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83
제111장 되찾은 일상 (4)
“이야. 이게 다 뭐야? 완전 동네 잔칫날이네.”
“움머? 술주전자 때깔이 좋네. 상아 아닌가요?”
“히야! 금으로 만든 술잔은 처음 받아보네.”
쉴 새 없이 주둥이를 놀리며, 슬쩍 금잔을 소매에 넣고, 술 주전자를 통째로 입으로 가져가 목울대를 꿀렁거리는 양은 천박하기 짝이 없었다.
꿈틀.
인내심의 한계까지 몰려 있던 남궁세가 고수들 사이에 불만이 극에 달했다.
[저런. 어찌 저런 경박한 자가 학관을 영도하는 교관이란 말인가.] [태상가주께서는 왜 저런 자를 굳이 손수 맞으시는 거지? 격 떨어지게.] [쉿. 조용히 하게. 이쪽을 노려보시네.]귓가에 웽웽거리는 가솔들의 속삭임이 아니더라도, 한량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남궁찬도 적잖이 동요했다.
술잔은 그렇다 쳐도, 오리 다리를 북 뜯어 우물거리다, 꽤 마음에 들었는지, 입을 닦으라고 둔 비단 수건에 둘둘 말아 품에 넣는 꼴은 ‘이 인간이 그때 그 무시무시한 고수가 맞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으니까.
“끄억.”
오리 다리를 통째로 목구멍으로 밀어 넣다 뼈만 뱉고 하는 소리가 저거다.
‘…추잡하군.’
하지만, 그는 꾹 참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석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가솔들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쪼르르 자리를 비우고, 남아있는 것은 도망치지 못한 몇 명뿐이었다.
‘…….’
역정을 낼까도 생각해봤지만, 반시진 내내 처먹기만 하는 먹깨비에 질렸으니 어쩔 수 없다 싶었다.
“하하.”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귀처럼 먹어대는 모습에도 벙긋벙긋 웃는 남궁윤호와.
“…….”
“…….”
무당파에서 그의 진면목을 확인했던 창천신비들 뿐.
다행히 남궁무산과 남궁용호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이제 좀 허기가 가시네요.”
반시진 내내 돼지 한 마리와 오리 세 마리, 소 반 마리와 술 다섯 동이를 먹어 치운 놈이 한다는 말이 고작 저거냐 싶었다.
“…….”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죠. 또 갈 곳이 있거든요.”
“그런가?”
“에. 일단 가정방문의 취지에 맞게 댁 아드님, 혹은 손자분에 대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짝! 박수를 치고 목소리를 깔더니, 초운휘가 말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크고 있습니다.”
“…그게 다인가?”
입술을 덜덜 떠는 남궁무산의 질문에 초운휘가 대답했다.
“얘한테 더 중요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으윽.”
뒷골을 잡는 자식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은 아마 하나일 것이다.
“반시진 내내 밥만 처먹고 한다는 말이, 고작 그거냐고!”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데 도가 튼 인물이구나.’
내심 속을 삭이며, 남궁찬이 끼어들었다.
“윤호는 어디까지 성장했나?”
“그럭저럭 앞가림을 할 만한 수준 아닐까요?”
“자세히 말해보게. 못 보던 사이 갑자기 훤칠해져서 궁금증이 도져 이 늙은이 못 참겠네.”
“에… 귀찮은데.”
남궁무산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눈가를 찌푸리고, 몇 남지 않은 가솔들은 ‘저놈이 태상가주께서 말씀하시는데 감히!’라며 일제히 눈을 째렸다.
이들을 손을 들어 제지하며 남궁찬은 대답을 기다렸다.
“아마 어지간한 일이 있어도 갈 길을 헤매거나 하지 않을 겁니다.”
“헤매지 않다니 무슨 뜻인가?”
“나아갈 길을 깨우쳤다는 뜻이죠, 뭘.”
대수롭지 않은 대답이었지만, 남궁찬의 눈이 확 번뜩였다.
‘역시 맞다. 윤호는 검에 의지를 담는 단계에 들어섰구나.’
놀라운 일이었다.
단순히 초식을 능숙하게 펼치는 것을 넘어, 검에 의지를 불어넣는 단계는 진짜 초강자가 되기 위한 입문단계나 다름이 없으니까.
“전 아직 부족합니다. 교관님께서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아냐, 너 다 컸어.”
“막 마음이 흔들리고 그럽니다.”
“전혀 아니네. 거짓말하지 마라, 인마.”
당장 일어날 듯 엉덩이를 들썩이던 인간이 초롱초롱한 손자의 눈빛에, 햇볕에 격중당한 귀신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노부의 말은 개코로도 듣지 않으나, 윤호의 말에는 반응을 보이는구나. 진짜 스승이로다.’
남궁찬이 질문을 이었다.
“강호는 풍파가 심하니, 언제 뜻을 잃고 흔들릴까 걱정이네.”
“폭풍우가 오면 멈춰서 비를 피하고, 바람이 불면 엔간히 뚫고 갈 심력은 이미 가졌습니다.”
“금철 같은 의지에 유연함마저 갖추었다는 말인가? 정말인가?”
“금철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보시는 대롭니다. 야, 금철! 안 그러냐?”
“하하.”
대화를 들으며 남궁윤호의 기운을 살피니, 과연, 단단함 속에 여유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윤호가 과거의 어둠을 모두 털어버렸구나. 나아가 스스로 마음을 열고 있다.’
저런 평정심이 어찌 범인의 것이라 할 수 있으랴.
감탄하며 그가 재차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 검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 보는가?”
“갑자기 검이 왜 나옵니까?”
“남궁윤호에게 검이 나아갈 길을 알려주기 바라네.”
“뭐, 속이 빤히 보이지만, 대답해주죠. 검은 얇게 펴 만든 철덩이 아닙니까? 주인이 휘두르는 대로 베고, 찌를 뿐이지요.”
“진짜 고수는 검과 자신이 다르지 않네. 신검합일의 경지를 알지? 검과 하나가 되는 경지라네.”
“신검합일이 검과 하나가 되는 경지라면, 사람이 검이 되는 겁니까? 아니면 검이 사람이 되는 겁니까?”
“사람이 검이 되는 것이 아닌가? 검이 어찌 사람이 될 수 있겠나?”
“검이 사람이 될 수 없는데, 사람은 어찌 검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윤호야. 검의 날카로움에 반해 버리더라도, 절대 검과 너를 혼동하지 마라. 잘못하면 무공에 휘둘린다. 수단에 휘둘리면 말짱 황이야.”
“명심하겠습니다.”
“하아…. 검은 그저 수단일 따름이란 뜻인가?”
이어지는 대화에 남궁찬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특히 그가 말하는 바가, 자신의 이적, 만검굴종(萬劍屈從)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내 스스로 검들의 제왕이 되고자 했거늘, 애초에 내가 검이 아니거늘, 어찌 사람들 사이가 아니라, 검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가.’
이어지는 대화에 남궁찬은 즐거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네에게 검은 무엇인가?”
“심검(心劍)이란, 마음으로 벼린 검인가? 아니면 검이 마음을 먹고 벼려진 것인가?”
“진정한 무극의 경지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남궁찬은 쉬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막힘 없이 오고 가는 문답에 남궁무산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왜 저러시는 거지?’
알쏭달쏭한 대화에 남궁용호도 피곤하긴 매한가지다.
‘할아버지께서는 피곤하시게도.’
다른 가솔들 또한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태상가주께서는 왜 검괴에게 선문답을 던지시는 거지?] [나이에 비해 출중한 것은 인정하지만, 까마득한 후배가 아닌가?]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군.]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대화를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태상가주께서 저처럼 들뜬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이로군.’
장난감을 손에든 아이 같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궁윤호만이 오가는 대화의 속내를 깨닫고 눈을 감은 채 되뇌고 있었다.
“…검과 의지를 따로 둔다라.”
이곳의 사람들은 모르지만, 지금의 대화는 막 의지를 세우기 시작한 남궁윤호에게 더없는 기연이었다. 만약 오늘의 대화에서 얻은 바를 완벽히 본인의 것으로 녹여낸다면, 남궁세가에는 또 다른 천하고수가 탄생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 기색을 눈치챈 이들이 있었다.
바로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창천신비들이었다.
직접 검괴의 무공을 몸으로 겪은 그들은, 오랫동안 정체되었던 경지에서 나아갈 돌파구를 찾아냈으며, 나아가 가장 빠르게 깨달음을 녹이기 시작한 남궁윤호의 기색을 눈치챘다.
짧지만 알쏭달쏭한 대화는 한식경이나 이어졌다.
“너무 머리에 든 것이 많아도 짐이 되는 법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축객령에 아쉬움을 느낀 남궁찬이 뭔가 갈증을 느끼며 한마디를 하려 할 때였다.
[욕심이 과하군요.]“…알겠네.”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목소리에, 결국 남궁찬은 대화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남궁세가에서 하늘 가장 높은 곳까지 비상할 존재가 나오리라 생각하는가?”
새라면 남궁윤호. 하늘 높은 곳은 바로 천하제일(天下第一)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자 때문에 천하제일이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하늘에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만으로 원이 없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그건 새에게 물어봐야죠.”
원하지도 않는데, 굳이 날라고 종용해봐야 쓸모없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 괜히 새를 귀찮게 만들어 가지를 날아오르게 하지 마시오.
강렬한 경고이기도 했다.
“허허허!”
가슴을 찌르는 경고보다, 그에 담긴 걱정을 읽은 남궁찬은 밝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답했다.
“노부가 새를 잊었군.”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화가 아닌가.
***
골몰하는 남궁윤호와 작별한 초운휘는 빵빵하게 튀어나온 배를 꾹꾹 찌르며 투덜댔다.
“영감. 욕심이 많기도 하지.”
솔직히 의도 정도야 간단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어울려 준 것은 바로 남궁윤호의 성장을 위해서였다.
“녀석도 슬슬 독립할 때가 되었지.”
언제까지고 자신이 뒷바라지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망천회의 위협이 거의 무산되고, 일사도만 남게 된 상황.
마지막 사도를 처단하고 초운휘는 강호를 떠나 살 생각이었다.
“단란한 가족을 꾸며야지. 아들딸 구분 말고 딱 열만 낳을까?”
뭐, 사도에게 지게 되면 끝장이겠지만, 한번 세상을 멸망시킨 그는 자신이 있었다.
“뭐, 내가 패한다고 해도, 일사도만 살아남으면 세상은 끝이야. 지르고 보는 거지, 뭐.”
사마 아재도 말했지 않은가?
귀신이 되어 따라갈 테니,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살라고 말이다.
따끔한 교훈을 잃지 않은 초운휘는 색시에 대한 위협이 없어진 강호에 미련이 없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내 새끼들은 잘 키워야지. 지금이라도 비행 훈련을 시켜둬야, 둥지 밖으로 날아가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
무엇보다 자신이 키운 관도들이 어딘가에서 맞고 다니는 것은 사절이다.
“다들 날갯짓을 시작해라. 참, 다음은 백리세가인가?”
하나둘 떠나보낼 날을 생각하며 초운휘가 걸음을 옮겼다.
***
무한장에는 백리설이 하얀 궁장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는 잔뜩 겁을 먹은 세가의 사람들이 시립해 있었는데, 어딘가에 맞았는지 눈에 멍이 든 사람도 있었다.
“…….”
시선을 맞추자 자연히 눈을 까는 와중에는, 무한장의 장주 백룡검객 백리정순도 있었는데, 그의 눈가도 시퍼렜다.
“어서 오세요! 환영해요! 우리의 보금자리에!”
“보금자리고 별자리고, 너 인마.”
슬쩍 백리설에 고개를 대고, 손바닥을 세워 귀에 소곤거렸다.
“모용소혜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겠다. 폭력이 물들어. 영 못된 사람이 되고 말거다.”
“헤헤. 소혜가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좋아하기는, 주먹부터 날리겠지. 독해졌다니까, 썩을 놈.”
투덜대고 있자니, 짝짝 박수를 친 백리설의 신호에, 찔끔한 세가의 사람들이 일제히 절도 있는 박수를 치며 허리를 접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 나리!”
‘…….’
이걸 어디서부터 딴죽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데, 백리설이 팔을 꽉 안더니 잡아끌었다.
“어서 들어가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놨으니까요.”
“…배부른데.”
“아직 공간이 있는데요?”
옆구리를 꾹꾹 눌러 공간을 확인하는 백리설의 모습은, 시골에 갈 때마다 손자 손녀의 배가 산처럼 부풀 때까지 먹이를 밀어 넣는 할머니 같았다.
‘제길. 오늘은 죽자.’
슬쩍 허리춤을 묶은 끈을 느슨히 하며, 비틀비틀 백리설의 손에 따라 안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