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00
제50장 다시, 신무학관 (2)
“혈교가 망천회에?”
“네, 확실해요.”
요란이 시선을 맞추며 설명을 이어갔다.
“들어온 소식을 종합해보면, 혈교 교주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지?”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혈신전에 드나든다고 하더군요.”
“혈신전에 외인들이 드나든다라….”
혈신전(血神殿)은 혈교의 역대 교주들을 모신 곳이다.
혈교의 교인들이 몹시 신성스럽게 여기는 곳으로, 오직 교주의 허락을 얻은 이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군.”
“무엇보다 다음이 중요하답니다.”
찡긋. 고혹적인 미소와 함께 요란의 입술이 열렸다.
“혈교 교주가 기이한 무공을 연성한다는 소문이에요.”
“…설마, 이종진기를 다루는 무공인가?”
“맞아요. 은밀히 떠도는 이야기지만….”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이었다.
사막 너머의 정보는 몹시 얻기 어렵다. 그보다 더욱 멀리 있는 혈교 본단에 대해서 말해 무엇할까?
무엇보다 천마신교와 함께 십만대산을 양분하고 있는 곳은 마인들의 고향이다.
자그만 소식조차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한 것이다.
“고생을 많이 했군.”
“상공께서 붙여 준 종복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답니다.”
“단야 녀석이 애를 썼군.”
요란이 이렇게 사막의 일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사막살수곡 때문이었다.
사막의 밤에 군림하는 살귀들이 전면적으로 협조한 결과.
물론, 그렇다고 요란의 고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막에서 보내오는 정보들을 추려내느라 고생했겠어.”
“상공을 위한 일 인걸요?”
생긋. 웃은 요란이 술병을 기울여 빈 술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사막 각지에서 보내오는 정보들이 모두 일치해요.”
“혈교 교주의 심중에 뭔가 변화가 있는 것은 확실한 모양이야.”
“한편으로는 천마신교를 도발하려 한다는 소식도 있답니다.”
스스로는 마도의 양대산맥이라 주장하지만, 천마조사의 정통성을 이은 천마신교는 언제나 혈교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미친 것이 아니라면, 자신만만한 구석이 있으니 싸움을 거는 것이겠지.”
“소녀의 생각도 상공과 같아요.”
“천마신교와 혈교가 부딪힌 다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과거에도 천마신교와 혈교는 마도의 적통을 주장하며 번번이 부딪혔고, 무수한 피를 흘렸다.
초운휘가 걱정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심후한 고수들의 피는, 망천회의 좋은 제물이 될거야.”
“…혈루석을 제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일까요?”
“그래. 십중팔구, 전쟁이 만들어낸 시체를 제단에 올려 돌을 만들어 내려 할 거야.”
예전에도 그랬거든.
“수없이 많은 분란과 싸움을 일으켜 힘을 키운다. 그들이 힘을 키우는 방식이지.”
홀짝.
달을 띄운 술잔에 찰랑이는 술을 한입에 털어 넣은 초운휘가 혀를 찼다.
“생각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군. 힘들겠지만, 새 소식이 들려오는 대로 전해줘.”
“알겠어요, 상공.”
“당분간 살수와 하오문도들에게는 움직임을 자제하라고 해. 마도의 싸움은 무척이나 흉포하거든. 그대도 조심해.”
“후훗.”
묵직한 경고에도 웃음을 터트리는 요란에 초운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웃지?”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 요란이 실눈을 띄며 웃었다.
“소녀를 걱정하시는 것을 보니, 아직 제 쓸모가 다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루주는 언제나 내게 도움이 돼.”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요. 상공.”
쪼르륵.
술잔을 채워주며 요란이 월광 속에서 귓가에 소곤거렸다.
“상공께서 마음 깊이 흐느끼시는 지금.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
포옹.
상념을 거두고 낚싯대를 튕겨 올리자, 송사리가 폴짝 뛰어내렸다.
“또 텄군.”
미끼만 먹고 짼 얄미운 물고기가 사라진 곳을 노려보던 초운휘가 중얼거렸다.
“눈치가 빠른 것은 물고기도 마찬가지인가? 쳇.”
어쩐지 오늘은 낚시를 할 기분이 아니다.
“혈교와 망천회라….”
문득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혈향이 짙게 배어 있는 것 같았다.
***
신무강호행이 끝나고, 한동안의 애도 기간이 끝나자 일상은 얼추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업 재개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처음으로 정식 행사가 열렸다.
“모두 수고했네.”
바로 회식이었다.
모용선야에 따르면 ‘세상이 망해도, 술자리 좋아하는 상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멸종하지 않을’ 것이 회식이라더니, 무려 첫 정식 업무가 회식이다.
놀랍게도 회식 자리를 주관한 것은 장철심 상급 교관.
“다들 잔을 들게.”
상석에 앉은 그가, 좌우에 나란히 앉은 교관들을 돌아보며 잔을 들었다.
“슬픔을 털어버리지 못한 이들이 있는 것을 아네. 나 또한 그러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쳐져 있어서야 되겠는가? 털어버려야지.”
울적하게 건배사를 이어가는 가운데, 곁에서 여매홍이 소곤거렸다.
“어째서 감정을 털어버리는 방법이 회식뿐인 걸까요?”
“저도 지금 그 부분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양대철 교두가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신무학관의 전통 같은 거지.”
저길 보게.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교관들 사이에 군데군데 빈 자리가 있었다.
사람은 없는데, 잔은 가득 채워져 있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도 정갈하게 차려져 있다.
“돌아가신 분들의 자리라네.”
“아. 잃은 동료와 함께 하는 자리라는 뜻이군요.”
“그 말대로야. 오늘의 회식은 떠나간 동료와 함께 하는 마지막 자리라는 거지.”
양 교두의 설명대로 건배사를 끝낸 장철심이 잔을 흔들자, 교관들이 잔을 들어 차례로 챙챙 빈자리에 놓인 잔에 부딪혔다.
하나 둘 울적한 얼굴로 떠나간 이들을 추억하는 가운데 초운휘가 짧게 소회를 밝혔다.
“음식 낭비 아닌가요?”
“자네는 너무 감정이 메마른 것 아닌가?”
“맞아요. 이번에는 초 교관님이 잘못했어요.”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세상의 가혹함이 안타깝지만 다행인 점도 있었다.
“귀신이 밥 먹을 것 같지는 않으니, 내가 다 먹어야지.”
결국 여매홍에게 꼬집히고 말았다.
***
시작은 엄숙했지만, 술이 들어가자 불콰하게 취한 이들이 생겨났다.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 술과 음식을 쓸어 넣고 있자니, 곁에 장철심이 다가왔다.
“자네는 먹으러 나왔나?”
“회식이니까요.”
남의 돈으로 공짜 밥을 먹을 절호의 기회다. 심지어 그 남이 염가로 사람을 부려 먹는 신무학관의 재정이라면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 인지상정이 아닐까?
“좀 돌아다니며 이야기도 하고, 친분도 쌓고 좀 하게.”
“먹는 것이 남는 법입니다.”
“쯧. 도통 사람 말을 가만히 듣고 넘어가는 법이 없군.”
홀짝.
술잔을 기울이는 장철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물었다.
“왜 그렇게 보나?”
“상급 교관이 술을 즐기실 줄은 몰랐습니다.”
“청성파를 내려와 배우게 되었지. 산중에서야 금욕생활이 기본이었지만, 학관에 들어오니,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영 불편한 점이 많더군.”
“그랬군요.”
“무엇보다 술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학관 생활에 꽤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아. 평소에는 듣기 힘든 이야기도 많고.”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한동안 울적하던 이들이 술이 들어가자 말문이 터진 듯 서로 떠들어대고 있었으니까.
이야기는 학관의 애환부터, 개인사까지 소재가 다채롭다.
우물. 우물.
앞의 빈자리, 사망한 교관의 자리에 놓인 음식에 손을 뻗자, 장철심이 젓가락으로 손등을 꾹 찔렀다.
“자네. 제삿밥까지 탐을 내는 건가?”
“살 사람은 살아야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산 동료 접시까지 삼킨 자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어지간해야지.
“술과 음식을 죄다 빼앗길까 교관들이 자네를 피하고 있지 않나? 회식은 화합과 교류의 장이지, 맹꽁이처럼 비싼 것만 죄다 입에 쓸어 넣는 날이 아니야.”
“참고하겠습니다.”
“제사밥을 죄다 먹고 나서?”
“잘 아시는군요.”
“끄응.”
보다 못한 여매홍이 자신의 앞에 놓인 접시를 슬슬 밀었다.
“차라리 제 것을 드세요.”
“감사.”
이것 먹고 저것도 먹어야지.
젓가락을 들어 다시 음식을 탐하려던 때였다.
쿵쿵쿵.
작은 발구름 소리와 함께, 문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와아! 마침 회식 중이었군요!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문가에 거친 무복을 걸친 청년이 들어서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는 꽤나 허름한 몰골이었는데, 보보를 내디딜 때마다 모래가 풀풀 흘러내리는 것이 완전 거지꼴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는 것은 사내가 가진 기이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묘한 녀석이군.’
우선 발걸음이 가볍다.
쿵쿵 장난스레 발을 구르며 걸으면서도 완벽하게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것도 눈에 들어왔다.
‘풍기는 기도가 상당한 녀석인걸?’
신무학관에 온 이후, 이런 정갈한 기도를 갈무리한 인간은 처음이다.
심지어 눈앞의 장철심 상급 교관조차 청년에 비하자면 몇 수는 처지는 수준이랄까?
더욱 시선이 가는 것은 장난스러운 모습과 달리, 묵직하게 느껴지는 갈무리한 기운.
‘상당한 고수로군.’
주위를 돌아보니 아직 사내의 내력을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장철심 상급교관까지.
‘공력을 감쪽같이 갈무리하고 있군. 어린놈이 쉽사리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닌데.
하지만, 모든 상념을 제쳐두고 심기를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내의 외모였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은 눈을 가려 답답할 정도로 자라 흔들리고, 건성으로 걸친 무복은 헐렁하게 가슴을 드러내는 수준.
더불어 정갈한 기운과 버무려져 자꾸 눈길이 가는 신색은.
“초 교관님. 저분.”
여매홍도 바로 눈치를 챈 모양이다.
“옷차림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묘하게 초 교관님과 비슷해 보이는걸요?”
곁에서 조현 교관이 술에 취해 평가를 정정했다.
“뭐랄까. 초운휘 임시 교관의 상위호환 같은 느낌이랄까요?”
“맞아. 훤칠하게 키가 크고, 길쭉길쭉한 팔다리를 생각하면 말이야.”
동료들이 배신했다.
함께 구른 세월이 얼마인데, 이런 평가라니.
“…말들이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울적한 기분으로 사내를 노려보자, 어느덧 사내는 장철심 앞에 서 있었다.
“귀하는…. 누구인가?”
“이런. 저를 몰라보시겠습니까?”
“목소리가 익숙하긴 하군. 어디서 봤던가.”
“하하. 상급 교관. 저 섭섭합니다.”
쾌활하게 웃은 사내가 머리를 쓸어 넘기자, 여자 교관들 사이에서 헉! 하는 헛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라라락.
윤기 좋게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나온 것은 백옥 같은 피부에 조각 같은 미남자의 얼굴.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사이로 존재하는 것은 얇지만, 짙은, 부드럽게 휘어진 눈썹에, 그 아래로는 맑은 눈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뿐인가.
오뚝한 코와 턱은 장인이 특별히 공들여 깎은 조각 같았고, 호방하고 사내다운 분위기가 절묘하게 어울려 시선을 휘어잡고 있었다.
문득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어…. 이 자식 설마.’
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교관이라고?
끼약! 입가를 가리며, 연인의 어깨를 퍽퍽 두들기는 조현 교관과 다른 여자 교관들의 반응을 보면 확실하다.
“이런! 자네였군!”
“하하. 이제 알아채신 겁니까? 꽤 변하기는 한 모양이군요.”
앞머리를 내리자, 보기 드문 미남의 얼굴이 가려져, 여자 교관들이 하아- 애달픈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반응이네.’
몇몇 남자 교관이 잔뜩 경계한 목소리로 장철심에 물었다.
“아시는 분입니까?”
“알다마다.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람일세.”
기꺼운 기색으로 장철심이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능풍운일세. 자네들도 한 번쯤 들어봤겠지?”
“능풍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불연 듯 교관들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악! 매화질풍검!”
“최연소 매화검수 능 대협? 정말입니까?”
“맙소사. 화산파에서 보내준다는 인재가 그럼.”
경악하는 교관들을 돌아보며 장철심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다들 잘 알고 있군.”
바로 그 사람일세.
툭 어깨를 치자, 입가에 밝은 웃음을 베어문 능풍운이 포권을 하며 낭랑하게 외쳤다.
“화산파 소속 매화검수 능풍운! 은천관 소속을 명 받아 도착했습니다!”
놀라는 좌중 속에서 초운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자식. 설마….’
네놈이 색시의 첫사랑이었냐?
연적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