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97
제92장 방학 끝에 찾아오는 것 (6)
초대천마와의 싸움은 처음부터 열세로 시작되었다.
아무리 당대의 천하제일을 자처하는 초운휘라지만, 마도의 조종은 격이 다른 상대.
무엇보다 마지막 세 번째 초식을 완성하지 못한 점이 치명적이었다.
“호오. 후예 중에 이만큼 내 무학을 이해할 이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재수 없게도 천마조사는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빌어먹을. 죽을 지경이군.’
마공을 연성하다 반쯤 미쳐버린 와중에도 후퇴를 떠올렸을 정도로 격차는 엄청났다.
‘하지만, 버틴다.’
도망치는 쪽은 영 성격에 맞지 않았으니까.
“후후. 너만 한 아이가 격차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아직도 투쟁심은 죽지 않는 거냐?”
“X까. 나이 세다 머리가 셀 망령 새끼야!”
악으로 깡으로 알고 있는 수백 가지 무공을 펼쳐내며 필사적으로 싸웠다.
일주야를 꼬박 싸운 끝에 세 개의 언덕이 평지가 되고, 수백 수천의 마인들이 죽어 나갔지만, 초운휘는 멈추지 않고 혈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이대로는 필패다. 무공의 성취도, 경험에서도 모두 내가 밀린다.’
지금껏 버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실력과 함께 천마가 손속을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수십 수백 번의 생사결을 통해 온갖 경험을 했다고 자부하지만, 무공을 익혀온 절대적인 시간의 길이가 격차를 벌려갔다.
‘젠장. 완전 한계다. 끝인가?’
죽음을 예상하면서 권법을 펼쳐 손목을 튕겨내고, 검날에 몸을 던지며, 반전을 노렸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후예로구나. 내게 머리를 조아려라. 너희들이 수백 년 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일주야 내내 싸우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은 천마는 말했다.
“너에게 새로 태어날 세계의 두 번째 자리를 주마. 어떠냐? 넌 나의 진짜 후계가 되는 것이다.”
마도의 조사. 마인이라면 영광스러워 넙죽 엎드려야 할 제안이었지만, 초운휘는 심사가 뒤틀렸다.
“뭐라는 거냐. 턱뼈도 삭아버린 틀딱 새끼가.”
선조고 나발이고 누군가 제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개새끼. 네 말쌍한 얼굴에 죽통을 제대로 돌려주마.”
자신 앞에서 겁을 먹는 대신, 히죽히죽 웃는 꼴이 무척이나 보기 싫었다.
“주둥이부터 대! 개새끼야!”
분기탱천해 마지막 전의를 불태워 폭사하려는 때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투를 보며 압도되던 천마신교의 교인들이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죽는다.”
“모두 살기를 바라지마라!”
압도적인 천마의 살기에 잡아 먹혀 있던 마인들이 혀를 깨물고, 눈빛을 되찾으며 앞을 가로막았다.
“허튼짓.”
촤아악!
천마가 휘두른 검에 병장기와 함께 허리가 갈라져 두 쪽이 되면서도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하하하하!”
네 번째 반쪽으로 갈라져 죽는 마두는 죽으며 앙천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진정한 하늘의 주인에게 영광을!”
놀랍게도 몸을 날려 검을 막아내는 것은 천마신교의 교도들이었다.
“뺀질거리는 신교 놈들에게 질 수는 없지.”
뒤따라 몸을 던지는 것은 혈교의 무인이었다.
촤악! 파하핫!
불나방처럼 검에 뛰어드는 이들이 허공에서 폭사하며 짙은 핏빛 비를 뿌렸다.
“……!”
얼떨떨한 가운데 초운휘는 자신의 앞에서 초개와 같이 몸을 날려 생을 불태워 어떻게든 시간을 벌고자 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죽기 전에 마도통일을 볼 수 있으니 이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젠장할 혈교 놈들과 뜻이 맞을 날이 올 줄은 몰랐군.”
“지옥에서 보게. 형제여.”
십여 명이 죽자, 기세에 눌려 있던 수백의 교도들이 나섰다.
지체없이 몸을 날려 피와 육편으로 변하면서도 그들에게 두려움이나 고통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주인. 안녕히.”
하나 같이 시선을 마주하며 장엄하게 몸을 날릴 뿐.
“이게 대체….”
천우신조로 한숨을 돌린 초운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전에 없이 더듬거렸다.
그때, 어깨를 짚는 손이 있었다.
“갈중혁.”
바로 마지막 천마신군 갈중혁. 그가 이쪽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초운휘 교주. 그대는 유일한 마도의 적통일세.”
“그대는 내가 밉지 않나?”
“밉지. 미웠지. 자네 손에 절단난 수하들이 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왜 나를 돕는 거지? 저자는 모두가 그토록 염원하던 마도의 종주가 아닌가?”
그에 교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조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네. 사조의 혼백이 강림한 것이 사실이라고 한들, 사술로 태어난 이가 어찌 마도의 종맥이라 할 수 있겠나?”
“…….”
“우리는 무력했네. 또한, 압도적인 격차에 절망했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어. 진짜 천마신공의 주인이 강림했기에 마기는 들끓고, 무력해졌으니까. 나 또한 그러하였으니.”
“그런데 왜 이런 개죽음을 시작하는 거냐고.”
“하지만 자네는 어떠했나?”
그가 되물었다.
“필패를 알고도 싸웠지.”
“그건 저 새끼가 쪼개서….”
“초운휘 교주. 아니, 위대한 마도의 종주여.”
그 아비규환 속에서 그가 힌쩍 무릎을 꿇었다.
“싸움을 지켜보며 다시금 깨달았네. 우리가 경애한 것은 패하지 않는 절대자가 아니었어.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상황에도 뜻을 관철시킨 분을, 불가능을 이겨내 패도를 이룬 분을 존경했던 것이지.”
그가 빠르게 시선을 움직였다.
“패도를 불합리하게 휘두를 뿐인 자에게서, 존경을, 경애를 보낼 구석이 있겠는가?”
그는 짧은 시간 만난 자신이, 수백 년을 무학의 스승으로 섬겨온 이보다 낫다고 하였다.
‘어째서. 왜?’
“대화를 더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없네. 자네가 이런 인간인 줄 알았다면 일찍이 자네를 찾아갔을 텐데.”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벌써 수십 명이나 되는 마인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네. 내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호흡에서 역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것으로 그가 꺼져가는 생명을 불태워 마지막까지 싸우기 위해 금지된 방법에 손을 대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와 흑풍대 생존자 전원이 폭혈단을 복용했네. 아는지 모르겠지만, 일각 동안 힘과 공력을 증폭시켜 주는 대신,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위지극 대주!”
흑풍대주 위지극이 잘린 팔을 부여잡고 나타났다. 그는 성한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은 파여 시력을 잃었고, 다리 한쪽은 반쯤 잘려 덜렁거린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도대종사께 청을 드립니다.”
그럼에도 그는 처음으로 호기로운 미소를 보였다.
“흑풍대가 마도대종사의 뒤에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와 함께 바닥에서 신음하던 흑풍대원들이 다가왔다.
하나같이 파리한 안색으로 다가오는 이들은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더러는 팔과 다리를 잃어 기어 오는 이들도 있었다.
벌써부터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이들. 그러나, 기이하게도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죽음에 반쯤 발을 걸친 채로 다가오는 모습은 유령 같았다. 그들 뒤로 천마신교와 수라혈교의 살아남은 마인들이 시립했다.
펑! 펑!
여전히 천마조사는 달려드는 교인들을 폭사시키며 여유를 부리는 상황.
“으득.”
작은 여흥 거리를 보는 눈빛에 이를 갈아붙이자, 갈중혁이 시선을 가리며 외쳤다.
“당대 마도의 주인이시다! 끝까지 네 소임을 다하라!”
“흑풍대는 결코 주인의 앞에 서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뒤에 남아 주인을 지켜라!”
“주군! 목숨으로 사수하겠습니다!”
위지극은 더는 그를 교주라 부르지 않았다. 다만, 상처 입고 다친 몸으로 살아남은 흑풍 대원을 이끌며 외쳤다.
“흑풍대의 마지막 임무다!”
어느 하나 성한 것이 없는 흑풍대원들이었지만, 위지극의 외침에 보이는 기세는 조금도 죽지 않았다.
“교주님을 모신다!”
결국 흑풍대원들이 방패가 되고, 벽이 되어 전장을 이탈하게 되었다. 망천회의 고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지만, 죽기를 각오한 마도 정예의 힘은 녹록지 않았다.
“부디. 무운을….”
예순둘의 흑풍대원들이 핏물이 되고, 더 많은 마도의 고수들이 죽어감에도 꿈쩍도 않던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꺾었다.
그리고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주르륵.
한 번도 물러섬 없는 이 철혈의 검사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말이다.
그것은 후회의 눈물인 걸까? 아니면, 분노의 눈물인 걸까?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초운휘는 천마조사, 나아가 망천회와 한 하늘 아래 살아갈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은 장렬히 나아가는 갈중혁의 등을 보며 물었다.
“대체 왜 다들 나를 위해 죽는 거지? 내가 무엇이라고!”
갈중혁은 무엇이라 대답을 했던가?
“교주. 오직 당신뿐이오.”
그는 짧게 덧붙이고는 흑풍대의 뒤를 따랐다.
“다시 보자꾸나. 나의 맹랑한 사손아.”
저 멀리, 교주의 심장을 뽑아낸 천마조사가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주군.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 옛날 생각을 좀….”
상념에서 돌아온 초운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상대가 진짜 천마조사라면, 위지극이 당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어떤 이유에서라도 물러섬이 있었다는 것은 마뜩잖습니다만, 주군의 말씀이 그렇다면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애써 불만을 삼키며 독고율이 물었다.
“헌데 어떻게 저들이 강림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요? 주군께서는 각성석은 완벽하지 않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이전 삶에서도 망천회는 이즈음 각성석의 완성은커녕, 비슷한 것도 하지 못했어.”
망천회가 각성석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었다.
“놈들이 제단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영물은 둘째치고라도, 제단 하나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돈이 장난이 아니거든.”
“확실히. 요란 루주나 단야에게서도 딱히 들어온 소식은 없습니다.”
“그렇지.”
하오문을 통해 기억 속에 있는 영물을 확보하도록 이야기를 해둔 참이다. 단야까지 있으니 아무리 망천회라도 소리소문없이 일을 완수하지는 못했을 터.
“더욱이 이번 삶의 강호는 예전처럼 무력하지 않아. 무림맹과 철사련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마당에, 전생에서처럼 날뛰기 힘들지.”
전생의 망천회는 영물을 얻고, 배신자들을 심어 강림을 완성시켰다.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미리 경각심을 가진 무림맹과 철사련이 있는 데다, 이미 다섯이나 되는 사도가 죽으며 거의 절멸 위기에 처했다.
완벽한 방법의 강림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자신 때문이다.
“천마 따위가 나보다 더 악독할 리 없잖아.”
자의식이 강해서가 아니라, 각성석을 취하고 고금 이래로 가장 끔찍한 혈겁과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써온 자신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사도가 강림시킨 것도 나였단 말이지.”
여러 가지로 추측해보건대, 당금의 상황이 일어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뭔가 불완전한 방식으로나마, 과거의 망령을 불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겠지.”
나름 추론의 근거도 있었다.
‘내가 처음 마주한 것은 초대천마도 아니었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어.’
이후 덕분에 소림의 달마대사나 무당파의 장삼봉 진인, 심지어 잊혀진 신비문파의 강자들.
일대를 넘어선 천년의 역사를 일궈낸 대종사들을 불러냈다.
천마를 강림시킨 것은 그보다 먼 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놈들이 화산파에 강림을 노리는 이유가 있겠습니다.”
“그래. 내 짐작도 마찬가지야.”
“대체 어떤 홍백을, 어떻게 불러내려 하는 것일까요?”
그에 초운휘가 짧게 답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우선 능풍운을 이용해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