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0
제12장 변화의 시작 (3)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백리설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봉황염천무’를 감추라는 조언에 따라 그녀는 단출하게 쌍검을 들었다.
“교관님의 백리설! 백학검무! 시작하겠습니다.”
옥구슬이 굴러가는 맑은 목소리.
하지만 뒤이어 쌍검이 움직이자 연무장에는 살벌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슈각.
왼손의 검이 허공을 찌르면.
서걱.
오른손에 든 검이 벼락처럼 전면을 벤다.
서늘한 파공성과 함께 검광이 번뜩이는데, 이내 속도가 붙은 검격이 종횡무진으로 들쑤시기 시작했다.
쉭! 쉬쉬쉬쉭!
춤을 추듯이 연무장을 오가며 뻗어내는 쾌검.
어찌나 빠른지 품이 넓은 소매 아래 움직이는 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파스! 파스스!
종래에는 검 끝이 향하는 연무장의 바닥에 옅은 실선이 죽죽 그어졌다.
내공을 싣지도 않았는데, 검에 담긴 예기에 밀려나는 흙먼지.
이것을 본 제갈탄은 두 눈을 부릅떴다.
‘검풍!’
검술이 경지에 이르러, 검의 예기를 극도로 세밀하게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
‘벌써 검풍의 경지라니….’
제갈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검의 제어가 몹시 세밀해지지 않으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절예.
고작 몇 달 수련한 관도가 흉내 낼 수 있는 비기가 아닌 것이다.
은천관에서도 오직 손에 꼽는 이들만이 가능한 검예였다.
‘이 여자의 재능만큼은 인정해야겠군.’
하지만 검을 멈춘 백리설의 표정은 뽀로통했다.
“으음. 생각처럼 잘 안 되네.”
“언니, 괜찮은 것 같은데요?”
“하지만 교관님은 훨씬 간단하게 선명한 선을 그렸는걸?”
불퉁한 얼굴로 몇 번이나 허공에 검격을 날리던 백리설이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러섰다.
수련이 부족하네요~. 라는 말을 남기고.
‘부족하다고? 저게?’
성격은 최악이지만, 자질은 정말 대단하군.
다음으로 나선 것은 모용소혜였다.
“으음. 언니의 검술을 본 후 펼치려니 창피하네요. 부족한 실력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덧붙인 그녀가 야무지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모용소혜! 무공은 목각백인수! 전력을 다해 갑니다!”
주먹을 말아쥐자니, 남궁윤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아수라파천수라고 하지 않았나?”
“저는 혈천야수공이라고 들었어요?”
막 기수식을 취하던 모용소혜가 왁! 하며 성을 냈다.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이름은 싫다고요!”
좋아.
그냥 목각백인수로 하자.
두 사람의 침묵 속에 눈가에 물기를 매단 모용소혜가 앙증맞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녀의 앞에는 조금 전 끌어온 허수아비가 있었다.
뻐억!
작은 주먹에 맞은 것뿐인데, 철목으로 만든 허수아비의 머리가 크게 흔들렸다.
뒤이어 번개 같은 권과 장법이 이어졌다.
뻑! 빠바바박!
주먹이 스칠 때마다 허수아비의 팔다리가 끊어질 듯 흔들렸다.
‘또 달라졌어.’
과거의 목각백인수가 아니다.
이제는 권법과 장법을 넘어, 관절기에 팔꿈치 기술도 녹아 있었다.
빠각! 빠각!
흡사 전신이 흉기라도 된 듯 허수아비를 강타하는 모습에 제갈탄은 마른침을 삼켰다.
‘세상에.’
뿌득. 뿌지직.
나무가 솜처럼 뜯겨나간다.
와직.
조법으로 목을 치며 회수하자, 갈고리처럼 쥔 자그만 손아귀에 나무의 잔해가 우수수 딸려 나왔다.
콰득.
관절기와 함께 겨드랑이 부분을 찍자, 가슴 부분까지 쩍 갈라진다.
뻐버벅.
미간, 명치, 고관. 그리고 쇄골.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지며 허수아비는 말 그대로 갈려 나가고 있었다.
이 거침없는 손속에 남궁윤호가 확신했다.
‘야수의 무공이다!’
백리설도 깨달았다.
‘아수라파천수야!’
콰드득.
마지막으로 양손으로 허수아비의 가슴을 꿰뚫은 모용소혜가 주먹을 비틀었다.
“전 대체….”
후두두둑.
애처롭게 버티던 허수아비가 기어코 네 조각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뭘 배운 거죠?”
콰앙.
손안에서 이쑤시개로 변해가는 나무의 잔해를 보며 모용소혜가 글썽였다.
“이걸 어떻게 사람한테 써요!”
확실히 무리다.
사람에게 쓰면 현장에서 잡혀갈 것이 분명한 무공이었다.
남궁윤호가 정신을 수습하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게….”
모용소혜가 교관과의 대화를 전했다.
“수고했다. 흡혈율서. 이로써 아수라파천수가 한층 강해질 거다.”
“제 목각백인수 돌려주세요!”
“다만, 이제 네 손속이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처럼 잔혹해질 테니, 앞으로는 연계기를 마음대로 멈추는 법을 익혀야겠다.”
“와아-. 방법이 있어요?”
“네가 알아내야지.”
“못해요! 불가능하다고요!”
“못하면 넌 친구를 피떡으로 만들게 되겠지.”
“…라고 했어요. 히끅. 히끅.”
울먹이는 모용소혜의 말에 세 사람은 말을 잊었다.
평소의 교관이었으니까.
백리설이 모용소혜를 다독였다.
“우선 전력으로 펼치는 것은 그만둬야겠네. 전력으로 잡혀갈 거야.”
멋쩍은 남궁윤호도 가세했다.
“교관님이 말씀하신 대로 초식을 멈추는 방법도 익혀두고 말입니다.”
“네에.”
흐끅. 흐끅.
모용소혜가 한참 동안 히끅거렸다.
마지막으로 나선 것은 남궁윤호였다.
“남궁윤호. 신무검법 초반 삼식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듣고 있던 제갈탄이 물었다.
“윤호. 너라면 청풍검법을 익히지 않았나? 비록 남궁세가의 기본 검공이지만, 단순한 신무검법보단 나을 텐데?”
“그게…. 교관님께서 당분간 모든 무공을 봉인하고, 신무검법 초반 삼식만 펼치라고 하더군.”
또 교관인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당최 가늠할 수 없는 지시였지만 제갈탄은 순순히 물러섰다.
“시작하겠습니다.”
스르릉.
남궁윤호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단조롭게 허공을 베었다.
– 일합거도.
정면을 반듯이 가르는 검격.
– 분풍종횡.
다음으로 검 끝을 떨어 허공을 벤다.
– 청풍참월.
마지막으로 검으로 지면을 긁다 허공으로 상단베기.
너무나도 익숙한 삼 초식이었다.
시연을 본 제갈탄의 평가는 단출했다.
“깔끔하군.”
“깔끔하네요.”
백리설과 모용소혜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뿐.
남궁윤호가 몸을 돌려 물었다.
“역시 볼품이 없나?”
“아주 그림으로 그린 듯 정석적인 초식이었어.”
“특출날 것이 없다는 소리군.”
“신무검법은 기초 중의 기초적인 검법이니까.”
머리 좋은 제갈탄조차 더 이상의 찬사의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군.”
“이제 전과 달리 초식의 전개가 능숙해졌으니, 살짝 다른 검법을 참고해 보는 것은 어때?”
“아니, 되었어.”
스르릉.
검집에 검을 꽂아 넣으며, 남궁윤호가 대답했다.
“믿고 따라야지. 애초에 생각 없이 가르침을 주실 분이 아니니까.”
“끄응. 그런가?”
제갈탄이 보기에 교관은 대체로 허술한 사람이다.
교관을 구성하는 것은 귀찮음 구 할에, 배고픔 구 푼. 의지는 일 푼이 될까 말까 해 보인다.
실력은 신비로울 정도지만, 연무장에서 보내는 시간 대부분은 코를 골며 자는 사람이 아닌가?
딱 봐도 생각 없이 가르침을 내리는 모습이었지만, 남궁윤호의 믿음은 단단해 보였다.
‘이 녀석이 믿는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러던 차였다.
곁에서 백리설이 미간에 주름을 잡고는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왜 그래요, 언니?”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 기시감이 들었던 것 같아서 말이야.”
기시감?
의아했지만 제갈탄은 곧 관심을 거두었다.
당장 저 입담 나쁜 여자와 드잡이질 하는 것보다 이 침울해진 친구를 다독이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딱히 나설 생각은 없었는데….’
스릉.
검을 뽑은 제갈탄이 말했다.
“네가 뜻을 정했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내가 익힌 환상검법은 정반대의 검예야. 단순하지만 안정적인 신무검법과 달리, 안정감은 없지만 화려하고 현란하지. 정반대의 검법을 상대하면 수련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떤가?”
“나야 좋지. 고맙다.”
두 사람이 마주 섰다.
끈끈한 신뢰의 시선을 나눈 두 사람이 뒤이어 부딪쳤다.
“언니. 우리도 시작하죠.”
챙. 채챙!
연무장에 격정적인 쇳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
수일 후.
어스름이 깔릴 때 즈음, 방으로 돌아온 초운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으윽. 또 헛고생이네.”
터덜터덜 들어와 물끄러미 벽을 노려보았다.
여매홍의 반대로 고치지 않고 남겨둔 벽 너머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도 안 끝났나?”
듣자 하니 최근 독안신검이 시작한 변화의 바람에 야근이 잦아졌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어쩌면 오늘도 새로운 교육방식을 떠올리느라 야근을 하고 있을지도.
“다들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야?”
쯧쯧쯧.
혀를 차 애도하고는 딱 걸음을 멈췄다.
이제 이불의 안락함에 마구 패배해줄 시간이었다.
“잠이란 것이 참 중독성이 있단 말이지.”
지금까지 어떻게 잠도 안 자고 살아왔을까?
이게 다 망천회 때문이다.
다시금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픽 웃었다.
“…다 지나간 일인 것을.”
혹은 오지 않거나.
지금은 지금의 쾌락을 즐기면 될 뿐이다.
꾸물꾸물.
허물을 벗듯 동천관 정복을 벗고 침상에 기어들어 가던 참이었다.
“응?”
예리한 청각이 뭔가를 잡아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지만, 정체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벌써 수일 째 들려오던 것이었으니까. 다만 오늘은 차이가 있었다.
쇳소리의 울림 정도가 다르다.
귓바퀴를 쫑긋거리던 초운휘가 픽 웃었다.
“이제야 감을 잡았나?”
역시 손이 많이 간다니까.
중얼거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막 따끈따끈 데워지기 시작한 침상이 무척 매력적이었지만.
“귀찮아도 가끔은 교관 노릇을 해야겠지? 월급 값은 해야 할 테니까 말야.”
투웅.
창틀 위로 발끝을 올린다 싶더니, 어느새, 초운휘의 신형이 십여 장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둠이 순식간에 신형을 삼켰다.
***
챙! 채챙!
“허억! 허억!”
주르륵 밀려난 제갈탄이 휘청거렸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체력은 물론이고, 아끼던 내공마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
하지만 제갈탄은 다시 몸을 세웠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검을 세우자 어둠 너머에 여전히 굳건하게 선 남궁윤호의 모습이 보였다.
“하. 하. 기가 막히군. 정말.”
변화는 갑자기 시작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상검법을 피하기 급급하던 남궁윤호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달라졌다.
어제는 환상검법을 조금씩 막아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기도까지 변했다.
‘단시간에 이런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한가?’
결국, 제갈탄도 숨겨 왔던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 청염진결.
교관이 환상검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알려준 기공술이었다.
이것이라면 검의 잔향을 더욱 강하게, 화려하게 남길 수 있다.
수상한 교관이 알려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리감을 현혹시키는 혼상미리진.
환상을 만들어내는 만변환상진.
기척과 모습을 지우는 은잠진법까지.
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검의 길이를 속이고, 검의 환상을 만들었으며, 검의 궤적을 숨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라면 충분해.’
세상에 누가 검이 멋대로 길어지고, 수없이 분화하는 환상 속에서 실체를 잡아낼 수 있겠는가?
“세상에! 검이 사라졌어요!”
“저게…. 환상검법?”
지켜보던 모용소혜와 백리설조차 기함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짜우!
간단한 횡베기가 환상을 베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