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74
제68장 관문 돌파 (3)
타닥. 타닥.
귓가에 들리는 화톳불 소리에 넋을 놓고 있기를 잠깐.
[남효.]귓가를 때리는 전음에 남효가 우뚝 멈춰 섰다.
번뜩.
조금 전까지 보이던 졸린 눈빛은 사라지고, 살벌한 야수의 흉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흐음?”
슬쩍 주변을 살핀 그가 희미한 기척을 잡아내고는 창대에 얼굴을 묻었다.
[사마 당주시오?] [그렇다.] [당주께서 어째서 여기 계신 겁니까?] [사정이 있다. 지금부터 할 말이 있다. 잠시 괜찮겠나?]짧은 전음이 오가는 순간이었다.
묵비사영대의 신임대주가 달려왔다. 비록 교주에 의해 날로 얻은 대주의 직이라고는 하나, 그 또한 상당한 마공을 수련한 자.
뭔가 낌새를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거기! 무슨 일 있나?”
“없습니다.”
“없어? 뭔가 이상한데.”
이내 그가 대원 몇을 달고 다가와서는 남효 앞에 멈춰 섰다.
어둠에 녹아들며 사마율이 자리를 피하려던 순간이었다.
[혹 살수곡주도 함께 오셨소?] […맞다.]졸린 눈의 남효가 불성실하게 몸을 세웠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저 잠깐….”
대꾸하던 남효의 턱이 돌아갔다.
짜악!
대주가 다짜고짜 뺨을 갈긴 것이다.
휘청대는 그의 복부에 또다시 발길질이 이어졌다.
“남효. 이 게으른 자식. 똑바로 대답하지 못해?”
“컥. 컥.”
“다시 한번 내 앞에서 그따위 성의 없는 대꾸를 하면, 한직은커녕, 아예 강시로….”
푹!
떠들던 그의 등에 비죽 창날이 솟아났다.
“헉! 대주님!”
“남효! 네가 미친 거냐!”
피가 터지자 뒤따르던 이들이 각자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빠른 이들이 있었으니.
푹푹푹푹.
대주를 비호하며 검을 빼 들던 이들은 하나 같이 가슴을 뚫고 나온 검과 창의 새파란 예기에 게르륵 피거품을 뱉어냈다.
“어, 어째서 너희들이.”
푹푹푹푹!
어둠 속에서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들의 입을 막고, 예리한 검광이 몇 번이나 등판을 찔렀다.
한순간에 삼십여 명의 묵비사영대의 고수들이 쓰러지고, 뒤에 남은 것은 허름한 차림의 위병들과 소수의 대원들이었다.
바로 원 묵비사영대의 대원들이었다.
순식간에 장내를 정리하고, 시체마저 안쪽으로 끌어낸 후에야, 다시 남효가 입을 열었다.
“이제 나오셔도 된다오.”
이건 사마율로서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던지, 어둠 속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에는 당황이 가득했다.
“남효. 어째서 이런 일을.”
“어차피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소. 아니, 편히 죽고 싶어 사는 인생에 가까울까?”
묵비사영대 대원들의 눈빛은 그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려주듯 조용하게 빛났다.
“굳이 지금 일을 벌인 이유가 뭔가?”
“사마 당주와 사막살수곡주가 왔다는 뜻은 그분의 뜻이 아니오?”
“그분이라면.”
“백귀(百鬼)의 왕. 옛 우리의 주인 말이요.”
“…….”
“짐작대로다.”
초운휘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남효의 눈이 격정으로 떨렸다.
“혈마재림! 만마앙복!”
그가 한쪽 무릎으로 거칠게 땅을 찍으며 외쳤다.
“마졸(魔卒) 남효가 마도의 하늘을 뵙습니다.”
쿵.
일제히 대원들이 무릎을 꿇었다.
***
“나를 아느냐?”
“한때 백귀야행의 말미에서 뒤따른 적이 있습니다.”
격정이 일렁이는 눈은 어쩌면 과거의 한때를 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저의 사부님께서 몇 번이고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사부가 누구지?”
“환영마군 남학. 그분께서 제 스승이 되십니다.”
품이 넓은 법복을 입고, 노익장을 자랑하던 호법장로가 떠오른다.
“환영마군은 어디에 있지?”
“그게… 뇌옥에. 죄송합니다. 그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괜찮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뇌옥에 갇힌 이들보다, 바로 하극상을 저지른 이들이었다.
“이곳에서의 일이 알려지면 목숨을 기약할 수 없을 거다.”
“알고 있습니다. 허나, 이들은 제 동료와 친구를 수도 없이 강시굴에 던진 자입니다. 예전부터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홀가분할 따름입니다.”
“너 혼자의 일이 아니다.”
“대원들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남효의 목소리에 살기가 어렸다.
“지금까지 살아 있던 것은 복수를 위해서였습니다. 가장 먼저 버린 것은 생을 연명하는 것이었으니, 지존께서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는 이쪽을 걱정했다.
“흔적이 문제가 되신다면, 모두 이곳에서 자진해 죽겠습니다. 원래 저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자들이니, 서로 양패구상을 한 것으로 꾸미면 의심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채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죽음마저 이용하기를 애걸하는 그의 모습은 상처 입은 야수가 우는 것 같았다.
“그럴 것까지는 없다.”
“죽어 백귀가 되어 따르면 될 일입니다.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
쿵쿵 머리를 찍는 그의 뒤에서 표정 없는 대원들이 시체를 늘어놓아 꾸미고, 시체가 된 이들의 검을 제 심장에 겨누고 있었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모두 자진하여 죽음으로 이곳의 일을 덮으려 함이다.
“네 기개는 기억해두마.”
“감사합니다!”
쿵쿵 머리를 찧은 그는, 이내 조금 전 자신이 죽인 대주의 손에 검을 쥐여주고는 역시 스스로의 가슴에 칼을 겨누었다.
“부디. 헝클어진 마도의 하늘을 바로 세워 주십시오!”
동시에.
모든 대원들이 검을 쥔 양손으로심장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으려 했다.
웅웅웅웅.
손을 들어 초운휘가 막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터.
“지존! 어째서!”
경악하는 이들에게 초운휘가 말했다.
“깨어나면 바뀐 교를 지켜야 할 것 아니냐? 죽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너무 이른 이별이다.”
서서히 그들의 손에 쥔 검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깨어나면 새로운 하늘이 열려있을 것이다. 다시 보자.”
“존명!”
손을 젓자 결연하게 외친 묵비사영대의 모두가 옆으로 몸을 뉘웠다.
완전한 침묵이 찾아왔다.
***
나아가는 길에 세 개의 관문을 더 마주쳤다.
남효가 언질한 것처럼 한때 교의 중추적인 인재라 불리던 이들은 교주의 의심을 받아 밀려났고, 덕분에 관문을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마 당주. 부디 교주님을 바로 잡아 주십시오.”
단순히 백귀의 왕의 이름에 감복한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유든 한번 교를 버린 자신을 외면하려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마율이 나타나자 하나같이 무릎을 꿇었다.
‘확실히 사마율이 인망이 있단 말이지.’
그의 실력과 성정도 한몫하지만, 분명 사마백의 그림자 또한 있기 때문이었다.
암혼흑풍사의 일좌(一座).
또한, 그는 마도를 사는 이들에게 커다란 스승이기도 했으니까.
‘곧 집이야, 사마 아재.’
빠르게 관문을 돌파하며 질풍처럼 혈교의 본단 초입에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말이 달려도 닷새는 걸릴 먼 대장정이었지만, 암혼의 흑풍은 아무도 멈춰 세우지 못했다.
물론, 와중에 막아서는 이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인심을 잃었다고 하나, 교에 충성하는 무리들은 있었고, 과거의 정리보다 현재의 교에 충성하는 이들은 더욱 많았으니까.
그때 움직인 것은 암혼의 흑풍이었다.
“흐. 흐. 이제야. 피를 보네.”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어둠은 단야에게 가장 큰 무기였다.
촤르륵. 촤르륵.
귀갑철극이 한번 흔들리면, 꼭 적의 심장이 꿰뚫렸고, 소리 없는 죽음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사막살수곡의 군주.
그 이름답게 어둠 속에서 날뛰는 단야는 붉은 두 눈만 둥실거리는 모습이 혈풍을 일으키는 도깨비불을 보는 것 같았다.
“뭐냐! 어디서 온 자들이냐!”
개중에 가장 강한 자는, 마지막 오관문을 지키는 장한이었다.
협곡에서 이어지는 수라혈교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답게 짧은 노성과 함께 일으키는 검강이 삼 장이나 치솟아 올랐다.
“뭣들 하느냐! 몰아쳐라!”
그가 소리를 질러 위급을 알렸지만, 그는 이내 비틀거리고 말았다.
“기막? 아니, 목소리를 튕겨내는 것도 부족해 내 공력을 진탕시킨다고?”
스스로 실력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는 듯, 말이 안 된다며 떠들었지만, 이내 그는 소리 지를 시간조차 없게 되었다.
촤촥!
피를 머금은 부채가 현란하게 움직이며 수하들의 멱을 따자 그의 안색이 대번에 노래졌다.
“혈화철선! 혈서생 그대인가?”
한 마리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부채의 궤적에 시선이 빼앗긴 사이, 음험한 한줄기 검광이 심장으로 파고든다.
“큭!”
실력에 자부심이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위지극의 검마저 튕겨낸 것이다.
“수라검마 마저!”
하지만, 괜히 위지극이 검귀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채챙!
연속된 검광에 이십여 걸음이나 엉망진창으로 보법을 찍으며 밀려나는 사이, 장내를 정리한 사마율이 허공에 검을 휘저어 피를 털어냈다.
“지옥독안룡….”
손발이 어지러워질 사이도 없이, 위지극이 스쳐 간 후, 몇 걸음 걸은 채 나아가던 장한의 목이 떨어졌다.
십만대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수라혈교까지의 지옥오관문이 돌파되는 순간이었다.
***
비로소 도착한 혈교의 본단.
십만대산의 심처에 떡하니 자리한 요새를 보며, 진세현이 부채로 한쪽을 가리켰다.
“본단으로 통하는 대로입니다. 이곳만 돌파한다면 안으로 숨어들 수 있을 테지만.”
허나, 아무리 살펴봐도 본단의 문은 잠겨 도통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아 두었던 몇몇 빈틈도 메꿔진 지 오래. 한참을 살피던 진세현이 혀를 찼다.
“교주의 의심병을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통째로 문을 막을 줄이야.”
“그러게.”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북망문.
하지만, 그곳은 상당한 이들이 아예 문을 봉인한 채였다.
‘계획과 달라지는군.’
원래의 계획은 가장 경계가 약한 시체를 운반하는 통로를 통해 내부에 진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로가 사라졌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다른 곳은 없나?”
“하나 같이 마도명가의 고수들이 지키는 곳입니다. 십중팔구 소란이 알려지게 되겠죠.”
다시 지도를 살펴봐도, 구일소가 만들어둔 교묘한 배치는 간단히 뚫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도에서 시선을 거둔 초운휘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에이. 어차피 알려지면 다 죽여야 할 텐데 뭘.”
문득 단야의 투덜거림에, 초운휘가 입매를 굳혔다.
“현. 최근 들어 교주가 더 공격적으로 아이들을 모으고 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작은 쪽문을 노려보던 초운휘가 대답했다.
“한번 맛이 들린 녀석이 갑자기 멈출 일은 없을 테고.”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곁에서 바로 사마율이 중얼거렸다.
“혹여. 다른 곳에 또 다른 북망문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설마. 굳이 멀쩡한 문을 폐쇄하고, 번거롭게 성벽을 허물어 길을 낼 이유가 있겠습니까?”
“좀처럼 없겠지.”
만약 있다면, 아마도.
***
지도에 나온 북망문은 흐릿해 알 수 없을 정도로 작고 허름한 문.
하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북망문을 보자 초운휘는 구일소가 기존의 문을 폐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니, 모두 단번에 이해했다.
“교주는 정말….”
“어떤 생각으로 이런 짓을.”
위지극과 진세현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새로 세워진 문의 크기 때문이었다.
사마율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기존의 작은 쪽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는 것이군요.”
“와아. 수레가 엄청 많아.”
새로 난 성문 안에서는 수십여 대의 수레가 쉴 새 없이 나오고 있었다.
수레 위에 실린 것이 무엇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거적때기 아래 비죽이 솟아 나온 앙상한 팔과 다리로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저 안에 똬리를 튼 악마는, 수많은 이들의 피를 먹고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
“정말 실망을 시키는구나.”
한때, 누구보다 망천회와의 싸움에 비장하게 싸웠던 영웅의 타락에 초운휘가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