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98
제93장 능풍운의 속사정 (1)
독고율과 헤어진 후, 초운휘는 아쉬움을 곱씹었다.
“전생의 기억이 좀 더 확실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 생의 이맘때에는 폐관수련에 미쳐 있을 때라 기억이 많지 않았다. 이후에도 혈교의 일통을 위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지속했고.
생존을 위해 미친 듯이 싸우던 때이기에 강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간신히 혈교의 지존으로 올라서 한숨을 돌렸을 때는, 정파의 절반이 망천회의 공격에 무너지는 와중이었기에 과거를 돌이켜 볼 틈도 없었다.
특히 화산파는 가장 먼저 희생당한 곳이기에 더더욱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사건 사고가 워낙 많아서, 느긋하게 과거를 돌이켜볼 시간이 없었단 말이지.”
하루에도 수많은 문파들이 작살이 나는데, 한가하게 기록을 검토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화산파라. 천마가 관심을 가질 정도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일 텐데. 그곳에 그럴 만한 것이 무엇이 있지?”
전생의 화산파는 구파일방의 양대 검파라 불리는 명성에 무색하게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어쩌면 각성석을 화산파에 봉인시킨 탓인가도 싶어. 멸문을 해야 할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먼 훗날 능풍운이 화산파의 생존자로 명성을 떨치게 된 이유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우선은 잠자코 정보를 모아, 기억과 짜 맞출 필요가 있었다.
팔미로의 꼬칫집에 들어가니, 이미 능풍운과 금정이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이제 온 건가? 기다렸지 않은가?”
“오랜만이에요. 개학 이후에는 처음 뵙네요.”
금정이 생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오랜만이네요.”
한결 부드러운 표정의 금정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딴판이다.
처음 학관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아미파의 고수라고 거들먹거리며 찬바람을 쌩쌩 불더니, 언제 그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변했다.
“임무에서 돌아와 관도들을 다시 보니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저도 이제 학관의 교관이 다 된 느낌이에요.”
소문에 따르면 호랑이처럼 엄하게 가르치는 방식 대신, 관도에 따른 눈높이 교육을 한다던데 사람이 확 변하니 적응이 쉽지 않네.
곧이어 여매홍과 모용선야가 등장했다.
“아앗. 먼저 와 계셨군요. 늦어서 죄송해요오오.”
“쳇. 퇴근하는 도중에 갑자기 상급 교관에 붙잡혔단 말이에요? 이상하게 꼭 약속이 있을 때만 사람을 붙잡는다니까.”
투덜대는 모습과 달리 모용선야는 꽤 뿌듯해 보인다.
‘입은 싫다고 하지만, 몸은 솔직한걸?’
일에 치이고, 과중한 업무에 떠밀리는 것이 그녀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는 방편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완벽한 사축이랄까?
“…솔직히 오늘은 올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실실 웃고 있으니 모용선야의 음습한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초 교관님이 모임에 불렀다면 속내를 의심하고 볼 생각이었거든요.”
“그거 꽤 실례되는 말 아닙니까?”
“누구 때문에 대수림까지 가서 죽을 고생을 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가슴에 손을 얹고 잠시 고민해보자.
“전 결백합니다.”
“세상에 결백한 사람은 전부 살해당한 모양이네요.”
“진짜 결백합니다.”
“그만해. 친구. 자네가 졌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하세요.”
‘세상에 내 편은 없는 건가?’
새삼 외로움에 사무친다.
술자리의 시작은 대수림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모용선야가 떠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우와. 그때 부족의 전사들이 초 교관을 보며 대전사라고 할 때 얼마나 놀랐는지.”
“할 때는 하는 사람이라니까요. 초 교관님은. 엣헴.”
“어째서 홍이 네가 더 우쭐해지는 거니?”
기밀에 대한 내용은 말할 수 없었지만, 장황한 격전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꽤 즐거운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럭저럭 술이 들어가고, 이야깃거리도 떨어질 때 즈음, 모용선야가 말꼬리를 돌렸다.
“능 교관님이 적극적으로 자리를 모은 것은 또 오랜만이네요.”
“한동안 빈번하게 제안을 드렸지 않습니까?”
“동정호에서의 일 이후로는 많이 바쁘신 것 같아서. 그래도 좋네요. 오랜만에 다시 모여 회포를 푸는 것 말이에요.”
덕담이 오가는 끝에 여매홍은 열심히 구이에 손을 뻗었다.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매운맛 꼬치라는데 꽤 입에 맞는 모양.
물끄러미 도토리를 갉아 먹는 것처럼 꼬치를 갉아먹는 양을 구경하고 있자니, 그녀가 생긋 눈가를 반달로 만들었다.
“이거 참 맛있어요.”
“딱 봐도 그래 보이네요.”
“가끔 답답할 때는 강렬한 매운맛이 땡긴다니까요?”
“조심하십시오. 자칫 잘못하다가, 화장실에서 어제의 나를 저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떽! 먹을 때는 더러운 이야기 금지에요.”
“흐흐.”
볼을 느슨하게 잡아당기는 손길에 낄낄거리고 있자니, 모두의 짜증스러운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여매홍이 슬그머니 손을 놓고,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꼬치 갉아먹기에 전념하고, 초운휘는 모른 척 술잔을 달깍거렸다.
그제야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되었다.
“할 말이 있다더니 무슨 일이에요?”
“아. 그건 말입니다.”
조금 가라앉은 어조로 능풍운이 말을 이었다.
“조만간 사문에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어머.”
“앗.”
여러 아쉬운 탄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금정만이 대강 짐작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십대세가 출신보다, 구파일방 문파끼리 아는 것이 있다는 것이겠지.
“대강 이야기는 들었어요. ‘매화대제전’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매화대제전.
그 말에 모용선야와 여매홍이 아쉬운 기색을 애써 감췄다.
“매화대제전이라면 뭐. 어쩔 수 없네요.”
“능 교관님께서는 매화검수이시기도 하니까요. 안타까워라.”
‘매화대제전?’
전혀 이해 못 했다는 기분을 뿜뿜 뿜으며 멀뚱히 있자니 여매홍이 설명해왔다.
“화산파에서 개최하는 무예 제전이예요. 사문의 존장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각자 이룬바 성취를 선보이는 행사죠.”
“본산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속가제자들까지 참석하는 거대한 행사예요. 화산의 무학을 이은 이들이라면 대부분 참가해야 하고요.”
모용선야의 설명에 초운휘가 잠시 생각하고는.
“…….”
검지를 딱 튕겼다.
“그냥 째면 안돼?”
“…초 교관님. 제대로 듣고 계신 것 맞아요? 사문의 존장들이 모인 앞에서 무단 이탈이라니요.”
“그럼 말하고 째면 되겠네.”
“하아. 교관 회의도 빼먹는 분이라는 것을 잊었네요.”
여매홍이 드물게 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하.”
반면에 능풍운은 오랜만에 다시 웃는 낯을 했다.
“불가하다네. 매화대제전은 무공을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전통이 있거든.”
“전통적인 절차?”
“매화검수의 실력을 검증하는 자리이기도 하단 말이지. 자네는 매화검수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어느 정도는.”
거들먹거리던 매화검수가 사실은 망천회의 봉마검진에 갇혀 녹아내릴 때 예쁘게 울어댔다는 것도 안다.
‘말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 능풍운 대신, 금정이 설명을 이어갔다.
“매화검수는 화산파의 유망주 중에서 선별하는 것이 전통이에요. 이십사수 매화검법의 초식 수만큼 꼭 가장 실력이 있는 스물네 명만을 선발하죠.”
“그건 알아요.”
“그렇기에 매화검수는 언제나 최고의 실력자만을 꼽아요. 하지만, 실력은 때에 따라 늘기도, 퇴보하기 마련이죠. 매화대제전에서는 각자 실력을 점검해서, 매화검수의 이름에 걸맞는지 증명을 하고 있어요. 실력이 부족하다면 자리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매화검수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지요.”
“아하. 일종의 물관리군요.”
단어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금정의 표정은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물었다.
“그런데 능풍운 정도면 실력이 부족할 것 같지는 않은데.”
능풍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나를 높게 봐주어 고맙네. 하지만, 전통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전통은 귀찮구먼.”
“또한, 이번 대제전에서 대사형께서 매화검수의 수장에서 물러난다네. 나를 기필코 소환하는 이유는 내가 대사형의 뒤를 이어 매화검수의 수장이 될 능력이 있는지 검증하려 하는 것이 클 거야.”
“뭐야. 매화검수의 수장도 바뀌는 거야?”
“아까 금 교관이 말하지 않았나? 매화검수는 유망주 중에서 뽑거든. 서른 중반이 넘은 대사형은 더는 신진고수라 부르기 애매한 나이가 되었으니, 물러나는 거지.”
“나이가 찼으니 젊은 놈들 사이에서 놀지 말고, 늙다리들 있는 곳으로 올라오라는 건가?”
무심코 모용선야를 곁눈질했다가.
“실례잖아욧! 전 아직 이십 대라고요!”
퍽!
한 대 맞았다.
‘아프다. 불합리하게 아프다!’
옆구리에 꽂힌 주먹에 고통을 항의해봤지만.
“…거참. 조심 좀 하지.”
“여자의 나이를 거론하는 남자는 최악이랍니다.”
“우와아아아. 초 교관님. 최악이에요.”
모두의 질타만 받았다.
심지어 어지간한 일로는 언제나 편을 들어주던 여매홍까지!
‘제길. 이 세상에는 신도 부처도 죽어 버린 건가?’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초운휘는 강제적으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쨌든 이야기를 종합해보건대, 능풍운은 화산파에 돌아가 매화대제전이라는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모양이다.
최종 목적은 사문의 존장들 앞에서 성취를 인정받아 새로운 매화검수의 수장으로 발탁되는 것이고.
“다시 학관에 돌아오실 수는 없는 건가요?”
“어려울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매화검수가 오랫동안 외유를 나간 저와 같은 경우도 이례적인 일인지라. 수장이 되면 더욱 어려워지겠죠.”
“안타깝네요. 능 교관님을 따르는 관도들이 많았는데.”
여매홍이나 금정과 마찬가지로, 능풍운 또한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왕 떠날 것 이번 학기라도 마무리를 짓고 싶었는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결과가 어찌 될지 두고 봐야 하겠지만, 사문에 부탁을 해볼 생각입니다.”
그날의 자리는 아쉬운 소식과 함께 금방 파했다.
좋은 일이 아니라, 언제나 화기애애했던 술자리는 금방 끝이 났고, 각자 복잡한 속내를 감춘 채 자리를 떴다.
학기의 시작과 함께 그새 정이든 사람을 떠내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든 일이니까.
***
“…….”
자리가 파하고 초운휘와 능풍운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찌륵. 찌륵.
풀벌레가 우는 소리.
휘이잉.
그리고 찬 밤바람이 흘러가는 소리 너머로 달큰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슬며시 곁을 돌아 무뚝뚝한 능풍운의 옆모습을 살피던 초운휘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용건은?”
능풍운이 살짝 멈칫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를 부른 것 아냐?”
“…알고 있었나?”
“죽상을 하고 있는데 모를 수가 없지. 난 속마음을 알아봐 달라고 외치는 줄 알았는데.”
“후후. 자네는 의외로 예리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정돈된 거리에서 살짝 빠져나와 한적한 수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적당히 평평한 바위를 찾아 엉덩이를 걸치며, 옆자리를 톡톡 두들겼다.
“인마. 털어놔 봐. 형님이 들어줄 테니까.”
“나이는 내가 많지 않았나? 자네 나이는 딱 약관을 갖 넘었다고.”
“늙어봐서 아는데, 어릴 때는 서로 형이라고 싸우는데 다 부질없어. 늙으면 어린 녀석이 친구라 해주면 마냥 고맙다고 하게 되거든. 난 손녀가 없지만, 손녀딸이 친구 먹자고 하면, 바로 누나 박는다.”
“하하. 참 난감한 어른이로군.”
진심으로 웃으며 능풍운이 곁에 앉았다.
“마침 자네에게 상담하고 싶던 차였는데 잘되었군.”
“대체 뭐야. 대(大) 매화검수의 수장씩이나 되는 일이라며? 박봉에 격무에 시달리는 교관이라면 침부터 질질 흘려야 정상아냐?”
빙그레 웃은 능풍운이 비로소 속에 꽁꽁 감춰두고 있던 말을 꺼내 들었다.
“자네. 내가 일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나? 나는 화산파에서 꽤 내놓은 축이었다고.”
“어. 기억하지. 위아래 없이 결투를 걸고 다녔다면서? 나랑 같은 과라고 생각했지. 얼마나 반가웠는데.”
그의 입가에 느슨해졌다가 다시 침울하게 반원을 그렸다.
“아무래도 난 여전히 사문에서 용서받지 못한 것 같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