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14
제96장 화산파로 가는 길 위에서 (6)
“지금 학관의 일에 개입을 하겠다는 건가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녀석의 마음이 꺾인 이유다. 뭐, 진주언가의 녀석은 알고 있어. 금천관에 갔다니 나름 세가에서 손을 쓸 테지.”
“학관에서 일어난 일은 성벽을 넘지 못한다고 했어요.”
“그건 성벽을 넘을 수 없는 약자들의 말이고.”
팽도준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우리 같은 십대세가의 인문들에게 세상의 잣대는 통용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신무학관의 존재 자체가 불만이었다.
‘강호 영웅들의 요람이라니.’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신무학관이란 귀찮게 후원을 요구하며 떼를 쓰는 존재에 불과했다.
강호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는 둥,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황금을 강탈하는 존재.
‘거지새끼들이나 다름이 없지.’
거렁뱅이 같은 놈들이 무림맹의 이름 아래 뭐라도 된 것처럼 구는 것조차 보기 싫다.
이런 이유로 능력이 되면서도 좀처럼 입관을 꺼리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악서문 또한, 같은 입장이 아니던가.
“솔직히 말해 신무학관이 뭐 대단한 곳이라고.”
곁에 있던 악서문이 말을 받는다.
“무공을 가르쳐줄 스승도, 자랑할 만한 비급도 없는 이들이나 가는 곳이 아니던가.”
“모든 것이 세가 안에 있는데 굳이 그런 곳에 가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하하. 그래도 없이 사는 이들에게는 요람 같은 곳 아니겠나.”
예림과 도곡마저 변죽을 마치자, 팽도준이 피식 웃고는, 다시 턱을 치켜든다.
“자. 내가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물을 테니 대답을 해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
“아무래도 진솔한 대화를 위해 술이 필요할 것 같군.”
툭. 술병을 꺼내 놓은 팽도준이 옆자리를 가리켰다.
“술을 따라주겠나?”
철저히 사람이 아닌, 꽃병을 대하는 태도다. 진설향의 눈에 한기가 흘렀다.
“지금 무례가 도를 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건가요?”
“더럽게 비싸게 구는군. 본가가 주는 후원금이나 먹고사는 주제에.”
스스로 잔을 채운 팽도준이 술잔을 돌리며 의자에 몸을 기울인다.
“강압적인 대화를 바라지는 않는데.”
왈칵!
그가 일으킨 기세에 서옥랑이 하얗게 질린 순간, 진설향이 빠르게 그녀를 보듬어 뒤에 감추며 기세를 일으켰다.
표설천봉공의 기세가 일어나자, 서옥랑을 압박하던 기운이 한순간에 흩어졌다.
“허.”
팽도준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남루한 소저는 실력이 좋군.”
“어디서 좋은 비급이라도 주워 먹은 모양이죠.”
“번거롭게 후원한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말과 달리 기세가 한층 더 강해진다. 자존심이라도 상한 건지.
‘개 같은 돼지 새끼들.’
도를 더해가는 압박감에 진설향이 매섭게 쏘아붙이려 할 때였다.
‘퇴로가 막혔어.’
어느새 호위들이 정확히 빠져나갈 구석을 막아선 것을 깨달았다.
손을 쓰려했지만, 자꾸만 복마신니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 정파의 협사란 함부로 검을 뽑지 않는 법이란다.
– 두 번 생각하고, 세 번 숙고하거라.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다.
두 번째로 ‘참을 인’ 자를 마음에 새길 때였다.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며, 검을 뽑을 용기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창을 든 사내가 고개를 젓는다.
“최근 일어난 사건들에서 꽤나 활약했다기에 기대했는데, 실력을 볼 기회는 없을 것 같군.”
“망천회의 습격을 몇 번이나 버텨냈다 들었는데, 소문이 곡해된 모양이야.”
“하긴 출신도 불분명한 자들이 신무검법 따위를 익혀 가능한 일인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들은 완벽히 승자가 된 듯 고압적인 눈빛으로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내 귀한 시간을 이만큼 들였으면 대답을 들을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북팽가의 분이라면 그만한 예의가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이 모습을 누가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후후. 어른이라도 기다리는 건가? 어미 오리를 불러대는 새끼 오리처럼?”
“…….”
“설령 교관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온다고 하더라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봐도 못 본 척하게 되겠지.”
그가 단언하듯 말했다.
“나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거든.”
실로 오만한 반응에, 잊고 있던 후기지수들이라는 놈들에 대해 다시 깨달았다.
명문가의 기대주라고 하는 것은 하나같이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자들인 것을.
또한,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불합리를 합리라 주장할 수 있는 권력의 소유자들인 것을 말이다.
질끈.
굴욕감에 입술을 깨물며 마지막 ‘참을 인’ 자를 새길 때였다.
“하아아. 세상 말세로군. 누가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어?”
청량한 목소리와 함께 다가온 코끝을 간질거리는 향기.
묘하게 빠져드는 향기의 주인은.
“와아. 새파랗게 어린 새끼들이네.”
“초 교관님!”
진설향은 반색하며 활짝 웃었다.
***
번화가를 들쑤시다가 색시의 주머니 사정에 생각이 미쳐, 허름한 시장 뒷골목을 뒤졌더니 정답이었다.
하지만, 하하호호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와는 영 다른 상황이다.
‘정파의 어린 노무 쉐끼들은 변하지를 않는군.’
마지막 계단을 밟자,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 교관님.”
발랑 까진 주제에 겁은 많은 서옥랑의 눈가에 번진 물기를 보며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두 사람의 손에 들린 싸구려 장신구가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하리라.
‘진설향이 곤궁하니, 그녀를 배려해서 이런 곳까지 흘러들어왔구나.’
친구로서 마땅한 배려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번화가에 비해 보는 눈이 적고, 동시에 이런 무뢰배들과 엮일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자유시간이라도 낮술을 마실 정도로 흐트러져서야 쓰나.”
두 사람과 함께 돌아가려는데,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누구요?”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모르겠나?”
“내가 주는 월급을 받아먹고 사는 인간이로군.”
“얼마나 잘사는 집 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월급은 신무학관 총관주가 준다는 사실만 알아둬.”
“총관주가 받는 월급이 본가에서 보낸 후원금에서 나간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넌 네 주머니의 은자가 어느 채굴장에서 나왔는지 아냐?”
할 말이 없어진 그가 입을 다물었다.
“가자. 친구들을 사귀어도 제대로 된 놈들을 사귀어야지. 낮술 푸며 개소리하는 놈들 사귀어봐야 인생에 도움 안 된다.”
“아무래도 우리를 향해 하는 말 같은데.”
들은 척도 안 하고 두 사람에게 검지를 세워 보였다.
“남이 하는 말 훔쳐 듣는 새끼들도 마찬가지야.”
“무례한 작자로군.”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가운데, 이때다 싶어 따뜻한 연상의 교관을 연기했다.
“돌아가자. 따뜻한 동료의 곁으로.”
품에 안길 듯 달라붙은 서옥랑이 빠르게 물러났다.
“당신 누구야. 초 교관님 아니지?”
“…….”
“초 교관님이 그런 자상한 말을 할 리 없잖아.”
‘서옥랑에게 나는 뭘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 귀찮고 요란한 녀석이 다시 기세를 되찾았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 그래. 난 열두 번째 초운휘다.”
“휴우. 그럼 그렇지. 반가워요. 열두 번째 초운휘 교관님.”
‘됐다.’
진설향의 표정도 풀린다.
보조개가 움찔거리는 것이 이런 자리만 아니었더라면 자지러지게 웃었을 텐데.
‘색시의 웃음은 천하제일.’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려 했지만, 정파의 어린놈들은 끈질겼다.
“거기 멈추시오.”
어린놈이 멈추라고 멈출 이유가 있을까?
“멈춰라. 공자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이다.”
툭.
가슴을 막는 도집에 초운휘의 입술이 물결을 그렸다.
“씁.”
주먹이 나갈 뻔했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색시 앞에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허. 참.”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찌할까 고민하고 있자니, 팽도준이 턱을 괴며 심드렁하게 말을 걸어온다.
“넌 그냥 돌아가라. 아직 나는 저 둘에게 볼일이 있거든.”
“난 지금 길 잃은 관도들을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줘야 하는 교관의 몸이야.”
“어지간히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퍽!
가슴을 막고 있던 도집이 한층 거세게 명치를 두들겼다.
“뭐냐, 이건?”
“물러나라.”
“치워라. 좋은 말 할 때.”
“물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 난 치우라고 했지.”
“무엄하군. 공자님. 이 자를 살짝 손봐줘도 되겠습니까?”
하핫. 어이가 없다는 듯 팽도준이 손을 젓는다.
“꽉 막힌 놈이다. 말랑말랑하게 만들어둬.”
“너는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그를 물끄러미 보던, 초운휘가 드디어!를 외치며 치솟는 입꼬리를 감추고는 말을 이었다.
“폭력적인 방법은 좋아하지 않는데 먼저 공격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또박. 또박. 옆에 잘 들리라는 듯이!
“너희가 먼저 시작했다?”
도집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순간, 벼락같이 주먹을 날렸다.
뻐억!
목이 부러질 듯 젖혀진 호위가 둥실 떠올라, 너무나도 예쁘게 때리기 좋은 곳까지 복부가 위치하는 터라, 마다하지 않고 철권을 박아 넣었다.
뻐-억!
쿠당탕! 쾅!
탁자를 세 개나 부수고 밀려난 놈이 기둥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까무룩 흰자를 보였다.
“…….”
“…….”
좌중이 고요해졌다.
입을 쩍 벌린 어린놈의 자식들은 갑자기 호위를 때려눕힐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모양.
그러든 말든 알 바 아니다.
“하아. 결국 폭력을 행사하여야 하는가?”
등 뒤에 기함하는 두 사람에게 똑똑히 들리도록 말을 했지만, 잘 됐다 싶었다.
‘정파놈들은 예전부터 혓바닥이 너무 길단 말이지.’
왜 좋은 주먹 두고, 주둥이로 싸울까?
차차차창!
다행히 마음의 외침을 들었는지 나머지 호위들이 일제히 도를 뽑아 들었다.
“제압하라!”
가장 선두에 선 도객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시작부터 오판했다.
‘제압하라고? 어디 식후 해장거리도 안될 쉐끼가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모양이군.’
이런 감사할 데가.
예쁜 시선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것을 아는지라, 초운휘는 조금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담당교관이 되면 가르칠 일이 생기겠지. 잘 봐라. 학관에서는 이런 것을 가르친단다.”
우선 첫 번째 가르침.
“정파 새끼들이 있는 곳에서는 꼭 이 층 객잔에서 사람이 떨어진단다.”
손목을 베어오는 도신을 손바닥을 뒤집어 밀어내며, 반전, 도신을 붙잡고 확 잡아당겼다.
“큭!”
도를 놓지 않고 끌려오는 녀석의 턱주가리에 무릎 한방.
꾸드득.
“케헥!”
이빨이 네 개나 튀어 오르는 순간, 한 번 더 턱을 올려 치고는, 복부를 걷어찬다.
퍽퍽.
때리기만 하면 정이 없으니, 고꾸라지는 놈의 뒷덜미를 잡고 천지를 반전시켜 주자.
콰드득.
쿵!
머리부터 땅에 꽂힌 호위무사의 두 다리가 허공을 향해 부르르 떨다 툭 떨어졌다.
“양생!”
양생이 이 자의 이름인가?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앞으로 일년내내 죽만 먹고 지낼 놈을 또 만날 일이 있겠어?’
조금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으니, 떨어진 양생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 난간 밖으로 집어 던졌다.
쾅!
“커흐흑!”
혼절한 와중에도 비명이 들리는 것을 보니, 떨어지는 와중에 뾰족한 곳에 찍힌 모양이다.
“애도를. 객잔은 조용히 술 처먹는 곳이지, 이 층에서 떨어지라고 만든 곳이 아님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개자식!”
일제히 달려오는 이들 중 가장 쾌속한 신법의 소유자가 복부에 한칼을 먹이려 일도양단의 기세로 달려들었다.
“어서 오고.”
살짝 옆으로 움직여 도를 옆구리 사이로 흘려내며, 팔꿈치 사이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우드득.
단단히 잡힌 도신에 달려오는 충격파를 이기지 못한 도객의 손목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뻑!
뒤따라 도착한 안면 위에 주먹을 가져다 대자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기게 변했다.
퍽퍽!
두 번 더 주먹질을 꽂자, 아이가 뭔가 만들다 내팽개친 찰흙처럼 변했다.
“이 꽉 깨물어. 혀 깨문다. 아, 미안. 좀 일찍 말할걸.”
주르륵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살짝 애도. 미련이 남은 못생긴 얼굴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뒤이어 치닫는 동료를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야진!”
팽가의 사람이니 팽야진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성이 야고, 이름이 진일까?
‘야!’
동료를 붙잡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은 없었다.
오장육부가 진탕된 채 날아간 도객을 동료들이 받아낸 순간.
펑펑펑펑!
그를 던지기 전에 슬쩍 담아둔 경력이 폭발하며 동료들을 휩쓸었으니까.
“대답해줄 사람이 없어졌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딱히 듣고 싶지도 않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