강력한 마기에 적중당한 적무경이 몇 개나 되는 나무와 바위를 퍽퍽 깨부수며 밀려났다.
주르륵.
양다리로 밭고랑을 패며 밀려난 적무경이 목울대를 감아쥐었다.
“쿨럭!”
너덜너덜해진 앞섬을 통해 심장께에 찍힌 검은 손바닥 자국.
지독한 마기와 독기에 새카맣게 죽어 부글부글 끓는 피부를 보며 적무경이 이를 악물었다.
‘괴물 같은 놈이로군. 강신체를 뚫고 이런 충격을 줄 줄이야.’
실로 놀라운 일이었지만, 왕우의 몰골도 영 좋지만은 않았다.
한쪽 소매가 까맣게 탔고, 백염과 수염 끝에 재가 떨어지고 있었다.
소매 안으로 화상을 입어 수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상당하군. 사도를 칭할 만해.”
그럼에도 적무경이 질린 것은 왕우의 싸움 방식 때문이었다.
겁화의 불길을 쏘아내면 몸으로 받아내며, 빈틈에 고루마장을 찍어 넣는다.
뼈를 내어주고 목숨을 취한다.
실로 악에 받친 호전적인 전투방식은 겁화를 두른 팔천사도 적무경조차 질릴 지경이었다.
“미친개 같은 놈.”
“실로 듣기 좋은 칭찬이로군.”
휘익!
푹 꺼지듯 사라진 왕우가 어느새 오 장의 거리를 좁히며 등판을 찍고 있었다.
“보법이 약해 보이던 것은 속임수였나?”
“강호에서 모든 패를 다 깔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괴물 같은 놈! 너같이 간교한 자는 없을 것이다.”
“돌에 잡아 먹히는 자여. 괴물을 칭할 자격이 있더냐?”
“닥쳐라!”
쿠아아아앙!
전력으로 끌어올린 공력에 적무경의 검이 녹아내리다 못해 붉은 쇳물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파파파팟!
한 줌의 쇳물로 변한 검기가 화염과 함께 사방을 헤집으며 일대를 염화로 물들였다.
“으음.”
어지간하면 마주하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운 열기에 왕우가 비틀거렸다.
“본좌는 팔천의 하늘이니라!”
절대 패하지 않는다!
콰카카카칵!
급격히 터져 나온 불길이 부서지고 쓰러진 잡목을 일제히 폭사시키며 사방으로 날려 보낼 때였다.
일세에 현신한 화염지옥 속에서.
후욱!
백염으로 변한 불길을 꿰뚫고, 왕우가 불쑥 튀어나왔다.
“몹시 뜨겁군.”
“헛!”
세상에 버틸 자가 없으리라 생각한 화염을 뚫고 나타난 왕우에 놀란 적무경이 헛바람을 삼킨 순간.
“하지만 네놈을 죽일 수 있다면 이따위 불꽃쯤이야.”
우우우웅!
벌떼가 우는 소리가 들리며, 왕우의 손바닥이 묵빛으로 번들거렸다.
– 아수라장법.
최후 초식 수라붕천(修羅崩天).
수라가 하늘을 무너트린다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압도적인 장법을 펼쳐낸 순간, 주변에 있던 동식물들이 빠르게 말라 죽어갔다.
동시에 일어난 거대한 충격.
쩌억!
재차 심장께를 얻어맞은 적무경은 입을 쩍 벌리며 비명조차 내지 못했다.
펑펑펑펑!
수라의 얼굴을 한 피 분수가 터지며, 적무경이 마기의 폭풍 속에서 내동댕이쳐졌다.
***
“후우우. 지치는군.”
한숨을 쉰 왕우가 비틀거렸다.
“확실히 체력이 달리는 무공이야.”
이런 괴악한 무공을 잘도 내어주셨군.
작은 둔덕을 평지로 만들어버린 가공할 위력을 돌아보던 왕우는 적무경을 향해 다가갔다.
“끌끌끌. 버러지 같은 것. 아주 걸레짝이 되었구나.”
승부는 더 볼 것도 없었다.
팔다리는 아무렇게나 구겨져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고, 입에서는 핏물이 울컥울컥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명징한 것은 그의 심장에 자리 잡은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었다.
“극성의 고루마공을 얻어맞았으니, 최악의 고통 속에 죽어갈 것이다.”
죽음의 선고를 내린 사마백은 문득 의아해졌다.
“상당한 강자인 것은 확실한데…”
어째서 주군께서는 사도를 발견하는 즉시 피하라 하셨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운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검성과의 싸움에서 놈의 체력이 소진되지 않았더라면.
하다못해 태양신공의 열화를 믿고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속임수에 당하지 않았다면, 쓰러진 것은 노부였을지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사마백은 의아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던 주군께서 내릴 명령이 아니야.’
거기까지 생각한 사마백은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전능하신 분이니, 다 이유가 있겠지. 혹시 모르니 철저히 숨통을 끊어야겠어.”
중얼거린 사마백이 적무경의 곁으로 다가갔다.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으니.
다가가기 무섭게 품속의 혈루석이 절로 굴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흐흐흐. 운이 좋구나.”
부글. 부글.
순간, 다 죽어가던 적무경의 생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우드득.
아무렇게나 비틀려 있던 팔다리가 펄떡이며 맞춰지고.
꾸물. 꾸물.
새파랗게 죽은 혈관이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뭉개진 심장을 만들어냈다.
‘이럴 수가!’
혈교의 일맥으로서 기괴한 마공을 여럿 알고 있는 사마백이다.
심장이 터져도, 팔다리가 잘려도 재생하는 마공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신체가 재구성되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이래서였나? 절대 피하라고 하신 이유가.’
터무니없는 기물이로군.
생각하며 사마백이 눈가에 살기를 피워 올렸다.
“쯧. 머리를 뜯어내고도 살아 있을 수 있겠더냐?”
우우우웅.
재차 고루마공을 일으키며, 끝장내려 할 때였다.
우드득. 우드득.
꿈틀. 꿈틀. 꿈틀.
밀랍처럼 녹았던 것이 형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사마백은 경악하고 말았다.
‘이 모습은!’
무척 익숙한 것이 아닌가.
당황에 몸이 잠시 굳은 사이, 순식간에 신체를 회복한 적무경이 혈루석을 낚아챘다.
“놈! 멈춰라!”
쉬익!
묵빛으로 번들거리는 손이, 번개처럼 놈의 손목을 끊어냈다.
툭.
혈루석을 쥔 채 떨어지는 손목에 적무경이 몸을 튕겨 일어나며, 재차 혈루석을 향해 몸을 던졌다.
퍽! 퍽! 퍽! 퍽!
연거푸 등판을 갈기는 충격에 컥! 비명을 지른 적무경이 주르륵 바닥을 굴렀다.
“제기랄! 조금이면 되었는데!”
밀랍처럼 흘러내리는 입을 움직여 적무경이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순순히 죽음을 받아라. 네게는 가능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음이니.”
“후후. 과연 그럴까?”
우르르릉!
광기에 어린 눈을 든 적무경의 얼굴이 울룩불룩 솟아올랐다.
‘이것은!’
전신의 혈맥이 부풀어 오르고,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모습에 사마백이 눈매를 꿈틀거렸다.
“공력을 격발시켜, 동귀어진을 노리는 건가?”
“흐흐흐. 지옥에 가는 것은 너뿐이다.”
묘한 여유에 사마백은 상대의 속셈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혈루석만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뜻일 터.’
그렇다면.
‘절대 넘겨줄 수 없지.’
재빨리 손을 뻗어 손목과 함께 나뒹구는 혈루석을 허공섭물의 기예로 회수하자, 적무경이 혀를 찼다.
“멍청한 놈. 그런다고 본 사도에게서 각성석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쉽지는 않을 것 같군.”
고조되는 압력에 사마백이 뇌까렸다.
“이런 가공할 마기의 폭주에 휩쓸리면 아무리 나라도 멀쩡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네놈을 죽이고, 돌을 회수해주마.”
“허나, 이러면 어떨까?”
푸욱!
자신의 복부에 혈루석을 박아 넣은 사마백이 피를 토하면서도 끌끌 웃었다.
“네놈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를 돌과 함께 폭사시키던가.
“꽁무니 빠진 개처럼 도망쳐 후일을 도모하던가!”
“이런 미친 작자를 보았나!”
뒤늦게 진기의 폭주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적무경의 신체는 울퉁불퉁 뒤틀리고 있었다.
마기의 폭주가 임박한 것.
가까스로 폭주를 억제하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적무경이 악을 썼다.
“제기랄! 오늘은 절대 잊지 않겠다!”
그리고 그에게서 터져 나온 반구형의 광체가 서서히 사방으로 영역을 넓히더니.
콰- 콰- 쾅!
천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반경 백여장을 송두리째 휩쓸었다.
***
흠칫!
따뜻한 온기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진설향이 빼꼼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말과는 달리, 목소리에서는 전처럼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급한 일이 있어 보이세요.”
“그래 보여?”
“이래 봬도 꽤 눈치가 빠르다는 말을 듣거든요.”
눈칫밥을 오래 먹고 살았거든요.
뒷말을 삼켰지만, 기대어 있던 등이 작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하네.”
“네?”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작은 부유감과 함께 어느새 진설향은 발끝이 땅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온기를 내어주던 너른 등이, 묘하게 차분해지게 만드는 향기가 멀어진 순간, 그녀는 자신이 두 발로 땅에 선 것을 깨달았다.
“혼자 갈 수 있겠지?”
“그럼요.”
“이 앞으로 가면 곧 익숙한 친구들을 볼 수 있을 거야.”
한걸음 물러서는 교관에 진설향이 물었다.
“교관님은 함께 가지 않는 건가요?”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말이야.”
“저도 함께할래요. 이래 보여도 꽤 많은 적들을 상대한걸요?”
어쩐지 이대로 혼자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곳은 여전히 위험이 산적하니까.
“그건 어려워.”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명백한 거절.
“기개는 좋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돌아보는 것이 중요해.”
아무리 좋은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무리해서는 쓰러지고 넘어져 상처투성이가 될 뿐이거든.
묘한 질책에 진설향은 볼에 바람을 넣었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돌봐준 것만으로 구명의 은혜를 입었으니까.
더욱이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임을 어째서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초운휘 교관님이라고 하셨죠?”
“그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 드려요. 저는 은천관도 진설향이에요.”
그녀가 주먹을 쥐며 의지를 담아 말했다.
“언젠가 이 구명의 은혜를 꼭 갚고 말겠어요.”
“하핫. 꽤 듬직한걸?”
슥슥.
어린애처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다 큰 처녀로서 응당 쳐내야 하는 것이었지만.
‘이상하게 안도가 되네.’
묘하게 어른스러운 분위기 탓일까? 평소 남과 잘 어울리지 않는 그녀로서는 생소한 감정이 아닐 수 없었다.
“진설향!”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아, 아는 관도예요. 분명.”
하지만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을 때, 그녀는 휑하니 비어 버린 공간을 목도할 수 있었다.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얼떨떨한 진설향은 자신이 귀신에 홀린 것은 아닐까 싶어 볼을 꼬집었다.
하지만, 볼의 통증이 아니더라도, 손끝에 온기와 향기가 미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
살포시 웃은 그녀는 표정을 지우고, 다시 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옷매무새까지 단정하게 하고 나서야, 그녀가 걸음을 뗐다.
힐끔.
이제는 한 줄기 바람이 스쳐 가는 빈자리를 돌아보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