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2
제10장 작은 사건 (4)
여매홍은 털레털레 돌아오는 초운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디 다녀온 거예요?”
“뒷간에 좀.”
“아….”
그렇게 마셔댔으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지.
한숨을 쉬고 있는데, 주변을 둘러본 초운휘가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 난장판이 되었네요.”
“누구 때문에 여기저기 쏟아낸 분들이 적지 않거든요.”
“그러게 술은 적당히 먹어야 하는 겁니다.”
자신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듯 말하는 초운휘에 여매홍은 기가 찼다.
한쪽에서 정리를 거들던 조현이 끼어들었다.
“어쨌든 덕분에 좋은 점도 있네요.”
“좋은 점이 있어요?”
“역대급으로 가장 빨리 끝난 회식이 되었잖아요? 원래라면 이후에 이차니, 삼차니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괴롭게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그건 그렇다.
곁에서 듣고 있던 양 교관도 덧붙였다.
“거기다. 주당파 교관들은 오늘 제대로 수치사를 당했지. 앞으로 술자랑하며 술자리에 끌고 가는 일은 적어지겠군.”
“수치사라…. 그럴듯하네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오늘 드러누운 이들은 하나같이 술고래들인 데다, 동행을 거부할 때면 ‘술자리도 업무의 연장선이라’라는 둥 ‘술을 잘 마셔야 친목을 잘 다지는 거야’라고 주장하던 인물들이니까.
업무의 연장은 조금도 없고, 친목을 다질 생각 역시 없어 보이는 초운휘에게 격침당한 것이 역설적이지만.
“한동안 일도 없이 불려 나가는 일이 좀 적어지겠군.”
구백철권이라 불리는 이 과묵한 권사는 그간 이런저런 자리에 불려 나간 것이 꽤 고역인 듯했다.
“양 교관님. 정리가 끝났습니다.”
“고생했네.”
저쪽에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점소이와 은자를 세며 희희낙락한 주인이 무척 대조적이었다.
아무래도 간단한 뒤처리만 하고 은자로 해결한 모양.
슬슬 주변을 둘러보던 양 교관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무 일찍 끝났는데, 어떤가? 생각 있는 사람들만 따로 나가 마시는 건?”
“좋은 생각입니다.”
짧아도 너무 짧게 끝난 회식.
마음이 맞는 몇몇이 단출하게 조촐한 객잔을 찾아 이동했다.
***
마음이 맞는 다섯 명이 작은 객잔을 찾아갔다.
양 교관이 즐겨 찾는 곳이라는데, 동천관의 교관이 다니기에는 꽤 수수한 곳이었다.
그에 따르면, 힘겹게 교관 시험을 준비할 때 자주 찾던 곳이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꼬치를 굽고 있던 점주가 아는 체를 했다.
“양 교관? 왔어?”
“아저씨. 오랜만입니다.”
자리에 잡고 앉자 근사한 꼬치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괜찮은 곳이네요.”
얌얌.
끊임없이 꼬치를 입에 밀어 넣던 초운휘를 보며 여매홍은 살짝 기가 질린 기색이었다.
“그렇게 먹고도 또 들어가요?”
“먹어야 쑥쑥 잘 크거든요. 얌얌.”
“그러고 보니….”
한쪽에서 새삼스럽다는 듯 조현이 덧붙였다.
“초 교관님 조금 키가 큰 것 같지 않아요?”
“키가요? 잘 모르겠는데….”
“여 교관은 항상 붙어 다녀서 잘 모를 거예요. 매일 보는 사람과 달리 가끔 보는 저는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여기에 꼬치를 우물거리던 여막도 가세했다.
“진짜 그러네요.”
듣고 있던 양 교관도 꽤 이상한 모양이다.
“초 교관. 자네 나이가 몇이라고 했지?”
“스물다섯. 꽃다운 결혼적령기의 멋진 총각이죠.”
“스물다섯에 키가 큰다라….”
무척이나 수상쩍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의아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나이에 비해 훨씬 앳돼 보이는 외모.
심지어 코 밑은 거뭇한 수염은커녕, 매끈했다.
거기에 한창 성장기에 접어든 것 같은 먹성에 성장세까지.
아무리 나이가 들어서 키가 큰다고 하지만, 이십 오 년 동안 자라지 않던 키가 고작 다섯 달 만에 커지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의아한 시선의 중심에 있는 초운휘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좀 늦게 크는 체질인가 보죠.”
“늦게 크는 체질도 정도가 있지 않을까요?”
여매홍의 딴죽에 초운휘는 술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고는 크으- 입가를 쓸었다.
“어라? 없네.”
“한 병 더 내어 오라고 하지.”
“괜찮습니다. 술은 적당히 마셔야죠.”
“지금 자네 옆에 있는 술병만 열 병일세. 적당히 마실 수준은 진작에 넘은 것이 아닌가?”
“사람에 따라 적당량은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사지. 양껏 마시게나.”
“생각해보니 이제 간에 조금 기별이 온 수준이었습니다. 조금 더 마시죠.”
“자네 굉장한 술고래로군.”
“전 젊어서 간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거든요. 늙고 절은 간을 가진 이와 비교할 수 있나요.”
곁에서 술 석 잔에 얼굴이 발개진 신입 교관 여막이 부럽다- 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없이 가볍고 편한 자리가 이어졌다.
슬슬 자리가 파할 때가 될 때였다.
드르륵.
아까 전부터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손님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꼬치를 우물거리던 초운휘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돌아가 전해. 선물 잘 받으라고.”
홍조가 어린 얼굴로 술잔을 천천히 기울이던 여매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가 무슨 소리 했나요?”
“방금 전에….”
“제가 술김에 혼잣말하는 버릇이 있어요.”
“흐으음?”
어느덧 술자리가 끝을 고해가고 있었다.
***
쿵쿵쿵쿵.
밖에서 들려온 발구름 소리에 요란은 다소곳이 앉아 곰방대를 휘둘렀다.
딱.
막 태워낸 잿가루를 털어낸 그녀가 이내 조심조심 연초를 채워 넣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우우.
이내 긴 연기를 뱉어내고 있자니, 벌컥 문이 열리며 총관 종여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주님의 짐작이 맞았습니다.”
“확실히 그분이었어?”
“분명히 ‘선물 잘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물인가?”
후우우우우.
긴 연기를 뱉어내는 요란의 앞에는 작은 탁자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공포에 질린 한 사람의 목이 올려져 있었다.
“후우우우우.”
재차 연기를 뱉어내며 요란은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막 자신의 방문을 열었을 때, 덩그러니 놓여있는 머리통에 얼마나 놀랐던가.
깜짝 놀란 그녀는 오하잠도를 불렀다. 일전의 사건 이후, 직접 영약을 내리고 훈련을 거친 그들이라면 누군가의 흔적을 잡아내지 못했을 리 없기에.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황망한 것이었다.
–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오하잠도의 눈을 속인 채 하오문의 무한지부 가장 깊숙한 곳까지 올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처음 본 그 사람뿐이었다.
“그분은 어떻게 찾았지?”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루를 나서니 꼭 어디로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가보니, 그곳에 그분이 계셨습니다.”
“얼굴을 기억해?”
그제야 종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명히 뵈었는데….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장성한 중년인, 아니, 소년이었나?”
횡설수설하는 종여를 보며 화를 내는 대신 요란은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분명 기억에 얼굴을 보았었어. 하지만 이상하게 인상이 떠오르지 않아.’
기억력이 좋은 요란이다.
애초에 사람을 보는 눈이 없어서야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의 무한지부를 맡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기억에 상대의 용모가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직 얼굴만.
어린아이가 기억이라는 이름의 도화지에 제멋대로 비죽비죽 낙서를 해 얼굴만 지운 느낌이었다.
혹시나 사술에 당한 것이 아닐까 확인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오’였다.
도리어 다른 소리를 들었다.
무한성에서 일어난 사건에 하오문주가 직접 파견한 의원에 의해서였다.
– 루주께서는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기억을 상실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 종종 들어봤어요. 큰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닫은 것이라던가요?
– 맞습니다.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큰 충격을 받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정신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죠.”
–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 루주께서 겪은 것이 실로 이것과 흡사합니다.
– !
– 무의식적으로 그자에 대한 기억을 지운 것 같습니다. 사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적인 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요?
– 속하도 들어보지 못한 경우입니다. 특히 루주님 같은 강한 분께서 압도되어 본능적인 방어기제를 일으킨다니,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측량하기 힘든 대단한 고수다.
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요란이 후우우 연기를 뱉어냈다.
“인연이 끊긴 줄 알았거늘….”
아직 인연 한 올이 남아 있었던가?
안정을 위해 처방받은 연초를 입에 대고 있음에도 가슴이 두근두근 맥동했다.
요란이 입을 열었다.
“종여. ‘그분’께서 ‘선물’이라 하셨다면, 멋대로 처분해도 괜찮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들렸습니다.”
“좋아. 무림맹에 빚을 지우고 한몫 챙길 기회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녹혈수사’에 대한 일이라면 무림맹도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
다른 때도 아니고, 신무학관에 사파의 간자.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모종의 세력이 심은 이중간자가 침입한 격이다.
개입자의 명성과 시기를 감안하면 황금을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는 실로 위중한 일이었다.
요란은 녹혈수사의 잘려진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대체 사파에서도 이름 높은 강자가 무엇을 보았기에 저리도 두려운 얼굴로 죽어갔던가?
오싹오싹.
양어깨를 팔로 감싸며 요란이 덧붙였다.
“분명히 ‘그분’께서는 무한의 밤거리에 불온한 날파리‘들’이 다닌다고 하셨다.”
“한 명이 아니라는 뜻이군요.”
“무림맹에 전해. 그리고 높은 값을 불러 정보를 팔아. 그리고.”
따악.
다 태운 연초를 털어내며 요란이 덧붙였다.
“‘암존(暗尊)’이라는 이름으로 이 건에 대한 사례금을 달아 놔.”
“암존이라 하시면….”
“‘그분’의 이름을 알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잠깐 고민하던 종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오직 무저갱에 가까운 어둠과 압도적인 존재감뿐이니, 실로 그럴듯한 별호로군요. 알겠습니다.”
쿵쿵.
부복하며 사라지는 종여가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참. 암존께서 말씀하신 ‘작은 사건’은 어쩔까요?”
처음으로 요란의 표정에 난감함이 어렸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큰 선물을 받았으니, 작은 장난에는 어울려드려야겠지.”
“알겠습니다.”
멀어지는 종여를 보며, 요란은 재차 연초를 피워냈다.
후우우우우.
흩어지는 연초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과거의 기억을 되뇌고 있었다.
짙은 연기 속에서 뇌쇄적인 붉은 입술이 오물거렸다.
“백리세가의 나락. 대공자 백리준여의 주화입마.”
그리고.
“하오문의 배신자들.”
원래라면 무한지부에 멋대로 드나드는 이 귀신같은 존자는 적대하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입은 은혜가 워낙 크기 때문이었다.
하오문의 문주가 크게 놀라 직접 칼을 뽑아 들 정도로 말이다.
문주가 다녀간 개봉의 밤거리에는 피가 작은 개울이 되어 흘렀다던가?
요란은 궁금해졌다.
대저 무슨 의도로 암존은 움직이는 걸까?
“또 소녀는 어떤 요물에 홀린 것일까요?”
거처에는 목만 남은 냉혈수사 강속의 침묵만이 떠돌 뿐이다.
***
다음 날.
염광은 깨질 듯한 머리를 싸쥐며 일어났다.
“으으…. 물….”
타는 듯한 갈증에 몸을 일으킨 염광은 화들짝 놀랐다.
일어난 곳이 자신의 거처가 아닌 화려한 내실이었기 때문이다.
휘황찬란하기까지 한 장내에 깜짝 놀란 염광이 곁에서 죽은 듯 자고 있는 교관들을 두들겨 깨웠다.
“일어나 보게. 어서!”
“왜, 왜 그러십니까?”
“으음. 여긴 어디야….”
세 사람이 일어났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단정한 차림의 노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침하셨습니까?”
“저…, 저희가 이곳에 왜 있지요?”
“어제 크게 취하셔서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흥취를 꽤 즐기셨지요.”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들을 본 염광은 침을 꿀떡 삼켰다.
술병들이 하나같이 귀해 보이는 것이 보통 값비싼 명주들이 아닌 것으로 보인 탓이다.
“그, 그게…. 아무래도 취하여….”
“알고 있습니다. 어제 두 개의 탁자와 도자기 하나를 깨부쉈으니까요.”
뭔가 상황이 좋지 않다.
잘못 말려들면 골치 아파질 것 같다는 생각에 염광이 한차례 세게 나갔다.
“우리가 그랬다고? 우리는 신무학관의 지엄한 교관들이다. 너희는 술에 취한 우리들을 이용해 사익을 편취하려는 것이 아니냐?”
그러자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가시지요. 취객을 받은 잘못도 있으니 셈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렇게 보내준다고?
돈도 안 받고 순순히?
뭔가 구린 구석이 있구나 생각하며, 한층 더 세게 나가려는데 노인이 중얼거렸다.
“본 초홍루에서 취객에게 사기를 쳤다는 소문이 돌면 곤란하니 말입니다.”
“초홍루?”
설마 그 초홍루?
금천관의 관주가 종종 애용한다는 그 무한의 손꼽히는 명소 초홍루?
꿀꺽.
‘뭔가 잘못되었다.’
자칫하다가 무림맹의 명사들이 단골이라는 초홍루에 동천관의 교두가 돈을 떼먹고 도망갔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결과는 끔찍하리라.
염광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그…, 그…. 초면에 미안했소이다. 경황이 없어….”
“그러실 수도 있지요.”
“지금 가진 돈이 없어 그러는데….”
“강호인이 내키는 대로 하고자 한다면, 술장사나 하는 힘없는 민초는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무, 무슨 내키는 대로 한다는 말입니까?”
염광이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유명한 만큼 비싸기로 유명한 초홍루다.
‘제길 어쩌자고 이런 곳에 들어와서.’
정말이지 술이 웬수였다.
“이, 이제 어쩌죠?”
“초홍루는 엄청 비싸다고 들었는데….”
“저, 돈 없습니다.”
언제나 알랑방귀를 뀌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발을 빼려던 교관들을 보며 염광은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