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01
제50장 다시, 신무학관 (3)
처음 능풍운의 이름을 듣고도 쉽사리 정체를 떠올리지 못한 것은 괴리감 때문이었다.
– 최후의 무림맹주.
빛바랜 기억 속.
망천회의 발호에 천하가 피에 잠길 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있었다.
일신에 고강한 무공과 지략을 겸비하고, 패퇴만 거듭하던 무림맹에 연이은 승전보를 가져온 영웅.
후일 정파의 희망으로까지 불리며, 망천회 최고의 난적, 척살 순위 제일 윗단에 이름을 올린 걸물.
‘분명해. 놈이 바로 무림맹 마지막 맹주 화산검존 능풍운이야.’
이전 삶에서 몇 번 마주친 바 있었지만, 당시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거친 세파를 정면으로 받아 넘겨온 노쇠한 얼굴을 하고, 뒤로는 기라성같은 정파의 영웅들이 구름 같이 따르고 있었으니까.
언제나 그를 목숨처럼 따르는 강호영웅들을 이끌며, 전장을 내달리던 모습만 알고 있으니, 먼지투성이로 나타난 지금의 모습을 보며 바로 정체를 떠올리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저놈이 색시의 첫사랑이라고?’
나중에 정파의 희망씩이나 되는 인간이 뭐가 부족해서 학관에 기웃거리는지.
의아했지만 시기적으로나, 연배로 보나, 상대가 연적임을 짐작하는 근거는 몇 가지나 있었다.
“좋지 않아….”
동명이인 아닐까?
기대를 담아 유심히 살피자, 어느새 능풍운 곁에는 인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능 소협의 명성은 익히 들었어요.”
“최연소 매화검수에, 아름다운 검법은 능히 일절이라 불린다지요?”
“매화질풍검이라는 별호는 어떻고요. 늠름하기로 군계일학을 논하지 않나요?”
“어머. 술잔이 비었네요.”
심지어 몰려든 이들의 대부분은 여자 교관들.
평소 자신을 볼 때는 소 닭 보듯 불쾌하게 노려보던 도도한 여인들이 생글생글 연신 웃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능풍운이다. 그 능풍운이 맞아.’
뛰어난 무공과 함께 유명한 것이 있었으니, 잘생긴 외모에 걸맞은 여성 편력이었다.
‘심지어 멋진 미중년 고수가 되어서, 아래위 스무 살 여인들까지 연심을 품었다고 들었어.’
잘 씻지도 않는 시커먼 남자 새끼들만 데리고 사막을 떠돌던 자신이 소문을 듣고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빌어먹을. 하늘아. 양심이 없는 것 아니냐?’
간신히 색시를 만났는데, 갑자기 생태계 교란종이 연적으로 나타날 것은 또 무언가.
‘저런 인간이 교관이라니, 연상이 취향이 되는 것도 당연하잖아.’
우물. 우물.
초운휘가 들고 있던 손수건을 물어뜯었다.
공교롭게도 피해자는 또 있었다.
“흐윽. 평생 혼자 살다 이제 첫 연애를 시작했는데.”
1개월 차 연애 신입 양대철 교두가 옆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능풍운 곁에 몰려든 무리 가운데 까치발을 하는 조현 교관을 발견한 초운휘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불쌍하게도….”
“잘생긴 놈들은 좋겠다. 세상 살기 참 편하겠어.”
“걱정 마십시오. 세상 쉽게 살아왔을 테니, 싸가지가 개판일 겁니다. 인성이 중요하죠.”
“그럴까? 하긴, 우리 현이는 나쁜 남자가 싫다고 했어. 나같이 착한 남자가 좋다고 하더군.”
희망 섞인 대화는 여매홍이 끼어들며 찬물을 뒤집어썼다.
“엄청 예의 바른 분이시네요. 말투도 정중하고.”
“제길. 말투에서 기품이 철철 넘치는군. 이것이 매화검수인가?”
열패감에 무너지는 동료를 향해 초운휘가 악의를 담아 외쳤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잘생긴 놈이 싸가지는 있을지 몰라도, 대가리는 비었을 겁니다.”
“어머. 강호를 오래 주유한 탓일까요? 식견도 남다른 것 같네요.”
“빌어먹을!”
“언변도 상당한 것 같아요. 입만 열면 다들 자지러지네요.”
“제기랄!”
“심지어 친화력도 좋은 것 같아요. 쌀쌀맞은 교관분들도 벌써 말을 놓고 있어요.”
“X발!”
괴성을 지른 초운휘가 술병으로 나발을 불었다.
‘이런 완벽한 인간이 있다니.’
생태계 교란종 정도가 아니잖아.
“먹고 죽자!”
어머! 어머!를 연발하는 연인을 보며, 양 교두도 함께 술병으로 나발을 불었다.
“크윽. 이럴 수는 없습니다.”
“어쩌겠나. 세상에는 하늘 위의 하늘. 천외천의 존재가 있는 것을.”
“하늘. X발. 이건 좀.”
어떻게든 상대의 약점을 찾으려 매의 눈을 하던 초운휘가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거X기는 작을 겁니다.”
“그만두게. 비참함만 더해질 뿐이니까.”
양 교두가 두 번째 술병을 집어 들었다. 초운휘도 세 번째 병을 집어 들었다.
“으어어어어!”
“꺼어어어어!”
실로 안쓰러운 괴성을 지르며, 두 사람이 연거푸 술병을 비우며 난동을 부렸다.
‘능풍운!’
정파강호의 희망이자, 꿈이었던 남자라고?
‘가만두지 않겠다!’
첫사랑. 미남. 정파영웅.
죽일 이유가 셋씩이나 되니 제 놈도 죽을 때 할 말도 없겠지.
‘가장 비참하게 죽여주마. 어떻게 제거를 해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음울한 상상의 나래를 이어가고 있는데, 곁에서 여매홍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속 버려요. 술 좀 그만 마셔요.”
“이미 속은 버렸습니다. 속이 홀라당 타버렸으니까!”
“적어도 안주라도 먹으면서 마시세요.”
“으아아아! 이건 불공평해!”
와장창!
배알이 뒤틀린 초운휘가 병을 내던졌다.
***
쨍그랑!
술병 깨지는 소리에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가던 사내, 능풍운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있는 중년인과 청년 하나.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귀여운 상의 여인이 있었다.
“…저자는.”
“강호에 소식이 밝은 자네라면 알겠지. 왕우 대노사의 마지막을 함께한 이라네.”
능풍운이 눈을 빛냈다.
“저 사람이 소문의 초운휘 임시 교관이군요.”
“…그래. 이래저래 골치가 아픈 인사지.”
장철심의 말에 곁에서 다른 여자 교관들이 눈을 흘겼다.
“능 소협. 관심을 두지 마세요.”
“맞아요. 품위도 없고 정도라는 것을 모르는 말종이랍니다.”
“동료를 인질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하극상도 벌이는 작자예요.”
“얼마 전에는 글쎄, 남궁가주께 주먹질을 했지 뭐예요?”
이어지는 험담에 장철심을 돌아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모두 사실이야. 말했지 않나? 꽤 골치가 아픈 인사라고.”
“하지만 그런 것치고 상급 교관께서는 꽤 저자를 신뢰하고 계신 것 같군요.”
“그런가? 허허. 자네 눈은 못 속이겠군.”
“저희가 한두 해 본 사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피식거린 장철심이 짧게 수긍하고는 말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곤란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라네.”
“그렇습니까?”
“어쩐지 초운휘 임시 교관에게 맡기면 다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
운이 좋은 탓에, 운수대통검이라 불리는 탓일지도 모르겠어.
장철심은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능풍운은 흩어지는 목소리에서 절대적인 믿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
‘이거 재미있군.’
사실 능풍운이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도리어 철저히 의도된 일에 가까웠다.
시발점은 얼마 전, 화산파 장로 운계상이 한 말 때문이었다.
– 백리세가가 엄청난 기재를 키워 냈어.
칭찬이 드문 운계상이 심지어 검후까지 언급했을 때는 꽤 별일이다 싶었다.
– 초운휘 교관이라고 했던가? 참으로 운도 좋지. 그런 천재의 마음을 얻다니 말이야.
그것이 작은 계기였다.
한동안 떠돌던 강호에 비해, 산중 생활은 무척 지루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에 강호에서 여러 사건에 휘말린 바 있는 능풍운으로서는, 하루하루가 따분한 날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매화검수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기운에 심사까지 뒤틀렸으니.
그래서였을까?
이 기가 막히게 운이 좋은 인간의 이야기가 궁금해져 알아보게 되었다.
딱히 기대는 없었다.
그저 지루한 와중에 심심풀이 삼아 흥밋거리를 찾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후 들려오는 소식은 꽤 기가 막혔다.
손 쓸 도리 없는 관도들을 발굴해내고.
세상 생각도 못 해 본 방식으로 신무학관을 뒤집어 놓는다.
심지어, 난주묵가의 아이를 위해, 난투극까지 벌였다는 말에 배가 당겨오게 웃었다.
‘신무학관에서 이것이 가능했다고?’
오랫동안 학관에 몸을 담았기에, 이 간단한 것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 반대에 부딪힐지 잘 알기에 더욱 놀랐다.
행보는 그가 다시 강호에 나왔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마인으로 화한 은월비적을 잡아내더니, 망천회의 악적들과 전투를 벌이며, 공적을 쌓았다.
나아가, 곤륜파의 마지막 전인에게 인정을 받아 마지막을 지키기까지.
‘한 사람이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런 사달을 겪는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불행의 별을 타고 나도 어려운 일일 텐데. 심지어, 무사히 살아남아 결실을 이루었다.
‘백미는 남궁가주와의 일이지.’
각종 소식에 밝은 호사가들조차 이야기를 듣고는 귀를 의심했다는 사건.
‘다짜고짜 턱주가리를 쳐올렸다던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천하제일가 가주의 안면에 주먹질을 하다니.
‘정말 재미난 사람이야.’
자신이 고루한 문파에 묶여 있는 사이, 이렇게 제멋대로 호방하게 사는 인간이 있었다니.
그래서였다.
우연을 가장해서, 회식 자리까지 찾아온 것은.
‘초운휘 임시 교관.’
다행스럽게도 소문의 인물은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안심하십시오. 거시X는 작을 겁니다.”
은근히 귀를 기울이던 중에 들려온 말에 능풍운은 체면 불고하고 박장대소를 터트릴 뻔했다.
‘이것 참 걸작이로군.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어.’
어쩐지 길지 않을 교관 생활이 마냥 기다려지는군.
능풍운의 눈빛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
“…죽여야 합니다.”
연애상담을 위해 불러낸 독고율이 대뜸 내뱉은 말이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정의로운 협객은 어느새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수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죽일까요? 최대한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제 일처럼 분노하는 가신에게 초운휘가 말했다.
“간단한 일이 아니야. 상당히 주목을 받는 인간이니까.”
그런 인간이 픽 죽어 버리면, 상당히 귀찮아질걸?
“상관없습니다. 죽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독고율이 손가락 한 개를 펴들었다.
“첫째. 학관 내에서 죽이는 겁니다. 비무를 제안하고 실수인 척 콱! 죽여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문제가 되지 않아? 아무리 너라도 화산파 매화검수를 죽이면 문제가 될 거야.”
“지금 정실부인께서 날아가게 생긴 마당에 사소한 일은 접어 두시지요.”
“아직 안 날아갔다.”
“비무를 신청하겠습니다. 실수한 척 손가락 하나씩 자르다가, 뎅겅 목을 날리지요.”
“기각.”
과정이 너무 작위적이잖아.
독고율이 두 번째 손가락을 펴들었다.
“둘째로는 적당히 강호로 내보냈다가 죽이는 겁니다.”
“그래도 되는 거야?”
“교관에게 임무를 내리는 권한 정도야 제게도 있습니다. 적당히 위험한 곳에 임무를 보내 놓겠습니다.”
그리고는.
끽.
독고율의 두 손가락이 제 목을 훑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을 따는 겁니다. 아, 물론 손가락을 하나하나 잘라 개먹이로 주고….”
“손가락에 집착하지 마.”
“어쨌든 최대한 참혹하게 죽이는 겁니다. 시체은닉과 증거 은폐는 맡겨 주십시오. 저승사자도 찾지 못할 만큼 꼭꼭 숨겨두겠습니다.”
“…그건 좀 구미가 당기네.”
하지만, 역시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놈이 죽으면 임무를 보낸 너도 지탄을 받게 되지 않을까?”
“다소간의 피해야 감수하겠습니다. 연적을 처리하는 일이 아닙니까?”
“으음…. 그건 그렇지만.”
또 다른 문제는 능풍운이 보통 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때, 정파강호를 들썩인 희대의 영웅이다.
죽이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 일이 가져올 후폭풍, 나비효과가 쉽사리 짐작이 되지 않았다.
“자라나면 후일 망천회와의 싸움에서 꽤 도움이 될 녀석이야. 간단히 처분하는 것은 아까운데.”
심증은 있지만, 색시의 첫사랑인지에 대한 확신도 다소 부족하고.
“가만. 이러면 되겠군.”
초운휘가 손가락을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