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1
제16장 의외의 가정방문 (5)
“뭘 어떻게 해?”
“차라리 적당한 함정을 만들어 놈들을 유인하는 겁니다.”
“아예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리자?”
“세상에서 증발 당하는 쪽이, 시체를 발견되는 것보다는 소란을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는데….”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
‘교관이 실종되어도 문제는 될 것 같거든.’
최근에 작은 일에도 눈에 불을 켜는 정파 무림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다행히 얼마 전에 들은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때?”
“다른 방법이 있으십니까?”
“율아. 너 은월비적(隱月飛賊)이라고 들어봤어?”
조금의 지체도 없이 독고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파의 도둑 아닙니까? 상당히 신출귀몰한 인물인데다, 일신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만, 갑자기 은월비적은 왜….”
“녀석이 이 근방에 있는 모양이야. 녀석을 패로 써먹으면 어때?”
“은월비적을 내세워 뒤에서 공작을 한다면…. 좋은 방법이군요. 정확한 정보입니까?”
“하오문에서 들었어.”
방금 전까지 냉정하게 계산을 이어가던 독고율의 얼굴이 서운함에 무너져 내렸다.
“강호 안 해 먹는다면서요. 그런데 하오문은 혼자 해 드신 겁니까? 강호정복의 시작을 혼자 해 드신 거냐고요. 너무 합니다. 서운합니다. 주군.”
“아니라니까.”
뭘 자꾸 해 먹어.
누가 보면 정파 무림이 동네 맛집이라도 된 줄 알겠다.
한참의 설명 끝에 투덜거리던 독고율은 결론을 도출해냈다.
“난데없이 증발하는 것보다, 사파의 도적에게 당해 은퇴 당하는 쪽이 뒷말이 없겠군요.”
“응. 더 치욕적이기도 할 거야.”
개도 자기 집에서는 한 수 먹어주는 법이다.
개보다 크고 똑똑한 고수들은 너댓 배는 더 넘게 먹어준다.
그런데 앞마당에서 고수 여럿이 일개 도적에게 당했다?
이건 사고가 터지면 쪽이 팔릴 일이다. 무림맹이나 신무학관에서도 오히려 사건을 덮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다만. 도적의 실력이 다소 손색이 있긴 하지만.”
“그건 걱정 마.”
독고율이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복안입니다. 현재 배신자 색출에 혈안인 정파무림입니다. 사파의 도적에 관심을 둘 여력도 없을 겁니다.”
“그렇지?”
“거기에 한 가지 더 이득이 있습니다.”
역시 사마율이라고나 할까?
제안한 자신조차 떠올리지 못한 장점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언제나 인력난이 허덕이는 은천관입니다. 그곳에 또다시 결원이 생긴다면?”
“흐흐흐흐.”
“후후후후.”
두 사람이 음침하게 마주 보며 웃었다.
정파의 요람, 동천관의 한적한 공터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
남궁윤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몇 번이고 호흡을 다스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눈물이 툭 터질 것 같았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숙부가 들렀다.
그리고는 한껏 독설을 쏟아 내었다.
“네가 진짜 재능이 있었으면 진작에 드러났을 것이다.”
“작은 성취를 이루니 이제 가문의 어른마저 우스워 보이더냐.”
“가문의 지원 없이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난은 조금씩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환호 대신 누군가의 손가락질이 익숙한 자신이니까.
언제나 그렇듯 찢어지는 마음을 기우고 참아가면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좋다. 네가 이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나도 참지 않아.”
“계속해서 가문과 네 동생의 앞길을 막는다면.”
“너 또한 응당 대가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남궁일준은 집요하게 저주했다.
같은 가족인가 싶을 정도로.
더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왜…. 도대체 왜.”
이제야 간신히 길을 발견했는데.
작은 재능이나마 꽃을 피웠는데.
어째서 세상은 자신에게 이런 가혹함만 내려주는 것일까?
동생에게 내 것을 내어주는 것이 아깝다며 투정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차이를 드러낸 재능은 동생과 달리 천대받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또 그것에 익숙해졌다.
가장 좋은 검이 있으면 동생에게 넘기고.
몸에 좋은 영약이 생기면 동생에게 양보했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가장 먼저 동생의 입에 넣어주며.
귀한 것은 모두 동생이 먼저 가지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에게 떨어진 것은 남은 부스러기. 갈증을 채워주기는 턱없이 부족한 것들이었지만 그것도 당연하다 여겼다.
‘난 재능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 거야.
– 몸이 큰 형제의 옷은 늦게 자란 아이가 물려받는 거지.
–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어. 당연한 일이니까.
– 난 형이잖아? 동생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해.
다만 한 가지 믿음은 있었다.
‘언젠가. 나도 성장한다면 똑같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재능이 약해서 잊혀졌으니, 재능만 드러내면 가족은 다시 따뜻하게 반겨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오랜만에 본 숙부는 성장을 축하해주기는커녕, 계속해서 마음을 흔들어댄다.
‘난 그저 잊혀진 거였어.’
양보한 것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양보 이외의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난 동생처럼 될 수 없어.’
서운함과 야속함이 가슴 속에서 응어리가 되어 휘몰아쳤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초운휘 교관이라고 했나?”
남궁일준이 자신의 교관을 향해 벼려 내는 날카로운 적의(敵意)다.
가문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가장 귀중한 것을 쥐여준 이마저 증오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자신을 홀대하는 것을 넘어, 하나 남은 빛나는 보물마저 강탈하려고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적의는 주변 사람마저 오염시킨다.
오랜 믿음이 깨지고, 절망의 선택만이 남은 가운데 남궁윤호는 되뇌어 보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린아이처럼 꿈만 좇으며 자라난 탓에, 현실의 냉혹함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보검보다, 독설보다 예리한 어른의 악의(惡意)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조금씩 새카매져 갔다.
***
“괜찮나?”
고개를 돌아보니 제갈탄이 곁에 서 있었다.
어찌나 정신이 팔려 있었는지 접근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아. 괜찮아. 아마도.”
“안색이 좋지 않아. 오늘은 이만 돌아가 쉬는 것이 어때?”
이마에 따뜻한 온기가 얹어지자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 그 탓인지, 마음의 고민이 몸의 기운을 갉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나도 조금 지치는군.”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상담을 하면 어때? 교관이라면 귀찮아하더라도 들어주긴 할 거야.”
교관님이라.
분명 그럴 것이다.
쓴 약을 삼킨 아이처럼 질색을 하면서도 자상하게 들어주겠지.
하지만 상담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란 말이야.’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헌신해온 교관이다.
그에 자신을 마뜩잖게 여기는 가문이 교관을 벼르고 있다고 전해야 할까?
혹여 보복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당신이 위험할지 모르지만, 이곳에 남아 계속 그에게 배우고 싶다고 고집을 부릴까?
‘전할 수 없어.’
곁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남궁윤호를 보며 제갈탄은 인상을 썼다.
‘쯧.’
친구를 잘 아는 제갈탄은 남궁윤호의 속내 정도야 간파하고 있었다.
‘남천일검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치졸한 짓을 할 줄이야.’
조금 전 남궁일준이 쏟아 내는 독설을 직접 들은 그였다.
그는 숨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들으라는 듯했지.’
그것은 경고였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각오하라는 살벌한 경고.
지친 남궁윤호가 긴 한숨을 내뱉으며 검을 갈무리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산책을 다녀오지.”
“윤호. 차라리 자리를 피하는 것이 어때? 네가 없다면 네 숙부도 이곳을 더는 찾지 않을 거야.”
“숙부의 성격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눈을 돌릴 거야. 내 일은 내가 오롯이 감당하는 것이 맞아.”
“이런 답답한 친구 같으니라고.”
“그럼.”
휘청거리며 연무장을 떠나는 남궁윤호를 바라보는 제갈탄의 눈이 안쓰러움으로 물들었다.
“후우. 내 경우는 양반이군.”
나날이 표정이 사라져가는 친우의 모습에 근심하고 있자니, 곁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모없는 걱정이네요. 모든 것은 교관님을 믿으면 될 것을.”
“백리 소저. 남천일검은 남궁세가의 실세임과 동시에 강호의 거물입니다. 아무리 교관님이라도 쉽게 상대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글쎄요.”
타당한 말이었지만, 백리설의 무표정 위에 더해진 것은 조소였다.
“그것은 교관님을 너무 낮게 보는 처사가 아닐까요?”
“저는 오히려 백리 소저의 믿음의 근거가 무엇일지 궁금하군요.”
“후후.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우리 두 사람만의 비밀이니까요.”
“혼자만의 망상을 착각하는 것은 아니고요?”
“어머. 은천관의 낙제생 주제에, 이제 제법 짖어댈 줄도 아는군요. 하지만, 눈과 귀는 먼 것일까요?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고, 말을 해도 들어 먹지 못하는 것 같네요.”
“백리 소저. 그쪽은 정말….”
“아와와와와!”
서늘하게 노려보는 두 사람의 사이로 모용소혜가 끼어들었다.
“지금 싸울 때가 아니에요.”
“흥!”
“쳇!”
소매를 떨치며 물러서는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렸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어.”
“수련을 할 기분이 아니네요.”
냉랭하게 돌아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모용소혜는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도통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갈 오라버니는 [걱정], [불안], [계략], [통찰] 중이야.’
돌아가는 중에도 남궁 오라버니를 걱정하며, 끊임없이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언니가 말한 것이 틀린 것도 아니야.’
백리설의 주변에 둥실거리는 감정은 [선망], [연심], [맹목], [경외]의 감정이다.
특히 [맹목]과 [경외]의 감정은 놀라웠다.
맹목은 눈이 멀 정도로 상대를 신뢰하는 감정.
그리고, 경외란 두려움과 경건한 믿음이 공존하는 감정이다.
어지간히 신실한 도사들이나 불자들에게도 보기 힘든 감정.
그것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나 느껴지는 것은 처음 보는 경우였다.
‘언니는 교관으로부터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을 보았기에, 무려 남천일검 마저 작은 먼지 보듯 하는가 말이다.
“진짜 교관에게 뭔가 있나?”
그렇다면 한 번 도움을 청해볼까?
“이번 면담을 이용해봐야겠어.”
조만간 있을 방문일정을 떠올리며 모용소혜가 주먹을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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